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답을 찾다

어느새 뮌헨의 세번째 가을이 온다. 뉴욕에서 7년, 이스라엘에서 2년, 또 뮌헨에서의 3년.
이번 해 여름이 오기 전 까지 나는 늘 마음에 먹먹함을 달고 살았던 것 같다. 행복해지는 것 에 대한 두려움이 무엇일까? 도대체 어디서 이런 마음이 생겨나는것일까? 4-5년동안 끝없는 의문을 품고 자책 하기도 했다. 서른이 되기 전 이번 해 만큼은 이 해답을 꼭 찾아보고자 조금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행복을 누리는 것 이 왜 나에게는 부담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 보다 더 불편했던 것 이 었는지를..

지금까지와 다르게 이번 여름 4주는 한국에서 지냈다. 4주의 시간동안 중요한 분들 뵐때를 제외하고 나는 오로지 집에만 있었다. 다른 곳 이 아닌 우리집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어보고 싶었다. 더 나아가 집을 지키며 가족들을 배웅하고 맞이하고 싶었다.

무모했지만 “음악을 하는 사람이 연습에 바빠야지, 사람을 만나야지, 연주를 기획해야지” 이런 생각 접고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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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 아빠가 방에서 나오길 기다렸다가 아빠가 대문을 나설때까지 조잘조잘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엄마의 이른 새벽 운전이 위험하지 않게 혈압약을 챙기고, 커피를 챙겨 담고, 샌드위치도 만들고, 사과를 갈았다. 한창 일하느라 밤낮이 바뀐 오빠의 아침밥을 지었다. 모두가 나가면 집을 정리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분리수거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행주를 삶았다. 엄마가 연락 오면 도착 시간에 맞추어 집 앞에서 장을 보고 들어왔다. 아빠가 가고싶어했던 맛집을 찾아가고, 아빠가 좋아하는 동네 산책을 했다. 오빠가 일 끝나고 들어오면 입이 심심할까봐 좋아하는 바나나우유와 닭강정, 그리고 과자를 잔뜩 준비해놓고 기다렸다. 건강에 좋지 않은 것 알면서도 나와 입맛이 비슷한 아빠에게 우유 마카롱과 함께 밀크티를 마시게 했다. 낚시 채널을 틀어놓고 아빠 등드름을 짰다. 매일 밤 엄마가 잠들때까지 다리를 두들기고 얼굴을 마사지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할아버지 손잡고 스타벅스에 가서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시는 음악 이야기를 하며 셀카도 많이 찍었다. 지상파 일일 드라마들의 모든 내용을 미리 알고 이들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 막장 드라마들인지 엄마 아빠에게 설명해주었다. 가족 누군가가 들어와도 허전함을 느끼지 못하게 거실에 앉아 쉴새없이 떠들었고, 냉장고를 채우고, 집을 치우고, 맛있는 것 을 사오고.. 온 가족이 매일 함께 앉아 먹는 것 은 불가능 했지만 어느 한 사람도 절대 혼자 밥을 먹게 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제일 많이 먹었다는 뜻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와도, 아빠와도, 엄마와도, 오빠와도, 강아지와도. 누군가에겐 다분히 평범하고 별거 아닌 일 일 수 도 있다. 모든 것 을 다 나열할 수 없지만, 4주동안만큼은 내가 손 발이 되어주고 싶었고, 나의 오지랖으로 하여금 우리집이 텅 빈 공간 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컸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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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때부터 내가 방음벽으로 둘러쌓인 방에서 연습을 시작하면 아무도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잠깐 한국에 나오더라도 내가 무슨 계획이 있는지, 바쁘지 않은지, 혹여나 내 일 에 방해가 되지 않을지 가족 모두가 나에게 맞춰 살아주었다. 음악을 하면서 다방면의 의미로 중요한 것 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음악을 통한 소통과 치유가 즐거워서 시작했는데, 결국 가장 중요한 사람들로부터 소통의 시간을 빼앗었던 것 같다. 워낙 사람들과의 교류를 어려워 하는 나였기에 관계 속 무언의 책임이 오는 것 에 대해 큰 부담을 지고 살았다. 실망을 주기 싫어서, 상처를 주기 싫어서, 아예 관계를 시작하지 않으려 했다. 어린이 같은 마음이다. 그런 부담을 가족 안 에서는 모두 내려놓을 수 있었고, 기댈 수 있었고, 솔직 할 수 있었다. 음악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너무나 당연히 내 목소리를 내며 지냈던 것 은 아닐까, 내 삶이 가족들에게 어려운 시간을 준 것 은 아닐까, 혼자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내가 음악적, 그리고 사회적인 외골수로 살아왔기에 좋은 점도 있었고, 나쁜 점 도 있었다. 이렇게 살아왔던 것 에 큰 후회는 없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독이 된 것 같아 늘 미안함을 갖고 지냈던 것 같다. 나는 음악을 하는 것이 고되다고 생각 해본 적 이 없다. 아직 진짜 고된 수준에 미치지 않아서 일까? 어려움을 넘었을때 펼쳐지는 큰 세상이 다 내 것 만 같아 짜릿하고, 이런 세상을 보여주고 나눠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이것이 나의 사명임을 오래전부터 느껴왔고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진 사명이 내가 앞으로 어떠한 음악가로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정표와도 같다.
늘 나를 기다리며 살아온 가족들을 위해 이번 여름만큼은 내가 가족들에게 맞춰 사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미안함을 넘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을 주고 싶었다. 사랑의 다섯가지 언어 중 에서 나는 “quality time” , “words of affirmation”, 그리고 “acts of service”로 소통했던 것 이다. 아주 작은 것들이었지만.. 예전에는 이렇게 할 수 있는 시간 조차 매우 짧았다. 내 삶의 전부인 음악을 잠시 내려놓아야 했던,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내 마음의 해답을 찾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웃게 해주고 싶었던 나로써는 굉장히 큰 결심이기도 했다. 무식하고 무모했지만 오래 묵혀왔던 내 자신과의 감정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어쩌면 가족들을 위한 방법이었다기보다, 나를 위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결론은, 두가지이다.

