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진 시간 2020

 

COVID-19 가 온 세상을 멈추었고,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고, 소망을 짖눌렀고, 행복을 막았다. 지난 한 달, 나 역시 멈춰버린 봄을 맞이하는 것 은 마치 한 밤 중 낯선 이 의 검은 그림자가 나를 덮는 것 만 같은 느낌이었다. 3월에 시작된 독일의 코로나 봉쇄로 인해 독일 특유의 을씨년스러운 하늘에 쉴새 없이 부는 겨울바람과 같은 바이러스의 공포까지 더해져 방 안으로 숨어 들어가 모든 것 을 멈추기 급급했기에 제대로 된 정신 조차 차리기 어려웠다. 한달여가 지난 4월의 아홉번째날을 맞이한 뮌헨에는 그 어느때보다 아름다운 봄햇살이 내렸고, 아직 녹지 않은 코로나의 추위에 맞서 한층 따스하고 밝은 하늘로 우리를 감싸 안는다.

 

모두가 멈출 수 밖에 없는 내 이웃의 죽음의 공포 앞에서, 나의 3월은 욕심과 교만을 내려놓는 시간이었다. 모두가 같겠지만, 해내어야만 하는 일들의 연속, 그리고 그 부담에 그득히 쌓여가는 사소한 걱정과 예민함이 불꽃처럼 튀던 나에게 급정거된 시간 속 에서 피어난 공허함은 끝 없는 생각을 풀어내게 하였다. 학교가 멈추고, 어렵게 얻은 연주 기회 마저 없어지고, 언제까지 미뤄질지 모르는 인터뷰와 오디션 앞 기약없는 기다림을 견디는 것 이 쉽지 않은 일 이었지만, 한때 마음속에서 풀지 못해 담아두었던 현실적인 걱정을 차분히 정리하며 그에 가까운 답을 찾을 준비를 하였다.. 사실, 바쁜 와중 매년 봄마다 단 한번도 빠짐 없이 찾아오던 혼란과 슬픔은 나의 정상적인 삶의 패턴을 송두리째 흔들곤 하였다. 밤낮 가림 없이 알 수 없는 두려움이 극을 달해 눈물까지 메마르는 시간이 오지만, 이번 해 만큼은 그 혼란이 조금 덜 한 것 만 같다. 나라는 사람이 마주해야 했던 자만 섞인 두려움 앞에서 셀 수 없는 허망한 죽음을 보게 하시고 누군가의 눈물을 보게 하심으로 철 없던 나의 반항심도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 그리웠던 친구 하나와 함께 대화를 하며 마음에 행복을 심었고, 이렇게 어린 나의 마음에도 혼란의 파도 속에서 참고 이겨내는 용기가 생긴 것 같다. 한 해 도 빠짐 없이 찾아오던 어두운 이 시간을 맞이하고 이겨내는 것 은 말처럼 쉽지 않음을 느낀다. 상처의 아픔은 상대적인 것 처럼, 나는 나의 시간이 가장 힘들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내 삶에 가르쳐준 또 한가지는 나도 모르게 반복해서 되내이는 인내와 지혜가 지금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과 죽음 가운데 간절한 기도가 될 수 도 있다는 것 이다. 나의 걱정이 얼마나 가벼운 것 인지, 나의 혼란이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사치인지 되내이게 되었다. 평소와 달리 근심을 마주하려는 내 모습이 영 낯설게 느껴졌던 2주의 시간이 지나자 나는 어느새 머릿 속 계획을 하나하나씩 실행에 옮겼다.. 2020년 가을, 내가 어느 도시에 어느 나라에 있게 될지 아직 아는 것 은 없지만, 그 곳 이 어느 곳 이던 간 에 새로운 시작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용기를 내어본다. “언젠간 마주할 시간”을 바라보며 두려움만 가득했던 내게도 이런 새로운 출발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짐에 감사하다.  몸과 마음에 익숙해진 바쁜 날들이 여느때처럼 7월까지 이어졌다면 다음 출발지를 찾아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 만 같다. 두려운 봄의 시간이 조금씩 조금씩 나를 스쳐간다. 지난 몇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잘 모르겠고 앞으로 어떤 변화가 생길지 알 수 없지만, 흘러가는 시간 속 에 내 마음을 꼭 붙들고 지켜본다.

 

나의 삶 속 여러곳을 짚어보고 탐구하며 나름의 계획을 실천에 옮기면서도 끊임 없이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아직도 나를 가슴 아리게 하는 것은 큰 변화 없이 같은 곳 에 자리한다. 특히나 금전적 수입과 생계수단이 끊긴 사람들에게 드리워진 그늘은 차마 뭐라 표현 할 수 없다. 또한, 누군가에게는 간절하게 바래왔을 “인생의 기회” 가 굳게 닫혀진 문 너머로 허망하게 떠나버리기도 했다. 손 쓸 새 없이 퍼지는 바이러스로 인해 생겨난 무작위적인 죽음의 굴레와 멈춰진 세상 속 생계가 끊겨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이고 사는 삶 그 사이를 잇는 선에서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에 무력감을 느낀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내려놓은 채 안간힘을 쓰며 살려내려는 많은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 여러곳에는 아직도 아픔의 흔적이 가득하다. 상처가 깊은 그들을 생각하며 그저 꼭 잡은 두손에 기도를 담아낸다. 죽음 앞에서 아무 손 쓸 수 없는 것 도 고통이고 배와 가슴 속이 곯아 봄 햇살에 피워나오는 아름다운 새생명 앞에도 그저 슬픔만이 그득한 사람들의 삶 역시 고통이다. 그저 이 모든 것 이 빨리 끝나길..  우리네 세상이 마주하고 있는 이 변화들이 주님이 허락하신 필연적 고통과 연단의 시간이라면 아픈 이들을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치유하시고 세상 곳곳에 고인 눈물을 하루 빨리 거두어주시길 기도한다.

