5.15.21

울음을 멈추는 법. 두려움을 안고도 잘 살아가는 법. 사람들의 의연한 마음가짐을 닮아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 …

밤이 되자 한 없이 굵어지는 빗줄기에 같이 울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빗물과 흙으로 섞인 땅에 질척인다.

뭉그러지는 내 의지와, 엉킬대로 엉켜버린 이 마음을 태워버리고 싶다.

눈물을 흘리는 것 에 두려움이 없었고 그것이 곧 나를 치유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울고 또 울어도 끝이 없다. 내 눈물에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웃음을 머금은 입에서 버릇처럼 흘러나오는 슬픔과 좌절의 말들이 주위에게 폐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 이다.  바람과 다르게 이미 많은 이들은 불편함을 느낀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거리를 두고 또 두어본다. 나는 어느새 홀로 서 있다. 도움을 청하기 힘이 들고 눈치 보인다. 비관적이고 비겁한 변명거리들이 되는 것 만 같아 부끄럽다. 걷기 힘든 길을 택한 나 자신에게 어느정도의 확신이 있었다. 확신이 자꾸만 뭉그러질수록 숨 쉬는 것 이 힘들다. 괜한 고집인가, 괜한 꿈일까, 괜한 두려움일까, 무섭다.  

눈 앞의 모든 것 들이 아득하고, 부족한 나를 바라보는 것 이 너무나도 괴롭고, 주위에 안겨주는 실망과 미치지 못하는 기대에 내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다.

구분을 짓지 못하겠다. 선을 긋지도 못하겠다. 이것도. 저것도. 다 못할 것 만 같다.

밤새 울어도 깊은 잠 자고 일어나 다 잊고 웃어 넘기던 어제의 날들과 달리, 이제는 자고 일어나도 내 마음에 흙이 가득 차 있다. 다시 밝은 날이 찾아와 이 글을 본다면 부끄러운 미소 짓겠지만, 그래도 지금 나는 모든 것 이 검다. 이 무섭고도 괴로운 밤이 지나고 다시 푸른 새벽이 오면 모든 것 이 다시 제 자리를 찾을지도..

괜찮은 척 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내뱉는 비관적인 말에 우리 교수님은 말씀하신다. 

= 미안하다는 마음을 버려라. 너의 삶은 미안할 일이 아니다.

= 극도로 예민한 너의 성격이, 터질듯 한 두려움과 넘치는 생각들이 새로운 기회들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 가끔은 그냥 흐르는대로 사는게 가장 오래 갈 수 있는 것 이다. 그 자체가 이미 쉬운 일 이 아니기 때문에.

= 너의 알 수 없는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은 우리가 아닌 바로 너 자신이다. 짙은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내려놔라.

그냥 살아도 충분하다는 말이 나에게는 왜 그리도 어려운 문제일지. 아직 내 안의 꿈이 완전한 어둠으로 덮여있는 것 은 아니라는 그의 말은 감사하다. 이 곳 에서 옳고 그른 길은 없다고. 너의 노력을 억울해 하지 말고,너가 꿈 꾸는 그 길에 그 간절함 알아 줄 사람 꼭 만날꺼라고 함께 소망해주신다.       

Robert Schumann 의 Gesänge der Frühe 는 새벽을 채우는 침묵의 공기를 들이키며 눈동자 속 세상을 넓히려 하는 인간의 알 수 없는 고난을 그린다. 불협화음이 덤덤히 부딪혀 내려 앉는 새벽의 무거운 마음이 그대로 투영된다. 이 길 의 모호한 끝을 늘 생각하게 한다. 5개의 악장을 돌고 돌아 다시 열린 시작으로 돌아오는 이 음악처럼, 나 역시 우리 삶에서 느끼는 반복적 고민과 경이로운 행복의 순간을 조금이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

5.4.21

Roland Barhtes의 Jouernal de deuil, 김진영의 애도일기 “아침의 피아노“, 그리고 “이별의 푸가“.

공허한 시간이 연결 지어 한 길을 일구어낸 세 책을 읽고 또 읽는다.

사랑하는 대상이 남기고 간 빈자리.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떠날 나의 자리를 준비하는 조용한 마음.

엉키고 덮여있던 관계속 우리가 들이키던 자유라는 짧은 숨.

흩어진 후회의 조각을 다시 맞추며, 잃어버렸던 시간을 가슴에 다시금 새기는 이 모든 일들..

요즘 나의 시간의 흐름은 너무나도 거세고 빠르다. 이렇게 급속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조바심이 뒤엉켜 괜한 생각과 작은 걱정이 꼬리를 문다.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고 이 책 저 책 가방 안에 품고 다니지만, 정작 나는 현대음악과 독어문학에 관한 교과서를 읽고 있다. 시험을 위해 외우고 공부해야 하는 것 말고 읽고 싶은 책은 수도 없이 많지만, 괜한 마음을 다스리기보다는 계획한 일을 앞두고 게을러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교과서를 손에서 놓지 않으려 한다. 그저 울적하고 몽롱한 생각에 덮여 살기보다, 빛나는 책임이 주어진 삶의 주체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내 친구는 나에게 늘 묻는다. 너는 왜 맨날 슬픈 책만 읽고 슬픈 영화만 보고 슬픔 섞인 삶에 집착 하냐고. 딱히 자랑스러이 할 말 도 없고, 이런 내가 굳이 숨겨야 할 독서 패턴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가끔은 악보 안에 쓰여있는 음표보다 검고 흰 악보 뒤 그려진 작곡가의 풍파에, 아니면 그들의 grotesque, 그리고 화려한 삶의 불우하고 진흙같은 이면에 더 큰 호기심이 간다. 아니면 못난 나의 마음을 다른 이의 삶을 통해 바라보고 싶은 핑계일지도…

작곡가를 공부할때도, 누군가를 만날때도, 자꾸만 나는 사람들의 아픔이 무엇인지 관찰하고  이야기를 듣는 습관이 들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런 나의 모습은 집에서 받은 무한한 사랑 때문에, 그리고 가슴 한켠 남은 기쁜 순간들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늘 웃는 것 이 세상 전부라 생각 했던 나는 학창시절 작은 상처에도 크게 흔들렸던 기억 역시 많다. 내가 웃는 동안, 웃지 못할 사람들이 마음에 걸린다. 내가 사는동안 죽는 이들의 아픔이 마음에 걸린다. 나같은 아이도 이렇게 사는데, 다른 이들은 메마른 가슴 바스러지는 아픔을 어찌 견디어 내며 살까.. 어쩌면 쓸데없는 오지랖처럼 여겨질 수 있는 나의 슬픔에 대한 집착은 매 순간 내가 세상을 마주하는 눈에 새로운 빛이 되기도 한다.

