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wandering, questioning and being butchered for months, i finally have decided to come back or have broken down to come for a refuge that my desire is to love music and serve people with heart of love and sincerity. No more growth of blame in heart. No more closed eyes and broken heart.

The process of continuosly thinking has brought me to the point where I started to grow enmity towards my beloved ones. Never stopped blaming on my parents being over protected of me. not true. never the true. I let darkness to veil over my eyes to see the true love of my parents. As I look back on my yesterdays, all I can do here in my room alone is to repeat “sorry.”

While I was lost, veiled, and angry all the time, one thing never changed, their love. Their hearts.

Tonight, i am reminded of an unending love of Him that I am always loved. Whoever I am to whomever. Whatever I do for what so ever. He loves me. And I see His pouring love and warmth when my daddy’s calling me “my dearest baby” and my mommy’s calling me “my precious one.”

Thank you for standing here and waiting for me for the whole time. Even when I tried to run away from you, you were here with your arm widely opened. And now I am back to you dirty, but ready to be cleaned up with your overflowing love. It is shameful. Probably never forgivable. But I know. For sure. that you are forgiving and still loving my tear and dirt. I commit once again to grow in your love. Though still long way to arrive. I am already here, in your loving arm.

어쩌다 – 떠났던, 떠나려는 이들의 옆에 서서

우리 모두가 같다. 사랑하는 대상을 떠나보낸다는 것 에 대한 두려움을 셀수 없이 느껴보았을 것 이다. 살아 숨 쉬지 않는 자를 그리워 하는 것, 그 사람과의 시간을 마음속에 담아두며 사는 것,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때, 몸을 뒤트는 순간에 느껴지던 작은 움직임이 아직도 볼 옆을 스칠때면 나는 아직 그 사람과의 공간 속 에서 사는 것 만 같기에 .. 혼란의 시간 한 가운데 깨어진 얼음조각을 밟고 서 있다. 누군가를 멀리 보낼 때 에는 함께한 시간 그 이상의 오랜 시간의 치유가 필요하다. 다음을 준비 하기에는 모든 것 이 아프기 때문이다.

나를 너무나도 잘 알았던, 내 삶의 모든 것 이 었던 사람의 자리를 옅어지는 기억으로 남겨둔 채 또 다른 이에게 사랑을 나누어야 하는 것 이 언젠가는 늘상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야겠지만 서른을 넘긴 지금도 힘들다. 만질 수 없는 그 사람이 그리워 양 귓바퀴가 뜨겁게 달궈진 채 눈물을 삼키며 살아온 윗 사람들을 따라 나도 같이 슬픔을 삼키는 법을 배우는 중 이다.

사람들은, 그리고 어른들은 (아직 나는 어른이 되기 싫은가보다) 가끔씩 서로의 달라진 모습에 “이사람 죽을때가 다 되었나 왜 안하던짓을 하고 그래” 하며 농담 섞인 말을 주고 받곤 한다. 가을 날 창 밖을 보며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가벼이 흘려들었던 그 말을 자꾸만 되내이고 생각을 밟아 다진다.

안 좋았던 기억이 용서의 갑옷 속에서 눌리고 곪아 가슴 속을 떠날 것 같지 않을 것 만 같을때 가 있었고, 주고 받는 말이 날 선 창이 되어 마음을 찌르기도 했으며, 그저 닫힌 모습에 답답함을 토로하며 밖으로 내 돌았다. 또한, 세상 행복을 가득 안은 순한 미소를 보았으며, 따뜻한 손을 건네어 감싸안았고, 모든 것 을 양보하고 나누었고, 어느 날은 배가 당기는 아픔을 느낄정도로 웃기도 하였다. 함께 했던 그동안의 기억만으로 한 사람의 삶에 동그란 마침표를 찍어내기엔 아직 남아있는 길이 너무나도 귀하기에 예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까지도 남김 없이 보여주고 가려는 이들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남겨진 사람도 묵묵히 마음의 준비를 한다. 고통 중 에도, 행복 중에도 세상을 떠나는 그 회색 빛의 순간에도, 기억을 담아내며 다음을 준비한다.