첫번째, 이미 우리 가족의 삶은 굳이 내가 없어도 꽤나 괜찮아왔다는 것 이다. 나를 늘 기다려야했던 가족들의 어려운 시간은 이제 오랜 과거가 되어버렸고, 부모님은 이 모든 허망한 경험과 시간 속에서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나를 사랑했고 기도했고 위로했고 치유받았고 그리고 그 안 에서 새로운 삶을 구축하신 것 만 같다. 내가 그렇게도 가족들에게 미안했다면 진작에 이 생활을 그만두고 서울에 살았어야 할 것 이다. 나는 당연하게 이기적이었고, 지금도 이렇게 이기적으로 살고 있다. 뮌헨으로 돌아오기 전 그동안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고 고백하니, 너와 매일을 함께할 수 없지만 멀리서 열심히 살고 있는 것 을 알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정말 감사하다는 그 말을 다시 듣게 되었다. 항상 보고싶었고, 그렇기에 이번 여름이 너무 행복했었고, 그리고 또 다시 보내야하는게 괜찮지는 않지만, 이제와서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리는 것 역시 무리수 이고 어리석다고 하신다. 내가 엄마가 된다면 과연 우리 부모님같이 잘 할 수 있을까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두번째, 내 삶을 더욱 더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언젠가는 우리 부모님과 오빠, 그리고 나의 남편과 아이들이 나에게 기댈 수 있도록 든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늘 과거에 얽매여 살았던 것 같다. 2년 후를 바라보고, 5년 후를 바라보고, 10년 후 를 바라봤을때 가족들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이곳에서 조금 더 치열하게 살아야 겠다는 마음이 다시금 강해진다. 음악을 하는 세계 안 에서만 살아왔었을때 알지 못했던 현실적 부담을 근 몇년간 마주하기 두려웠지만 막상 마주해보니 한가지의 정답만은 없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자리로 올라서는 것 이 이제 내가 할 일 같다.

 

물론 내가 상상했던 그렇다할 명쾌한 해답을 얻은 것 은 아니다. 음악을 통해 얻는 행복을 가족과 함께 누릴 수 없음에 밀려오는 미안함과 아쉬움은 항상 그 자리에 있겠지만, 앞으로의 삶에서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있는 많은 기회의 장은 음악에서만이 아닌 또 다른 경로를 타고 온다는 희망과 확신이 생겼다. 가족에게 희생의 짐을 지게하고 철 없는 식의 사랑만을 주었던 딸이었고 동생이었지만, 그런 나의 보잘 것 없는 사랑 조차도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는 것 에 새삼 감사드린다. 내가 없는 서울의 고요한 집을 매일 머릿속에 그리기보다, 시끌벅적 모두가 함께 하는 날을 하루라도 더 앞당길 수 있도록 기도하며 지금 딛고 있는 이 땅을 단단히 다져야겠다.

 

하나님 단 한분을 사랑하면서 어떠한 다른 사물이나 사람, 삶 그리고 그 안에 깃든 사상을 우상 숭배 하지 않겠다는 기도를 늘 하게 된다. 어느날 나의 하루가 그냥 너무 행복해서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내게 편안함이 아닌 안주하는 계기가 되는 것 은 아닌지 늘 조심스럽다. 내 음악 또한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세상에 연주 되는 것 은 아님을 늘 내 자신에게 말하곤 한다. 그리고 음악이 아닌 음악을 하는 나의 모습만이 사람들에게 부각되지 않기를 늘 바래오며 어쩌면 늘 내 자신을 숨겨야 하는 것 은 아닐까 생각도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늘 내 자신을 드러내는 것 이 두려운 것 같다. 이런저런 줄 지어 내 마음을 찌르는 이 모든 생각들 그 끝은 음악이 나에게 치유의 선물을 가져다 주었음을 늘 잊지 않고 그 치유의 순간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 이 나의 사명임을 다시금 확신이다.

어제 연주를 하고, 선생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다. “드디어, 너의 마음이 음악을 통해서 잘 전달 되었다. 그래서 매우 기쁘다. 하지만 너 자신을 더 믿어야 한다. 자신감을 더 가져라..”

늘 혼자서 바래왔던 나의 간절한 진심이 음악을 통해 전해지길 소망했었는데.. 연주를 하다가 내 자신이 깊은 감정에 휩싸여서 혹여나 음악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길을 막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며 늘 나의 마음가짐을 연습해왔다. 음악을 머리로 이해하고, 손가락을 단련시키고, 나만의 음악으로 가꾼 후 그 이후의 모든 것은 내려놓아야 하는 것 이 진정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음악이 만날 수 있는 그 길을 만들어 주는 것 이라고 생각했다. 아직까지 조심스러운 나의 마음이, 괜히 미안한 마음이, 사람들에게도 들려지나보다.

자신감은 무엇일까? 마음의 확신은 있는데 그것을 사람들에게 선뜻 나서서 보일 수 없는 나의 나약함을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마주하는 또 다른 숙제이다.