살다가 갑자기, 정말 갑자기, 내가 용납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고, 내 두 손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때, 내 곁을 모두가 떠났을때 흔들리지 않으려는 굳은 의지를 쌓는 연습 같은 것 일까. 누군가를 사랑하고, 품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그러려니 하며 놓아줄 수 있는 조금 더 어른스러운 관계를 위한 연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확진자가 천명을 넘어서고, 우리들의 삶은 무언의 기다림 속 으로 차츰씩 잠겨들어간다. 매일을 만나던 너와 나의 거리가 점점 멀어져가고, 찬 겨울 공기 입김으로 함께 나눌 수 없고, 내 가족을 위해 뛰어야 하는 길이 막히고, 당장 내일의 하루가 알 수 없어 두근 거리는 가슴 부여 잡은 채 잠 못 이룬다. 잠깐의 기침에도 서로에게 놀라 집 밖을 나서지 못하고, 모두가 한 곳 에서 머무르려 한다. 하나의 질병이 주는 공포를 넘어서서 사회가 무너지고, 서로를 멀리하고, 더 나아가 어떤 이에게는 thanataphobia로 다가온다. 기회를 저 먼 곳으로 보내고, 사랑하는 사람도 보내고, 스쳐 지나는 우연의 아름다움 또한 저 먼곳으로 보내고 있다. 이게 뭐 그리 어려운 일 이나며 호탕한 웃음으로 넘기기에는 많은 이들의 고통의 신음이 크다.

며칠 전 어려운 이 시기, 힘겹게 버텨내는 우리들의 마음을 보여준 하나의 관용구가 생각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많은 측면에서 쓰이는 쉬운 이음 말 이지만, 지금 우리의 삶 앞에 던져진 헤어진 굵은 밧줄과도 같다.

우리의 삶은 고달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이겨낸다.

나는 내일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일과 인사한다.

배가 너무 고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려한다.

내가 서 있는 곳 정말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각자만의 답을 찾는다.  

너무 답답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참는다.

너는 나에게 연락을 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다린다.

네가 너무 밉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우리는 너를 용서한다.

고통의 상대적 척도는 우리 모두 다르겠지만, 모두에게 아픔은 존재한다.  나는 그런 아픔을 그저 간과 하고 지낼 수 만은 없다 생각한다. 마음은 저 멀리 앞서 있지만, 현재  나는 해줄 수 있는 것 은 기도와 말 한마디 뿐 인 작은 사람이다. 언젠가는 함께 걷는 길의 사람들을 품어주는 큰 사람이 되는 것 이 최종목표이다. 그때까지 나의 사람들 역시 조금만 버텨내어주기를 바란다.

나 역시, 어려운 꿈에 도전하며, 온전치 못한 환경과 조건 속 에서 하루하루를 꿈을 향해 걸어간다. 어느날 밤 은 내 자신이 못나보이기 까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설사 내 머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채, 하얀 아침을 맞이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저 읽고 쓰고 또 공부한다. 이것이 맞는 길인가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이 길을 걷게 되면 나에게 또 다른 길이 올 것 이라 믿기 때문이다. 모든 것 이 일시 정지 된 것 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헤엄쳐 나간다. 얼마나 빠르게 도달하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저 한 다리 한 손  내 딛는 것 이 가장 소중한 것 이다. 우리는 얼지 않는 바닷물 안에서 그저 한폭 한폭 움직여야 한다. 절대 내 몸이 얼게 두어선 안된다. 차갑고 날카로운 파도에 내 몸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을 지언정 우리는 손을 뻗고 다리를 움직여 가라앉지 말아야 한다. 함께 손잡아 파도를 이겨내고 싶지만, 지금 우리가 이 헤엄을 멈추고 모든 것 을 놓아버린다면 결코 서로를 구할 수 없다.  너도 나도 일단 버텨내어 따스한 봄 오는 하늘을 기다려야만 한다. 허우적 물을 가르는 서로의 손짓 발짓을 기억하며 같이 움직이자. 내 곁에 네가 함께 물을 가르고 네 곁에 내가 함께 숨을 몰아쉬며 발버둥 치는 것을 아는 것. 서로를 위한 간절한 기도이자 바램이다. 나의 기도와 바램은 쉼 없이 헤메이는 우리의 헤엄이 펄럭이는 날개짓 되어 먼 하늘 가를 수 있을때까지 계속 될 것 이다.

12년만에 맞는 한국에서의 12월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환경이 바뀌면 또 다른 것 을 느낄 것 이라 기대했던 것 같다. 눈에 보이는 환경은 달라지었을지언정, 내가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있었어도 우두커니 서서 맞는 칼바람과 같은 순간은 변함 없을 것 이다. 나는 누군가가 괴로움 에 몸을 뒤튼채 이 악물고 손을 놓는 모습을 보는 것 을 매우 어려워 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포기 하지 않았으면 한다. 때론 현실적으로 옳은 경우와 결정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나를 놓고 희망을 땅에 묻는 것이라면 그렇게 포기하면서까지 파도에 치여 힘 잃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의 삶이 내리막길을 걷는다 하여도 그 걸음 걸음 힘 주어 걷기를 바란다. 버거운 책임감과 밀려오는 부담에 삶을 뒤로 하지 말고 걷기를 바란다. 설사 내 입에서 험한 말이 나오는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버텨내어 다시 오르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이겨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응원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삶의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의 삶도, 내 앞에 앉아있는 이의 삶도,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같은 공기를 나누는 저 먼 곳 의 이의 삶까지도.

오전 내내 한 자리에 앉아 문헌을 읽고 정리하다보니 엉덩이가 아팠다. 그래서 잠시 자리에서 일어난 채 글을 쓴다. 이 글을 마치면 나는 다시 앉아야 한다. 솔직히 나는 자신 없다. 이 모든 것 다 해내기 자신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다시 또 앉아 내 일을 하려한다. 지금은 이렇게 버티고 준비하는 것 말고 없다. 내일의 결과를 생각하다보면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욱하는 마음을 구겨 넣고 온전히 오늘에 충실하려 한다.   

