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After playing piano for years, today I realized how hard it is to listen to music note by note, as a phrase, and as a whole story — yes, it is shameful to say that I,  today, finally found  more interesting way to enjoy what I am doing with various experiments ahead of me. It is never too late because I am already so happy that there is a new path laid out for me!

It definitely has been hard to listen and react to one and every note without using my tensed shoulders and body.

As I am training myself to finally use my ears instead of awkward body motion and to listen my music from a different angle, I realize more and more that i did not have my own color until now. Instead, I relied on my own imagination and expression which audience was not aware of its existence.

Whenever Veda said,  ” Play more musically. Feel it. Express it.” I could feel it. I had so many images and emotions going on in my heart but did not know how to project this feeling through my sound. I must have been afraid to listen to a real sound I was making, because it simply was not pleasant to me. I must have just wanted to stay in my own drama and not wanted to wake up from this dramatic dream.  I totally was enjoying music by myself. So, while I was enjoying all this joy and agony by myself, the audience was wondering about what I was doing .

This morning, when I had a dress rehearsal for a competition, professor Vardi told me that my sound was weak in the hall that he could not hear anything — while I was making my own story, no one was on the same page with me. As I tried to make more sound, i started to use my body and started to get more tense. My old habit started to come back and I was twisting my body awfully to make “sound.” Oh yes yes yes… All of sudden, I was reminded of Veda. Her voice. Her arm gesture. Her shouts. “SUNMI! STOP DOING THAT AWFUL GESTURES!! YOU ARE TENSED AGAIN! YOU ARE NOT RELAXING!  YOU ARE NOT L I S T E N I N G!! Ohhhh no no no now its SLUPPY!!”

I just wanted to say that I am really thankful for Veda for what she had taught me back in Juilliard. After all years of learning from Veda how to project sound, I today realize how relative it is from relaxing my arms to making clear and focused sound. It is shameful but hopeful that today I finally found the last puzzle piece to finish a picture of her teaching.

One more thing to do; work on it. Continue to work on it. Improve it. Prove it.

Veda always told me. She always emphasized that CONSISTENCY IS THE MOST IMPORTANT to grow and improve. Thus, yet I lack consistency, I will keep working on this character until it becomes a part of my music and my life.  Thank you so much Veda! I miss you!

Also, thank you prof. Vardi for your passion and energy that you have shown me this morning. You have musically inspired me so deeply  today that I was speechless for the whole time to see your moves and charisma– drawing phrases in so many different ways which ended up bringing a whole book of drama.

그럼 이제.. 마이노스 인 뉴올 전곡을 들어봐야지.

첫번째 토요일 –

나도 모르게 절로 나오게 되는 감사함.

배 불렀을 때 알지 못했던, 그냥 무심히 넘겨 버렸던 감사함.

“휴식”이 감사한 오늘 하루. 고요하고 따뜻함을 마음 속에 품은 오늘 하루. Shabbat Shalom.

이렇게 또 한주를 정리하고 새로운 한 주를 준비하는 것에 대한 감사함.

복잡했을때 알지 못했던 잔잔한 바다의 아름다움.

한적한 오늘같은 날을 맞이 할 수 있음에 다시 한번 겪었던 작은 파도의 움직임에 감사하다.

내 손에 쥐고 있는 것 이 없으니 앞으로 많은 곳을 향해 뻗을 수 있는 오늘과 내일에 감사.

내 손이 향하는 곳이 많음에도 감사.

그리고 그 손 안에는 내가 손을 뻗어야 할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굳게 다진 마음.

사과를 하고, 이해를 구하고, 다시한번 서로가 그렇지 않았다는 것 을 풀어나갈 수 있는 날 이 오길.

음악을 다시 할 수 있음에 감사, 그리고 또 단 한번도 이 음악의 길이 멈춰있지 않았었음에 다시 한번 감사.

다른 이 들 눈에는 한 없이 부족해 보이고, 가끔은 또 눈 엣 가시인 나라고 할 지라도, 그것은 내가 고쳐야 할 많은 점들을 바라봐주는 눈들임을 잊지 말고. 부족한 점을 깨닫고 고치고, 누구에게도 상처가 되지 않도록 늘 내 마음을 신중히 할 것.

내 입에서 행해지는 말에 진솔함이 담기길. 거짓이 아닌 진실이 묻어나길.

내 행동에서 부족함이 보이고, 또 그 부족함이 누군가에게 못마땅이 됨을 알았을 시 에는 지혜를 구하고 더 신중히 그리고 성실히 임할것.

음악에서는 꼭 자유를 찾는 것 이 나의 숙제.

음악 또 한 내 삶에 주어진 선물인데, 여기서 또한 자유롭지 못한 다면 그것은 나의 잘못.

내가 음악을 사랑 할 수 있음에 감사. 한층 불어나가는 열정을 마음 속에 가두기 보다는 표현하고 자유로이 노래하길.

나를 지도 해주었고 지금 또한 이끌어주는 모든 지혜로운 음악인들에게 감사. 음악인의 삶에서 그 발자취를 꼭 따라가고 싶은 존경심과 감사함을 심어준 것 만으로도 벅찬 감사.

부족함이 넘쳐나는 음악일지라도 늘 그 음악을 사랑해주고 응원해주었던 많은 이들에게도 감사. 이들로 하여금 나는 가장 큰 힘을 얻었을 듯. 조금은 찌질하다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생각지 못했던 누군가로부터 받았던 응원은 힘들었던 나날 내가 잠깐이라도 안도하며 숨을 쉴 수 있었던 매 순간순간의 쉼터. 감사함과 겸손함과 열정의 이유를 늘 불어넣어 주며 격려해주었던 한명 한명이 떠오르는 지금. 그들을 떠올리며 또 읊게되는 그들의 기도.

매일 매일을 느끼는 것 이지만, 더운 뙤약 볕 아래서 걷기는 아직도 내게 꽤나 힘든 일. 적응이 쉽게 되지 않다만..

문득 든 생각은 이 뙤약 볕 아래 매일을 허리를 굽히고 일하는 우리들의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이보다 더 더운 볕 아래서 물 한모금을 애타게 기다리는 세계 여느나라의 소중한 어린 생명들.

다시 또 느끼고 느낀다. 내가 이 어린 생명들에게 지금 뻗을 수 있는 손은 너무나도 짧지만, 이들을 위한 기도는 멈추지 않을것임을.

오늘 역시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기도가 기도의 꼬리를 물고, 감사함이 또 다른 감사함의 끝에서 피어난다.

문득 또 하나 생각 난 건, 내 이름에 대한 강한 집착.

어렸을때는 썩 맘에 들지 않았던 이름 선미. 하지만 20대를 들어서는 매일의 기도가 이 이름을 따르는 여성이 되는 것 이다.

선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마음으로 사는 것. 물론, 이런 건조하고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살다보면 내가 가끔씩 꿈꾸는 그런 “아름다움”은 피부에서 저 밑으로 사라지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아름답지 못할 나의 미래의 모습에 아직도 걱정을 한다하지만..

나의 얼굴과 피부와 키와, 한마디로 말해 요즘 흔히들 갖춰야 하는 미모의 기준이 아무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찬양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의 마음 만큼은 진실로 선하고 아름다워지길 기도한다. 이 세상 모두가 알아봐주길 원하기 보다는.. 사실 누군들 진흙 속에 덮인 진주를 찾을 수 있으랴. 그 아무리 아름답다 할지라도 그 아무리 힘겹게 아름다움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하더라도, 결코 무겁고 짙은 진흙 에 덮여있기만 한다면 그 아름다움은 결국 내뿜을 수 없는 건 사실이지만.. 그냥 나는.. 내 마음의 선함과 진실함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묻어져 나오는 아름다움 이 내가 현명한 여성으로써 가꿔야 할 필요한, 어쩌면 최선의 덕목이라 생각한다. 진흙을 씻어 내리는 건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내가 잘 몰라서 그런건가? 언젠간 진흙을 씻어 내리고 내 자신을 발산하는 법 또 한 배우겠지..