나의 나눔

저는 이 곳 에 어떤 분들이, 어떤 경로로 하여금 오시게 되는 지 잘 알 수 없습니다. 정말 누가 오시는지 알 수 없기에 저 역시 가끔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적다가도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크게 들 곤 합니다. 
이 곳 에는 2013년 첫번째 올려진 글 부터 오늘 올린 글을 다 합쳐도 어느 하나 특별한 글 도 없고, 배움이 가득한 글 역시 없습니다. 음악을 공부 하는 사람과는 거리가 먼 글 들도 있을 것 이고, 가끔은 자유하지 못 한 저의 모습이 그대로 묻어난 글을 마주하며 읽는 사람의 마음이 무거워질 수 도 있습니다. 또한 저는 이 곳 에 글을 적을때면 맞춤법을 고민하며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생각하기 보다는 단지 가난한 마음을 적어 내려갈 곳 이 필요한 저에게 대나무 숲 과도 같은 이 공간에서 제 목소리를 듣는 것 을 하고 있습니다. 글을 적는 것 이 곧 제 목소리를 듣는 것 과도 같습니다. 가끔은 녹음기를 통해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 이 매우 어색하고 힘들다고 하지만 마음의 목소리를 듣는 것 역시 여간 힘든게 아닙니다. 이 곳 에 있는 대부분의 글 들은 지극히 이기적인 1인칭 시점으로 쓰여졌지만, 저는 사람들의 눈에 비친 제 모습이 아닌 제 자신과 하나님만이 알고 또 그런 궁극적인 어려움을 글을 통해 더 선명히 마주하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 이 제가 더 나은 마음의 사람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언어가 무엇일까, 사랑에도 종류가 있을까, 나는 어떤 사랑을 하는 사람인가 등등 수 많은 질문을 합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적 부터 따뜻한 환경 안에서 넘치는 사랑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부끄럽지만 그렇게 큰 사랑을 받으면서도 뭐가 그리도 충족치 못하게 느껴졌는지 사랑의 결핍을 느꼈고,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서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말투로 사람들을 웃게 하기도 하고 결핍이 심해진 초등학교 고학년때부터 중학교 때 까지는 거짓말도 많이 해봤습니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 내가 아닌 더 나은 모습으로 꾸며 보여주려다가 엄마한테 참 많이 혼났습니다. 그렇게도 많이 혼났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은 인정을 받고 관심을 받는 것 이 곧 사랑을 받는 것 이라고 굳게 믿기도 했습니다. 음악을 하는 친구들과 함께 생활 하며 과연 내가 그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의심하고 더 나아가 오해하기 시작하면서 흙탕물에 빠져보기도 하고, 어느샌가 모든 것 이 조심스러워 사람에 대한 믿음도 외면 했습니다. 누구라도 그렇듯, 나 자신이 속이는 사람도 되어 보고, 속는 사람도 되어 보면서 어느샌가 제 마음이 길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상처라고 콕 집어 말 할 수 없지만 마음이 많이 아팠던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을 통하여 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깨달았기에 많은 것 을 누리길 바라기 보다는 어떤 곳 에 가던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고 싶었고 그래서 그런지 사랑을 기대하는 것 을 내려놓기 쉬웠습니다. 사랑의 크기가 크다고 해서 감탄 하지 않았고, 크기가 작다고 한들 그 또한 크게 실망하지도 않았습니다. 미국을 잠시 떠나며 기도를 하면서도 무조건 적인 사랑을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며 늘 믿지 못하고 마음을 닫았던 저에게 하나님께서 내가 나누는 사랑에 조건이 뒤따른다면 늘 상처가 함께 온다는것 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스라엘로 떠나면서, 사람이 그리우면서도 모두와 연락을 끊은 이유는 그런 민둥산과 같아진 제 마음에 다시 한번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심어 내기 위해서 였습니다. 허허벌판과도 같은 마음밭을 바라보며 다시 시작하는 것 은 매우 어려웠으나, 막상 다시 마음을 세우면서 내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랑을 베풀 수 있는지 다시 생각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갈 길은 멀었으나 이렇게 배움의 연속을 마주한 오늘이 매우 감사할 뿐 입니다. 

모두가 같은 시기가 있을 것 이라고 생각 합니다. 모두가 마음이 아팠고, 상처를 받았고, 상처를 주었을 것 입니다. 내가 이렇게 나쁜 사람이였나? 내가 이렇게 연약한 사람이였을까? 나는 왜 이럴까? 수 많은 자책과 질문 속 에 서도 사랑을 포기 하지 않길 간절히 바랍니다. 깨진 도자기 같은 마음이 우리의 마음 일 수 도 있습니다. 깨진 도자기 안 에 켜진 촛불은 이곳 저곳 갈라진 틈을 타고 어둠을 밝히곤 합니다. 어두운 순간에도, 깨져버린 마음을 통해서 빛을 나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곳 에 글을 올릴때면 제 마음에 있는 심정 그대로를 적어 내려갑니다. 못난 모습도 곧 나의 모습이기에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어렵게 어렵게 고백하고 마주 하는 과정에서 치유를 얻고, 깨진 제 마음을 통해 빛을 바라보게 됩니다. 저의 부족한 글이 이 곳 에 오시는 모든 분 들에게 우리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해 주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 빠르게 쉼 없이 돌아가는 세상에 발 맞추어 살아야 하기 때문에 갖고 있는 마음까지 돌볼 시간은 턱 없이 모자라겠지만, 각자의 삶에 꼭 그 치유의 시기는 찾아오고 또 그로 하여금 우리 모두 각자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지금 저에게 삶에서 가장 긴 “고백을 통한 치유의 시간”이 찾아 온 것 처럼, 모든 분 들께도 이 축복이 함께 하길 기도합니다.