숙제

내 몸과 마음이 이곳 저곳 떠돌았던 것 처럼 내가 생각하고 뱉는 말들 조차 한 곳에 정착하지 못 한 듯 하다. 지난 한달간 나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어려운 시간 속 에서도 나를 발견하고 배워나가는 시간이다. 예전에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삶의 숙제를 직면 하고 있다.

첫번째로, 나는 한국말도, 영어도, 독어도, 그 어느 나라의 언어도 능통하지 못 하다는 것 이다. 특히나 글을 써 나가면서 그 한계를 느낀다. 누군가를 가르치려면, 그리고 글을 쓰려면 그 언어의 겉과 속의 깊이를 다 헤아려야 하지만, 나는 이곳 저곳의 겉핥기 식의 배움 때문인지 학문의 길을 걷기에 한 없이 부족함을 느낀다. 문학과 음악학에 관심을 표하고 그 길을 걷고 있지만 이 분야에서 가장 필요로한 작문능력이 현저히 모자라는 것 이 과연 나는 이 분야를 공부할 자격이 있는가 다시 한번 돌아보며 개선할 수 있는 방법 또한 모색 중 이다.


두번째, 나는 아직도 쉽게 잊지 못하는 두려움을 안고 산다. 이 감정의 이름을 정확히 한 단어로 표현 해 내기에 그동안 쌓인 시간과 엮어있는 관계가 매우 복잡하다. 나의 나약함은 찰나의 흔들림에도 세상이 무너질 듯 한 고통으로 다가온다. 모든 것 을 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나의 마음에도 쉴새 없이 몰아치는 폭풍에 며칠을 정신을 바로 잡지 못하였다. 그 누구보다 학생의 마음을 잘 이해 하면서도, 그 이해의 선이 너무 얇아 내 자신이 바로 그 사람이 된 것 처럼 흔들린다. 교수님들과의 대화에서도 그런 나의 나약함이 비추어 지는 것 이 두려워 매일 새벽 몰려오는 긴장을 떨쳐낼 수 없다. 학생을 가르치고, 또 내가 학생이 되어 배우는 두 입장 모두에 서 있는 지금 시간이 늘 어렵게만 느껴진다. 며칠 전, 미국에 계신 교수님과의 새벽 약속 시간을 2시간 앞둔 채 피아노 녹음실에 갈 채비를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내 zoom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간을 다시 확인해봐도 내가 계산한 시간이 맞는 것 같다. 이런 저런 고민 할 새 없이 등이 서늘해지며 지금 피아노가 없는 집 안에서 어떻게든 이 어려운 약속을 지켜내어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파자마를 입은채 윗옷만 급히 정갈히 갈아입고 부엌 한 켠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았다. 너무 급한 마음에 렌즈도 한쪽만 낀 채 화상 미팅을 시작 하였다. 다행히도 교수님은 피아노 없이 작곡가의 문학적 접근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셨지만, 혹시라도 이 미팅에서 드러나게 되지 않을까 했던 그 당시의 상황에 울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그저 웃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꼭두새벽 초록색 파자마차림에 흰 정장셔츠를 입고 누군가와 열렬히 대화중인 내 시끄러운 인기척에 놀라 거실로 나오신 엄마에게 카메라를 피해 손짓 발짓으로 상황을 설명 하였다. 오늘의 미팅을 위해서 많은 것 을 준비 했지만 아무것도 보여드린 것 없을까봐 아쉬움이 몰려왔다. 나의 잘못된 시간 계산이 귀한 기회를 허망히 날려버릴 것 만 같았다. 도대체 왜.. 왜 이런 실수까지 하기에 이르렀을까 내 자신을 속으로 불을 내며 다그치는 중 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남발하게 되는 요즘의 내 정신 상태가 이제 시간까지 제대로 계산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런 것 은 아닐지 걱정했지만, 교수님은 내가 독일에 있는 줄 아시고, 독일 시간에 맞춰서 연락 주셨던 것 이고, 그런 교수님의 친절한 배려가 나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만 같은 시간이 되었다. 새벽 3시, 나는 결국 가족 모두를 깨우는 민폐를 끼친채 큰 일을 치루었다. 원하는 꿈이 너무 먼 곳 에 있어서 그런지 조금이라도 내일의 형체가 흐릿해질때면 안간힘을 쓰며 어린아이같이 눈물을 글썽인다. 고작 한시간 반의 짧은 시간이 내가 걷는 길의 방향을 바꿀 수 도 있다는 생각에 아직도 나는 그 한시간 반의 시간에 모든 간절함을 퍼붓고 또 지쳐 잠이 든다. 과연 할 수 있을까 매일을 고민하면서 불안한 걸음 걷는다.


세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는 것 이 중요하다. 나는 인정받을 만 한 능력 없지만, 그리고 차가운 경쟁 사회 속 능력자들만이 활개를 펴는 이 세상에 명함 조차 내밀지 못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두 발로 일어설 것 을 믿는다. 나만의 디딜 땅이 있음을 안다. 내가 일어서는 것 이 불가능이 아닌, 말도 안되는 욕심도 아닌, 그저 나의 두 다리로 온전히 일어서야 하는 삶의 의무이자 꿈을 향해 남겨야만 하는 진한 발자국이다.

네번째, 나 혼자만의 어려운 세상이 아니다. 나는 매 순간 만남의 축복을 위해 기도해왔다. 중학교 시절 사모님께서 말씀해주신 만남의 축복과 그 통로에서 받는 은혜와 가르침을 잊지 못해, 지금까지 늘 기도하고 있다. 관계 속 에서 끊임 없는 실수도 있었고, 반복되었던 옳지 못한 생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정말 좋은 분들이 함께 손 잡아 주시고 계시다. 한국에 온 후 매일을 책 앞에서 졸며 집을 지켰다. 무기력한 내 자신과의 대화가 길어지고 내쉬는 한 숨 역시 그 끝을 알 수 없을 때 쯤 임마누엘 성가대에서 함께 섬기는 선아언니와 임선생님을 뵈었다. 두 분의 삶을 나눠주시는 그 잠깐의 시간동안 나는 마음 속 에 알 수 없는 동요를 느꼈다.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삶에 일어나는 높고 낮은 물결과 거품을 통해 무거운 내 자신의 갑옷을 잠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그 동요의 시간 속 두 사람이 걸어온 길에 온전히 마음과 귀를 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걷는 다른 두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음 짓는 두 소중한 길.. 지금껏 살면서 많은 사람과의 깊은 나눔 없이 작은 관 안 에서 살아온 나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택 할 수 밖에 없었던 나의 모자란 생각에 , 고작 서른 넘은 삶에 벅찬 숨 쉬는 어리숙한 나의 어린 마음에, 나보다 더 외롭고 먼 걸음 하셨을 두 분의 미소와 다짐이 용기의 씨앗이 되어주신다. 그런 두분에게 내가 지금 당장 드릴 수 있는 것 은 무한한 축복과 기도이다.