배움 그리고 깨달음

도움 받을 용기
미움 받을 용기

아직도 배워야 할 것 이 한 가득이다.

피해 가지 않게 살기 위해 나만의 방식을 고집 했던 크고 작은 것 들이 쌓여 내 두 어깨에 큰 무게를 싣는다. 버틸 수 없을 것 만 같다. 남들이 말하는 “땅에 한번 시원하게 떨어져야 할 때” 가 온 것 일까.

사랑하는 것을 향한 욕망은 끝이 없기에,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이겨내어야 할 싸움이 많았다. 많은 것 들을 감내해야 했던 흔들림의 시간 속 나는 고독이라는 길을 택하였고, 여러모로 몸과 말의 접촉을 아끼게 되었다. 다들 평범히, 죽도록 열심히, 서로 돕고 기대어 가며 살았을텐데 나는 왜 이 길을 택하였나 내 자신에게 다그쳐도 너무 늦은 듯 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내 마음에는 하고픈 말이 가득 쌓였고, 지금은 이 모든 것 을 걷어내기에 바들바들 떨리는 내 두 팔은 볼품없이 메말라버렸다. 쓸쓸했고 가슴 아팠고 무엇보다 무기력 한 내 자신을 바라보는 것 이 무서웠다. 머릿속을 휘젓는 어슴푸레한 빛에 며칠 밤을 설쳤다.

마음이 너무너무 답답하였던 것 인지, 교수님을 찾았다. 그날 피아노는 열리지 않았고, 나는 코트에 손 구겨 넣은 상태 그대로 멍하니 오랜 시간을 이야기 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억지로 빗어내리듯 있는 힘 다해 속에 걸려 있는 모든 것 토해내어도 내 자신을 향한 한심한 눈빛만 그득히 남는다. 교수님은 이야기한다. “너의 머리가 어느 순간이던 크게 폭팔 할 것 이라는 것 을 나는 이번 해 내내 알고 있었어. 네 삶 속 에 있는 무언가에서 네 자신을 제대로 놓아본 적 이 없다는 것 을 늘 느꼈거든. 너무 늦은 것 은 아니야. 지금 겪어야 할 고민이고 고통이야. 사실 너가 지금 가려는 그 길은 나도 도와주기 힘들 뿐 더러, 너의 고집과 삶 중간에 적정한 타협이 생기지 않는 한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어. 부담을 가득 안고 살아가는 너는 누군가의 도움은 꼭 받아야해. 나 하나만으로는 너를 돕기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해. 특히 너는.. 이곳에서 네 꿈을 이루기 위해 혼자서 일어나기 절대적으로 어려울꺼야. 나는 수많은 한국 학생을 만나왔고, 그 많은 친구들이 네 나이가 되면 어려운 시간을 보내었어. 내가 보기엔 너는 그 친구들에 비해 너만의 길로 나아가려고 하는 고집이 조금 더 센 것 같아. 내가 그 친구들에게 그 당시 큰 도움을 주지 못 하고 지금 네게도 이런 현실 적인 이야기 밖에 해줄 수 없어 마음이 어렵지만,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는 현실이야. 선미, 앞으로 더 심해지겠지만 어딜 가던 음악 그 자체보다 더 많은 것 을 차지하는 것 은 끝 없이 불어나는 음악인의 숫자야. 날개달린 인재는 점점 늘어나고 나누어 설 수 있는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어쩌면 음악 그 이상의 것 이 필요하기도 하지.. 음악을 꾸준히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네가 그렇게도 사랑하고 오래도록 하고픈 음악이 네 삶 속 얼마만큼의 자리를 차지하는지, 음악과 네 개인생활과 가족 가운데 얼마만큼의 책임이 요해지고 또 놓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며 이 모든 것 을 네가 확실히 알고 선택 할 자신이 있는지 ..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으로 너의 행복과 같은 선에 서 있는지 현실적으로 간단하게 생각해봐. 지금처럼 생각이 멈추지 않을때면 언젠가는 이 시간에도 끝이 찾아온다는 것 을 잊지마. 결단의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복잡하겠지만 그 결정이 빠르면 빠를수록.. 마음은 한결 빠르게 가벼워지겠지? 나는 무엇보다 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생각에 빠져 있다가도 어렵지 않게 나오는 법을 터득했으면 좋겠어. 꼭. 그리고 그 것 이 네 자유로 이어지는 큰 마음의 결정의 길에 한 시작이기를 바라고.”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저녁이 되어 대화는 마무리 되었다. 제대로 된 성탄절, 신년 인사도 건네지 못 한 채 구구절절 늘어놓았던 내 고민을 들어주신 교수님께 감사하다. 답답한 나머지 음악세계의 명암을 경험한 내 위의 누군가에게 다 털어놓고 싶었던 것 같다. 내 앞에 있는 많은 문을 열어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열리지 않는 하나의 문 앞에서 그 문고리가 산산조각 나도록 잡고 흔들어 대었던 내 자신을 바라보게 된 시간이었다. 굳게 잠긴 철문 앞에 고개를 박고 선 채 수도 없이 원망하며 두드렸고, 철문 옆 열려있던 또 다른 문 작은 틈새로 흘러 나오던 새삼 다른 바람의 손짓에는 절대 답하지 않았다. 그 문 뒤에 누군가가 나를 기다렸는지, 어떤 세상이 있었는지 열어보지 않는채로,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애쓰며 살아왔던 나에게 뭐라 말을 건네야 할 지 모르겠다. 바보라고 일컫는 것 외에는 .. 시야를 넓히고 현실을 바라보고 열려있는 문으로 다가가는 것 이 늦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해봐야할까? 그동안 잡고 서 있느라 부서진 문고리를 향한 괜한 배신은 아니겠지? 지금까지 한 곳만 바라오며 지내왔던 나의 고집을 내려놓는 오늘이 너무 늦은 것 은 아니겠지? 적어도 한 사람은 지금 나의 오늘이 늦은 후회와 반성의 시간만이 아닌 피할 수 없는 현실적 기로에 서서 갖는 성장 속 귀한 시간이라고 했으니까..