Chopin Ballade No. 1 – Sunmi Han 
남들보다 조금 더 굽은 길을 택하더라도 그 길에 대한 온전한 믿음과 길 끝에 나를 기다리는 무언가에 대한 확실한 소망이 있다면 묵묵히 걸어 가야 한다는 것 을 다시 한번 느꼈다.
먼 길을 걸어오신 할아버지가 오늘 마지막 병원으로 출근을 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연주를 앞둔 나에게는 오로지 그 생각 뿐 이였다. 이 연주를 통한 내 마음이 한국에 계신 할아버지께 고이 전해지기를.. 
불꽃과 같이 화려하고 기교가 많은 연주로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 은 음악가로서 내가 다른이들보다 뛰어나게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 을 일찍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진심을 글 보다 더 잘 전할 수 있는 것 이 음악이라고 굳게 믿어왔고 지금까지도 나는 마음에 다른 어떠한 변화 없이 음악을 대해왔다. 
오늘 연주를 통해서 다시 한번 느낀 것 은 지금 내가걷는 이 길에 대한 수 많은 의심의 눈초리들에 의기소침한 순간들도 많았고, 어려운 길 택한 것을 바라봐야만 했던 소중한 사람들을 한없이 지치게도 했지만 내가 굳게 믿었던 작은 소망이 결코 헛된 이의 꿈이 아닌 진정으로 값진 배움이자 삶의 행복이라는 것 이다.
남이 뭐라 하든 어떠한 이해나 배려 없이 오직 내 길만을 걷겠다는 막돼먹은 고집이 아닌, 내가 사랑하는 것 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이 모든 것 을 있게 하신 하나님을 위해 앞으로도 성실하게 배워나가고, 서툴지만 진정성 담긴 나만의 음악을 그려나갈 수 있길 기도한다.
쉬지 않는 배움을 통한 발전에는 그 끝이 없다고 늘 말씀하신 할아버지를 생각 하며 음악가로서 나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고, 지금까지 내가 흔들리는 상황에도 있는 힘을 다해 걸을 수 있게 도와주신 그런 할아버지의 소중한 지혜와 기도를 오늘 저녁 나의 연주를 통해서 가장 크게 말하고 싶었다. 화려한 불꽃으로 하늘에 수를 놓고 그 광경을 마냥 바라보는 것 이 아닌, 은은하지만 끊임 없이 타오르는 촛불과 같은 할아버지의 삶을 존경하고, 나의 길 또한 그렇게 오래도록 어둠을 밝히는 한 곳 의 빛으로 남길 바라는 바 이다.

28


숨기고 싶은 것 도 많고, 부끄러운 것 도 많고, 이런 내 자신을 이끌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하나 막연한 생각도 든다. 어느새 스무살을 너머서 삼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지금 이 시간이 오히려 또 다른 성장의 길의 시작이라는 것 도 잘 알기에 최대한 담담해지려 노력한다. 어느 순간은 고독함이 마음을 짓누르지만 늘 조심스러운 것 은, 나의 지난 실수를 기억하며 내 자신을 제어해야 함을 잘 알기 때문에, 혼자 갖는 시간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나를 두렵게 하는 것 인지, 또 무엇이 나를 이렇게도 조심스럽게 하는 것 인지, 주는 것 이 그리도 좋다면 왜 받는 것 은 이리도 힘든 것 인지 .. 이렇게 살다간 많은 인연들을 잃을 수 도 있겠구나 덜컥 두려움이 앞서기도 하지만, 아직도 나는 내 자신이 왜 이리 어리고 또 고르지 못한지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우는 것 말고 딱히 할 수 있는 것 이 없다. 틀을 바꿔보려 했고, 내 자신을 부인해보기도 했지만 이것만큼 어려운 것 도 없었다. 내가 아닌 사람으로 사는 것 이 아니라 지금 내 마음의 지경을 조금씩 더 넓히고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변화를 실천한다면 혹시라도 올 미래의 공허함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끼고 손 끝으로 표현하고 발바닥을 통해 그 울림을 조절하는 것 이 내가 매일 매일 하는 일 이고 또 그 일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으로도 많다. 내 마음이 무언가에 눌려 있고 매 순간이 조심스럽다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 이 어려워지는 것 처럼 내 음악도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지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노래가 될 것 이다. 늘 노력하고 있지만 더 다가가야 한다. 하고 또 다시 하고, 끊이지 않는 시도가 언젠가는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문을 열어 줄 것 이라 믿는다.
힘이 없는 사람에게 닥친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단련을, 단련은 소망을, 그 소망을 잘 아시고 주시는 약속까지. 내 두 팔로 이 모든 것 을 다 품을 수 있을까 순간적으로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이 기나긴 기다림 속 에서 견디고 노력하는 만큼 가슴에 품은 소망을 향해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음을 진심으로 믿는다. 지금 마음에 품고 있는 소망이 나에게는 삶의 이유가 되었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도 하는 그 시작이 되었으니까.. 그 시작으로 하여금 매 순간을 버티는 견고한 마음 또한 배웠으니, 그렇게 하루를 이겨내고, 한달을 꽉 채워 일년이 될때까지 이 마음을 있는 힘껏 꼭 껴안고 살아가야겠다.