어렸을 적 부터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는 이제 사람들을 만나면 조금 덜 웃으려고 한다. 그리고 조금 덜 마음을 내비치기도 한다. 내 몸을 사리려는게 아닌, 이게 어쩌면 정말 그들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 하기 때문이다. 감히 내가 뭐라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 할까 다그치며 가급적이면 멀리하려 노력한다. 아직 갈길이 멀지만 오늘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가까이 또는 멀리서 서로를 바라보며 나만의 방법을 강요하지 않는 것. 아무리 세상 가장 친절한 마음, 선한 마음이라도 그것이 독이 되어 모두를 해치는 것 은 한순간임을 늘 가슴에 품고 조심하려 한다. 아끼는 사람일수록, 가까운 사람일수록, 고마운 사람일수록, 더욱 더 그 아픔을 긁어내고 싶지 않다. 쓰다듬는 나의 손 끝에 스친 그 사람의 피부에서 빨간 선혈을 보게 하는 것 은 가장 따갑고 쓰라린 아픔이라는 것 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삶의 여러곳에 선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 파란 하늘의 색은 같을 수 있으나 밟고 선 그 땅을 일군 흙과 걷는 길 위에 피는 꽃은 모두가 다르기에 함부로 서로의 어깨를 밀쳐서도, 끌어 당겨 안아서도 안 된다는 것 을 생각해본다. 모두가 한 길을 함께 걸을 수 있기를 늘 소망하지만, 그렇지 못 할 때에는 절대 내가 아닌 다른 이의 디딘 곳 에 함부로 바람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우리의 두 발이 닿은 땅이 누군가에게는 잘 다져진 오솔길밭, 차가워진 아스팔트 도로 위, 파도가 거품치는 모래바닥, 그것도 아니면 이미 메말라버린 갈라진 논밭 일 수 도 있기에.. 모든 이의 말 못 할 이 어려움들을 조금이나마 알고 위로하고, 알고 사랑하고, 알고 배려하고, 알고 품어줄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11월 30일 그리고 12월 1 일

굳게 다진 마음 붙잡고 한 달의 마지막 일주일을 보내었고, 걱정 속 에 새로운 달 의 첫 하루 맞이를 준비하였다. 주일 하루 종일 귀한 찬양의 시간을 통해 마음에 금빛 불 밝히고, 그렇게 12월 첫 날을 바라보던 침묵의 11월의 마지막 밤.

이 밤, 모두가 얼어붙어 옴짝달싹 못하게 하던 그 사람의 글에 나도 모르게 바다위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렸다. 내 무지함으로 인하여 한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 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내 가슴은 땅을 마주하였다. 나의 최선에도 나의 부족함은 여지 없이 드러나나보다. 애써 숨겨왔던 그동안의 불안했던 내 마음이 질서 없이 채워진 바닷 모래 알 속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잠깐의 파도의 움직임에 형채를 알 수 없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바다에 쓸려 높은 성벽의 자취를 감춘 나의 마음은 결국 나를 또 다시 맨땅을 밟게 하며 바들바들 떨게 한다. 불안함과 두려움을 웃음 뒤로 숨기는게 성장하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덕목이라 생각했지만, 오늘 나는 항상 걱정 안고 살아왔던 예전의 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가슴의 평온함. 어려운 시간 보내는 동생을 도와주려 작성했던 과제가 독이 되어 돌아와 나를 삼키는 것 만 같다. 억울함과 분노 섞인 마음보다도, 나의 부족함을 날 선 말과 눈빛으로 채찍하던 예전의 무섭던 얼굴들이 떠오르며 식은땀이 등을 타고 내린다. 지나간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 나의 가장 큰 삶의 숙제 중 하나 였는데, 어제를 다 잊은 것 같았던 오늘 나는 다시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를 마주한다. 나의 부스래기 마음과 풀려버린 두 손과 발이 예전의 기억을 더욱 더 또렷이 상기 시키게 한다.


여러가지 일을 함께 해내지 못 하는 여유 없는 나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과감없이 도전장을 내밀며 도움을 자청하였다. 그런 나의 노력이 무색하게 그 아이의 삶이 무너질까봐.. 나로 하여금 웃기를 바랬지만 혹여나 더 잘하지 못해서 상처 많은 그 삶이 더 아파질까봐. 결국 그 뾰족한 화살이 내 가슴을 뚫게되는 두려움. 내일 또 그 아이를 바라보며 괜찮다고 다독여야 하는데, 과연 내가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걱정이 문득 앞선다. 고작 과제 하나에 이렇게 힘이 들까? 아니다. 고작 아니다. 우리에게는 대차게 뚫어내어야 하는 막힌 숨구멍이었다. 누군가를 품고 위로하는데에 있어서 나는 어리숙한 마음만 앞설 뿐 부족한 현실에 늘 좌절한다. 이렇게 어리숙하고 어눌한 마음에서 나오는 친절과 사랑은 나를 늘 시험 한다. 나의 목을 꽉 쥔 이 시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다.
어느새 검은 밤의 시계는 12월 1일 3시를 향해간다. 좀처럼 진정할 수 없는 마음을 쓸어내리고 눈물을 삼켰다. 이렇게 검은 파도가 나를 향해 무섭게 돌진할때면 나는 아무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쓸려 모든 것 을 잃는 것 만 같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나의 연약함이 나를 이리저리 흔드는 것 이다.