누군가에게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소리가 참으로 한심하고 또 고집스럽게 들릴 수 있다 한들.. 나는 .. 어떠한 상황이던 환경이던 그런 모든 시간과 거듭남의 순간을 통해 투박함과 어둠을 배우고 진실함과 선함, 그리고 내면의 성숙한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이 지금 내가 기도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으로서 늘 발전해나가고 준비해나가는 것 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내 이름이 “진선미”가 되어 이렇게만 살게 기도하면 참 좋겠다 싶다만.. 선미로만은 조금 약하지 않나?

사람마다 아름다움의 정의는 틀리다만, 누군가에겐 그런 많은 아름다움의 정의 중 내가 20살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배우고 쌓아나가고 싶은 아름다움에 고개를 끄덕여주기를 기도한다. 아 아름다워지기 참으로 힘들구만…

부족함에 눈이 가려서 보지 못했던 감사함을 오늘 다시 한번 깨닫게 되면서 내 생각 또한 한없이 길어졌다.

Aside

Things start to settle down.

Plans have been laid out. Decisions have been made. Problems have been solved.

Holding Him tight and continue to walk.

I pray that tomorrow is a new day whether it goes up or down.

I won’t worry even if tomorrow’s air feels different. I won’t give up even if it gets harder.

Because I hold onto one promise.

Yet I am weak and lost, I still hold onto one lasting promise.

And that promise shines through my every day life.

10.7.13 Tel Aviv – Day 2

지금 어떠한 것 도 어떠한 그 누구도 내 자신을 누르지 못하게 단단하게 무장하고 또 단단하게 보호해야겠다. 이것저것 마음을 끌어내리고 할퀴는 순간들로부터 내 정신이 무너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싶다. 혹 내가 생각치 못한 어려움에 닥쳐서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키는 한이 있더라도 눈물을 내보이는 것 은 곧 내가 무너짐을 보이는 것 이기에 절대 그 눈물이 누군가에게 보여 뻔해지는 감정이 아니라 속으로 삼키고 또 삼켜 나를 보호하는 단단한 바위 아래서 쉼 없이 흐르는 물이 되길 바란다. 혼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눈물을 보이기는 싫다.

작은일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부지런해야 하고, 정직해야 한다. 솔직한 내면을 담담하게 풀어나아가야하고 어떠한 달콤한 말을 더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지혜롭게 풀어 이야기 하고 영민하게 행동해야 한다. 주는 만큼 받고, 가는 만큼 오는 땅인 것 같다. 어떠한것을 더 하기 이 전에 이 문화와 삶에 적응하는게 우선인 것 같다. 지혜로운 설정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작은 떨림에도 주위를 살피며 불안에 떠는 내 약한 심장이 조금이라도 크고 넓은 세계를 향해 담대하게 발을 뻗어나갈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새삼스럽게 감사하다.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것 같은 이들에게도 사실은 따뜻한 감성이 있고, 또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마음도 있다는 것에.. 물론 내가 하기 나름 같다. 도움 받은 이들에게 고맙고 또 이 도움 잊지 않아야 겠다. 하지만, 일단은. 철벽수비가 필요하다. 철벽 방어. 나는 쓰러지지 않는다.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가 아닌 내가 곧 웃는게 웃는 것이고 가끔씩이라도 아니면 매일 또 몰래 우는 건 그들이 웃는게 아님을 배워나가고 싶다. 웃는건 웃는것이다. 웃는건 행복하고 또 감사하기 때문이다. 울지 않는건 울 일 이 없기 때문이다. 우는건 혼자 울지만 또 웃으려고 우는 것 이다.

내일도 열심히 살자. 웃으면서 힘차게 살자. 지혜를 구하며 야무지게 살자!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그 사람을 위해 또 그 사람과 나의 관계를 위해 조용히 마음 속으로 기도 하자.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일이 꼬인다 해도, 계속 기도하고 축복하자. 화이팅!

한 밤 중 몰려오는 두려움을 발로 차내는 혼잣말

“생각보다 살기 버거운 20대의 삶.

날로 늘어가는 한 사회인으로서의 마음가짐과 책임감이 나를 더욱 더 무겁게 짓누르는듯..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런가? 날고 기는 사람들 속에서 작고 낮은 내 정체성을 인정하며 평범하지 않게 또 그렇게 융화되어 살아간다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네.. 수년 전부터 꿈꾸면서 해왔던 모든 일들이 현실에서는 이루기 너무나도 벅참을 인정하고, 또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매 순간 마다 달려가는 이 길에서 한없이 무너지는것을 느낀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채웠던 나의 벅차고 거대했던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기” 꿈에 비례하지 못한 현재의 내 모습을 보는 것도, 그리고 이렇게 부정적으로 변해버린 내 자신을 향한 시선과 기대 조차도, 이 모든것들이 내가 품고 있는 이기심과 욕심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달달한 꿈에서 깨었을때 맞닥드리게 되는 씁쓸한 현실.. 상대하기 두렵다. 뚫고 나가기 조심스럽다. 현실 속에 나는 한 없이 작기만 하다. 하지만 살고 싶다. 살아야만한다. 지금은 삶 속 모든것에 두려움이 먼저 앞서는 나 이지만, 어떠한 희생이든 싸움이든, 시련이든 감수하고 계속 부딪히고 싶다. 그렇게 할 수 있다. 끝 없는 고민속에서, 그리고 현실 속 구름처럼 둥둥 떠 있는 나의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기”꿈을 비난하는 순간에도 조심스럽게 그 꿈을 다시한번 되돌아본다. 그리고 다시한번 바라보게 된다. 참 멋진 꿈인데.. 참 사랑하는 꿈인데.. 수없이 되내이고 또 되내인다.. 그리고 그 구름이 내 삶 속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 둘씩 모이고 또 모여서 나의 하늘을 넓게 덮길 바란다.

하루하루를 꿈꾸며 열심히 살아왔던 날이 있었고, 지금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앞날에 걱정하며 사는 날도 있듯이, 모든것을 되돌아보며 웃는 날도 있길 다시한번 기도하며 오늘 하루도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내 할일을 해야겠다. 아직 내 마음 속에 불씨는 꺼지지 않았음을 확신하기에..

밤을 새서 걱정하면 아침이라 또 걱정

하루종일 걱정하면 밤이 되어 또 걱정

오늘 하루 걱정하면 내일 되어 또 걱정

이번 한주 걱정하면  다음주도  또 걱정

매 순간을 뜻하지 않는 걱정으로 채우게 되네….

훗날 이런 모든 걱정들이 내게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단계였기를 가슴속으로 바라면서 오늘 하루도 걱정으로 시작!

걱정 팍! 무릎팍팍! 고민해결! 팍팍~!”

2011년 7월 7일의 노트.

읽고 또 읽어봐도 드라마틱하고도 어마어마한 걱정거리들을 덮어버렸던 이때의 열정과 긍정에너지 만큼은 메시의  살아 숨쉬는 드리블 수준이였다.

사실 지금까지는 계속 뒤로 물러나 주춤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더 이상의 주춤과 가라앉음의 연속이 아닌 다시 한번 발을 딛고 껑충 뛰어올라야 할 시기임을 하루에 두세번쯤은 고려하게 되는 경각심이 든다.

실력도, 흔히 말하는 눈에 보이는 수확도, 농도 짙어진 성숙함도, 진지함도, 믿음도.