아빠의 편지 



한국 집으로 와서 오래도록 묵혀두었던 대학시절 편지들과 사진들을 모아둔 상자를 열었다. 많이 지쳐있던 마음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기억해야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에, 기억을 찾으러 열었을 이다. 수북한 편지들 사이 사이 온갖 다짐과 기도가 빼곡하게 적혀있는 포스트잇 종이들까지 .. 없는게 없다. 오늘 상자 편지들을 읽는다면 아마도 그리웠던  5년이라는 시간동안 무엇을 꿈꾸며 살아왔는지 또렷하게 그려질 같았다. 친구들과, 언니들과, 마음 자아와 주고 받았던 풍성한 편지 더미 투박한 봉투 장이 겹쳐진 채로 떨어졌다.  
편지 봉투 에는 아빠의 글이 적혀 있다. 날짜,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 까지.. 이메일이 아닌 한국에서 미국으로 날아온 편지 이다. 2009 겨울에 받은 편지, 그리고 2012 여름에 받은 편지. 아빠와 나의 시간을 다시 돌아보기 위해 읽게 되었다. 나는 각각 세장에 걸쳐져 빼곡하게 적혀 있는 아빠의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당시 즐거웠던 기억이 많은만큼 아마도 마음이 가장 심란했던 시기였음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었다 .. 사실 당시 만해도 다른 누구보다도 마음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빠의 편지 담긴 뜻을 헤아리지 못하였다

수년이 지난 올해 이렇게 다시 편지들을 꺼내어 읽어 오늘, 나는 아빠의 애뜻함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 넣었다

  아빠는 나에게 웃어주던 사람이 였기에 아빠가 그렇게 웃기만 하는게 어쩌면 나에게 아픔을 나누지 않는 같아서 섭섭할때도 있었다.  할아버지가 떠나 겨울 , 아빠가 보낸 편지 에는  차디찬 묻혀둔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빠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언제나 나름대로 추측만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체량 아빠를 이해하고, 가슴 속에서 그려낸 아빠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줄 있을까 고민해왔던 내게, 편지는 가장 정답과 근접한 마음의 소리가 적혀 있음을 깨달았다. 아빠를 어디서든 자라나는 소나무 와도 같다고 생각했다. 변함없는 자리에서, 한결같이 푸르며, 남들보다 빠르고 기발한 무언가를 하기 보다는 모든 일을 묵묵하고 성실하게 끝까지 해내는 아빠의 뚝심까지도.. 할아버지 농장에 있던 소나무를 떠올리게 했다. 아빠를 통해서 많은 배운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면서도 배우기만 하고 마음 상처가 가려져 있는 같아서 답답하기도 했다. 편지 아빠는, 누구보다도 아련하게 슬픔과 아픔을 나에게 털어 놓으셨고, 나를 사랑했고, 사랑의 표현 조차도 너무나도 상세하게 적혀 있다. 관점으로만 생각하며 아빠에게 바래왔던 모습이 감사하게도 보관 되어있던 편지더미들 그대로 변함 없이 함께 하고 있었다. 소중한 종이에 적어 내려간 아빠의 진솔한 고백과 사랑이 나에게는 지금 물밀듯 넘쳐흐르고 있다. 아빠의 에서 다시 한번 치유를 경험 한다. 아빠를 닮은 투박한 글씨체에 정직한 한자, 컴퓨터가 아닌 원고지 뒷장에 정성스레 적혀 있는 아빠의 사랑, 이메일이 아닌 우편봉투에 영문자로 적힌 주소 까지.. 편지들을 다시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아빠에게 감사했다.

  잊을만 하다가도,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누군가를 더욱 깊이 알아가는 시간. 가장 가까운 사람을 옆에 두고도 쉽게 잊고 지냈던 나의 불찰.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편지 장을 통해 다시 알아가는 아빠의 마음. 아빠가 나에게 털어놓았던 아픔을 내가 지금껏 잊고 살았다는게 새삼 부끄러워진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아빠에게 미안하다. 나는 아빠가 나에게 주었던 소중한 편지에 담긴 사랑을 잊지 않을 이다. 내가 그동안 너무 아빠를 못살게 아닌지 생각도 든다. “슬프면 언제든지 내게 이야기 . 나는 아빠 딸이잖아. 아빠 사랑해. 아빠 고마워. 아빠 미안해. 아빠가 너무 자랑스러워. 아빠 너무 힘들어. 아빠 있을까?” 모든 말들을 너무 지나치게 이야기 해서 어쩌면 아빠의 말을 듣지 못했던게 아닐까.. 밖에서는 그렇게 표현력이 좋지 않은 이지만, 가족들에게는 정말 사랑표현을 많이 했고, 나는 사랑을 표현하는 에서 치유를 느꼈다. 나만의 치유와 행복을 위해서 나누었던 지나친 행동으로 인해 어쩌면 아빠가 같은 행복을 경험할 있는 기회를 뺏어왔던 같기도 하다

 굳이 누군가의 아픔을 들춰내려 하는 아니지만, 내가 사랑하는 이의 아픔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서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은 의지가 너무 강하다 보니, 그런 모습이 오히려 아빠에게는 부담이 되었을 모를 꺼라는 생각도 든다. “ 내놔라 내놔라하는 식의 아픔을 묻는 나의 방식이 잘못 되었음을 다시 한번 반성하고, 앞으로는 아빠가 편지 처럼 담담하게 이야기를 나눌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줘야겠다

세상 모든 부모님들이 갖고 계신 무거운 마음을 우리가 알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생각 있었고, 어른들이 아플때는 우리와 다를게 없을텐데 내지 않고 혼자 앓는 모습을 바라보며 모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일까 하는 걱정도 있다. 눈치를 보면서도 모른척 하는 옳은 이겠지 생각도 해봤지만 어떠한 동기와 길을 통해서라도 슬프고 고독한 마음으로 다가갈 있는 기회는 열려있었고 결국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했던 우리의 잘못이다. 내가 너무 무지했고, 너무 무서웠어서 마음의 짐을 안겨드렸던 아닌지 .. 오늘도 다시 한번 고민하고 생각해본다.