손 내민 사람 민망하게 거절했던 나의 지난날이, 꿈 속에서 아름다운 헤엄을 치며 혼자만의 고독이 유일무이한 연단의 길이라 믿었던 지난 날 이, 쪼잔하고 조심스러웠던 20대가, 싫은 소리 하지 못해 끙끙 대었던 못난 나의 모습이, 그저 모든 것 내주고도 바보같이 웃었던 시간들이 빠르게 뇌리를 스친다. 미움을 받는 것 이 두려워 하지 못 했던 많은 것 들에 작은 후회를 느끼며 존귀한 도움의 손길 조차 잡는 방법을 몰라 어려움을 느낄때, 사람들은 나보다 더 큰 마음으로 살아가고 또 용서 하고 사랑하고 포용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내가 이 모든 것 을 뒤로 하고 사랑하는 음악만을 했다고 믿었던 옹골진 나의 어제는 지금 나에게 큰 고통으로 다가온다.

요즘들어 이 생각을 자주 한다. 실력이 부족한 나에게도 사랑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 일까? 무언가를 사랑하고 품어낼 수 있는지의 자격의 조건을 온전한 나의 기준으로 따져 만들어내고 살았던 내가 정작 생각 하지 못했던 현실적 기준.. 그 선에 막상 다가 서기엔 한 없이 부족한 오늘날의 초라한 모습을 보게 하심이 하나님의 목적이셨을까. 나의 하늘색 꿈은 그저 꿈 속에 고이 머물어야 했던 것 일까.. 회색 빛 현실에서 어우러질 수 없을 왜 그때는 미처 알지 못하였을까.

더불어 사는 세상의 의미를 오래 전 잊고 살았던 고집스럽고 치졸했던 내게 음악인으로던, 여자로던, 사람으로던 차가운 콘크리트 땅에 혼자 설 생각 추호도 말고 여러 이웃 굽이굽이 함께 사는 흙밭에 버려진 씨앗이 되어서라도 빗물과 햇빛을 마주하고, 지나가는 개미에게 땅이 되어주고, 누구든지 기대고 엮이고 함께 뿌리내려 손잡고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는 것 만 같다. 그 인연이 지금 보이던 보이지 않던, 함께 이루어 내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여전히 그려내기 어려운 나 이지만, 결코 나 혼자 이루어 낼 수 있는 세상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 은 이제 잘 알게 되었다..

늘 그래왔듯 2020년도 존버의 삶을 살 계획이다. 나만의 눈으로 고집하고 그려내는 존버가 아닌, 함께 이뤄내는 존버의 삶에 가까이 걸어가고 싶다. 아직 그 방법은 잘 모르지만 부딪혀 봐야지.. 이번 한 해는 내 자신과 한참 지난 관계를 용서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작게나마 배웠다면 새로운 해에는 미움 받는 용기와 도움을 청하는 용기를 위해 늘 기도 하고 두려움 없이 주위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다. 몸도 마음도 그 어느 곳에 쉽게 정착할 수 없겠지만 이렇게 매순간 존나 버티면서 내 마음에 품은 쓸데없는 욕심을 하나 하나씩 내려놓는 법을 배우고 나를 낮추고 다시 오르다보면 조금 더 큰 사람으로, 그리고 한결 자유로운 사람으로 성장 해 있지 않을까 심심한 기대를 해본다.



“힘”

어느순간에서부터인가 나를 보호하는 강한 힘을 느낀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강인한 무언가. 힘든 일이 있어도 나도 모르게 버틸 있는 이유를 생각 하다보면 하늘에게 감사하곤 한다. 살면서 하나님을 크게 원망해 없도 없고, 그렇다고 감사함이 흘러 넘쳐 세상을 그저 색채 가득한 아름다움이라고 내두른 역시 없다. 한때 나를 채우던 오만함을 고치려 들던 시간을 통해 많은 배우고 회개했다. 물론 회개는 지금도 끝이 없지만.. “그리 나쁘지 않던세상은 더욱 어두운 색으로, 분별할 없는 불결한 으로 변해가지만, 안에서 나도 모르게 계속 붙들게 되는 소망은 요새 들어 나를 매일 아침 일으킨다. 삶의 겨울, 그리고 해의 겨울을 맞이할때면 어두움을 버티는 두렵고 버거웠던 있었지만, 모든 통치하는 무언가에 이끌려 거뜬하게 시작할 있는 오늘의 그저 고마울뿐이다

