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November 2020

11.25

나의 모든 것 인 것 만 같던 이 세상의 공기가 유난히도 멀게만 느껴졌던 어제의 아침, 엄마는 부산에 계신 할아버지를 뵈러 갔고, 함께 가지 못 한 나는 늘 그렇듯 잠깐의 통화로 안부 인사를 전하였다. 할아버지와 통화 하는 그 시간 만큼은, 그 어떤 세상의 나보다도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 되는 것 만 같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런 근사한 모습의 나.. 오로지 할아버지만이 그런 나로 만들어주신다.

“아 한.선.미. 니는 이제 부산 안 올꺼가?”

“아녜요 할아버지, 저 다음주 화요일만 지나면 바로 할아버지 보러 가야지요”

“아이다 바쁜 거면 안 와도 된다! 너의 청춘이 행복하고 바쁜 날이 있다면 그게 기쁜거다. 하지만 보고싶다. 빨리 와라. “

부담에 부담 한 근 또 얹은채 내 정신은 하늘과 땅을 번갈아 오가는 요즘, 할아버지를 보러 가지 못한 것 에 대한 무거운 마음이 한 뼘을 너머 자라나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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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아주 어릴적 기억 속 서로의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던 당신은 지금의 나를 깨운 가장 첫번째 사람 입니다

나를 다시 살게 한 사람입니다.

아주 보통의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가르쳐 준 사람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배움의 시간은 숨이 끊어지는 그 날까지도 멈추지 않기에, 내가 모르는 세상과, 그 세상에 속한 다른 이의 이야기와 노력을 높이 사며, 내가 지녀야 하는 겸손함을 늘 손과 마음에서 놓지 않게 하는 열정의 사람입니다.

당신이 있어서 나는 지금껏 포기를 몰랐으며, 그저 그런 아이였던 나를 사랑해주는 당신에게 두터운 마음의 빚을 진 채, 빠르게 흐르는 시간만큼이나 아쉬움 가득 쌓이는 오늘을 멈추고 싶습니다.

세상에 용기내어 손을 뻗고, 사람을 사랑 하는 법 을 배우며,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맺어진 기도의 언약 밤 낮으로 실천 하게 해주어 고맙습니다.

당신이 함께 하셨기에 나는 단 한번도 멈출 수 없었고, 앞으로도 이 길 그대로 묵묵히 나아갈 것 입니다. 당신에게 보고 배운 그 사랑을, 훗날 내 자녀들에게 그대로 남김없이 전해 줄 것 을 약속 합니다.

부모님 마저 어려운 상심에 휩싸여 무모한 나의 길을 의심하고 내 고집을 꺾으려던 험난한 순간에도 나를 포기 하지 않았고, 자식이 걷는 길에 끝 없는 희생은 온전한 부모의 몫이라며 무조건 적 인 응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던 당신은 나의 은인이자 큰 사랑 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할아버지가 얼마나 멋진 이 였는지 세상 가장 멋진 액자에 고이 담아 내가 기억하는 아주 작은 순간까지도 마음에 걸어두고 바라봅니다. 매일의 실천으로 삶을 살았고, 열정으로 높은 벽을 넘어섰으며, 호기심으로 지경을 넓혔고, 겸손함으로 책을 손에 놓지 않았고, 사랑으로 우리의 손을 먼저 잡던 할아버지.

언젠가는 당신이 이 세상에 안녕을 고하고 먼 길 떠날 것 임 을 압니다. 나의 오직 한가지 두려움은, 떠나간 당신의 자리를 보며 이제 나를 보여줄 그 누구도 없다는 것 입니다. 보잘 것 없는 자랑 그저 기쁨으로 들어줄 사람이 없을 것 도 섭섭합니다. 하지만 축제와도 같은 삶 열정으로 살아오신 만큼 나 역시 그런 당신을 축복하고 기억 하며 주어진 길 걷는 준비를 합니다.