기억은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 이 아닌 가슴안에 뛰는 박동이 멈추는 그 순간까지도 함께 하는 것 이다. 그래서 쉽게 없어지지도, 바뀌지도, 그리고 다시 그려낼수도 없는 내 삶의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도 함께 하는 숨 인 것 이다. 누군가의 기억에 나를 주었고, 나의 기억에 그들을 품는다. 아직 오지 않은 나의 마지막 날 까지.

어쩌다 – 갈림길

어쩌다보니 미래가 열린 길에 서게 되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그 수 많은 갈림길 앞에 우두커니 선 채로 셀 수 없이 고민하였다. 하루에도 수백번 나의 생각을 엎치락 뒤치락 흔들며 혹시 나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팔랑귀가 되지 않을까 두려움이 피어난다.

나는 신앙 이외의 나의 모든 것 들을 믿지 않기 때문에 최근들어 다른 이들의 말에 더욱 더 귀 기울이게 되었다. “너는 이러면 좋을 것 같아.” “너는 무조건 여기를 가야해.” “내말 들으면 후회 안해.”  많은 사람들의 조언을 통하여 세상을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나에게 꼭 알맞는 판단을 할 수 있을꺼라 믿었다. 다만 하나 잊고 있던 사실이 있었다– 나에게 조언 해주었던 수 많은 사람들의 의견은 귀하고 귀하다만 .. 그 모든 조언들이 천차만별이자 넘쳐나는 열린 결말을 함께 던지고 있다는 것 이다.

예전에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도움을 바라는 것 이 미안해서 모든 것 을 혼자 해결 하려 했다. 부작용으로 쓸데 없는 주관까지 확고해져 실패를 거듭 경험하기도 하였다. “제발 말 좀 들어라. 웃으면서 고집 부리지 말고.” 보는 사람 마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고, 나는 그럴때마다 이상하리만큼 내 자신이 자랑스럽게까지 느껴졌다. 나의 고집으로 하여금 좋은 길을 걸었으면 모르지만, 사실 돌이켜보면 희열 뒤 찾아오는 아쉬운 점 이 더 많았다. 나의 옹졸한 고집이 가져온 결과이기에 할말도 없었고, 이제는 도움을 받는 것 을 두려워 말자 결심했다. 

도움을 받는 법을 잘 몰라 무작정 물었다. 나의 선배들, 교수님, 친구들, 등등. 자세를 고쳐앉고 그저 듣는 조언 조언 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무지했던 내가 혼자서는 절대 알 수 없던 여러가지의 말들이 내 머리에 불을 지폈다. 뜨거웠고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저 신기했고, 내가 모르는 세계에 코가 아닌 눈과 귀가 숨을 쉬는 것 만 같았다. 한 뭉텅이의 해답지가 내 손 에 쥐어진 것 이다. 그렇게 묻고 또 묻는 그 길에서 어느새 내 삶의 주인이 나라는 것 조차 잊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전혀 알 길이 생기지 않았다.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 인지 그 시작을 기억하기 힘들다 ..

열린 미래의 갈려진 길에서, 모두가 치열하게 사는 현장 앞에서, 나는 한발짝을 떼어내기가  조심스럽다. 혹시라도, 정말 혹여라도 내가 후회 할까봐.. 그리고 나를 위해 열과 정성으로 조언 해 주던 이들과의 시간을 원망하게 되는 어리석은 마음이 아주 조금이라도 생겨날까봐.

두 손을 모아 담아도 한참이나 모자랄 수 많은 경험담과 확신이 섞인 설득 속 모두가 입을 모아 끝 말을 잊지 않고 건네준다. “결국 네 인생이야. 네가 결정해야해.” 

내 인생이라고, 나 혼자만의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살아본 적 단 한번도 없지만, 내 멋대로, 내 고집대로 한 길만을 걸었고, 지금은 내 방식대로 살면 안 될 것 알면서,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 어긋나버린 생각과 삶의 결정권 앞에서 모순 입은 어리석음이 가차없이 드러난다. 시간은 나를 자꾸만 재촉하고, 움직이는 시곗바늘을 눈동자의 힘으로 멈출 수 있는 기가막힌 초능력을 상상 속 에 고이 묻어 둔 채 괜한 손톱만 쉴새없이 물어 뜯는다. 내 손톱이 남아나지 않는 이유는 피아노를 열심히 치는 것 이전에, 열린 결말 속 의 해답을 찾아 헤메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손끝에 이를 대어 악물고 버티면서도, 결국 깊게 박힌 손톱의 틀을 허물어 뜯어내고픈 숨겨진 욕망이 살아숨쉬기 때문이다.