방랑자처럼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늘 좋은 기억만 가슴에 품고 떠나려고 노력했다. 떠돌이 생활을 하여도 돌아갈 품이 있기에, 그 어느 곳 을 가던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며 마음 속 쉼터에 기대 누웠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에 대한 원망 역시 많이 내려놓게 되었고, 기억을 온전히 내 위주로 새롭게 만들어내지 않게 되었으며, 내 자신을 수도없이 다그쳤던 독한 고집 역시 반성하게 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 진 상태에서 무언가에 집중 하기 수월해 졌다. 
나를 붙드는 이 물리적이고도 영적인 힘은, 끝을 알 수 없는 이 곳 에서의 삶에 큰 활력이 된다. 무언가에 이끌려 일어나고, 잠도 푹 자고, 하루하루를 이어나가고, 어려운 순간에 직면했을때 속 좁게 담아두는 습관에서 멀어진 내 모습을 발견한다. 완전히 벗어난 것 은 아니지만 진귀한 작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아픔을 느끼고 최선으로 보듬기 위해 내 자신도 아파야 한다는 무조건 적인 고집이 아닌, 만나는 이들의 경험과 삶에 녹아든 희노애락을 고루고루 느끼고 배우는 것 에 더 집중하고, 아닌 것 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내려놓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한다. 
이러한 “힘”에 푹 안긴 기분도 좋고, 마음의 평안만을 바라보고 걸으니 피아노 치는게 더욱 즐겁다. 어려운 일 속 에서도 참 좋은 교수님 만난 것 이 감사하다. 내 부족함만을 늘 탓 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시간에 온전히 집중해본다. 바로 그 시간이 나의 연습 시간이고, 레슨 시간이다. 4년을 바라보고 있는 교수님과의 시간이 늘 행복하고 즐거웠다. 아직까지도 사적인 대화는 크게 나누지 않지만, 그저 모든 것 에서 벗어나 음악만 파고드는 이 시간이 나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다. 레슨 시간이 길어져 땀 맺힌 콧등을 타고 안경이 계속해서 흘러 내릴때면, 오늘도 가슴에 맺힌 울부짖음이 끝 없이 물결 일어 음악이 되었구나 싶다. 부족한 나도 목소리를 낼 수 있구나. 이 목소리가 사람들에게도, 내 귀에도 조금씩 들리는 것 이 참으로 소중하고 행복하구나.. 모든 기쁨과 아픔을 침묵으로 일관하며 속 썩히던 지난 날보다 지금 나느 훨씬 행복하다.
내 부족함을 인정하니 가슴이 그리 가벼울 수 없고, 배움의 축복을 받은 것 에 감사하니 끝 없이 들어온다. 내 자신에게 작은 변화가 피어남에 감사하고, 어려운 시간을 조금이나마 더 밝게 바라보고 크게 마음 두지 않고 지내는 것 에 익숙해져서 감사하다. 묵묵히 길 찾으며 살 수 있음에도 지극히 감사하고, 부족한 나에게도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매 순간 주어짐에 감사하다. 아무리 걱정이 많아도 잠을 잘 잘 수 있어서 감사하고, 깨끗한 정신으로 하나씩 해결하게 하심에 감사하다. 그 “힘”에 너무나도 감사하다.  
지금 나를 가득 채운 이 귀중한 힘이 한 낮 꿈에서 깨면 형체 없이 떠날 바람의 방문이 아니길 바래본다.

10.09.2019

고독과 고립의 시간을 통해 성장 하였는가 아니면 도태 되었는가 문득 거울 속 에 비친 내 자신에게 묻는다. 진실을 믿는 이방인이 되기를 늘 기도하며 오랜 시간을 그렇게 지내면서, 어느새 마음 속 에 공허함이 쌓인 듯 하다. 오늘의 나는 고독과 함께 앞으로 한발짝 나아간 것 인지, 아니면 다시금 두려움에 막혀 뒤로 물러선 것 인지.. 

생각지 못한 헛헛한 마음이 드리우는 시간이 올때면 나는 늘 이곳을 찾는다. 이런 공허함을 달랠 수 있는 무언가를 달라고 늘 기도 하는 것 같다. 기도라고 하기엔 부끄럽다. 거의 생떼를 부린다고 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더 어렸을때, 조금이라도 더 “할 수 있는 것 이 많을때”, 외롭지 않고 싶다고.. 흘러가는 시간에 혼자 걷는 이 길이 때때로 참 힘들다. 내가 택하고 바래 왔던 이방인으로서의 삶에 어두운 공기가 들어설때면 그 어느곳에도 툭 털어놓을 수 없다. 즉. 아무도 없다. 

스스로 택한 길에 혼란을 느끼는 내 자신에게 이질감이 들때가 있다. 그럴때면 누군가와 통화 한번 할 수 없을까 간절히 생각한다. 누군가를 믿는 것 에 두려움도 컸고, 혹시나 뜻하지 않은 상처를 남기게 될까 조심스러움에 많은 사람들에게 선을 두며 살았던 시간이 오늘 같은 날이면 나의 마음을 후벼 파는 것 같다. 가장 친한 친구와 너무 오랫동안 먼곳에서 지내는 것 이 점점 누군가를 멀리 보내는 것 만 같아서 마음이 섭하고 힘들다. 진심으로 기쁘면서도 내가 너무 느리게 걷는 것 은 아닌지, 내가 너무 부족한 것 은 아닌지..  

오랫도록 바래왔던 동생 새롬이와 독일에서의 만남이 무산되었다. 나보다 음악을 너무 잘 해왔고, 미국에서 함께 연주하며 참 행복했던 기억을 선사 해준 동생이다. 창살 없는 감옥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던 나의 간절함을 뒤로하고 우리의 약속은 또 “다음”으로 미뤄진 듯 하다. 언젠가 그 아이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면 꼭 도와주고 싶다. 큰 곳 에서 꿈을 펼칠 멋진 아이다. “예비하신 길이 있으면 열리겠지” 라고 담담히 이야기 하던 이 아이는 예나 지금이나 참 의젓하다. 보고싶다.

정신없는 지난 한주가 지나갔고, 어두컴컴했던 주말을 넘긴 오늘은 날씨가 유난히도 좋다. 많이 춥지만 그래도 해가 보인다. 오늘같이 아름다운 날, 나는 이렇게 가지런하지 못한 혼잣말을 늘어놓는 것 으로 내 마음을 기록한다. 공허함, 간절함, 진실함. 하루하루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 은 내가 바라는 하나의 소망이 있기 때문임을 안다. 한 없이 부족한 내가 닿을 수 없는 그 소망을 위해서 걸어야만 하는 오늘의 이 길에 작은 감사함을 느낀다.