당신이 지금껏 나를 부르는  “한교수”. 그럴듯한 단어의 폼새만큼이나 무거운 부담감보다도, 선한 것 하나 없는 손녀의 기를 살려주시려 그렇게 불러주신 것 이라 생각하며, 예나 지금이나 감사한 그대만의 한교수는 당신이 사명을 다 하고 하늘 길 걷는 그 날 까지 보고 배운 최선을 다해 사는 삶 살며, 열정적인 삶 선물 할 것 입니다.

일주일 후 에는 나의 이 간지럽고 유난스러운 사랑의 마음을 글로 적어 전하려 하오니, 그런 나에게 섭섭치 마시고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매일을 기다리게 하고, 기대 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그리고 정말 고맙습니다.  

11.21.2020

우리의 뜻 대로 안 되는 것 이 너무나 많기에

내가 소망하는 것 을 모두 담기에는 내 그릇이 너무 작기에

아주 가끔은. 아주 가끔은. 두려움이 한발 먼저 앞선다.

버선발로 달려나오는 이 혼란스러운 아침에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라곤 그저 애써 무시하며 하던 일 하는 것.

매일 아침, 오묘히도 나를 옥죄는 두려움을 뒤로 한채 같은 하루를 시작하는 것 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은 일이지만,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에서 지낼 수 있는 것 만 으로도 그저 감사할 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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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내가 어느 시간에 맞추어 살아가는지 잘 모를 때 가 많다. 독일의 시간에 살다가, 미국의 시간에 살다가, 다른 이의 시간에 살다가, 나의 시간을 찾으며, 정신 없는 때 를 보낸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3개월을 너머 이제는 점점 이 환경에 익숙해지기도 한다. 익숙한 생활 속, 요새 나의 마음은 무조건 한 곳 만 집중하여 살고 있다. 다른 것 들 을 굳이 돌아보지 않으려 하고, 다른 마음에 귀 귀울이는 것 역시 잠시 멈추고 지내고 있다.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것 에 대한 접촉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오로지 하나만 생각하며 산다면 무언가 이루어질 것 같은 무모한 기대가 내 마음 한켠에서 자라나고 있나보다. 가끔은 서점을 지나며, 사고 싶은 책 목록을 계속해서 채우고, 12월 시작 될 글쓰기 시간도 마음에 꼭꼭 넣어둔 채 버거운 오늘의 11월이 지나기만을 기다리기도 한다. 차가운 파란색의 하늘을 사진에 담고 싶은 어린 마음도, 잠시 내려놓고 빠른 걸음 걸어본다. 내가 좋아하는 이 모든 것 을 지나치게 자제 하는 이유는, 한가지에 최선을 다해보고 싶은 그 간절한 마음 하나 때문이다. 어리숙한 생각일 수 도 있겠지만, 그리고 이런 방법으로 진지하게 임하는 것 이 최선은 아니라 할 수 있지만,  최고가 아닌 나는 조금은 무모해 보이는 최선의 노력과 선택이 필요하다.  

잠시라도 한 눈 을 팔면 모든 것이 사라질 외줄타기 시간이다. 그래서 다른 아름다움에, 다른 즐거움에 잠시라도 내 마음이 현혹 된다면, 지금껏 아슬아슬히도 쌓아놓은 이 모든 것 들 을 손에서 놓칠 것 만 같다. 불안함과 안도의 시간을 오가며 많은 것 들을 외면하려 애써본다. 그저 괜찮은 것 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해보지만, 오늘도 불안하고, 오늘도 조마조마하며,  오늘도 걱정이 가득 찬 나를 덮는 겨울 하늘은 그와 달리 너무나도 예쁜 것 같다. 아주 잠시라도 내 머리 위를 올려다보면 안 될 것 만 같다.

사람과의 만남이 아닌 오로지 내가 일궈내어야 하는 일 안 에서만큼은 그 어떤 운명도 믿지 않는다. 우연에 기대지도 않으려 한다. 하루하루 쌓아가는 정성을 믿고, 찢어진 나의 마음을 기워 아슬하게 줄 타기 하며 산다. 말도 안 되는 꿈을 바라기 때문이 아닌, 그저 내 앞에 놓인 계단 앞에서 최선을 다해 올라갈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다. 지금은 하나만 바라보고 걷는다. 그 길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다른 것 들 은 잠시 뒤로 미룬다.