대부분의 시간동안 내 자신을 느리게 걷는 거북이라고만 일컫곤했지만, 지금은 조금은 다른 캐릭터를 바라봐야할 듯. 내안의 미친 에너지를 꺼내서 휘둘러볼까 하다가도 덜컥 겁부터 내는 나는 멍청이. 욕심이 솟구치면서도 욕심을 내기가 두렵고.

뭐.. 또 하나의 도전이 될 것 이고 또 하나의 배움이 될 것이고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채워나가면 된다. 화려하고 빛 고운 그림을 그려낼 자신감은 아직까지 없지만, 어떠한 그림이던 끝까지 완성 시켜야 하는 마음속 굳은 심지가 있음은 확신한다. 그리고 그림을 마지막까지 자알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노련한 기술과 세심한 터치와 바쁜 손 그리고 바짝 차린 정신도. 그리고 가장 중요한 노력. 바보같지만 그래도 제일 잘 먹히는 노력. 미련해보이지만 가장 씩씩하게 살아남는 노력. 독한 마음을 품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추어도 없으나 조금은 더 단단해진 사람이 되는 것은 필요한 것 같다. 보기도 좋은 떡이 먹기도 좋듯. 그렇게 내 음악도 듣기 좋은 음악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그런 음악으로. 마지막으로 내 마음도 그렇게 좋은 마음으로. 건강한 생각으로.

우리나라 태권도가 이럴때 참 좋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기합을 넣고 주춤서기를 또 몸통지르기를 해대는 용감하고 당당하고 패기 넘치는 그런 내가 되길!

지금 이렇게 음악을 할 수 있음에 행복하다. 그런 음악. 잘 해보자~ 그런 삶, 열심히자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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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말리는 한선미가 되자! 활짝 웃고! 매일매일을 패기 넘치는 승리의 브이를 그리며 살자! 화이팅!!

가을밤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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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만에 맞아보는 한국의 가을 밤공기는 벌써부터 참 차다.

피아노 방 책상에 앉아서 썩 찬느낌인 밤공기를 맞다보니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을 뒤로하고 내 삶의 또다른 시작을 향한 긴 여행이 일주일 앞으로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괜시리 한동안 멈춰왔던 생각이 많아지고 바빠진다. 제발 이번만은 의지와 상관없이 시작되는 지금 이런 생각들이 나를 저 밑으로 끌어내리지 않기를.. 오늘 철야의 시작이 되어버린 이 생각과 되내임과 기도 끝에 감사함이 나를 위로해주길..

이런 저런 생각을 엮어보기도 하고 또 다른 생각을 붙이기도 했다가 또 비우고 계속해서 비집고 들어오는 생각을 반기고 또 엮고 돌려도 보고 뒤집어도 보았다가 다시 들여다보고 그 뒤로 끊임 없이 밀려들어오는 생각들 하나하나를 반복 또 반복하며 반기고 또 생각하고. 지금 이 밤에 맞는 현상이 과연 내가 지난 3년 간 밤낮으로 싸워왔던 두려움과 하루하루를 채워왔던 걱정의 연속일까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도 해봤지만 지금 내가 엮어보고 풀어내는 생각들은 이전에 떨쳐내지 못한 두려움보다는 고요하고 담담한 걸음과도 같이 느껴진다.

타의로 또 자의로 내 자신을 잃을 것 없는 온실속 행복한 화초라고 불러왔고 또 불려왔고 — 이를 비롯해서 이뤄진 나의 이미지와 그와 맞는 행동과 감정표현이 당연했던 어느날 나는 그런 내 모습에 물음표를 던지게 되었다. 벅찬 감사함도 모자랄 판에 뜬금없이 배부른 물음표라 하더라도. 내 삶의 길이 생각지 못한 곳으로 나를 인도하였다 하더라도. 믿거나 말거나 그렇게 새로운 길을 향해서 두려움을 넘어선 아무런 거리낌 없는 도전으로 발을 내딛었더라 하더라도. 그렇게 틀어져버린 그 길이 나도 모르게 원래 주어져있던 길인 마냥 걷다가 막상 걷다보니 괜시리 어제의 두려움이 몰려왔다하더라도. 아무리 그러했다 하더라도. 무언가에 홀린듯 마치 이건 내 모습이 아니라며. 지금 나는 내가 아니라며. 왜 내가 이렇게 되었냐며 묻게 되었다. 그렇게 생겨나버린 반항어린 시선이 향한 곳은 내 마음. 마음 속에 꼬깃꼬깃 숨겨왔던 끓어오르는 감정들을 다 쏟아 부어내고 괜히 억울한 마음도 가져봤다가 괜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반항도 해보았다가 얼굴을 한 없이 구겨보 보고 모두를 원망도 해보기도 했다. 처음으로. 24년만에 처음으로 느낀 이 감정은 나를 유난히도 힘들게 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어리석었기에.. 한번도 마주하지 않았던 감정을 대하고 나아가는 방법을 너무나도 몰랐기에. 적지 않게 당황했기에, 그리고 어렸기에 나의 “반항”이 어찌나 커 보였는지 모른다. 내 자신에게도. 아마도 다른 이들에게도.

20대 중반의 충격의 여파로 시작된 내 짧은 사춘기는 참 가슴아프고 강렬했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아직은 나는 강심장이 아님을 증명한다. 누구에게 화풀이 할 방법이 없어서 근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에게 내 감정을 호소하고파 했다.

엄마, 왜 나를 곱게 키웠냐며. 별로 음악을 잘 하지도 못하는 내가 뭐 이쁘다고 도와줬냐며. 왜 나를 믿었냐며. 나를 왜 자랑스러워했냐며. 아니면 왜 나를 그렇게도 가둬놨냐며. 나를 왜 이 자리까지 세워놓았냐며. 세상을 향한 두려움에 굳게 닫아버린 내 마음 알면서도 왜 내 손을 잡고 그 세상속으로 계속 이끌었냐며. 왜 자꾸 내 등을 감싸고 모든 걸 함께 하려 했냐며. 엄마의 기도를 보고있노라면 곧 내가 원하는 그 기도가 아니라며. 그렇게 기도로 또 사랑으로 키워온 나는 다 커버렸는데 왜 막상 나는 할 줄 아는 것 도 없냐며. 이게 다 온실 속 화초처럼 누군가가 잊지 않고 기억하며 찾아와서 주는 물을 받아먹고 세심하게 맞춰주는 온도에 감사해하며 끊임없는 보호아래 멍하니 머리 위를 내리쬐는 해를 바라보며 살게 한 엄마랑 아빠때문이라며. 내가 뭐라고 이리도 사랑하고. 이리도 보호하고. 어쩌면 나보다 더 아파하고. 나보다 더 아파한 밤들이 많았냐며.

사실 나는 이 말을 엄마에게 할 수 없었다.

첫번째 이유는 이런 내 반항 가득한 말들은 결코 진심이 아님을 나도 잘 알고 있었고, 두번째 이유는 그렇게 반항기가 부글부글 끓면서도 부동하지 않는 내 삶의 믿음과 감사함 하나는 어리숙하고 부족하고 또 그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아닌 내가 그나마 살 수 있었고 사랑을 받고 나눌 수 있었던 이유는 엄마가 25년동안 내게 보여주고 가르쳐주고 순간순간을 느끼게 해주었던 극진하고 따뜻한 사랑과 매일밤 잠 못 이루는 기도가 나를 붙들었음이기 때문이다.

정신없는 3월 오디션이 끝나고 1주일동안 바쁘게 하지만 최근 몇년 간 가장 행복하게 엄마와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엄마를 한국으로 보냈다.