오늘 하루를 지배한 생각들

하루에 몇번이고 내 자신의 무능력함에 한숨을 쉬곤 한다. 끝까지 이 길을 완주하길 기도하며 버티고 있고, 마지막 선 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을 그려보며 묵묵히 걷고 있지만, 그 어느곳에도 닿지 않는 것 을 보면 나도 모르게 잠시 마음이 떨려온다. 오직 할 줄 아는 것 이라곤 피아노 치는 것 밖에 없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의 삶도, 나의 연주도, 나의 진심도 많은 이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간다. 모든 것 에서 멀어져가는 내 모습을 담담히 바라보다가도 현실적인 벽 앞에서는 마음이 아려온다.

관심을 통하여 마음의 길이 열린다고 생각 한다. 누군가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실력과 스타일이 곧 그 사람을 판단하는 성적표와도 같아지는 이 시대에 내가 부족한 것 이 너무나도 많다. 제대로 쌓지 못한 내 실력 말고도 내가 무언가 단단히 잘못했나 싶다. 몇몇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미움을 샀으면 그 미움이 비웃음을 너머 무관심으로 변했을까. 알 수 없는 이유가 조여와 숨이 턱 막힐때 현실 세계에서 나에게 다시금 말을 건네며 뒷머리를 내려친다. “너는 없다 없다 인줄까지 없다”. 인줄..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그 인줄의 힘 앞에서 무너지는 느낌이다. 실력도, 인줄도 없는 나는 유럽 한 가운데 고집스레 떠 있는 미운오리가 된 것 만 같다. 유학생활을 하며 무엇을 지켜내려 했는지 잘 알기에 오늘날의 내 모습이 크게 놀랍지 않다만 예고 없이 스치는 쓰라림에 반복하여 큰 숨을 내뱉어본다. 누군가에게 의지 할 수 없이 혼자 서는 것 은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음악계에서는 절대적인 누군가의 지지가 필요한 것 같다. 온전한 나의 힘으로 일어나기에는 나는 가진 것 이 너무나도 없다. 열심히 사는 삶은 우리 모두의 것 이기에 나의 “삶 기록표” 에는 열심히 사는 것 그 이상의 능력이 필요하다. 

어렸을 적 내가 존경하던 분이 계셨다. “호상이 엄마”. 그 분 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던 분 이다. 예원중학교에 있을때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던 그 분은 내게 “만남의 축복을 위해 늘 기도하라” 하셨다. 그 분의 말씀은 짧았지만 단호하였다. 그 이후 늘 기도 하였다. 감사하게도 은혜 가운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오늘도 나는 그 기도를 올린다. 배경도 요령도 없는 나 이지만, 만남을 통한 축복을 경험 할 수 있기를. 많은 이들을 통한 축복이 아니더라도, 단 한 사람에게라도 내 음악 속 진심이 닿는 축복을 허락해 주시기를. 아니면 지금 이 시간을 혼자서 이겨낼 수 있는 강건함을 허락하시기를. 

선배들의 현실적인 조언을 머릿속에서 쉼 없이 되내인다. 나의 실력과 나의 현실. 그리고 내년에 내가 어느 곳 에 서 있을지.. 누군가는 미국에 가서 박사를 하라하고, 누군가는 유럽에서 버티어 직장을 잡으라 하고, 누군가는 한국으로 돌아가서 결혼 하라 한다. 모두가 나를 위해 해주는 말 이지만, 정작 내 마음에는 그 어느 곳 이던 자신이 없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없을 것 만 같다. 이토록 고민하고 고생했는데, 그 끝이 너무 미약해 지는 것 이 아닐까 두려움이 앞선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지만 지켜내어야 할 것 이 많은 오늘도 하루종일 고민에 빠졌다. 

음악가로서 자리를 잡는 것 이 이리도 어려운 줄 은 몰랐다. 이보다 나를 더 무겁게 짓누르는 것 은 주위의 걱정어린 시선이다. 주위에서 나에게 결혼 생각이 없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계속 피아노만 칠꺼냐며, 언제 끝나냐며. 웃으며 넘기지만 그런 질문을 받을때면 참 곤란하다. 가족들은 기함할 일 이지만 어렸을 적 부터 “엄마”가 되는 것 이 꿈 이었다. 가정을 빨리 이루고 싶은 꿈이 컸던 내가 서른을 넘긴 오늘도 혼자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아직 결혼 하기에 너무 부족한 점 이 많아 그 축복까지는 허락 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언젠가는 순리대로 행하실 축복이라면 내가 조급한 마음을 갖지 않는게 맞는 것 같다. 

매일 밤 잠이 들기 전 에 엄마의 연락을 받는다. 콩쿨 생각은 없는지.. 누구는 무엇을 하는데 우리 딸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8월은 유난히 유학생들의 연주가 많다고 하는데, 독일 방에서 연습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이 영 마음이 무겁다. 엄마와 통화 하면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다. 나만 믿고 있는 엄마에게 원하는 결과를 못 가져다 주어서 또 미안하고 죄스럽다. 괜한 기대를 하고 살게 한 것 같아서. 엄마 목소리는 곧 나에게는 현실을 극복하고 이겨내라는 종소리 같다. 힘이 들지만 나태해지지 않기 위한 이상한 힘이 솟아난다. 

어떻게 나같은 사람이 이 자리까지 왔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 해 봐도, 은혜 하나뿐이다. 이 은혜를 붙잡고 어려운 이 순간 역시 잘 넘길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이제 복잡한 머리를 털어내고 내가 제일 잘 하는 것 을 해보련다. 깊은 잠 자는 것. 

오랜만에 쓸데없이 우울하지 않은 글

다시 뮌헨의 내 방 Neuburgerstraße 로 돌아왔다.

