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이후로 처음으로 한국의 11월을 맞아본다. 파란 하늘 위에 뜬 설레임의 태양이 찬 공기를 타고 마음을 몽글거리게 한다. 형형색색 곱게 물든 나뭇잎들도 그저 신기하다. 피곤함을 두 다리에 나누어 걷는 저녁 귀갓길도 아직까지는 그리 버겁지 않다. 자그마한 간이 책상을 펴고 강아지 옆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공부 하다보면 엉덩이와 허리가 뻐근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할만하다. 그저 모든게 괜찮다. 홀로 지내는동안 내 마음을 괜찮게 하는 우리집이 많이 그리웠나보다. 매일 돌아올수 있는 집이 있어 감사하다. “꼭 잘 되어서 돌아올께. 잘 되기 전까지는 안 돌아와” 라는 말로 집을 나섰던 고등학생때의 내가 서른이 넘는 오늘날 그리 잘 되지 않았어도 돌아올 수 있는 곳 이 있음에 멋쩍음과 고마움이 함께 나를 위로한다. 뭘 그리 잘 되려고.. 잘 된다는 것 이 무엇이었길래..
매번 한국을 떠나는 공항 안에서 내 자신에게 다짐을 하였다. “꼭 높이 가야지. 내가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닿을때까지 멈추지 말아야지. 하나님이 그만 하라 하실때까지 해야지“ . 이런 나의 다짐은 내가 공항에서 부모님과 이른 아침 밥을 먹을때도, 수하물 검사관 앞에서 재킷을 벗으며 뒤를 돌아보는 찰나에도, 먹먹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비행기를 기다리는 게이트 앞에서도 늘 변함 없이 나를 강인하고 큰 사람으로 만드는 것 만 같았다. 작년 겨울 처음으로 눈물을 애써 삼켰던 기억이 있다. 그 눈물의 시작으로 어느날에서부턴가 나의 굳건한 약속과 다짐 속 마음의 갈등이 깊어지기 시작하였다. 여권을 들고 비행기로 향하는 그 길이 기약 없는 헤어짐을 맞이하는 것 만 같았고,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 가까이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졌던 것 같다. 멀리 가는 길이 결코 높이 가는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끊임 없이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이 모든 것 이 비겁한 변명이라고 치부되기에는 나는 그리 게을리 살지도, 한량스럽게 살지도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번 해 초 어느날, 뮌헨 나의 방 안에서 한국에서의 삶을 어렴풋이 그려 보았다. 과연 내가 돌아가도 괜찮을까? 내가 돌아갔을때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혹여나 괜찮을까? 매일을 고민하고, 매일을 계산하고, 매일을 그리었다. 나의 간절한 마음이 굳건해져 한국으로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었던 4월, 어렵게 비행기표를 구했지만 취소할 수 밖에 없었던 5월을 지나, 7월 중순이 되어서야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비행기가 땅을 만나는 순간 그 어느때도 느끼지 못했던 깊은 안도감이 나를 붙들었고, 2주가 넘는 자가격리 기간 동안 아무런 초조함 없이 내 할일을 하며 방에서 지낼 수 있음에 기뻤다. 잠깐의 숨을 돌리는 그 시간동안 생각치 못하게 높아져버린 코로나의 벽은 나의 시간 또한 함께 멈추게 하였다. 이렇게 길어지는 기다림의 시간을 차마 예상 하지 못하였고, 그로인해 나는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지내고 있다. 감사하면서도 다시 독일을 들러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늦가을을 지나는 길이 매우 바쁘게 느껴진다. 사실 글을 쓰며 걱정을 풀어놓을 새 없이 쌓여있는 일들을 해 나가는 것 이 벅차기도 하지만, 그만큼 정신없이, 그리고 바쁘게 사는 것 에 대한 감사함을 느낀다. 대학교 입시 때 이후로 무언가를 이렇게 쉴새 없이 머리에 욱여 넣은 적 이 없기에 가끔씩 일어나는 과부하 현상 때문인지 아무것도 기억 나지 않을 때가 있다.. 무섭게시리.. 제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아직 넣을 것들은 넘쳐나고 다음날 아침이면 백지장 만큼이나 하얗고 상쾌한 머릿 속 이 나를 겁주기도 하지만, 쾌쾌묵은 나의 다크서클은 그래도 나름의 의지를 갖고 하루하루 검게 타오르며 힘 없는 빛을 발하고 있다.
한국에 와서 하나의 습관이 생겼다. “좋은 기억” 만을 남겨두려는 노력을 한다. 누군가를 만났던, 만나던, 그리고 이제 마주할때면 그 순간과 관계가 주는 선한 것 만 마음에 두고 싶다. 예전의 나의 모습은 상처에 매우 민감하고 두려움이 컸다. 그 누구보다도 사람을 매우 좋아했지만, 관계 속 에서 자연스레 피어나는 그을림에 적지 않게 당황한 적 도 있었고, 오랜 시간 충격과 공포로 다가오기도 하였다. 두려움이 내 뒷덜미를 잡아 가두던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그동안의 나를 돌아보고 어제의 시간과 기억을 돌아보며 마음을 정리하니 조금의 여유도 생겼다. 오해를 하는 습관을 버렸다. 혼자 해석하는 습관도 버리려고 노력한다. 오디션 준비를 앞두고 끝이 보이지 않는 체크리스트를 보며 매일을 고민하며 살면서도, 관계에 대해서 다시금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나를 위해서, 너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를 바라보는 모든 이들을 위해서도 선한 기억만을 품고 나누고 싶다. 뒤 돌아 후회의 숨 쉬는 것 그만하고, 옆에 놓여진 짙은 발자국 맞추어 함께 걸어야 겠다. 내가 걷는 길 위에 만나는 모든 이 들에게 받는, 그리고 저지르는 작은 실수 쯤 은 같은 세상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불가피한 일로 기억 할 수 있고, 또 기억 될 수 있기를 바란다.
11월 11일. 얼마 남지 않은 마감 날짜를 앞둔 논문은 아직 두 문단 남짓 끄적이며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어제 외웠던 모든 것 들은 머리 속 어딘가에 자리 하고 있지만 희미하기 그지 없다. 내가 외웠던 글을 논문에 적었다가, 뜬금없이 논문 내용을 외우려 하기까지.. 앞 뒤 순서 없이 말썽을 부린다. 며칠동안 머리 속 을 맴돌 던 생각을 잠시나마 이렇게 정리하고 진도가 더럽게도 안 나가는 논문으로 돌아가려 한다. 오늘의 좋았던 기억이 내일도 변함 없이 같은 자리에 있기를 바라고, 오늘 머리 속에 욱여넣은 음악사의 한부분 역시 부디 길을 잃지 말고 버텨내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글을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