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배운 사랑의 이름은 희생이었다.
사랑은 언제나 자신의 몫을 조금씩 덜어 누군가의 삶을 채워 주는 일이었다. 그렇게 비워진 자리에는 말보다 깊은 침묵이 남았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침묵. 묻지도, 계산하지도 않는 오래된 기도 같은 침묵이었다.
나는 그런 사랑을 부모님에게서 배웠다.그들은 나를 키우며 조금씩 자신을 잃어 갔다. 그 잃어감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처럼 보였고, 그래서 더 아름다웠고, 더 아팠다.
어린 나는 그 사랑을 선물로 받지 못했다. 어느새 그것은 마음속 깊이 내려앉은 빚이 되었다. 사랑을 받을수록 마음은 가벼워지는 대신 무거워졌다. 부모님의 시간이 나의 시간이 되고, 그들의 포기가 나의 내일이 되는 것을 보며 나는 언젠가 그 모든 것을 돌려드려야 한다고 믿었다. 사랑은 감사였지만, 동시에 평생 갚아야 할 책임이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사랑보다 먼저 책임을 배운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사랑은 내게 자유가 아니라 무게였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기꺼이 나를 덜어 내는 일, 조금씩 나를 비워 다른 사람의 삶을 채워 주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주었다.
아낌없이.
또 주었다.
내가 희미해질 때까지.
끝내 내 흔적이 사라진다 해도 그 사람이 환하게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그것이 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의심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사랑을 붙잡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사랑을 청하는 법도, 사랑을 머물게 하는 법도.
사랑은 너무 아름다웠기에 붙잡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내 손을 스쳐 지나가는 계절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사랑은 정말 나를 잃어야만 완성되는 것일까.
그 질문은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물렀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나는 다른 사랑을 배우기 시작했다.
사랑은 상대를 내 곁에 붙들어 두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끝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곁을 내어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허락이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일 수 있도록 바라봐 주는 것.
그의 속도를 기다려 주는 것.
그의 자유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나 또한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을 허락하는 것.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 역시 사라지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오랫동안 내가 없어지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었지만, 마음 가장 깊은 곳에는 끝내 꺼지지 않는 작은 불씨 하나가 남아 있었다.
나도 나로 존재하고 싶다.
그 불씨는 누구를 밀어내기 위해 타오른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덜 사랑하기 위해 피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사랑 안에서도 나로 살아 있고 싶다는 아주 조용한 생명의 목소리였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나의 커리어도, 나의 사랑도, 삶의 걸음도 언제나 느렸다. 누구보다 멀리 돌아왔고, 지금도 돌아가는 길 위에 있다.
돌아오는 길 위에서 나는 한 가지를 더 배웠다.
나는 사랑을 강요할 수 없다.
사랑의 표현도, 사랑하는 방식도 강요할 수 없다.
누군가의 마음을 내 뜻대로 바꿀 수 없고, 내 마음 또한 쉽게 바뀌지 않는다.
사랑은 강요되는 순간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희생은 여전히 내게 가장 아름다운 언어다.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마음은 지금도 나를 뜨겁게 한다.
하지만 상대가 그 희생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어떤 모양이어야 하는지 나는 아직도 배우는 중이다.
나는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해, 서로 조금씩 자신을 내어주고 양보하는 삶을 아름답다고 믿는다.
다만 이제는 안다.
희생은 사랑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사랑은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비우는 용기이면서, 동시에 서로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유를 내어주는 용기라는 것을.
내가 처음 배운 사랑의 언어는 희생이었다.
그리고 오래 돌아온 끝에, 나는 사랑의 또 다른 언어가 자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사랑은 희생에서 시작하지만, 자유를 닮아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나를 잃는 일이 아니라,
서로가 끝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곁을 지켜 주는 일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