 

야베스의 기도

나는 무엇을 위해 기도 했고, 또 무엇을 기도 했는가. 내 20대 가장 첫날의 아침부터 마지막 밤까지 단 하루도 빠짐없이 채웠던 “야베스의 기도”. 


어렸을때는 오로지 나의 고통만 보였고, 내 어깨에 올려진 무게만 힘겹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이런 나의 “남다른” 고통이, 그리고 두려움이 언젠가는 찬란한 은총으로 나를 위로 할 것 이라 바래왔던 것 같다. 내가 힘들었고, 내가 두려웠기에, 내가 지혜가 부족했기에, 이 모든것 을 하나님께 말하고 도움을 부탁드렸다. 나의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께서 내가 “구한 것” 들을 허락하시는 그 마지막 이었다. 주님의 허락을 나는 기다렸고, 그 허락이 곧 그저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 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삶을 살면서 내가 바래왔던 “행복한 결말” 이라는 대가가 보이지 않는 이 길을 걷게 하신 것 을 많이 원망했었다. 나 혼자 짊어지는 아픔이 아닌 나의 모자람으로 하여금 그 고통의 핏줄이 나의 가족의 무한한 희생으로 연결되는 것 이 너무나도 견디기 어려웠나보다. 그래서 나는 아주 오랜 시간동안 내 자신을 민폐 덩어리 그 자체라고 여겼다. 그래서 나에게 인생의 도전과 기회, 그리고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 을 극도로 두려워 하였고, 자꾸만 회피하려 하였다. 오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주어지는 기회에 늘 최선을 다했지만, 나의 손을 떠나는 자연스러운 상황과 결과를 마주할때면 내 자신을 못살게 굴었다.  “나는 버림 받아도 되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니까” , “나는 못하니까”, “나는 부족하니까”…


거울 속 가장자리에서 눈 가린채 웅크린 나를 바라보았다. 그 어느 곳 으로 내 자신을 숨길 수 도, 피할 수 도 없던 나는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마음을 나누는 것 이 미안했었고, 이미 나의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정해진 선 없이 품어주는 그 마음들이 내 자신을 더 궁지로 몰아 넣은 것 같다. 내 자신을 믿을 수 있는 별 다른 방법이 없었고 그저 삶을 간절히 붙잡고 살고 싶었다.  “나는 정말 하나님 없이는 안됩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제발 나를 붙들어주세요” 이런 기도를 통해 내 삶에 큰 변화가 있었을까? 그 당시에는 원망만 했다. 눈에 보이는 변화는 개미 눈꼽만큼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오기가 생겼다. 더 기도하고, 더 붙들어보고, 더 몸부림 쳤다. 원망도 셀 수 없이 했다. 아침이 오는 것 이 두려워 하루를 시작하기 전 침대 안에서 하나님한테 기도부터 했다. 분명히 많은 것 을 말씀하셨을텐데.. 사실 나는 기도라고 하기에는 부끄럽다. 갓난아이처럼 그저 내 귀를 막고 울부짖고 있었던 것 이다. 내 울음 소리가 너무 커, 내 아픔이 너무 커, 내 이기심이 귀를 덮어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다. 기도는 했지만, 내 아침은 늘 눈이 퉁퉁 부은 지친 하루의 시작이었다. 기도는 했지만, 나는 레슨실 앞에서 눈물을 훔치며 들어갔다. 기도는 했지만, 나는 강가의 다리 위에서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기도는 했지만, 나는 연습실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손가락을 돌렸다 눈물을 훔쳤다 반복했다. 이 모든 순간, 나는 내가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모든 순간, 나는 그래도 했다. 그래도 나는 하루를 시작 하였고, 그래도 연주를 하였고, 그래도 사람들에게 내 표현을 해보았고, 그래도 연습을 하였다. 누군가에겐 지극히 당연한 일상의 패턴이지만, 나에게는 왜 그리 어려웠는지.. 나는 그때 알지 못했다. 그 평범한 일상 조차 두려움과 싸우기 바빴던 어린 나를 그래도 일으키셨고, 그래도 걷게 하셨고, 그래도 말하게 하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짓게 하셨다. 내가 원망하며 기도했던 모든 순간에 이미 나를 일으키신 것 이다. 지금 생각 해보면, 내가 야베스라 생각 했던 원망 가득한 순간들이 하나님이 축복하셨던 귀중한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한 없이 부족했던 지혜를 넓히셨고, 작은 내가 혼자의 힘으로 설 수 없던 넓은 땅에서 경험하게 하시고, 근심의 시간을 평강으로 채워주셨다. 그저 눈물만 흘렸다고 생각한 그 시간이 나에게는 복된 시간이었고, 복된 사람들을 만났고, 어느 하루 빠짐 없이 선한 그림을 그리게 하셨다. 아마도 내가 그저 다 괜찮았다면, 자만함이 하늘을 뚫었을 것 이다. 두려움도, 조심성도, 감사함도, 이 모든 것 들 없이 함부로 세상을 살았을 것 이다. 연단의 시간을 계속 걷게 하심을 원망 하지 않는다. 나에게 연단은 곧 낮은 삶의 가르침이고, 깊은 곳 에서 채워오는 축복이다. 