오늘은 오랜시간 정성들인 원서들을 제출하는 그 마지막 날 이다. 수년을 갈망했던 그 꿈에 한발짝 용기를 내어 걸었고, 그런 나의 무거운 첫 걸음에 쉴 새 없이 건네던 많은 도움의 손길들에 감사했다. 부족한 나를 매일 마주하면서도, 이렇게 출발점에 설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그저 기쁨의 마음이 벅차다. 가장 중요했던 한 해의 오늘, 나는 평탄 할 수 없었지만, 나보다 더 평탄치 못한 하루가 되었을 사랑하는 동생과 또 다른 어려운 걸음의 삶들을 위해 나는 그저 아무 말 도 할 수 없다. 그저 그 아이와 나의 마음을 굳게 지키는 것 뿐. 그리고 주어진 내 일 또한 잘 마무리 하는 것. 나도 너도 세찬 바람 부는 이곳에 서서 절대 쓰러지지 않고 걸음 옮기기를 사랑으로 기도한다.


나의 선배들은 원서를 제출하는 매년 12월 1일 저녁, 시험의 첫 단계를 애써 마친 서로를 격려하고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연습실 문 뒤에 몰래 숨어 케익에 초를 꽂고, 준비한 손편지를 건네며 기도해주었던, 어린 아이들처럼 바라만 봐도 좋았고 또 슬펐던 지나간 시간들이 뇌리속을 스친다. 함께 하던 사람들의 빈 자리가 유난히도 크게 느껴지고, 모두가 그립다. 추워진 새벽 밤, 다들 안녕하기를 바라며 검은 잠 청하려 한다.

11.25

나의 모든 것 인 것 만 같던 이 세상의 공기가 유난히도 멀게만 느껴졌던 어제의 아침, 엄마는 부산에 계신 할아버지를 뵈러 갔고, 함께 가지 못 한 나는 늘 그렇듯 잠깐의 통화로 안부 인사를 전하였다. 할아버지와 통화 하는 그 시간 만큼은, 그 어떤 세상의 나보다도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 되는 것 만 같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런 근사한 모습의 나.. 오로지 할아버지만이 그런 나로 만들어주신다.

“아 한.선.미. 니는 이제 부산 안 올꺼가?”

“아녜요 할아버지, 저 다음주 화요일만 지나면 바로 할아버지 보러 가야지요”

“아이다 바쁜 거면 안 와도 된다! 너의 청춘이 행복하고 바쁜 날이 있다면 그게 기쁜거다. 하지만 보고싶다. 빨리 와라. “

부담에 부담 한 근 또 얹은채 내 정신은 하늘과 땅을 번갈아 오가는 요즘, 할아버지를 보러 가지 못한 것 에 대한 무거운 마음이 한 뼘을 너머 자라나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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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아주 어릴적 기억 속 서로의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던 당신은 지금의 나를 깨운 가장 첫번째 사람 입니다

나를 다시 살게 한 사람입니다.

아주 보통의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가르쳐 준 사람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배움의 시간은 숨이 끊어지는 그 날까지도 멈추지 않기에, 내가 모르는 세상과, 그 세상에 속한 다른 이의 이야기와 노력을 높이 사며, 내가 지녀야 하는 겸손함을 늘 손과 마음에서 놓지 않게 하는 열정의 사람입니다.

당신이 있어서 나는 지금껏 포기를 몰랐으며, 그저 그런 아이였던 나를 사랑해주는 당신에게 두터운 마음의 빚을 진 채, 빠르게 흐르는 시간만큼이나 아쉬움 가득 쌓이는 오늘을 멈추고 싶습니다.

세상에 용기내어 손을 뻗고, 사람을 사랑 하는 법 을 배우며,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맺어진 기도의 언약 밤 낮으로 실천 하게 해주어 고맙습니다.

당신이 함께 하셨기에 나는 단 한번도 멈출 수 없었고, 앞으로도 이 길 그대로 묵묵히 나아갈 것 입니다. 당신에게 보고 배운 그 사랑을, 훗날 내 자녀들에게 그대로 남김없이 전해 줄 것 을 약속 합니다.

부모님 마저 어려운 상심에 휩싸여 무모한 나의 길을 의심하고 내 고집을 꺾으려던 험난한 순간에도 나를 포기 하지 않았고, 자식이 걷는 길에 끝 없는 희생은 온전한 부모의 몫이라며 무조건 적 인 응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던 당신은 나의 은인이자 큰 사랑 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할아버지가 얼마나 멋진 이 였는지 세상 가장 멋진 액자에 고이 담아 내가 기억하는 아주 작은 순간까지도 마음에 걸어두고 바라봅니다. 매일의 실천으로 삶을 살았고, 열정으로 높은 벽을 넘어섰으며, 호기심으로 지경을 넓혔고, 겸손함으로 책을 손에 놓지 않았고, 사랑으로 우리의 손을 먼저 잡던 할아버지.

언젠가는 당신이 이 세상에 안녕을 고하고 먼 길 떠날 것 임 을 압니다. 나의 오직 한가지 두려움은, 떠나간 당신의 자리를 보며 이제 나를 보여줄 그 누구도 없다는 것 입니다. 보잘 것 없는 자랑 그저 기쁨으로 들어줄 사람이 없을 것 도 섭섭합니다. 하지만 축제와도 같은 삶 열정으로 살아오신 만큼 나 역시 그런 당신을 축복하고 기억 하며 주어진 길 걷는 준비를 합니다.

당신이 지금껏 나를 부르는  “한교수”. 그럴듯한 단어의 폼새만큼이나 무거운 부담감보다도, 선한 것 하나 없는 손녀의 기를 살려주시려 그렇게 불러주신 것 이라 생각하며, 예나 지금이나 감사한 그대만의 한교수는 당신이 사명을 다 하고 하늘 길 걷는 그 날 까지 보고 배운 최선을 다해 사는 삶 살며, 열정적인 삶 선물 할 것 입니다.

일주일 후 에는 나의 이 간지럽고 유난스러운 사랑의 마음을 글로 적어 전하려 하오니, 그런 나에게 섭섭치 마시고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매일을 기다리게 하고, 기대 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그리고 정말 고맙습니다.  

11.21.2020

우리의 뜻 대로 안 되는 것 이 너무나 많기에

내가 소망하는 것 을 모두 담기에는 내 그릇이 너무 작기에

아주 가끔은. 아주 가끔은. 두려움이 한발 먼저 앞선다.

버선발로 달려나오는 이 혼란스러운 아침에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라곤 그저 애써 무시하며 하던 일 하는 것.