어쩌다 – 내가 걷는길

초가을까지도 얼굴을 내밀며 비치던 푸루스름한 새벽 빛은 이제 완연히 그 모습을 감추었다. 그저 밤과 아침을 알게 하는 것 은 불 꺼진 강 건너 옥수동에 짙게 깔린 고요한 밤과 , 어둠 속에서 이불을 걷고 새로운 날을 맞는 나의 느린 걸음 걸이 뿐 이다. 깜깜한 겨울 새벽이 한발짝 더 가까이 온 만큼, 여름날의 가벼웠던 아침의 활기 역시 몸 속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오늘의 하늘은 6시 50분이 되어서야 그 푸른빛을 띄운다. 나도 이제서야 눈에 글이 보이고, 조금씩 자동차 헤드라이트로 채워져가는 올림픽대로가 보인다.

정신 없이 사는 나의 11월, 많은 것 이 뒤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에서의 삶과 그리 큰 변화 없이 살아가지만, 아주 작은 곳에서 생각치 못했던 활기를 찾는다. 14년만에 보내는 서울에서의 시간이 감사한 것 은, 중,고등학생때의 치열했던 삶을 다시한번 같은 곳을 밟아가며, 같은 조바심과 기대를 안으며 살고 있다는 것 이다. 영영 떠나서 그 때의 나를 다시 만나지 못할 것 이라 생각했던 아쉬움을 어쩌다 나를 찾아온 매일의 기쁨으로 채워간다. 핸드폰도 집에 두고 그저 정신 없이 피아노 책과 컴퓨터만 들고 돌아다니기 일쑤지만, 이 또한 중, 고등학교때와 비슷하기 때문에 가족들은 그리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모두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대충은 다 알 수 있기에..

나와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은 모두가 공감하겠지만, 우리 모두가 중, 고등학교때 반 정신을 놓은 채 살았다. 밤과 아침의 경계 없이, 오늘과 내일의 큰 차이 없이 그저 연습하고, 공부하고, 레슨 받으며 지내었다. 열심히 하는 보통 수준의 나를 그 시대의 음악 교육에 필요했던 모든 것을 누리게 하려 밤 낮 가리지 않고 나를 데리고 다니던 40대 우리 엄마의 모습이 내 가슴을 툭 치고 지나감에 눈물과 웃음이 동시에 지어진다. 그때의 어렴풋한 기억 속 한 없이 개구졌던 순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엄마가 잠시 바쁜 틈을 타 친구들이랑 조금이라도 더 놀아보려고 기차역을 돌고 돌다 엉뚱한 곳 에 내리고, 라디오가 듣고 싶어 밤 12시만 되면 연습하다 말고 워크맨을 몰래켜고, 언니들과 연습실에서 컵라면 한개를 국물 한방울 남김 없이 나누어 먹으며 끝 없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선생님 레슨실 앞에서 한시간이 지나도록 벽에 머리를 대고 개운한 잠 자기도 했다. 결국 그 대가로 눈물 콧물 쏙 빠지게 혼이 났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렇게도 착하고 여리던 엄마가 한손에 슬리퍼를 놓지 못한 채 나를 쫓아다닐 수 밖에 없던 일들이 꽤나 많다.


중학교때 다니던 연습실과 녹음실을 14년이 지난 오늘도 다니고 있다. 오랜만에 뵌 녹음실 선생님은 나를 보며 화들짝 놀라셨고, “녹화하는 옆 모습이 초등학교때의 모습 그대로다” 하시며 껄껄대며 웃으신다. 혼자만의 녹음을 끝내고 공부하러 가는 길을 걸으며 예전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루 빨리 어른이 되어 이 길을 혼자 걸어보는게 그렇게 간절한 소원이었는데..” 늘 차 안에서만 바라보던 “어른되면 걷는 길” 을 수 많은 인파 속 하나가 되어 매일을 걷게 되다니.. 한국에 오래 있게 되니, 바쁜 일상 속에 숨겨졌던 꿈도 함께 이루고 있었다. 짧은 동선 안에서도 나의 내일로 가득 채웠던 그 길을 매일을 걸으며 현실을 마주하는 오늘의 “중학생 로망 속 어른 한선미” 의 모습은 영 볼품 없지만, 오래 전 시간의 길을 함께 걷는 것 만 같은 기쁨과 어린 마음의 성취감이 가득하다.