10년을 넘게 이 말씀을 읽으며 기도를 하고 묵상했다. 진절머리 나게도 내 자신만 보였다. 오늘은 어떤 고통, 오늘은 어떤 눈물, 오늘은 어떤 어려움 등등. 지금 생각 하면 세상 모든 진부한 슬픈 영화란 영화는 다 찍은 것 만 같다. 오만하게도 그 영화들 속 가장 처참한 비련의 여주인공은 바로 나다. 여느날과 다름없이 야베스를 떠올리며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버텨왔습니까? ” 물었다. 그때 나는 야베스가 아닌 그의 뒤에 엎드린 검어진 무릎의 그의 어머니를 보았다. 고통 속에서 낳으시고, 기도로 키우시고, 믿음으로 세우신 엄마라는 그 여인. 야베스를 있게 한 그 여인. 오늘은 그의 삶의 아픈 씨앗을 심은 그 어머니의 기도를 함께 해본다. 나는 다른 이들에 비해 유복하게 살았고, 가족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내 마음은 매 순간 어둠 속 에서 손을 휘저으며 불안에 떨며 지내었다. 그래서 이렇게 가난하고 괘씸한 마음이 야베스의 어머니가 그를 생각하며 지었던 존귀한 이름 “수고로운 인생”의 마음과도 같다고 감히 생각해왔다.  그의 어머니가 고통과 수고라는 이름을 아들에게 선물 한 것 은 아마도 그 자녀의 삶의 첫 시작부터 주님께 사랑으로 맡길 용기가 있었고, 세상의 존귀한 자 가 되길 소망하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주신 이름, 어머니가 데리고 온 이 세상의 선물, 한발짝 뒤에서 그 삶을 묵묵히 축복하고 또 사랑했을 어머니의 기도와 수고. 야베스 어머니만큼 부족한 자식의 가시밭길을 그렸고, 사랑으로 준비하고 기도했던 나의 엄마를 바라본다. 내가 어떤 삶을 살길 바래왔을까 묻고 싶지만 차마 입을 뗄 수 없다. 가끔은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기도 하다. 몸이 아파 낳았고, 마음이 아파 주고 또 주었고, 그저 주어진 길 걸을 수 있는 온전한 두 다리를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사람. 이제는 내 삶이 아닌 보이지 않는 곳 에서 웅크린채 손을 모았던, 괜찮게 남은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엄마의 간절한 기도가 들린다. 그 그림자의 깊이를 다 이해하고 가슴에 담기에 한참 부족하지만, 몸과 마음이 고독했던 기도의 길에 서서 고군분투해온 엄마의 시간을 잠깐이나마 들여다 본다. 내가 걸어온 이 길의 시작은 엄마의 담대한 마음과 꼭 붙든 양손이 있었고, 그리고 하나님은 그렇게 마음이 어둡고 가난한 나를 하루 하루 손수 일으켜 세우셔서 해를 마주하게 하셨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이스라엘에서도, 그리고 독일에서도.. 내가 열살때도, 스무살때도, 그리고 서른살 지금까지도 엄마의 굳게 잡힌 두 손과 나의 굽이 굽은 마음에서 나오는 아주 작은 고백에 매 순간 귀기울이고 계심을 믿는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다시 기도한다. 야베스의 기도를. 그리고 야베스의 어머니를 위한 기도를 . 