뉴욕에서의 생활 7년동안 엄마가 나를 보러 오고 다시 또 한국으로 가는 일들은 항상 변함없었다. 그럴때마다 나는 늘 같은 마음이였다. “곧 또 보니까..” “내가 또 보러갈껀데 뭐..” 그래서 엄마가 떠나는 날 밤이면 조금은 쓸쓸했지만 그래도 “또 봐 엄마~” 라는 말로 웃으면서 보내곤 했다. 내 삶에 새로운 변화가 있음을 알기라도 했던 걸까.. 늘 그래왔던 것 처럼 한국으로 떠나는 엄마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이번 3월초의 밤은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정말 많이 울었다. 정말 많이 가슴이 아팠고. 전하지 못한 말들도 너무 많았다.

오빠랑 아빠를 집에 두고 나 보러 오느라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 예민한 성격에, 밤마다 걱정하는 나를 보면서도 묵묵히 밥해주고 반찬 만들어주느라 너무 수고했다. 하루종일 내가 학교에서 오길 기다리며 기도하고 긴 하루를 끝내고 지쳐 돌아온 나를 격려하며 기도하고 또 말 없이 잠들어 버린 나를 보며 또 기도하느라 너무 수고했다. 끼니 거르면 안된다며 아침 일찍부터 김치찌개를 끓이고 학교에서 챙겨 먹으라며 점심 간식을 따로 만들어 내 가방 책들 위에 차곡 차곡 쌓고 날씨가 춥다며 장갑을 겉옷 주머니에 한쪽 씩 찔러주고 한국에서 가져온 핫팩 덩어리를 흔들어 손에 꽉 쥐어주며 열심히 하고 오라는 엄마의 아침 목소리가 너무 고맙다. 영어 한마디 쉽게 못 뱉어도 나를 위해 한인타운에 지하철 타고 가서 장봐오느라 수고했다. 은행일도 챙겨주느라 수고했다. 나도 없고 컴퓨터도 고장난 아파트에서 하루종일 그렇게 성경책을 읽으며 기다리는 엄마한테 너무 미안했다. 오디션이 끝나고 주어진 조금은 여유로운 6일이라는 시간동안 여기저기 가보자는 나를 달래며 엄마는 다른 곳 안가봐도 된다며 나 필요한 거 없냐며 그저 나 먼저 생각하는 엄마가 괜히 나를 더 힘빠지게 했다. 긴장 풀려 웃는 내 모습을 보며 조금 더 편안해진 엄마의 미소 뒤에 가려진 외롭고 고단한 엄마의 모습이 나를 너무 가슴아프게 했다. 짐 싸는 일에는 워낙 익숙하지만 괜시리 마지막 날 밤 짐을 싸는 엄마의 뒷모습은 연신 내 자신을 원망만 하게 했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엄마가..” 우리 엄마 더 행복해야 하는데. 우리 엄마 고생 그만 시켜야 하는데. 우리 엄마 더 웃어야 하는데. 내가 사랑하는 우리 엄마 꼭 지키고 싶은데. 괜히 빠르게 흘러 가는 시간이 원망스럽고. 유난스러운 내 삶이 엄마를 더욱 고단하게 한 것 만 같고. 힘들때마다 부어오르는 두 다리와 팔 그리고 딱딱해져버린 어깨. 손힘이 대단한 나도 주무르기 힘들만큼 커져버린 엄마의 무거운 어깨와 굳어져버린 아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얇은 발목과 발을 뒤덮은 굳은 살. 공항 가기 전까지 내 방을 구석구석 청소하고 남아있는 나를 위해 필요한 물건들을 사다놓는 엄마를 말리고 싶었지만, 오랫동안 당연시 지켜만 봐오던 “엄마가 하는 일”을 차마 건드릴 수 없었기에.. 말려도 계속 하는 엄마를 잘 알았기에.. 더 많은 “엄마가 하는 일”이 있었을텐데 내 삶이 “엄마의 일”을 마치 이렇게 쥐어준 것 만 같아서 마음 한 구석이 아리고.. 더 행복하고 더 편한 “엄마가 하는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내가 “엄마가 하는 일”을 미술학도들을 가르치는 교수님의 수업 준비가 아닌 음악을 하는 딸을 뒷바라지 하는 외로운 노동으로 만들어버린 것 만 같아서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중학교때부터 봐오던 엄마의 바지 끝이 너덜너덜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괜찮다며 기어 입는 엄마의 모습만 떠오르고. 결국 엄마에게 아무것도 해 준게 없는 것 만 같아서 미안하면서 또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 삶을 선택한 엄마에게 나도 모르는 답답함도 느껴보고. 엄마한테 쓴 편지를 결국 전해주지 못하고 또 그렇게 서랍에 넣어놓게 되었다.

그날 밤 “엄마 수고했고 너무 고마워. 비행기 타면 꼭 푹 자. 꼭 쉬어. 푹 쉬어.” 하며 지난 7년과 같은 헤어짐을 하고 돌아오는 내 발걸음은 그 어느때보다도 너무나 무거웠고 괜시리 더 섭섭하고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나도 나이가 들었나. 왜 이렇게 슬프나. 벌써 외롭나. 고요함이 늘 익숙하던 나인데 왜 오늘은 이 고요함과 공허함이 가슴 시리게 아플까. 남자친구가 없으니 하다하다 이제 엄마한테 집착하는 건가. 연애를 해야하는 시기인가 하며 이 눈물을 괜시리 쓸데 없는 핑계로 덮어보려 했으나 오래 가지 않아 또 엄마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비행기 기다린다며 전화 오는 엄마는 코막힌 내 목소리를 바로 알아채고 무슨일이 있냐며 걱정하기 시작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목소리를 높이면 무얼하나. 24년동안 변함 없는 어색한 나의 연기 스킬과 거짓말을 보고 듣고 또 혼내왔던 엄마인데. 아무리 능숙한 척 해보려 해도 나는 엄마 손 안에 있는 엄마 딸인데. 은근슬쩍 솔직한 내 마음을 내비추려 “엄마한테 너무 고마워서. 이번에는 그냥 눈물이 나네. 다른때랑 달라. 엄마 가니까 너무 허전하고 보고싶어.” 말했지만 엄마는 앞서는 걱정된 마음을 추체체 못하고 또 추궁에 들어간다. “너 혹시 안좋은 일 있니? 엄마한테 솔직하게 이야기 해도되. 엄마한테 빨리 이야기 해. 엄마 이해해.” 이거 일이 너무 커지겠다 싶기도 하도 나도 모르게 이건 아니다 싶어 “엄마 제발. 나 진짜 아무일도 없어. 정말 엄마한테 고마워서 그러는거야. 내가 늙었나봐” 하며 엄마를 설득하고 이번에는 오해말라며 말하고 또 말하고 그렇게 진정 시켜서 떠나보냈다. 그리고 한달 후 나는 내가 유난히도 가슴 아프게 느껴졌던 그 날 밤이 내게 하려 했던 말을 듣게 되었다. 뉴욕에서의 내 삶은 그렇게 의도치 않는 휴식기에 접어들었고 7년간의 엄마가 뉴욕으로 나를 보러 오는 일 역시 당분간을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렇게 가슴아팠을까.. 밤새 울고 또 울고 뜨기도 힘들게 부어버린 눈이 버거워서 머리도 너무 아파서 다음날 침대에서 꼼짝 않고 있어야만했는데. 그렇게 힘들고 버거웠던 밤이지만 내가 그만큼 가슴아리고 그립고 무겁고 그리움 역시 한켠에 차지하고 있는 엄마의 사랑의 한 부분을 아주 조금이라도 반의 반의 반만이라도 알게 되어서 감사했다.