매일 아침, 오묘히도 나를 옥죄는 두려움을 뒤로 한채 같은 하루를 시작하는 것 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은 일이지만,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에서 지낼 수 있는 것 만 으로도 그저 감사할 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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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내가 어느 시간에 맞추어 살아가는지 잘 모를 때 가 많다. 독일의 시간에 살다가, 미국의 시간에 살다가, 다른 이의 시간에 살다가, 나의 시간을 찾으며, 정신 없는 때 를 보낸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3개월을 너머 이제는 점점 이 환경에 익숙해지기도 한다. 익숙한 생활 속, 요새 나의 마음은 무조건 한 곳 만 집중하여 살고 있다. 다른 것 들 을 굳이 돌아보지 않으려 하고, 다른 마음에 귀 귀울이는 것 역시 잠시 멈추고 지내고 있다.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것 에 대한 접촉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오로지 하나만 생각하며 산다면 무언가 이루어질 것 같은 무모한 기대가 내 마음 한켠에서 자라나고 있나보다. 가끔은 서점을 지나며, 사고 싶은 책 목록을 계속해서 채우고, 12월 시작 될 글쓰기 시간도 마음에 꼭꼭 넣어둔 채 버거운 오늘의 11월이 지나기만을 기다리기도 한다. 차가운 파란색의 하늘을 사진에 담고 싶은 어린 마음도, 잠시 내려놓고 빠른 걸음 걸어본다. 내가 좋아하는 이 모든 것 을 지나치게 자제 하는 이유는, 한가지에 최선을 다해보고 싶은 그 간절한 마음 하나 때문이다. 어리숙한 생각일 수 도 있겠지만, 그리고 이런 방법으로 진지하게 임하는 것 이 최선은 아니라 할 수 있지만,  최고가 아닌 나는 조금은 무모해 보이는 최선의 노력과 선택이 필요하다.  

잠시라도 한 눈 을 팔면 모든 것이 사라질 외줄타기 시간이다. 그래서 다른 아름다움에, 다른 즐거움에 잠시라도 내 마음이 현혹 된다면, 지금껏 아슬아슬히도 쌓아놓은 이 모든 것 들 을 손에서 놓칠 것 만 같다. 불안함과 안도의 시간을 오가며 많은 것 들을 외면하려 애써본다. 그저 괜찮은 것 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해보지만, 오늘도 불안하고, 오늘도 조마조마하며,  오늘도 걱정이 가득 찬 나를 덮는 겨울 하늘은 그와 달리 너무나도 예쁜 것 같다. 아주 잠시라도 내 머리 위를 올려다보면 안 될 것 만 같다.

사람과의 만남이 아닌 오로지 내가 일궈내어야 하는 일 안 에서만큼은 그 어떤 운명도 믿지 않는다. 우연에 기대지도 않으려 한다. 하루하루 쌓아가는 정성을 믿고, 찢어진 나의 마음을 기워 아슬하게 줄 타기 하며 산다. 말도 안 되는 꿈을 바라기 때문이 아닌, 그저 내 앞에 놓인 계단 앞에서 최선을 다해 올라갈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다. 지금은 하나만 바라보고 걷는다. 그 길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다른 것 들 은 잠시 뒤로 미룬다.

어쩌다 – 내가 걷는길

초가을까지도 얼굴을 내밀며 비치던 푸루스름한 새벽 빛은 이제 완연히 그 모습을 감추었다. 그저 밤과 아침을 알게 하는 것 은 불 꺼진 강 건너 옥수동에 짙게 깔린 고요한 밤과 , 어둠 속에서 이불을 걷고 새로운 날을 맞는 나의 느린 걸음 걸이 뿐 이다. 깜깜한 겨울 새벽이 한발짝 더 가까이 온 만큼, 여름날의 가벼웠던 아침의 활기 역시 몸 속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오늘의 하늘은 6시 50분이 되어서야 그 푸른빛을 띄운다. 나도 이제서야 눈에 글이 보이고, 조금씩 자동차 헤드라이트로 채워져가는 올림픽대로가 보인다.

정신 없이 사는 나의 11월, 많은 것 이 뒤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에서의 삶과 그리 큰 변화 없이 살아가지만, 아주 작은 곳에서 생각치 못했던 활기를 찾는다. 14년만에 보내는 서울에서의 시간이 감사한 것 은, 중,고등학생때의 치열했던 삶을 다시한번 같은 곳을 밟아가며, 같은 조바심과 기대를 안으며 살고 있다는 것 이다. 영영 떠나서 그 때의 나를 다시 만나지 못할 것 이라 생각했던 아쉬움을 어쩌다 나를 찾아온 매일의 기쁨으로 채워간다. 핸드폰도 집에 두고 그저 정신 없이 피아노 책과 컴퓨터만 들고 돌아다니기 일쑤지만, 이 또한 중, 고등학교때와 비슷하기 때문에 가족들은 그리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모두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대충은 다 알 수 있기에..

나와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은 모두가 공감하겠지만, 우리 모두가 중, 고등학교때 반 정신을 놓은 채 살았다. 밤과 아침의 경계 없이, 오늘과 내일의 큰 차이 없이 그저 연습하고, 공부하고, 레슨 받으며 지내었다. 열심히 하는 보통 수준의 나를 그 시대의 음악 교육에 필요했던 모든 것을 누리게 하려 밤 낮 가리지 않고 나를 데리고 다니던 40대 우리 엄마의 모습이 내 가슴을 툭 치고 지나감에 눈물과 웃음이 동시에 지어진다. 그때의 어렴풋한 기억 속 한 없이 개구졌던 순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엄마가 잠시 바쁜 틈을 타 친구들이랑 조금이라도 더 놀아보려고 기차역을 돌고 돌다 엉뚱한 곳 에 내리고, 라디오가 듣고 싶어 밤 12시만 되면 연습하다 말고 워크맨을 몰래켜고, 언니들과 연습실에서 컵라면 한개를 국물 한방울 남김 없이 나누어 먹으며 끝 없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선생님 레슨실 앞에서 한시간이 지나도록 벽에 머리를 대고 개운한 잠 자기도 했다. 결국 그 대가로 눈물 콧물 쏙 빠지게 혼이 났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렇게도 착하고 여리던 엄마가 한손에 슬리퍼를 놓지 못한 채 나를 쫓아다닐 수 밖에 없던 일들이 꽤나 많다.