한국에 잠깐 다녀올때면 10년 전 함께 했던 친구들, 언니들에게 받은 편지 상자를 정리 하곤 한다. 내가 벽을 세울 수 밖에 없던 그 오랜 시간 동안 나에게 무수히도 많은 사람들이 다가왔었다. 그 손을 쉽게 잡지 못했던 나는, 오늘 하루도 “혼자 살아도 꽤나 괜찮은 삶”에 만족하고 있지만, 이제는 제법 사람들에게 연락 하는 것 이 어렵지 않아진다. 그들에게 감사했던 그 마음을 더 표현할 수 있는 용기가 선 것 만 같다. 마음 편히 누군가를 보는게 이렇게 행복 한 것 임을 조금만 더 빨리 알았다면.. 나의 침침했던 눈동자에 담을 수 없었던 많은 이들의 사랑의 흔적이 새삼 고맙고 또 가슴 벅차게 한다. 

잠깐이지만 행복했던 한국에서의 시간을 뒤로 하고 독일에 돌아올때면 이번 해가 가기 전 마쳐야 할 일과 임무를 적는다.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이 모든 것 들을 다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늘 앞서지만,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예나 지금이나 어차피 해야 될 일들이고, 일어 날 일 들이라는 것 을 기억 하게 한다. 어려워도 하게 되어 있고, 힘들어도 버티게 되어 있고, 계속 끊임 없이 만들어 나간 다는 것 .. 많은 이들도 그렇겠지만, 내 뜻대로 쉽게 이루어지는 것 하나 없는 삶에서 묵묵히 같은 일을 반복하며 얻게 된 큰 위안이다. 

삶은 참 재미있다. 내일이 오지 않길 바라면서도 내일 뭐 할지 생각하게 하고, 눈을 뜨기 싫은 그 순간도 머리 속 에서는 악보를 그리곤 한다. 오늘은 마주치지 않았으면 하는 순간에도 그 사람을 보며 웃고 있고, 교수님 방 문 손잡이를 앞에 두고 시계 초침이 정각이 되길 바라보며, 간절한 기도가 끊이지 않는다. 하늘에서 나를 바라보면 얼마나 이런 내 모습에 우스울까 싶기도 하다. 

지난 봄, 유난히도 고된 시간이었다. 하루는 내 마음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일을 앞두고, 혼자 가슴을 쳐대며 울기도 하였다. 내가 정말 이렇게 무너지는구나 하는 막대한 고민 앞에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몸과 마음이 격정상태에 이르러 하루를 넘고 이틀이 넘어가면서 벼랑 너머 암흑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그 어떤 것 도 할 수 없었던 나를 깨운 것 은 기도 였다. 야생마와도 같은 수 많은 노예들의 절규를 이끌고 홍해 앞에 다다른 모세의 기도처럼, 미처 날뛰는 내 정신을 붙잡고 믿을 수 있는 것 은 하나님 한 분 이었다. 나의 인생은, 나의 하루는 내가 생각한대로 이루어 지지 않음을 매 순간 배운다. 그때마다 고요 속 에서 움직이는 그 분의 임재는 길길이 치솟던 나의 감정의 불을 끄신다. 입을 닫게 하시고 귀를 닫게 하시고 무릎 꿇었을때 나를 일으키셨던 그 순간을 잊지 못 한다. “이럴 수 없어.” 되내이며 머리 속 을 휘몰아 쳐대는 나의 어리석은 두려움은 결국 이루어질 일을 눈 앞에 두고 고집을 부리는 것 임을 안다. 수천번을 해 왔기 때문에, 이제는 아주 조금 알 것 도 같다. 내가 어려움에 닥쳤을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입을 닫고 나를 버리고 한 음성에 귀를 귀울이는 것. 

내가 고요함을 늘 찾는 이유 역시 이곳에 있지 않나 싶다. 세상을 살기에 턱 없이 부족한 나의 지혜가 아닌 고독함 안 에서 피우는 한 줄기의 믿음이, 고요함 속 에서 귀 기울이게 되는 하나의 음성이 나를 일으키는 유일한 열쇠라는 것 을 오늘도 배운다.

묵묵히 한 길 걸으며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나와같은 치유의 시간이 주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하나님을 믿던 믿지 않던 그 사람들이 포기 하지 않고 선한 길을 걷길 바란다. 이국종 박사의 [골든 아워] 를 읽으며 외로운 싸움을 감당해내야만 하는 삶을 여럿 접했다. 그 책을 읽으며 다시금 느꼈다. 내가 하는 이 길은 누군가에 비하면 그리 어려운 길 도 아니고, 그리 외로운 길 도 아니다. 두권의 책 속 한글자 한글자 타고 올라오는 묵묵한 죽음의 무게는 감히 내가 사는 이 삶과 비교할 수 없다. 나 자신의 고통을 넘어서서 나의 사람들의 육체와 영의 희생까지 교차되는 순간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잘 버텼으면 좋겠다. 고요 속의 외침이 고단한 어떤 이의 메아리로 허무하게 끝나는 것 이 아닌, 애써 쥐고 있던 한 숨 풀어내며 웃을 수 있는 치유의 시간이 꼭 오길 바란다. 그리고 그 고요 속 의 음성이 내게는 하나님이었다는 것 을 언젠가는 꼭 나누고 싶다. 

의심

“Often, self-doubt and the judgement of others prevent us from moving forward”

그러하다. 내 자신을 향한 의심과 사람들의 판단은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을 막는다. 다른이들의 판단에 늘 조심스러운 것 도 사실 이고 그렇다고 그 사람들 잣대에 맞춰서 굳이 사는 것 도 아니다. 결코 조심스럽고도 그렇지않은 그 중간 선에서 나는 내 자신에게 그 어떤 확신 없이 사는 것 만 같다. 나를 오랜시간 가둘만한 의심의 물방울 속 에서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 하는 와중에 사람들이 내린 판단의 기준에서 더 멀어져보려 발버둥 쳐도.. 모든 것 이 조심 스럽고 눈치가 보이고 .. 그냥. 이도저도 아닌 셈 이다.