야베스는 나와 엄마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내 주위의 수 많은 야베스를 위해 기도해본다. 간절히 기도하며 시작한 오늘, 눈물로 보낸 오늘, 허무한 마음에 사무쳐 한발짝도 나설 수 없던 오늘, 그래도 버틴 오늘, 수고 했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우리의 삶이 무조건적인 해피엔딩이 아닌, 그저 굽이굽이 걸어가는 길 위에 놓여진 이정표 속 한줄기 햇살 보이는 하늘을 찾이 묵묵히 나아가는 것. 척박한 두 땅이 내 발목을 붙잡아도 힘겹게 한발짝 내어 딛었던 오늘이 우리 모두가 이룬 선한 승리라는 것을 나누고 싶다.

온전한 기억과 그렇지 못한 마음의 마찰. 그리고 눈물

이물감에 눈을 비벼대면 얕은 눈물의 움직임이 들리고 눈물샘을 꾹 눌러 자극을 줄수록 순간의 가려움은 극에 달해 결국 초라한 눈물이 찔끔 거리며 손끝을 탄다. 

내 마음도 그런 것 같다. 나를 살게 하면서 도, 결코 잊고 싶은 지난 기억 속 무언의 감정을 꺼내어 보는 매 순간마다 마음 구석구석이 쓰리다. 위아래로 쓸어내리며 할퀴는 그 감정이라는 기억은 내 등에 차가운 땀을 적신다. 귀에서 그 음성을 기억 하게 되고, 짙어질수록 내 머리를 감싸는 것 만 같다. 마치 내가 다시 그때 그 시간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것 만 같은..

먼지 가득한 내 손의 자극에 의해 답하는 조건 반사적인 눈물처럼, 뿌옇게 덮은 내 어두운 마음은 자꾸만 옛 기억을 되내어 나를 괴롭힌다. 기억과 마음의 마찰 사이에서 쉴새 없이 뜨거운 눈물은 손과 볼을 타고 흐른다.

원래 홍채는 늘 울고 있다고 한다. 늘 눈물을 머금고 있다고 한다. 여러 자극에 의해 세상에 꺼내어 지고 폭팔하듯 쏟아지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지는 것. 사람 마음과도 같다. 기억을 담고 사는 것. 결코 해롭지 않다. 다만 온전히 담겨져 있던 기억을 깨부셔 내 손으로 끼워 맞춘 조각같지도 않은 소모품과 소설같은 오해,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생겨난 오묘한 감정은 독한 염증과도 같다.  품어진 기억은 그리 나쁘지 않다. 그리 위험 하지도 않다. 위험한 것 은 단 하나 뿐 이다. 억지로 무언가를, 아니 누군가를 기억에서 꺼내어 짓누르려는 나의 고약하고 짖궂은 마음. 

기억이라는 우물 안에 고이 담겨 있는 그대로의 눈물을 자꾸만 자극하고 흐르게 하려는 나의 “슬프려는” 마음이 솟구칠때마다 밖을 보며 진짜 눈물을 흘리며 잊으려 한다. 오늘도 나를 찾아온 너를 피하기보다 다시 잘 타이르고 달래고, 또 소리치며 돌려보낸다. 짧지만 치열했던 감정의 소용돌이는 이제 잠잠히 자기 자리를 찾는다. 짙게 그을렸던 기억도, 나의 어둑한   마음 먼지도 이제 저 먼 발치에서 옅은 구름 사이로 몸을 숨긴다. 

어쩌다 – 미안해

일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를렀을까?

목 뒤를 타고 내리는 찌릿한 고통에도 그저 천천히 돌아 누워 얼굴을 파묻는 오늘까지 네 마음이 얼마나 아려왔을까. 도대체 어찌하며 살았길래 마음 속 에 곰팡이 그득핀 슬픔만이 자리하게 되었을까. 너 자신은. 네 주위 사람들은. 그리고 나는. 우리는 도대체 무얼 했을까… 머리가 아파온다.