중학생 시절 내 마음처럼, 지금 이 길을 걸으며 “멋진 모습” 을 꿈 꾸고 있다. 산 더미 같은 일을 눈 앞에 두고 한숨이 쉬어지지만, 내가 내 자신을 속인채 미쳐 살아가는 꿈 없이 이 모든 일을 마주할 수 있을 용기가 없다. 꿈에 몸을 싣고 살아가는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며 웃음 지을 날이 꼭 올 것 이다. 어렸을 적 그리던 내 로망과는 많이 달라진 키 작고 후덕한 어른의 모습이지만, 이런들 또 어떠하며 저런들 또 어떠하리.. 한 길을 걸어왔고, 소원 속 그 길 바쁜 숨 몰아쉬며 걷고 있고, 같은 꿈 안고 누군가와 함께 걸을 수 있는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것 이 오늘의 내 고통을 경감해주는 위로와도 같다.

11.11.2020

2006년 이후로 처음으로 한국의 11월을 맞아본다. 파란 하늘 위에 뜬 설레임의 태양이 찬 공기를 타고 마음을 몽글거리게 한다. 형형색색 곱게 물든 나뭇잎들도 그저 신기하다. 피곤함을 두 다리에 나누어 걷는 저녁 귀갓길도 아직까지는 그리 버겁지 않다. 자그마한 간이 책상을 펴고 강아지 옆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공부 하다보면 엉덩이와 허리가 뻐근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할만하다. 그저 모든게 괜찮다. 홀로 지내는동안 내 마음을 괜찮게 하는 우리집이 많이 그리웠나보다. 매일 돌아올수 있는 집이 있어 감사하다. “꼭 잘 되어서 돌아올께. 잘 되기 전까지는 안 돌아와” 라는 말로 집을 나섰던 고등학생때의 내가 서른이 넘는 오늘날 그리 잘 되지 않았어도 돌아올 수 있는 곳 이 있음에 멋쩍음과 고마움이 함께 나를 위로한다. 뭘 그리 잘 되려고.. 잘 된다는 것 이 무엇이었길래..