중학교때 다니던 연습실과 녹음실을 14년이 지난 오늘도 다니고 있다. 오랜만에 뵌 녹음실 선생님은 나를 보며 화들짝 놀라셨고, “녹화하는 옆 모습이 초등학교때의 모습 그대로다” 하시며 껄껄대며 웃으신다. 혼자만의 녹음을 끝내고 공부하러 가는 길을 걸으며 예전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루 빨리 어른이 되어 이 길을 혼자 걸어보는게 그렇게 간절한 소원이었는데..” 늘 차 안에서만 바라보던 “어른되면 걷는 길” 을 수 많은 인파 속 하나가 되어 매일을 걷게 되다니.. 한국에 오래 있게 되니, 바쁜 일상 속에 숨겨졌던 꿈도 함께 이루고 있었다. 짧은 동선 안에서도 나의 내일로 가득 채웠던 그 길을 매일을 걸으며 현실을 마주하는 오늘의 “중학생 로망 속 어른 한선미” 의 모습은 영 볼품 없지만, 오래 전 시간의 길을 함께 걷는 것 만 같은 기쁨과 어린 마음의 성취감이 가득하다.

중학생 시절 내 마음처럼, 지금 이 길을 걸으며 “멋진 모습” 을 꿈 꾸고 있다. 산 더미 같은 일을 눈 앞에 두고 한숨이 쉬어지지만, 내가 내 자신을 속인채 미쳐 살아가는 꿈 없이 이 모든 일을 마주할 수 있을 용기가 없다. 꿈에 몸을 싣고 살아가는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며 웃음 지을 날이 꼭 올 것 이다. 어렸을 적 그리던 내 로망과는 많이 달라진 키 작고 후덕한 어른의 모습이지만, 이런들 또 어떠하며 저런들 또 어떠하리.. 한 길을 걸어왔고, 소원 속 그 길 바쁜 숨 몰아쉬며 걷고 있고, 같은 꿈 안고 누군가와 함께 걸을 수 있는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것 이 오늘의 내 고통을 경감해주는 위로와도 같다.

11.11.2020

2006년 이후로 처음으로 한국의 11월을 맞아본다. 파란 하늘 위에 뜬 설레임의 태양이 찬 공기를 타고 마음을 몽글거리게 한다. 형형색색 곱게 물든 나뭇잎들도 그저 신기하다. 피곤함을 두 다리에 나누어 걷는 저녁 귀갓길도 아직까지는 그리 버겁지 않다. 자그마한 간이 책상을 펴고 강아지 옆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공부 하다보면 엉덩이와 허리가 뻐근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할만하다. 그저 모든게 괜찮다. 홀로 지내는동안 내 마음을 괜찮게 하는 우리집이 많이 그리웠나보다. 매일 돌아올수 있는 집이 있어 감사하다. “꼭 잘 되어서 돌아올께. 잘 되기 전까지는 안 돌아와” 라는 말로 집을 나섰던 고등학생때의 내가 서른이 넘는 오늘날 그리 잘 되지 않았어도 돌아올 수 있는 곳 이 있음에 멋쩍음과 고마움이 함께 나를 위로한다. 뭘 그리 잘 되려고.. 잘 된다는 것 이 무엇이었길래..

매번 한국을 떠나는 공항 안에서 내 자신에게 다짐을 하였다. “꼭 높이 가야지. 내가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닿을때까지 멈추지 말아야지. 하나님이 그만 하라 하실때까지 해야지“ . 이런 나의 다짐은 내가 공항에서 부모님과 이른 아침 밥을 먹을때도, 수하물 검사관 앞에서 재킷을 벗으며 뒤를 돌아보는 찰나에도, 먹먹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비행기를 기다리는 게이트 앞에서도 늘 변함 없이 나를 강인하고 큰 사람으로 만드는 것 만 같았다. 작년 겨울 처음으로 눈물을 애써 삼켰던 기억이 있다. 그 눈물의 시작으로 어느날에서부턴가 나의 굳건한 약속과 다짐 속 마음의 갈등이 깊어지기 시작하였다. 여권을 들고 비행기로 향하는 그 길이 기약 없는 헤어짐을 맞이하는 것 만 같았고,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 가까이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졌던 것 같다. 멀리 가는 길이 결코 높이 가는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끊임 없이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이 모든 것 이 비겁한 변명이라고 치부되기에는 나는 그리 게을리 살지도, 한량스럽게 살지도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번 해 초 어느날, 뮌헨 나의 방 안에서 한국에서의 삶을 어렴풋이 그려 보았다. 과연 내가 돌아가도 괜찮을까? 내가 돌아갔을때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혹여나 괜찮을까? 매일을 고민하고, 매일을 계산하고, 매일을 그리었다. 나의 간절한 마음이 굳건해져 한국으로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었던 4월, 어렵게 비행기표를 구했지만 취소할 수 밖에 없었던 5월을 지나, 7월 중순이 되어서야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비행기가 땅을 만나는 순간 그 어느때도 느끼지 못했던 깊은 안도감이 나를 붙들었고, 2주가 넘는 자가격리 기간 동안 아무런 초조함 없이 내 할일을 하며 방에서 지낼 수 있음에 기뻤다. 잠깐의 숨을 돌리는 그 시간동안 생각치 못하게 높아져버린 코로나의 벽은 나의 시간 또한 함께 멈추게 하였다. 이렇게 길어지는 기다림의 시간을 차마 예상 하지 못하였고, 그로인해 나는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지내고 있다. 감사하면서도 다시 독일을 들러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늦가을을 지나는 길이 매우 바쁘게 느껴진다. 사실 글을 쓰며 걱정을 풀어놓을 새 없이 쌓여있는 일들을 해 나가는 것 이 벅차기도 하지만, 그만큼 정신없이, 그리고 바쁘게 사는 것 에 대한 감사함을 느낀다. 대학교 입시 때 이후로 무언가를 이렇게 쉴새 없이 머리에 욱여 넣은 적 이 없기에 가끔씩 일어나는 과부하 현상 때문인지 아무것도 기억 나지 않을 때가 있다.. 무섭게시리.. 제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아직 넣을 것들은 넘쳐나고 다음날 아침이면 백지장 만큼이나 하얗고 상쾌한 머릿 속 이 나를 겁주기도 하지만, 쾌쾌묵은 나의 다크서클은 그래도 나름의 의지를 갖고 하루하루 검게 타오르며 힘 없는 빛을 발하고 있다.