내게는 가장 가깝고 또 가장 가슴 아린 한사람 엄마. 엄마한테 이런 내 마음을 표현하기도 잠시 내 삶의 핸들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나를 인도하였고 그렇게 갑작스러운 (혹은 미리 계획되어있었을 수 도 있는) 변화를 선택 한 나는 한동안 지독하게 괴롭혔던 감정적인 늪에 빠지기 시작했다.

음악인으로써 사명감과 감사함 또 내 삶의 비전을 부여받았기에 뒤 돌아보지 않고 새로운 변화를 선택하고 과감하게 7년만의 한국에서의 여름 또한 결정하고, 압구정 우리집에서의 여름 불청객이 되어야겠다는 나의 다짐이 가족들에게는 많이 불편했을 것 같아서 미안했다. 죄책감도 들고 미안함도 들면서도 나는 그렇게 주위의 눈치를 보며 7년만에 처음으로 아빠, 오빠, 그리고 엄마와의 여름을 보냈다. 매일 매일을 마주했고, 행복했다. 행복함을 매일매일 마주하면서 피할 수 없었던 한가지는 그만큼 매일매일을 마주해야하는 불화였다. 뉴욕에서 혼자 지낸지 7년. 서로의 모습을 못 본 시간 역시 7년. 아빠와 오빠 역시 오랜만에 긴 시간을 나와 보내는게 그리 쉽지 않았을 것 이다. 뉴욕에 있을때는 방학때나 잠깐 한국에 나와서 짧은 시간 만을 서로 보고, 그 짧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서로에게 좋은 모습 보이기에 바빴고 웃어주고 보듬어주기에도 주어진 시간이 늘 모자랐기에 서로서로 행복하게 ‘잠깐의 행복한 시간’을 가져왔는데.. 오랜만에 함께 살기가 쉽지 않았다. 매일매일을 서로를 보며 크고 작은 마찰도 보게된다. 바쁜 와중에도 주말에 가족과 함께하는 외식도 좋아하고 항상 빠르고 건강하고 생기있는 딸바보인 우리 아빠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굳게 닫힌 방 문 너머로 들려오는 꽉 찬 음악 소리에 더 익숙해져버린 아빠를 보게 되었고. 가족들 눈 마주치는게 어색한지 방에 들어갈때는 늘 애꿎은 시계만 바라보며 혼잣말을 해대고. 예전에는 아끼고 또 아꼈던 나를 향한 잔소리도 어마어마하게 늘었고. 맘에 들지 않는 것 도 많아지고. 엄마한테는 더 없이 차가워지고. 목소리는 커지고. 하지만 그 목소리를 듣기는 쉽지 않았고. 이런 아빠의 변화에 나는 적응 할 수 없었다. 미안하면서도 눈치보이고. 또 괜시리 어색해서 내 말 수 조차도 줄어들게 된다. 엄마 몰래 용돈을 주시려고 조용히 내 방 문을 열고 현금을 쥐어주는 아빠가 고마우면서도 그냥 그 돈을 받지 않았으면 하는 순간이 더 많았다. 이 돈 보다는 그냥 따뜻함이 더 간절했기에. 내가 너무 가족과 오랫동안 떨어져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아빠의 변화에 내가 발 벗고 나서서 응원하고 도와주고 외롭지 않게 함께 하고 기도해야하는데, 왜 나는 이 모든게 실망스러울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들었다. 축 내려앉은 아빠의 어깨가 지하철에서 보는 흔한 50대 아저씨들의 어깨와도 같아보여서 놀라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슈펴맨 우리아빠도 사람들 눈에는 그저 아저씨구나. 그 흔한 아저씨이겠구나 . 그 흔한 아버지이겠구나. 광고에서 보는 축 처진 아버지들의 어깨가 바로 우리 아빠의 어깨와도 같구나. 지나가는 남성 갱년기 광고를 무심코 쳐다보면서 쓰여진 단어들 (우울함, 만성피로, 무기력, 의욕저하) 이 우리 아빠를 그려냄에 또 깜짝 놀라고 가슴도 먹먹하다. 너무나도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 슈퍼맨 아빠가 세월의 바람을 맞는 그동안 나는 우리 아빠가 에게 무얼했나 하는 생각을 하자 또 미안함이 앞서고 볼에 열이 돋았다. 식은땀이 흐르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했다.

바껴버린 집안 공기에 숨 쉬기도 힘들고 미안함이 마음으로 짓누르고 이 모든 변화들을 적응하기도 바쁜 와중 또한 나를 가장 가슴 아프게 했던 건 또 엄마. 엄마. 엄마. 아무것도 없는 우리 엄마.

한국에 돌아와서 Tel Aviv 대학원으로 간다는 내 최종 결정에 두려우면서도 지지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엄마의 곤란함을 느끼면서도 나는 그래도 웃자며 엄마를 부추겼고 엄마는 또 그렇게 나를 돕고 나를 지지하고 나를 위해 기도했다. 주위에서는 이런 변화를 심상치 않게 여기기도 했으며 이런저런 연락을 받는 엄마가 잠 못 이루고 걱정하는 모습을 매일매일 보게 되었다. 내가 보기엔 유난스럽게만 보이는 걱정들과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 나는 그런 이야기들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만 우리 엄마는 다르다. 특히나 나의 일에 있어서는. 그래서 더 걱정하고 잠도 못자고 기도하고 잠든 나를 깨워 또 걱정하고. 엄마가 꽤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게 가슴이 아팠다. 25살이지만 다 큰 성인이지만 엄마에게는 아기였나보다. 정말 어린 아기였나보다. 나를 또 낯선 곳으로 떠나보내야함이 두려웠나보다. 좋은건지 안좋은건지 모르겠다만 생긴 거에 비해 자립심과 모험심이 강하고 또 간절한 나이기에 주어진 새로운 변화를 무덤덤히 받아들이면서도 엄마의 걱정이 계속 신경쓰였다. 내 걱정하느랴 오빠 걱정 하느랴 아빠 걱정하느랴. 내 기도하느랴 오빠 기도하느랴 아빠 기도하느랴 내 밥 챙기느랴 오빠 밥 챙기느랴 아빠 밥 챙기느랴. 내 빨래 하느랴 오빠 빨래 하느랴 아빠 빨래 하느랴. 잠시도 쉴 틈이 없이 보인다. 세상 걱정을 다 등에 엎고 보여지는것이라곤 손에 쥐어진건 굳은살 뿐. 하지만 그 속에서 고스란히 피어난 굳건한 기도와 믿음. 미국에서 그렇게 나를 가슴아프게 했던, 허나 잠시동안 잊고 있었던 당연히 여겨지는 “엄마가 하는 일”을 또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이렇게 오랜시간동안 “엄마가 하는 일” 과 또 엄마의 걱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내게는 조금은 버거웠는지 아니면 또 깨질 것 만 같은 유리마음을 흔들어놓았는지 몰라도 이런 모든 현상들이 내 때 늦은 반항기에 시작을 알렸던 것 같다.