아침을 맞는 방법

새로운 곳 정착하기. 뮌헨.
지금쯤이면 이스라엘은 아직도 더운 빛이 내리쬐는 한 여름 날 처럼 뜨거울텐데, 오늘 이 곳 에는 눈이 내렸다. 한겨울이 되어버린 요즘, 매일 아침 집을 나설때면 너무 깜깜하다보니 마치 한 밤 중에 학교 가는 것 만 같다. 이 시간에 도대체 누가 걸어나 다닐까 싶다가도 등교하는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힘겹게 지하철을 탄다. 다시금 시간을 확인하면 그리 이르지도 않은 시간.. 7시. 깜깜한 아침. 내게 유난히도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이른 아침이다.  이 시간을 특히나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스라엘에서의 매일 아침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고요하고, 아직은 어둠의 공기가 그대로 남아있으면서도, 새로운 해가 떠오르는 시간.. 이스라엘은 동떨어진 외로운 땅 임 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던 곳 이지만, 그만큼 나에게는 그곳의 아침 햇살은 큰 힘이 되곤 했다. 그 어느 곳 보다 아침 햇살이 밝았고, 단 하루도 어두운 날 이 없었다. 5시에 일어나도 차가운 공기 속 해는 저 멀리서 어렴풋이 선을 그리고 있었고, 아침 7시만 되어도 해가 떠 있다. 그래서 아무리 일찍 일어나도 일찍 일어난 것 같지 않았고, 늘 밝은 아침을 맞을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무거울때도 밝은 해를 보면 그리 힘겹게 애쓰지 않아도 마음에 드리워진 어둠을 쉽게 걷어내었다. 늘 변함없이 나를 기다려주는 아침이 고마웠다. 가끔은 이 아침을 즐기고 싶어서 쓸데없이 일찍 일어나서 촛불 켜고 책상에 앉아 있기도 했다.
내가 밤새 울다가도 아침 해를 보면 그 눈물은 다 닦아 낼 수 있는 것 처럼 누군가가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 준 다는 것 은 참으로 감사한 일 인 것 같다. 마음이 불안하다가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뒤를 돌아보았을때, 하늘은 올려다 보았을때, 가슴에 손을 얹었을때, 눈을 감고 생각을 떠올릴때, 마음이 안정이 된다. 어려운 하루하루이지만, 그만큼 변함없는 무언가는 늘 존재함을 믿기 때문에 나 역시 마음을 굳건히 지키고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뮌헨에서의 아침을 맞는 방법은 이스라엘에서와 많이 다른 듯 하지만, 어둠 속 에서도 늘 하루는 시작된다는 것 을 마음에 새긴다. 해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원래의 자리로 찾아오는 것 은 변함이 없기에, 나는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 해가 짧으면 짧은대로, 길면 긴대로, 그 자리의 주인은 바뀌지 않기에 나 역시 나의 자리로 항상 돌아가는 법을 배운다. 헤매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할 때 에도 돌아가는 법을 알기에 그 발길만 옳은 곳 으로 돌리면 된다. 아니, 헤맬 필요가 없다.
새로운 곳 에서 또 다른 겨울 아침을 맞는 방법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감사하다. 내가 어느 곳 에 있던, 고요한 아침시간을 늘 소중히 여기며, 해를 맞는 나의 마음 또한 더욱 커지길 바란다.

소통이 힘들기때문에. 내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만 같은. 나 혼자 동 떨어진 곳 에 서 우두커니 서 있는 것 은 아닌지 .. 나의 선택이 사람들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것 은 아닌지. 혹시라도 허전한 부모님의 마음에 쓰린 바람을 불어넣는 것 은 아닌지 ..매일이 감사한데. 하루에도 몇번 씩 찾아오는 흔들리는 마음은 내가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런 것 일까. 기댈 곳 없는 길 한가운데 홀로 서 바람을 맞는 것 이 조금 버겁게도 느껴진다.단 하루도 잊지 않고 돌아가고 싶은 그 곳을 마음에 그리며 기도하는데 돌아가야 하는 그 길이 너무나도 길게만 느껴진다. 그 날이 언제쯤 올 수 있을까. 간절히 바라고 노력하면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가는 그 길에 소중한 만남의 축복을 누릴 수 있을까. 조금 돌아가더라도 길을 잃지 않고 무사히 도착할 수 있길 바랄 뿐 이다.

오늘 밤 도 기도한다. 지금 주어지는 많은 경험들을 통하여 강인한 마음으로 버텨내는 법을 배우고 딱딱한 일상 속 에서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온유한 마음을 따라 걸을 수 있길. 그리고.. 눈에 비치는 외적인 아름다움이 비록 부족할지라도 마음만큼은 늘 청렴하게 지킬 수 있길. 가끔은 누군가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이 부러울때도 있다. 그동안 내가 늘 그렇게도 좋은 열매를 맺고 싶어했던 마음의 밭은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턱 없이 부족한 것 이 아닐까 하는 나약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굳게 믿는다. 그 분 과 가장 가까운 곳 에서 낮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선한 삶을 걷기 위한 첫 걸음이라는 것을. 매일을 실수하며 사는 턱 없이 모자란 딸이고, 동생이고, 언니이고, 친구이고, 또 음악가 이지만 조금이라도 더 낮은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고, 음악을 통해 치유하고 또 치유 받으며, 무엇보다 내가 감사하며 사는 것 이 내가 걷는 이 길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것 을.