한국에 와서 하나의 습관이 생겼다. “좋은 기억” 만을 남겨두려는 노력을 한다. 누군가를 만났던, 만나던, 그리고 이제 마주할때면 그 순간과 관계가 주는 선한 것 만 마음에 두고 싶다. 예전의 나의 모습은 상처에 매우 민감하고 두려움이 컸다. 그 누구보다도 사람을 매우 좋아했지만, 관계 속 에서 자연스레 피어나는 그을림에 적지 않게 당황한 적 도 있었고, 오랜 시간 충격과 공포로 다가오기도 하였다. 두려움이 내 뒷덜미를 잡아 가두던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그동안의 나를 돌아보고 어제의 시간과 기억을 돌아보며 마음을 정리하니 조금의 여유도 생겼다. 오해를 하는 습관을 버렸다. 혼자 해석하는 습관도 버리려고 노력한다. 오디션 준비를 앞두고 끝이 보이지 않는 체크리스트를 보며 매일을 고민하며 살면서도, 관계에 대해서 다시금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나를 위해서, 너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를 바라보는 모든 이들을 위해서도 선한 기억만을 품고 나누고 싶다. 뒤 돌아 후회의 숨 쉬는 것 그만하고, 옆에 놓여진 짙은 발자국 맞추어 함께 걸어야 겠다. 내가 걷는 길 위에 만나는 모든 이 들에게 받는, 그리고 저지르는 작은 실수 쯤 은 같은 세상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불가피한 일로 기억 할 수 있고, 또 기억 될 수 있기를 바란다.

11월 11일. 얼마 남지 않은 마감 날짜를 앞둔 논문은 아직 두 문단 남짓 끄적이며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어제 외웠던 모든 것 들은 머리 속 어딘가에 자리 하고 있지만 희미하기 그지 없다. 내가 외웠던 글을 논문에 적었다가, 뜬금없이 논문 내용을 외우려 하기까지.. 앞 뒤 순서 없이 말썽을 부린다. 며칠동안 머리 속 을 맴돌 던 생각을 잠시나마 이렇게 정리하고 진도가 더럽게도 안 나가는 논문으로 돌아가려 한다. 오늘의 좋았던 기억이 내일도 변함 없이 같은 자리에 있기를 바라고, 오늘 머리 속에 욱여넣은 음악사의 한부분 역시 부디 길을 잃지 말고 버텨내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글을 마친다.

푸른 날.

10 월 17일 햇살 좋았던, 가장 아름다웠던 나의 친구의 결혼식.

기쁨에 겨워 흘리는 눈물의 의미가 남다르게 가슴을 파고들었던 오늘.

축사를 하며 절대 울지 않으리라 다짐 또 다짐하며 며칠동안 강아지를 간식으로 달래가며 내 앞에 앉힌채 쉴새 없이 연습 하고 무대에 올랐지만, 청승맞게 흐르는 눈물은 차마 막을 수 없었다. 오늘 식장의 아름다운 조명과 함께 반짝반짝 빛나던 콧물을 배부르게 먹었던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다른 결혼식에서 신부 친구가 울면 왜 저렇게 울까 이해 할 수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지만, 오늘 나는 그 친구들이 울었던 이상의 눈물을 흘렸다. 민폐가 된 것 만 같아 많이 부끄러웠지만, 신부와 나만이 아는 무언가가 떠오르던 그 순간만큼은, 눈물이 아닌 그 어떤 것 도 대신 할 수 없었음을 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친구의 모습을 내 눈에 직접 담고 그동안 숨겨왔던 마음을 전하게 되었던 오늘의 시간에 다시금 감사드린다.

나에게는 한 없이 고마운 친구이다. 그저 어렸을때 재미있게 놀던 기억의 친구가 아닌, 같이 무르익는 길을 걷던 친구이다. 내가 가장 솔직할 수 있게 문을 열어주었고, 걱정을 들어주었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 나를 품어주었다. 그저 웃음을 먼저 보여주던 나의 친구..   평정심을 찾고 싶을때면 전화를 했었고, 특별한 대화 하나 없이 그저 뭐하냐는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해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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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 이다. 교과서 울렁증 때문인지 두꺼운 책을 오랜시간 읽어 내려갈때면 속이 탁탁 막히는 순간이 찾아온다. 잠깐씩 찾아오는 부담스러운 그 공기를 참아내다보면 괜한 자신감의 불씨가 꺼져가는 무기력함을 느낀다. 그 날 도 마찬가지였고, 나는 책을 잠시 덮고 기도를 했다. 그리고 기분을 빠르게 전환하고자 다짜고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결혼을 이틀 앞 두고 있는 예비신부에게 딱히 할 말이 없어 뭐하나 물었더니 공연 오디션 연습하고 있단다.

“뭐해?”

“연습하지. 너는 뭐하나?”

“나 공부해.”

세상 짧은 대화였지만, 대학시절 나의 하루의 전부였던 친구와 함께 하는 “꿈을 이루는 연습”은 그날 밤 도 나에게 좀처럼 찾아볼 수 없던 힘을 불어넣었다. 같이 걷는 이 길 위에 서서 피식 웃는 그 아이의 모습에서, 평정을 얻었고, 치유와 위안을 얻었고, 기쁨을 얻었던 것 처럼, 그 날도 내 마음에 따뜻한 손난로 하나 툭 얹어주었다. 고작 1분 9초의 통화였지만,  소중했던 그 기분을 간직하고파 사진으로 통화 기록을 짧게 남겨두고 다시 책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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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또 가까이에서 내 마음을 알아주는 그 마음이 고맙고 미안해 그 어떤 것 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한 없이 주고 싶었던 친구였고, 앞으로도 그럴 친구이다. 기쁜 오늘이 오기까지 고생길 숨어 걸으며, 혼자 있고 싶은 시간도 기다림으로 내어주고, 서로를 지켜주었던 평범했지만 쉴새 없이 빛이 나던 귀중한 시간들이 뇌리를 스치며 내 마음을 데운다. 오늘 그 미소가, 아름다웠던 두 눈이, 오랜시간 가슴에 남을 것 이다. 사랑하는 내 친구, 이제는 혼자서 마음 앓이 하는 삶이 아닌, 미소가 똑 닮은 선한 신랑과 함께 행복한 시작의 길을 걸어 웃는 날이 가득 담긴 푸르른 열매 맺기를 기도한다. 푸른 가을 하늘이 유난히 높았던 오늘도 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사랑한다 조푸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