20여년간 엄마의 일은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10대 때 내가 이런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았을때와 지금 내가 바라보는 이 시간의 감정이 현저히 달라졌음을 느낀다. 엄마가 늘상 이야기 하는 “당연한 엄마의 일”에 고단함이 짙게 묻어난다. 왜 나는 지금에서야 이렇게 엄마이 고단함을 느끼게 되는건지.. 사실 엄마의 삶에 조금이라도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을 예나 지금이나 같다. 다른 자식들과 같이, 아니 그보다도 더 많은 것을 엄마에게 해주고 싶다. 단순한 발언일지 몰라도 좋은 삶을 선물하고 싶기도 하다. 10대때의 무능력함을 20대때는 무조건 갚아보겠다는 자만 섞인 의지와 소망이 물거품과 같이 보이는 순간이다. 내가 아무리 엄마에게 “좋은 것”을 선사하려 해도 엄마의 짙어진 먼지 묻은 손 끝 과 거뭇해진 무릎팍은 그 어떠한 “좋은 것” 과도 바꿀 수 없다. 엄마는 늘 변함 없이 착하다. 내 엄마라서 그런것일까. 정말 착하고 선하다. 그 착함이 옛날에는 좋았는데 지금은 화가나기도 하다. 10대때는 우리엄마 착하다 생각뿐이였는데 지금은 왜 저렇게 바보같이 아무말 않고 있을까 한다. 10대때는 엄마가 치맛바람이 귀찮은면서도 항상 그 차맛자락을 꼬옥 잡고 함께 갔는데 지금은 그런 엄마의 노력이 나를 화나게도 한다. 엄마는 왜 계속 고단해야할까. 나는 정말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데 그 방법을 묻노라면 늘 이야기 한다 “너 잘되는게 엄마 행복한거야.” 내게는 “잘되는” 의미가 너무 크다. 아직도 “잘되는” 것에 대해 두려움 도 많고 여러가지 일에 의심도 많은 부족한 내가 엄마에게 큰 행복을 선사하기가 쉽지 않을 것 만 같아서 또 미안하다. 의지는 불타오르지만 의심은 여지 없이 그 자리에 있다. 간절함은 하늘을 솟구쳤지만 두려움 역시 변함 없이 내 마음을 휘젓는다.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데. 아빠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데. 착한 딸 말고 가끔은 능력있는 딸 되고 싶은데. 다른 이들 다 원하고 다 바라는 그런 것 나 역시 꿈꾸고 있고 간절한데. 그렇게 우리 엄마 아빠 웃는것만 보고싶은데. 엄마 아빠 딸 덕에 웃게 하고 싶은데 정작 나는 턱 없이 부족하고 참 바보 같이 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내 자신을 원망하고 그 원망의 화살이 착한 엄마와 눈치 보는 아빠에게로 간다. 왜 나를 착하게 엄마 아빠 말 만 들으며 살라 했냐는 원망만 한다. 말도 안되게. 정말 앞뒤도 맞지 않게. 어느새 나는 그렇게 원망이 끊임 없이 흘러 내렸다. 원망이 분노를 불렀고 나만의 사춘기가 성난 파도와 같이 나를 흔든다. 뭐.. 사실 엄마 아빠 두 분 다 내가 “반항기”를 겼었다고 생각 못하셨을 것 이다. 티를 내지 않았으니까. 그냥 웃고 말았으니까. 내가 하는 원망은 고작 방음 되어있는 피아노 방 안에서 우는게 다였으니까. 말도 안되는 원망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다. 하나님한테 불평도 했다. 나 왜 이렇게 무능력하게 만드셨냐고. 착하게 살라고 하셔서 그렇게 했는데 왜 우리 엄마 아빠는 더 힘든거냐고. 손이 부러졌을때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다고. 손이 다쳤을때 피아노를 그만두게 하시고 일찍이 다른 일 하게 하셨으면 최소한 돈이라도 벌면서 내 밥벌이는 하고 있지 않았을꺼라며. 나 아니였으면 우리 부모님 더 행복했을꺼라는 확신 또 확신하며 내가 피아노 한것처럼 공부했다면 뭐라도 했을꺼라면서. 떵떵거리며 잘난척도 해봤다. 그러면서 또 원망은 끊임 없었다. 세상이 원하는 건 하나님이 원하시는거랑 너무 다르다고. 그래서 내가 하나님 말 만 들었다가는 이도저도 안되겠다는 원망을 해댔다. 그 와중에 고요하시고 또 고요하시면서도 변함없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어린 아이마냥 생 난리를 치고 원망을 하다하다 울고 또 울다 지쳐 내 마음에 분노가 먼저 누워버렸다. “하나님이 이겼어요. ” 그러고 다시 바라봤을때도 부모님은 변함없다. 상황이 변한 것도 아니다. 나아진 것 도 없다. 주어진 상황을 그대로 이다. 감사하다. 이 상황에서 내 원망섞인 반항이 땅으로 가라앉음을 느꼈다. 그렇게도 매섭게 치던 파도와도 같았는데. 지금은 잔잔한 바다 수평선을 바라보는 것 만 같다. 민망하고 부끄럽고 멋쩍지만 그냥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그렇다. 바뀐건 없다. 나는 뉴욕에서의 생활을 잠깐 접고 이스라엘로 간다. 더 철저한 사람들과 공부하러 간다. 새로움을 경험하러 떠난다.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세상을 배우고 그 역사를 경험하는 특혜를 누리러 간다. 이전 삶에서 생각지 못한 선물이다. 선물을 받은 나는 어린아이와도 같이 긴장되고 또 행복하다. 전혀 계획에 없었던 나의 “내일”이 나의 “오늘”이 되었다. 손이 다쳤던 3년 전 피아노를 그렇게도 그만두고 싶어했고 내 “내일”에 피아노가 없었으면 했다. 하지만 그건 순간적인 어리석음이였음을 깨닫고 지금 그때의 그 “내일”이 피아노가 함께 하는 “오늘”이 되었음을 감사한다. 가끔씩 듣는 질문과도 같이 누군가가 내게 어떻게 지금 이 자리까지 왔냐고 묻는다면 그냥 어쩌다보니 이렇게 음악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어쩌다보니 속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 그렇게도 그만 둘 법 도 한 일들이 있었지만 그럴때마다 흔들리지 않는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고, 그 마음에 피어난 작은 소망을 맘껏 펼치게 해준 부모님과 하나뿐인 사랑하는 오빠의 희생과 적극적인 지지가 있었고, 그들의 기도와 그 기도를 보고 배운 내 어리숙함 가득한 소망 있었고, 고단함과 어려움을 나누며 함께 연습하고 연주했던 소중한 친구들이 있었고, 또 이 모든걸 허락해주신 그 분이 계신다. 어쩌다보니.. 이렇게 많은 것을 선물받고 살아왔고 여기까지 왔다. 그냥 온 것 같지만. 정말 이런 저런 일 들이 많았다. 어쩌다 보니 이런 저런 감정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또 나는 그런 감정들과 생각에 반응하고 조금 더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래도 이렇게 걷고 있다. 느리지만 한걸음 한걸음 걷고 있다. 단순함 보다는 정답 없는 대화라도 길게 생각하고 그 생각을 소유하려는 성격이다보니 빠른 길을 걷지는 못했다. 화려함에는 어색하고 조용한 것을 좋아하면서도 혼자만의 세계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크고 밝은 사람이다. 주목 받는 것을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주위 사람들 웃기는 것 을 참 좋아한다. 편한 것 도 좋아하지만 편함 보다는 조금 불편하고 외롭다 하더라고 극복하는 것 을 매우 좋아한다. 예쁜 사람들을 한 없이 부러워하면서 정작 내가 예뻐지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리고 하루 종일을 나는 왜이럴까 생각도 하다가 나름대로 쿨하게 넘기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고고한 아름다움을 알게 모르게 찬양하면서도 “내면의 아름다움”을 더 강조한다. 사실. 둘 다 잡기 힘듦을 몸소 느낀다.