아빠

가끔씩 알 수 없는 아빠의 어려운 마음. 늘 웃는 모습만 보여주려하기에 오히려 아빠와 나 사이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나봅니다. 
내가 엄마에게 전화해서 울때, 엄마에게 힘들다고 이야기 할때, 엄마에게 다쳤다고 이야기를 할때. 아빠에게는 늘 잘하고 있다고, 힘들지 않다고, 건강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아빠가 싫어서도 아니고, 아빠가 불편한 것 도 아닙니다. 단지 나는 아빠의 마음의 무게가 더 이상 커지는 것 이 싫어서 인가봅니다. 엄마와 나누는 사랑. 아빠와 나누는 사랑. 내가 받고 있는 두가지의 다른 사랑 방법을 통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부모가 되었을때 우리 아이에게는 어떤 사람이 되어줘야 하나. 늘 생각하고 기대하고 또 머릿속에 틈틈히 그리곤 합니다. 아빠는 나에게 절대 힘든 얼굴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혹여나 내가 잠깐이라도 그 얼굴에 그려진 그늘을 보았을때, 나 역시 절대 당황한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저 생각없이 웃는 척 하며 아빠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우스운 제스처와 말투로 아빠를 웃게하려 합니다. 가끔 나를 아는 주위 사람들이 내가 아빠와 통화하는 것 을 보면 내 나이 답지 않게 왜이렇게 어린사람의 말투로 아빠와 대화를 하냐고 묻기도 하는데.. 그것이 내가 아빠에게 지금 줄 수 있는 유일한 힘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끔 아빠에게 어떤 것 이 힘이 될 수 있을까 깊이 고민을 합니다. 내가 성공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빠에게 실질적인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그 어느것 도 갖고 있지 않기 떄문에. 나 혼자 독립을 하기에는 내가 능력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그리고 이 삶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길 애가 타게 바라면서도 이 길의 끝에 무엇이 나를 기다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아빠에게 줄 수 있는것 이 하나도 없습니다. 웃음 밖에. 

가끔은 울고 싶기도 하고, 아빠의 눈물도 닦아주고 싶은데 왠지 모르게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된 것 이 괜히 나 때문인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합니다. 엄마에게는, 오빠에게는 가끔씩 그 어려운 마음을 투박하게 표현 하는것 을 알지만 나에게는 단 한번도 그러신 적 이 없습니다. 어색하게 숨기려하는 것 을 보면서도 나는 늘 손을 내밀기 보다 모르는 척 웃어넘기고 아빠가 “웃을 수 있을 만한” 이야기를 합니다. 아마 아빠 눈에는 내가 어린 아이같이 보일 수 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철 없이 웃고 늘 “아빠 힘내자” 하며 “화이팅!”을 외치는 것 을 보고 아빠도 마음의 근심을 가리고 항상 웃는 모습만 보여주려 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 내가 아빠를 이해하기에 너무 어린것일까 하는 고민도 해봅니다. 

내가 본 아빠의 마지막 눈물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때 였습니다. 나에게는 가장 큰 충격이자 큰 슬픔이였습니다. 또한 아빠가 정말 사랑했던 할아버지를 떠나보내셨을때 그 마지막 밤을 지키는 아빠의 사랑을 생각하며 나 역시 많이도 울었습니다. 두분이 계시지 않는 세상은 아빠에게는 어두운 밤 산 속 에서 맞닥뜨린 새로운 길을 걷는 것 과도 같았을꺼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도 두분의 빈자리가 아직까지도 느껴지는데 아빠에게는 더 크고 견디기 어려웠을 허전함이 다가왔을 겁니다. 모든 부담과 어려움과 외로움까지 어깨에 지고 오늘까지 걸어왔을 우리 아빠..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아빠는 내가 본 이 세상 모든 사람들 중 가장 할아버지, 할머니를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내가 본 가장 착한 아들이였음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 선한 마음을 우리 오빠가 그대로 물려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치훈이 오빠를 바라볼때마다 아빠의 많은 점을 닮았는데, 내가 우리 오빠를 사랑하는 많은 이유중 한가지가 바로 아빠과 같이 선한 베품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빠가 힘든시간을 견디면서도 주위의 많은 분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다는 것을 가끔씩 듣게되는 전화 통화 너머로도 짐작할 수 있었고 그래서 나는 우리 아빠를 너무나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아빠는 특히나 어린 아이들을 정말 많이 사랑하십니다. 아이들과 항상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시고, 사촌동생들이 어렸을때 아이들에게 늘 존댓말을 쓰시는 모습을 보고 자란 나에게는 아빠는 참 멋진 사람입니다. 깨끗하고 청아한 아이들의 눈과 마음이 아빠에게로 향하고 기댈 수 있다는 것 은 아빠의 마음이 그만큼 선하다는 것 을 증명합니다. 식당을 가거나 건널목을 건널 때에도 눈이 마주치는 아이들에게 한명도 빠짐없이 늘 웃어주시고 인사를 하십니다. 그런 아빠의 모습은 인위적인 것 이 아니라 마음 속 에서 나오는 아빠만의 사랑이라는 것 을 나는 단번에 알아챌 수 있습니다.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도, 늘 성공하고 싶은 이유중 한가지는, 이런 아빠에게 어떤 도움이라도 드리고 싶기때문입니다. 멀리 살아서, 하루 한끼 조차 함께 하기 힘들고, 가끔은 대화도 많이 나눌 수 없어서 너무 미안합니다. 내가 피아노를 하지 않았더라면. 평범하게 공부하며 한국에서 살았다면. 아빠가 좋아하는 해산물도 많이 먹으러 다니고, 아빠가 좋아하는 LP도 함께 사러 다니고, 주말에 가시는 산도 따라다닐텐데.. 카카오톡으로 전화를 하지 않아도 늘 얼굴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아빠가 나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 질텐데.. 같은시간에 잠이 들 수 있다면, 함께 일어나고,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면 소망하는 것 그 이상의 것 들을 함께 할 수 있을텐데.. 내가 한국에 있지 못한게 아빠에게 가장 미안합니다. 아빠에게도, 엄마에게도, 오빠에게도, 내가 해줄 수 있는게 너무 없어서 늘 미안합니다. 