스물 다섯 살의 네 시간은 울퉁불퉁 가시밭길 만 보이고, 슬픔을 뿜어내지 못해 구석구석 삭아가는 너를 내 마음 속 에 그려본다. 나는 너보다 조금 더 산 사람으로서 “이겨낼 수 있어. 수고했어” 라는 말 밖에 해줄 말 이 없다. 그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되지 못 할지 알면서도 저 멀리 독일에서 무식한 내 진심이 닿기를 시도해본다.

맑고 고왔던 네 두 눈은 어느새 무겁게 내려 앉아 마주칠 수 없다. 예쁜 얼굴은 저 먼산을 향해 바라볼 뿐 나는 너를 볼 수 없다. 그저 남은 것 이라고는 전화기 너머 들리는 너의 착한 목소리 뿐. 어쩌다 너는 모두의 짐을 이고 살아가는 아이가 되었을까. 나는 너가 이렇게 될 때 까지 왜 한번도 너를 꺼내려 하지 않았을까. 너는 괜찮을 것 이라는 믿음에 우리 모두가 너를 계속 내버려 둔 것 은 아닐까. 나에게는 그저 살면서 어쩌다 겪게 되는 우연한 변화라고만 생각했다. 아니 착각했다. 우리 모두가 무지 했고, 날카롭기 그지 없고, 이기적 이었다. 너는 그 어떤 선택의 여지 없이 짊어야 했던 이 무거운 책임감을, 그리고 희생의 고통을, 목젖까지 차올라 네 피부색이 바래버린 오늘까지 버터야만했다. 더는 손 쓸 수 없던 이 아픔을 이제야 우리에게 쉴새 없이 쏟아낸다. 네 의도와 상관 없이 쏟아지는 그 원망은 우리를 미안하게 한다. 그리고 부끄럽다. 네 마음이 가장 아픈 것 왠지 알 것 만 같다.

나에게는 “네게 어쩌다 생긴 변화”에 놀라기 바빴던 시간이었고, 너는 참으로 장하게도 오랜 시간 버텨낸 것 이다. 그렇게 네가 슬픔을 나누니 우리는 그저 갑작스럽고, 미안할 뿐 이다. 그래도 잘했다. 그리고 고맙다.

어쩌다 마주한 변화가 아닌 그 길에서 너는 충분히 오늘이 올 것 을 알고 있었고, 하루라도 네 희생의 시간을 늘리고 늘려 오늘 가장 아픈 것 이라고. 지금 가장 아픈 시간이 너를 지나 저 멀리 공기 속에 사라졌으면 한다.

어쩌다 어쩌다.. 어쩌다 이런 아픔을 알게 되어 다시금 미안해. 너를 향한 내 마음의 자리에서 항상 눈을 떼지 않을께.

천리포 바다 앞에서

코로나가 찾아온 우리의 삶은 어쩌면 많은 것 을 되돌아보게 한다.
독일에서 코로나를 피해 한국에 왔지만 크게 달라진 것 없이 집에서 매일을 또 생각 너머 생각을 쌓고, 연주 영상을 위한 연습을 하다가, 이 책 저 책 꺼내 한번씩 읽고 쌓아둔다. 특별히 이루어낸 무엇 하나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떠올리며 마음에 불안함이 파도 치기도 했지만 이를 마주하는 것 은 가끔씩 치고 지나가는 하나의 반복적인 일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크게 개의치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보았다.