내 안의 두 다른 감정을 인간관계로 시각화 했을때 모든 일에 진취적인 사고방식을 갖은 한 사람과 매사의 극도로 조심스러운 사람을 한 자리에 두는 것 으로 생각해 본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는 것 조차 불편할 수 있을 것 만 같은 다른 두 사람이 긴장의 끈을 서로 놓지 않은 채 적절한 중간 점을 찾는 타협이 숙제로 요구되는 그 애매한 관계가 지금 나의 세계 인 것 같다.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의 성격을 딛고 건강한 관계로 일어서느냐 아니면 한쪽으로 치우쳐 진 채 외발로 살아가는냐. 나에게는 “의심”하는것 이 완전한 부정의 의미 만이 아닌 신중함과 조심스러움과도 연결고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심에서 우러난 조심성은 나를 많은 것 들로부터 막아서고 있다. 삶의 방향도, 인간관계도, 내 일상생활도, 가장 중요한 음악을 하는 삶 역시도. 누군가에게 내가 피해가 될 수 도 있다는 그런 생각. 나의 음악이 누군가에게는 듣기 싫은 음악이 될 수 도 있겠다는 그런 생각. 관객에게 아무 것 도 전해지지 못 하는 상황이 올까봐 내 음악에 대한 확신이 무너져 점점 더 움츠려들을때. 누군가의 취향을 먼저 고려하게 되고 맞추게 되고 기다리게 되는 그런 나의 느린 걸음.. 관계, 일상 생활 속 많은 측면에서 보이는 내 자신의 어정쩡한 세계를 힘들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더라도 한치의 가림 없이 솔직하게 묻어나오는 답답한 내 음악을 듣노라면 의연하게 버티던 고집쟁이의 마음도 무너지는 것 만 같다. 앞으로 나아가야하는 부분에서도 망설이고 조심스러워지는 나의 움직임.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을 움켜쥐고 있는 내 손의 긴장이 한 가득이다. 그 긴장을 안고 거북이 걸음으로 살아가려니 예기치 못한 실수도 여기저기 가득하다. 팔의 힘이 풀리는 날 이 오면 모든 것 이 무너져 내릴 것 만 같다. 나의 이런 긴장이 건강하지 못한 의심과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 임을 인정 하기에 마음은 더 불안해진다. 눈 앞에 불어오는 바람을 뚫고 나가야 하는 내가, 짓누르는 힘을 버텨서 일어나야하는 내가, 페달을 끊임 없이 밟아야 하는 내가, 누군가를 이끌어야하는 내가, 무엇 때문에 늘 발을 내딛기 두려워 하는가.. 하루가 멀다하고 무거워지는 걸음은 언제쯤 다시금 온건한 속도를 찾을 수 있을까.

내가 네게 준 불편한 진심

나의 진실한 마음과 친절이 누군가에게는 부담과 더 큰 상처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내가 느끼는 것 에 큰 확신은 없다. 내가 느낀대로, 내가 최대치로 이해하고 느낀 상대방의 감정과 그 상황의 깊이, 나름의 미소와 위로 하는 것, 모든 것 을 종합해도 그 사람만의 아픔을 완벽하게 어루만지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 부족하다. 아픈 사람 앞에서 나는 그 이상으로 그 사람의 슬픔과 행복에 한 부분이 되기를 바라고 또 마음까지 얻기를 바라는 것 은 지나친 이기심이다.

알게 모르게 늘 그런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던 내게는 나의 진심과 지나치게 높은 감정선으로 하여금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는 은근한 기대가 있었고, 오히려 그런 나의 무언의 압박이 상대를 불편한 환경에 놓이게 하는 것 을 경험했다.

누구나 사람은 힘든 마음을 안고 산다. 어느날 누군가의 웃음 뒤에 세워진 그늘을 보았다면, 나는 이제 그 그늘에 함부로 손 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정답을 알고 있지 않는 한, 온전히 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내가 감히 휘젓고 판단하는 것 은 너무나 큰 오산이라는 것.

아직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고, 상대방의 타이밍을 배우고 있고,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길 가운데에서 기다림이라는 것 을 배우고 있다. 내가 진심으로 소원하는 “누군가의 행복” 이 내 자신이 발 벗고 나서서 완성을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 보다, 그 행복과 감사의 시간이 삶의 가장 선한 때 에 찾아오기를 조용히 기다려주는 것 이 상대를 향한 또 하나의 배려임을 배운다.

모두가 같은 시간 속, 같은 길을 걷는 것 이 아니기에 , 상대를 향한 나의 진실된 마음과 소망을 실천 하는 것 의 중요한 한 부분은 곧 기다림이다. 순수한 마음의 사랑이 불편한 진심으로 변질 되지 않도록, 그리고 상대에게 더 큰 짐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며 기다려주는 것.

시련을 극복하는 것 은 곧 주님을 경외하는 것 에서부터 시작되어 돌을 하나 하나 쌓아나가 천국에 닿는 그 순간까지 찬양으로 고백하는 것 이다.