내가 엄마에게 기대어 치유를 얻을 수 있는 것 처럼, 내가 오빠에게 편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것 처럼, 아빠에게도 조금 더 다가가고 싶습니다. 내가 먼저 고민을 털어놓으면 아빠도 조금 더 나에게 마음을 열고 어려움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늘 좋은 아빠가 되지 않아도 좋으니, 나를 보았을때 아빠가 힘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빠가 기댈 수 있는 딸이 되고 싶은 것이 간절한 소원입니다. 챙겨주고 싶은 딸이 아닌, 기대고 의지 할 수 있는 딸.. 늘 웃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도 되고, 늘 걱정말라고 이야기 하지 않아도, 아빠가 나에게 기대어 조금이라도 쉼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빠와 나의 사랑이 절대 틀리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빠에게 조금 더 해줄 수 있는게 없을까하는 나의 고민은 오늘도 깊어갑니다. 

아빠가 오늘도 편안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빠의 마음을 채워주는 책과 음악을 통해 근심과 걱정을 잠시라도 내려놓길 바랍니다. 혹시라도 마음 속 에 움푹 패인 상처가 있다면 그 상처가 오늘 밤 다시 새살로 채워지길 기도합니다. 나의 기도와 사랑이 오늘 밤 아빠의 침대까지 전해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너무 사랑해서 미안해 

“엄마가 너를 너무 사랑해서 미안해”
그 어느때보다 행복한 대화의 끝자락 내가 지금껏 엄마에게 들었던 수많은 사랑의 말 중에 가장 가슴 아팠던 오늘의 사랑 고백. 소리 없는 물의 걸음과 같이 잔잔하게 흘러나왔던 그 말이 좀처럼 나의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나의 어떠한 것이 엄마에게 어려움을 주고 또 주고도 모자라서 결국 가장 유일한 사랑까지도 어렵게 한건지 생각해본다. 어딘가에 흩어져 있는 나의 삶 속 제대로 된 형태 없이 깨진 유리조각들이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상처를 주고 있진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너무 많이 사랑해서. 그 사랑이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에 마음을 내려놓으려고 늘 기도한다는 엄마의 오늘 고백은 나 역시 그동안 많이도 무거웠을 엄마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결코 쉽게 할 수 없는 말이였을텐데.. 이 짧은 한마디로 하여금 엄마의 사랑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한발짝 더 나아가 조금 더 감사하게 되었다. 짧은 말 안에 함축된 그 깊이를 헤아리기에는 나의 지혜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다시 한번 느끼는 것 은 나는 엄마의 기도와 사랑을 늘 잊지 않아야한다.

흔히들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 속 부모님의 기대에 못미치는 삶을 사는 것 에 대한 어려움을 나누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비슷한 종류의 대화가 늘어가고 가끔은 버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깨달았다. 우리가 그때 과연 그 사랑을 다 알고 어려움을 토로했던 것 일까. 우리만의 어려움이 다 가 아니라는 것 을 과연 인지하고 있었을까. 부모님에게도 어쩌면 점점 어려워지는것이 “사랑하는 방법”이 아닐까. 내가 부모님께 해드리지 못하는 것 에 대한 죄책감의 무게 그 이상으로 부모님 역시 나에게 늘 미안해한다는 것이다.  

우리 엄마는 나에게 한쪽 허파와 같은 존재이다. 함께 숨쉬고 함께 나누고.. 어딜가든 잊지 않고 서로의 숨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딪히기도 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때가 있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기 보다는 미안함과 안타까움만 커져갔다. 절대 서로 미워할 수 없고 늘 함께하는 것 이 당연했기에 서로의 변화를 예민하게 알아채기도 하지만 그만큼 나도 모르게 당연하게 느끼던 엄마의 사랑 속 여기저기 움푹 파인 상처를 눈여겨 보지 못했다. 차마 하지 못하는 말을 억누르며 삼켜야 하는 엄마의 마음을 미처 알지 못하고 나만의 어려움을 엄마에게 나누며 늘 기대기만 한 것 이 엄마에게 너무나도 미안해진다. 

엄마에게 많은 것 을 빼앗고도 사랑하는 것 까지 미안한 마음이 들게 했던 내 실수를 알게 된 이 순간, 나는 엄마에게 또 다시 미안하다. 내가 그 사랑의 거울이 되어 보여줄 수 있고 안아줄 수 있었다면 엄마도 그 사랑이 이뤄내는 치유를 함께 누렸을텐데 거울은 커녕 창문을 넘어 들어오는 빛을 물끄러미 바라보듯 그 사랑을 당연시 받았던 내가 너무 창피하고 부끄럽다. 나의 작은 거울에 비춰진 엄마의 사랑을 당신이 보았더라면 엄마 역시 조금 더 행복할텐데 그 거울이 되어주지 못한게 미안할뿐이다.

엄마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한다. 하지만 엄마의 그 사랑을 그저 큰 바다와 같이 광활하고 하늘을 덮은 거대한 빛과 같이 느끼고 있던 내 자신은 아직도 어린 아이보다도 못한 존재이다. 사랑의 크기와 깊이를 당연히 여기었던 것이다. 부족한 거울일지라도 엄마에게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것 을 절대 미안해하지 말라고. 그 사랑 없었으면 지금 나는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없을꺼라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가고 그 사랑을 내 삶에서 조금씩이라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늘 기도하는데 내가 기도하는 그 사랑의 방법을 엄마를 통해 늘 보여주신다고. 

엄마, 내가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미안해. 미안한 만큼 정말 사랑해. 또 사랑하는 만큼 정말 감사해. 정말 정말 감사해. 이렇게 사랑할 수 있는 엄마가 있어서. 아픈 것도, 기쁜 것도, 미안한 것 도, 다 함께 할 수 있는 엄마가 있어서 너무 감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