이른 아침 아빠를 따라 차를 타고 천리포 수목원을 다녀왔다. 위안을 얻고 싶을때면 푸르른 산을 찾던 나에게 이번 수목원 방문은 많은 기대를 안겼다. 코로나 때문인지 사람들의 발길이 현저히 적었고, 태풍이 흝고 지나간 흔적 역시 아직까지 짙게 남아있었다. 조용한 파도소리만 들리던 이 곳 에 몇분의 봉사자분들은 뜨거운 가을 빛을 등에 이고 마스크 속으로 얼굴을 숨긴 채 태풍이 엎지른 수목원 이 곳 저 곳을 다듬고 계셨다. 키, 이름,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 입은 옷의 모양 까지도 가지각색인 나무와 꽃들을 보며 마음에 초록빛 위로를 가득 담았다. 연두 콩 색 이 잔잔히 깔린 이 곳에서 마음을 열고 모든 것을 안고 싶었다. 머리를 쬐는 초가을의 타오르는 빛이 여전히 덥게 느껴지기도 했다. 길을 따라 걷고 또 걸으며 마스크 안 내 숨은 뜨거운 더위를 피해 조금의 쉼을 필요로 했던 것 같다. 작은 나무길을 따라 걸으니 천리포 해수욕장에서 부는 바람을 마주서게 되었다. 한 풀 꺾인 더위는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았지만, 조용한 바다는 이미 가을의 공기가 넓게 덮었다. 아무도 없는 바다는 내가 그토록 원하던 상냥한 인사를 건네었다. 반가웠고 가슴 떨렸다. 독일에서 눈에 다 담지 못해 쉴새 없이 아쉬웠던 멋진 자연의 경관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내가 늘 마음 속 품고 기다려왔던 “거를 수 없는 자연의 순리”에서 오는 뜨거운 눈물을 오늘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사실 나는 바다를 그리 사랑하지 않았다. 한 여름 바다에 내리는 뜨거운 햇살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찾기 꺼려지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저 끓는 해의 손길을 피하고 싶은 그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바다를 외면했던 것 같다. 그래서 모든 것 이 그늘이고 숨을 수 있는 공간이 가득한 울창한 숲을 사랑했고, 심지어 나뭇잎이 다 떨어져 앙상하게 남은 나뭇가지일지라도 차가운 겨울의 산을 동경하였다. 나의 마음에 가장 적합한 위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년 푸름이와 부산 바다를 간 적 이 있다. 내 생애 친구와의 첫 여행이었다. 늦 여름 조용해지는 밤 바다 앞에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 였었고, 가족과 방학마다 찾았던 어린 날의 귀중한 기억이 나를 스쳐 지나갔고, 검은 밤바다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나도 시원했다. 왠지 모르게 다시 오지 못할 시간에 새삼 감사했기에 울어도 곧 슬프지 않았다. 그 날의 밤 바다는 나에게 눈물의 또 다른 소중한 의미를 다시금 새겨주었다. 그 이후부터 나는 한국의 바다를 꼭 다시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일년이라는 시간을 잊고 살았지만, 오늘 다시 그 날 밤의 눈물을 다시 만났다. 행복, 위안을 찾기 보다도 지나가는 시간을 내 손에 다 담을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늘 가르쳐준다. 조용히 내 마음을 흔드는 파도는 멈추지 않을 것 이고, 일렁이는 파도를 내 힘으로 잠잠케 할 수 없다. 흘러가는 나의 삶과 내 사람들의 삶을 인간의 그 어떤 능력으로도 멈출 수 없기에, 떠나가는 것 에 대해 억지 미련을 두기 보다 마음에 감사함을 적신 채 기억을 저 멀리 보내주어야 함 역시 배운다. 바다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산은 나에게 새 생명의 희망을 안겨주었고, 바다는 나에게 내려놓는 법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다시금 삶에 있어서 내가 그동안 악착같이 잡고 있던 독한 인간의 욕망들을 내려놓았다. 떠나 보내야 하는 것 에 대한,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아쉬움과 두려움에 흘린 눈물을 나누었고, 떠나보낸만큼 나에게 찾아올 또 다른 선물을 기대하며 광활한 바다의 푸른 빛이 나의 등을 쓸어준다. 스쳐지는 많은 생각들을 바다에 풀었다. 오늘 하루, 숲이 주는 싱그러움보다도 수목원의 노을길을 따라 눈에 담았던 반짝이는 물비늘이 주었던 막연한 소망과 사랑의 기억 한조각을 기록한다

하나의 바램이 있다면 10월 한국을 떠나기 전 다시 한번 바다를 보고 싶다. 글을 쓰다 보니 그 바램이 더욱 간절해진다. 사람이 없는 곳 과 때 를 찾아야겠지. 오늘 내가 마주했던 눈물의 시간을 한번만 더 갖고 싶나보다. 나에게 눈물은 그저 슬픔 한 가지만을 뜻 하지 않는다. 나를 돌아보면 가장 먼저 흐르는 것 이 눈물이고, 처음 만나는 누군가를 바라보아도 가장 먼저 느끼는 것 이 그 사람이 품은 눈물인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가슴을 그득히 채우는 눈물을 흘리고 싶다.나를 모르는 또 다른 바다 앞에 서서. 그리고 조용한 기도를 읊고 싶다. 한국을 떠나기 전 딱 한번만 더.