내 인생에 특별한 시련이 있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시련의 크기는 상대적인 것 이 기에 내 자신의 시련이 누군가의 눈에는 그저 하나의 “그럴 수 도 있는 해프닝” 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이에게 각기 다른 방법으로 함께하심을 약속 하시듯, 내 삶 하나만을 바라보았을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 가는 그 순간까지 나만의 시련을 이기는 것 을 너머 다른 이의 고통을 이해하고 감싸 안도록 하게 하시는 것 같다. 시련 앞에서는 그 누구도 강할 수 없다. 나 역시 두려움을 느끼고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아직까지 나도 매일을 허우적대지만, 하나님께서 중학교 3학년때 처음으로 몸소 느끼게 해주시고 지금까지 늘 기억하게 해주시는 한가지는 하나님을 경외 하는 것 이 이 세상과 나의 무지함이 주는 시련 앞에서 진정으로 강해지는 것 이라는 것 이다. 그래서 내 주위에 누군가가 아플때마다 그 상황과 환경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자고 이야기 한다. 물론 막상 내게 조금이라도 어려움이 닥칠때면 마음이 쓰라리게 아프고 눈물이 터지지만. 주님을 경외 했을때, 내게 오는 평화와 그 분의 변함 없는 약속. 그것이 내가 어려움을 바라볼때 일어나게 되는 하나님의 마법과도 같다. 아직 누군가에게 이런 고백을 나누기에는 내가 부족함이 많기에 함부로 말을 꺼내기가 두렵기도 하다. 나의 고백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시련에 같이 아파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공감형성에 있어서 턱 없이 모자라지만 그래도 그들을 위해 혼자서 끊임 없이 생각 하고 기도 하는 것. 누군가가 기쁨을 나누는 순간과 그 자리에 함께 하고 싶을 때 도 있지만, 나는 기쁨의 순간보다 시련을 극복하는 그 곳 에 함께 하고 싶다. 내가 부족할지라도, 나의 작은 기도가 그 사람들에게 아무 도움이 못 될 지라도.. 나의 기도가 모든 것 을 평정하는 것 이 아닌 기도와 찬양을 통해 하나님을 상황 가운데 모시는 것 이 하나님이 어린 딸에게 주신 “누군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인 것 같다.

피아노 연주를 통해 하나님과 사람을 교통하게 하는 다리가 되고, 기도를 통해 어떤 이의 치유가 일어나는 기적을 함께 하고, 찬양을 통해 사랑을 고백하고, 두 팔 두 다리로 어린 영혼들을 사랑으로 보듬어주고 싶다. 매일 밤 다짐 하고 또 다짐을 한다. 어떤 곳 에서든, 어떤 방법으로든, 특히나 보이지 않는 곳 에서 무던히 쓰임 받는 자가 될 수 있길.

2018년 마지막 다짐

셀 수 없는 고민들과 두려움이 나를 휘몰아칠때면 조금이라도 마음의 공간을 정리 하고자 짧은 글을 쓰는 버릇이 생긴지 벌써 10년이다. 처음에는 공책에, 손이 아파서 어느샌가 컴퓨터에, 그리고 또 다시 공책에.. 2019년을 앞에 두고 또 나는 버릇처럼 이 생각 저 생각을 끄적인다.

나에게 늘 첫번째는 하나님이었듯, 이번 한 해 역시 하나님이 내 삶에 행하신 기적들과 도전들이 많았다. 가끔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동생, 누군가의 친구, 그리고 연주자 한선미가 아닌 인간 한선미의 모습을 관찰 하기도 한다. 하나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과연 얼마나 엉망진창일까. 그렇게도 형편 없는 나의 모습을 감싸주는 분 의 마음을 과연 내가 생각에 담아봐도 될까 하는 생각.. 하나님을 찬양 하는 도구가 되고자 피아노를 시작 했고, 하늘의 감동이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치유를 함께 경험하기 위해 음악의 길을 걷고 있다. 사회적으로, 딸, 동생, 친구로서 물론 부족함 투성이인 나 이지만, 그 아무도 모르는 나의 모습 한부분 한부분까지 다 아시는 하나님 눈에는 더더욱이 못난 아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음악을 통해 나를 쓰시려는 그분의 계획에 내가 감히 열정의 불을 지핀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손 댈 수 없이 커지고.. 음악을 통해 누군가의 삶에 안식처가 생기는 그 일을 도맡아 유지하고자 지금도 이렇게 피아노를 치는 것 같다. 완벽한 사람만이 음악을 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감동이란 절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주 만물의 감동을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크고 작은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홀로, 또는 같이 음악을 하는 것 이 아마도 그 분의 의미에 빛을 더하는 것 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일은 완벽한 사회적 우위를 갖고 태어난 사람만이 아닌, 쏟아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과 손끝을 통해 그려낼 수 있는 자에게도 주어진다는 것 을 다시금 느낀다.

스물아홉이 되어도 나는 마냥 어린 아이 같은 생각을 할 때 가 있다. 그래서 남들 눈 에 많이 철 없게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신체적으로 보이는 동안의 의미를 너머 내적 성숙미가 부족한 사람이 되는 것 이 두려워지고 있다. 시간의 흐름 속 부족함이 이곳저곳에서 끊임없이 드러나는 나를 아직도 이끄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릴뿐이다. 내 온전한 의지가 아닌 그 분의 계획 속 에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기적 가운데 살아왔으며, 앞으로 역시 그 산 증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 이 나에게는 삶의 큰 선물과도 같다. 내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것 은 주위의 환경 일 수 도 있고, 나의 노력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념으로 채워질 수 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이 오로지 나로 하여금 채워진다면 이기적인 사람으로서밖에 남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든다. 내가 나의 마음을 가난히 둔 채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크고 작은 가르침과 사랑으로 채워질수 있도록 기다리며 겸손하게 사는 것 이 앞으로 꾸준히 실천해야 하는 숙제와도 같음을 깨닫는다. 나를 낮추는 방법. 나에게는 여전히 어렵지만, 나를 낮추는 것 이 곧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높이는 것 임을 확신한다.

나는 상냥한 “척”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짧은 순간 보이는 상냥함이 아닌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진심으로 성스러워지고 싶다. 애교가 그리 많지 않지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따뜻하고, 상냥하고, 착하고, 이 모든 것 을 떠나 진실한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 그 진실이 나 한 사람에게만 묻어나는 것 이 아니라 음악에도 절실히 묻어났으면 좋겠다.

2019년은 더 특별했으면 좋겠다. 음악적으로 더 성숙한 도전도 기대하고 있고, 하나님과의 이 소중한 소통의 시간을 게을리 하고 싶지 않다. 사람들에게도 조금 더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족들의 행복에 큰 이바지 할 수 있는 능력은 못 되지만, 그래도 부모님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평안을 드릴 수 있도록 실질적인 방법도 연구 중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