사람들이 주목하는 화려함을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그리 탐나지 않는다. 심지가 굳고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 잘하는 사람도 좋지만.. 열심히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은 누군가에게 대접 받는 방법도 모르고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리가 영 어색하기도 하다. 내 자신을 세우고 표현하는 것이 영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 눈 속에 보이는 나는 조용하고 차분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상상 그 이상의 소망이 있다. 이 소망과 생각, 기도, 감정, 그리고 이야기가 내 음악을 통해 전해지길 간절하게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음악에게 무척이나 고맙다. 오랜 전 이런 아름다운 곡들을 쓰고 떠난 작곡가들에게도 감사한다. 그들의 음악이 어쩌면 내게는 소통의 통로이기때문이다. 누군가의 음악이 또 삶이 내 소통의 통로로 함께해주는 것에 대해 가끔은 부담스러움도 없지 않아 있지만 내가 가장 나일 수 있는 그 시간이 바로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시간임을 안다. 어렸을적부터 내 음악이 사람들에게 치유가 되는 음악이 되길 기도해왔다. 꽤 오랜시간 기도해왔다. 아베스의 기도를 읽고 또 읽으면서 연약함을 딛고 지경을 넓힌 야베스의 기도가 내 삶의 고백이 되길 간절히 기도해왔다. 삶에서 사랑을 나누고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고,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이 음악이 치유가 깃든 그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통로가 되길 기도한다. 야베스의 어머니가 수고로 그를 낳았듯 우리 엄마 역시 나를 수고로 낳으셨고 나를 위해 기도했으니 나 역시 그와 같은 고백이 나오길 기도한다.

가끔씩 꿈꾸게 되는 화려함과 매일매일의 물질적 풍족은 잠깐 접고 조금 더 낮은 곳 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감사한다. 삶에 묻어나게 될 겸손함을 배우게 하심에 감사한다. 예의 있는 자의 자세를 넘어서 겸손하고 배려하고 낮은 마음을 배우게 하심을 감사한다. 무엇보다 음악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음악이 사랑과 자유함이 전에 곧 육체의 연단임을 다시 한번 경험 하는 내 삶이 되길 바란다. 내 마음을 연단시키듯 부단히 연습하고 또 배우고 싶다. 다사다난 했던 한 해 였고, 여자로써, 딸로써, 음악가로써 참 많은 변화를 바라보게 되었으며 마음 속에 품었던 또 다른 내 자신을 바라보게 된 소중한 시간이였다.

가족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결혼 30주년을 2년 앞두고 계신 부모님의 삶에서 내가 행복을 드리길 소망한다. 마음이 시키는대로 드리고 싶은 만큼 드릴 수 없고 또 많이 부족한 나 이지만 그래도 두 분의 삶의 모습을 잊지 않고 항상 헤아리며 감사하며 기도하고 사랑을 표현해야겠다. 하나뿐인 사랑하는 우리 오빠도 내게는 버팀목이고 소중한 동반자이다. 내 삶을 위해 많은 것을 내려놓았던 또 다른 희생자라고 생각해오고 미안해왔지만 나로 인한 희생이 아닌 오빠가 주인공인 그 삶에서 어려움을 버티고 매일매일의 선함과 이해로 일구어낸 자랑스럽고 한없이 멋진 우리오빠임을 다시 한번 느끼고 또 자랑스럽다. 동생이 항상 오빠의 존재를 잊지 않고 늘 오빠 생각을 한다는거 알고 있으면 좋겠다. 더 큰 바램은 오빠가 지니고 있는 삶의 무게 또한 함께 지고 나가는 동생이고 싶다.

뉴욕에 소중한 인연들과 2년동안 떨어져 있어야 하는게 생각보다 많이 힘들다. 보고싶어서 이번 여름에도 혼났다. 소중한 친구 푸름이에게 여름 끝자락에 연락해서 보고싶다고 나 제발 잊지말라고 어리광을 부렸다. 혼자 메세지를 보내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너무 보고싶었으니까. 나를 잊으면 안되는데 하는 걱정도 있었다. 갑자기 또 왜 이러냐며 왜 또 이런 긴 글을 보내냐며 나를 달래는 쿨한 푸름이의 대답에 어린 아이 마냥 한숨을 몰아쉬며 안심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남자 친구가 없으니 푸름이한테 집착하게 되는 것 같아서 미안했다. 하나도 보고싶다. Charlotte도 많이 보고싶다. 승연이도, 희진이도, 새롬이도, 선영언니도.. 대학 다니면서 유일하게 잘 연락하고 기도도 많이 했던 Dan도 보고싶고, 내가 사랑 받고 있음을 매 순간만다 보여준 Joy랑 Betty도 보고싶다. TLC 언니 오빠들도 보고싶다. Veda도 너무 그립다. Rachel , Alex도 보고싶다. 이렇게 이들의 이름을 읊으며 한사람한사람을 위해 기도해본다.

내 삶에 생겨나 새로운 문을 열기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괜시리 청승맞아진다. 감사한 것 도 나열하고 싶고 이런 저런 목표도 외쳐보고 싶지만 마음속에 품으련다.

성숙한 여성이 되기를 다시 한번 기도하고 또 다짐한다. 성실하게 일하고 발전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기도한다. 소통을 막는 이가 아닌 소통을 건네는 연주자가 되길 바란다.

Purify my heart

Purify my heart
Let me be as gold and precious silver
Purify my heart
Let me be as gold, pure gold

Refiner’s fire
My heart’s one desire
Is to be holy
Set apart for You, Lord
I choose to be holy
Set apart for You, my Master
Ready to do Your will

Purify my heart
Cleanse me from within
And make me holy
Purify my heart
Cleanse me from my sin
Deep within

<Refiner’s fire by Brian Doerksen>

“Where is my father? What is at the center in my heart? Where is the Lordship in my life? Where is my humble heart? Where is my true love? What is my desire? Why do I want to cherish every moment? What is it for? Who is it for? ”

So many questions were in my mind today, the first day in Korea. Hunger to start my summer journey with the God at the center in my every day life brought me so many questions today.  I really wanted to prepare my heart before Him. I wanted to lift up this summer vacation to Him through remembering God’s faithfulness every moment and living with the true passion in Him at the center in my heart. Too many thoughts actually did not really help throughout today. My dad gave me a book for a gift. Its called 그청년 바보의사 <The Young man, silly doctor.> Its about how this young doctor dedicated His life to God through sharing Gospel for those who needed healing, and through living as an instrument of God. His testimony is truly amazing that God called so many people through the young doctor, and that the young man’s dedication, passion, and faithful heart to be the follower of Jesus encouraged so many other brothers and sisters. It could just end as one man’s life story, but it was quite an significant moment for me to see myself where I put God in my life, and why I desire God to bring healing through my music.  I need to confess that all my life was about me before, not Him. I always wanted to see how God would use ME, but never thought about God be lifted up through my music. I might have never wanted God be the center, but just wanted to focus on my life that every one praises. I may still have those desires in my heart, and fight against them every day.

Before I started practice for the first time in my room, I prayed that God would be at the center in the room that I would be filled with His presence and practice for Him, but not for anything else. God is so good that He never let any other thought disturb my concentration, but empowered me through Holy Spirit. After practice, I closed with the prayer. I praised for His goodness even in the little moment of my life that I could stay awe in His presence. God is so good.

I am reminded fresh that before I ask Him for anything, I have to confess that He is the only one who can make me pure so that I can start from the very bottom without any burdens of sin. I did not know how to be humble, but now I start seeing little by little that the greatness of humble heart always starts from the confession and the desire to be pure. I still fall short of the glory of God and fail many times.. I pray that even in the failure, I would stay in the presence of God that I would ask Him for strength and mercy upon me.. because He knows everything. God, please be the center. God, please be my desire. God, please be my light.

Chopin Concerto No. 2 in f minor

Great excitement after the concert

Aside

Why and for what?

This is quite funny that I start my personal blog after 22 years of my life not being able to understand those who made their own blogs and wrote their stories.