매번 한국을 떠나는 공항 안에서 내 자신에게 다짐을 하였다. “꼭 높이 가야지. 내가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닿을때까지 멈추지 말아야지. 하나님이 그만 하라 하실때까지 해야지“ . 이런 나의 다짐은 내가 공항에서 부모님과 이른 아침 밥을 먹을때도, 수하물 검사관 앞에서 재킷을 벗으며 뒤를 돌아보는 찰나에도, 먹먹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비행기를 기다리는 게이트 앞에서도 늘 변함 없이 나를 강인하고 큰 사람으로 만드는 것 만 같았다. 작년 겨울 처음으로 눈물을 애써 삼켰던 기억이 있다. 그 눈물의 시작으로 어느날에서부턴가 나의 굳건한 약속과 다짐 속 마음의 갈등이 깊어지기 시작하였다. 여권을 들고 비행기로 향하는 그 길이 기약 없는 헤어짐을 맞이하는 것 만 같았고,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 가까이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졌던 것 같다. 멀리 가는 길이 결코 높이 가는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끊임 없이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이 모든 것 이 비겁한 변명이라고 치부되기에는 나는 그리 게을리 살지도, 한량스럽게 살지도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번 해 초 어느날, 뮌헨 나의 방 안에서 한국에서의 삶을 어렴풋이 그려 보았다. 과연 내가 돌아가도 괜찮을까? 내가 돌아갔을때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혹여나 괜찮을까? 매일을 고민하고, 매일을 계산하고, 매일을 그리었다. 나의 간절한 마음이 굳건해져 한국으로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었던 4월, 어렵게 비행기표를 구했지만 취소할 수 밖에 없었던 5월을 지나, 7월 중순이 되어서야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비행기가 땅을 만나는 순간 그 어느때도 느끼지 못했던 깊은 안도감이 나를 붙들었고, 2주가 넘는 자가격리 기간 동안 아무런 초조함 없이 내 할일을 하며 방에서 지낼 수 있음에 기뻤다. 잠깐의 숨을 돌리는 그 시간동안 생각치 못하게 높아져버린 코로나의 벽은 나의 시간 또한 함께 멈추게 하였다. 이렇게 길어지는 기다림의 시간을 차마 예상 하지 못하였고, 그로인해 나는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지내고 있다. 감사하면서도 다시 독일을 들러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늦가을을 지나는 길이 매우 바쁘게 느껴진다. 사실 글을 쓰며 걱정을 풀어놓을 새 없이 쌓여있는 일들을 해 나가는 것 이 벅차기도 하지만, 그만큼 정신없이, 그리고 바쁘게 사는 것 에 대한 감사함을 느낀다. 대학교 입시 때 이후로 무언가를 이렇게 쉴새 없이 머리에 욱여 넣은 적 이 없기에 가끔씩 일어나는 과부하 현상 때문인지 아무것도 기억 나지 않을 때가 있다.. 무섭게시리.. 제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아직 넣을 것들은 넘쳐나고 다음날 아침이면 백지장 만큼이나 하얗고 상쾌한 머릿 속 이 나를 겁주기도 하지만, 쾌쾌묵은 나의 다크서클은 그래도 나름의 의지를 갖고 하루하루 검게 타오르며 힘 없는 빛을 발하고 있다.

한국에 와서 하나의 습관이 생겼다. “좋은 기억” 만을 남겨두려는 노력을 한다. 누군가를 만났던, 만나던, 그리고 이제 마주할때면 그 순간과 관계가 주는 선한 것 만 마음에 두고 싶다. 예전의 나의 모습은 상처에 매우 민감하고 두려움이 컸다. 그 누구보다도 사람을 매우 좋아했지만, 관계 속 에서 자연스레 피어나는 그을림에 적지 않게 당황한 적 도 있었고, 오랜 시간 충격과 공포로 다가오기도 하였다. 두려움이 내 뒷덜미를 잡아 가두던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그동안의 나를 돌아보고 어제의 시간과 기억을 돌아보며 마음을 정리하니 조금의 여유도 생겼다. 오해를 하는 습관을 버렸다. 혼자 해석하는 습관도 버리려고 노력한다. 오디션 준비를 앞두고 끝이 보이지 않는 체크리스트를 보며 매일을 고민하며 살면서도, 관계에 대해서 다시금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나를 위해서, 너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를 바라보는 모든 이들을 위해서도 선한 기억만을 품고 나누고 싶다. 뒤 돌아 후회의 숨 쉬는 것 그만하고, 옆에 놓여진 짙은 발자국 맞추어 함께 걸어야 겠다. 내가 걷는 길 위에 만나는 모든 이 들에게 받는, 그리고 저지르는 작은 실수 쯤 은 같은 세상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불가피한 일로 기억 할 수 있고, 또 기억 될 수 있기를 바란다.

11월 11일. 얼마 남지 않은 마감 날짜를 앞둔 논문은 아직 두 문단 남짓 끄적이며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어제 외웠던 모든 것 들은 머리 속 어딘가에 자리 하고 있지만 희미하기 그지 없다. 내가 외웠던 글을 논문에 적었다가, 뜬금없이 논문 내용을 외우려 하기까지.. 앞 뒤 순서 없이 말썽을 부린다. 며칠동안 머리 속 을 맴돌 던 생각을 잠시나마 이렇게 정리하고 진도가 더럽게도 안 나가는 논문으로 돌아가려 한다. 오늘의 좋았던 기억이 내일도 변함 없이 같은 자리에 있기를 바라고, 오늘 머리 속에 욱여넣은 음악사의 한부분 역시 부디 길을 잃지 말고 버텨내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