I just finished my third year at college, and finally relieved from this enormous amount of stress given from school. Looking back on my third year at college, I learned so many things that I actually could open my eyes to face the world under the mercy of God. God’s mercy was what brought me through whole year up to this point. World is filled with millions of distractions and unmeasurable desires that need to be forgiven by God. I realized that I would never be able to survive in the world without His mercy and power. One of my defect or weakness is that I have too much fear in me and this connects to the fact that I am such an irresponsible person. Whenever I face the problems or difficulties, I ignore them. Once things stir my heart,  I never want to open my eyes or take a look my heart, but ignore them with finding good “excuses” to run away from them. Of course they always ended up failing. This year, I failed more than 30 times. So much depression, self-hatred, and fear.. I remember first two years of my college life, I was such a good student. I practiced 12 hours everyday, studied, didn’t need any hours of sleep, prayed, praised, and was filled with Joy and hope that I always hoped and prayed that God would use me powerfully and widely as His musician. I had to face number of times of failure, but it was not a big deal, because I knew that God knows everything what I had done and how much I had worked and put my effort on things.

Going through more of failures finally hit me with a deep depression towards the end of my second year. I broke my fingers, not able to practice for three months, lost my identity, lost desire, and lost my faith. I was always a “smile person” who always smiled and never got tired of it, so I had to acted out at school all the time that there was nothing going on in my heart. I did not want to share with anyone else. I was really scared. I just wanted to be seen as a strong person. While I was acting so hard that I was even confused if I was happy or not, I completely lost my trust on God’s presence and His love. It first felt okay without prayer and praise. I, human being, could simply do everything. I realized that I was quite good at covering my heart and put a fake smile. My friends always told me that I am very strong. My parents were so thankful and happy that I am strong and mature while I was hiding my sadness and depression from them. It was not a big deal for me to pray for people, but not for myself or my relationship with God. I was scared to talk to him. I was so sorry for those who I prayed for during my depression that my heart was not fully poured out for them and God, even though I loved them so much. In my family or in school, I always had to be the one who was strong, nice, happy, mature, faithful and bright. Faking a happy life was not a hard thing at the first time. As time went by, I started my third year at College, and I was quite encouraged by prayers of my precious friends. Starting the year was not a problem. I practiced a lot, had good lessons, worked all the time, and never slept. However, It was totally different from before. I repeated exactly same things that I had done for first two years at college, but I was not happy. I was faking. My happiness and my desire were all fake. When I realized that my fake life and empty heart were needed to be confessed and forgiven by God, it was too late. I failed again. I had to face another difficulty of fear. My relationship with my piano teacher emerged as one of big burdens in my heart. I was always discouraged that she did not like my music. Although I practiced a lot and tried to pull out my best performance in the lesson, she did not seem happy enough. I was able to talk to her after my competition at Oklahoma. The conversation that I had with her literally crashed my heart of hope as a musician. I was told that I was not the “great” musician that I would not be able to win any music competitions. That was my “reality.” My music, my prayer, my dream, and my hope were rejected and shattered down by the world. I was hurt and hopeless. From that moment, I started blaming on to God that Why he gave me the heart to love music, and desire to be used by Him. Once I started blaming, it never stopped. I did not go to classes, I did not answer any call from friends and parents, and I stayed in my apartment for a week. I had to show up for campus ministry meeting, but had such a hard time during the praise time. I didn’t deserve to love God. I didn’t deserve to praise God. As a leader of student ministry, I must have been more responsible not only mentally but more importantly spiritually. Some people might notice what I was going through, but most of people didn’t. Whenever people come up to me and told me how much they were thankful for my support and prayer, I didn’t know what to do, but just smile. My heart was empty.

After weeks of blaming in depression, I finally hit the ground so hard where I was not able to find any place to run away from the fear, that there were only two words strongly came up to my heart were “confession” and “repentance”. Confession and repentance were the only way for me to get out of this terrible place of fear. For more than two to three hours, I cried, kneeling under the desk, and called out His name “Abba Father.” I still remember that time how my heart was torn and broken that I could not even breath well. I cried out, “Father, forgive me. Father please. Father please.. I cannot live without you. Father, please forgive my selfish heart. Please take me out of this darkest moment. Father I am so scared. I am hurt. I am so sad. Father I am so sorry I am so sorry.” There was no sentence of blaming, but crying for His forgiveness. I could not even continue crying out to God, but keep calling His name and crying. Time of asking for forgiveness took about a week. God wanted me to take out all the evil thoughts and wounded places from my heart through the confession. God was still during the time of confession. The day after my confession and repentance week, it was a final week. I started studying again, not with overflowing joyful heart, but with peaceful heart. God provided me peaceful place to study, peaceful time to be with Him, and peaceful time to pray. One day, I was studying by myself in library, not spending time with friends at all. I was reminded of the email from my friend about the weekly prayer meeting at school. Without any thought, I just started walking to the prayer room. There was quest prayer leader, Pastor Jaeson Ma. I only had seen him from the movie 1040, so I was blessed to see him in person and to pray with Him. Through 1hr 15mins of prayer with Him, God completely healed my heart. Not that I was joyful or happy, but I was touched my Holy Spirit. When Pastor Ma prayed for me, putting his hand on me, he said, “There will be fire in you.” Fire? Really? I was curious why he mentioned the word fire for me, but just kept in my heart and went back to study. The power of prayer that I was blessed by Pastor Jaeson Ma started stirring my heart with more of healing as moment went by. After then, I had to face two to three difficulties again in a week. However, it was different from the previous ones. I asked God for His mercy. I put my prayer request on facebook to ask other brothers and sisters to pray for His mercy upon me. I needed a powerful prayer, and I was so thankful for those who prayed for His mercy. I was not sure if I was ready to face difficulty, but I was confident that God was always ready for me. One of my good friend, Hana Chu, texted me. “Believe it. He will do it.” Yes, He did it. God covered me with His mercy that concurred the fear coming from the world. I was covered with God’s power,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I was calm. I was strong. God in my heart was strong. This was the last day of my third year at College.

Now, I start my summer vacation. I am leaving for Korea next week, May 26th. For about three months I stay in Korea, I want to keep writing on my blog and remember how God is great and merciful. I want this summer break to be filled with God’s promise. I want to live everyday with the mercy of God. I want to live every moment in prayer. One of my faith verse is 1 Chronicles 4:9-10.

“There was a man named Jabez who was more honorable than any of his brothers. His mother named him Jabez because his birth had been so painful. He was the one who prayed to the God of Israel, “Oh, that you would bless me and expand my territory! Please be with me in all that I do, and keep me from all trouble and pain!” And God granted him his request.”        <1 Chronicles 4:9-10>

Reading Jabez’s prayer is truly powerful. Watching How faithful and passionate Jabez’s hope and prayer for God in the circumstances encouraged me. I pray that as proclamation and faith of Jabez, though myself is weak, my prayer and confession are strong in Him and that God will grant my passion to be blessed and to be used by God as His musician and His missionary. Through this summer, I hope that God will reveal himself more through my everyday life and in music. Although there will be difficulties I have to face, I trust that God will protect me that I will first proclaim for His mercy and power upon my weakness of heart. I also pray that even when I go through times of failure, God will let me find those times as an opportunity to become stronger. Lastly, I pray that when I come back to the States in September, I will be ready to go through whatever that will try to burden me and tempt me that every moment will be the testimony of my life . Because God is stronger than any other rock. Because God is almighty and passionate that cannot compare with any other fire. Because God is good all the time that He is one and only King. Amen.

Music That Touches Your Soul

Music has been something that I have experienced a powerful healing from.

One of my prayer and dream since 5th grade is that God would use me as His musician to bring healing, passion, and love to others as I have experienced the greatness of God’s healing for my wounded heart.

How about you? Where does your passion come from? What is your passion? And What is your dream? Would you like to share your life story with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