27.7.2020

내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에 책임감이 더해져 마음을 짓누른다. 그래서 나는 말을 하기 전 에 크게 웃거나 멈칫 하는 버릇이 생기기도 하였다. 조금 더 생각해보려고, 조금 더 나은 방법을 찾고자, 눈 깜빡하면 스쳐지나가는 그 짧은 시간을 붙잡고 고민을 해보지만, 오히려 그런 어리숙한 모습들이 상대에게 불편을 주기도 한다. 아직까지도 시행착오가 많지만 내 말과 행동에는 진실과 성의를 빠짐없이 담으려 한다. 다만 그 신중한 말과 행동에 가리어진 마음 속 혼란과 상처에 대한 책임은 자꾸만 회피 하였다. 누군가와의 관계 앞에서는 늘 얼음 위를 걷는 것 처럼 조심스러웠지만, 방심하는 틈마다 내 안에 쌓여가는 후회와 크고 작은 원망에는 크게 마음 쓰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피하려고 했던 것 같다.

선을 베풀고 행하는 것 에 있어서 어느새 나도 모르게 마음에 계산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나의 선이 물론 그리 대단한 것 은 절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서 그리 쓸모 있는 것 은 아니라고 하기도 한다. 나는 꼭 몸으로던 마음으로던 내가 받은 사랑과 선행을 그대로 실천하고 싶었고,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이 기뻤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부터는 기쁨의 길 옆에 피어나는 마음의 대가에 눈을 돌렸던 것 같다. 어리석은 것 잘 안다. 찰나의 순간에 눈을 돌린 나는 어느새 억울함이 가득한 사람이 된 것 만 같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억울했고, 그러려니 하며 넘기다가도 울컥하기도 했다. 그동안의 습관적 생각이 낳은 현재 나의 자리와 내 마음의 그릇의 무게가 벅차게만 느껴졌다.

우리집에서는 동호대교가 보인다. 그곳에서 오늘 누군가는 생을 마감했다. 빨간 노을 아래 구급차와 경찰차가 줄 지었고, 한강에서는 실종된 그 사람을 찾아 배가 이곳저곳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멍하니 빠르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멀리 가지 않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한시간 뒤에 모두가 철수하였고, 나는 밤새 같은 자리를 바라보았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는 다시 평범한 하루의 밤이 찾아왔고, 그리 많은 차들이 다니지 않았다.

내가 답답함을 속에 이고, 수북히 쌓인 원망더미를 바라보며, 허탈함을 부여잡고 온갖 어두운 생각을 하는 동안, 한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났다. 아마도 극으로 치닫는 절실함에 쫓겨서, 그래서 떠나갔을 것 이다. 괴로움, 허망함, 슬픔 뒤에 자리한 삶에 대한 간절함을 가슴에 꼭 쥐고 떠나갔을 것 만 같다. 그렇게 한 사람이 멀리 가는 동안, 나는 소중한 내 삶에 대한 책임을 자가격리를 핑계삼아 그저 회피하려 했다.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나의 헛된 회피와 원망의 시간이 그 사람에게는 간절히 살고 싶었던 꿈이었을 수 도 있다. 물론 나는 이름도 알지 못 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지만.. 주어진 나의 삶에, 살아 숨쉬는 나의 마음에 진실만 자리할 수 있도록 책임 지고 지키는 법을 다시 배우려 한다. 넘치는 감사함을 가장 먼저 기억하며, 지혜로운 말을 마음에 품고, 빠르게 지나가는 “지금 이 순간“ 에도 모든 진심을 담아 살아보는 노력을 해보려 한다.

2020.5.20

ssss

어렸을때나 지금이나 하고 싶은 일을 미뤄야 하는 것이 극도의 억울함으로 다가올때가 있다. 해야 일을 먼저 해내지 한다면 나에게는 하고 싶은 마저도 손에서 멀어진다는 배운다. 혼자만의 삶이라면 하고 싶은 미뤄도 된다 하지만, 나와 함께 걷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나를 위해 기다려주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미안함과 초조함은 더욱 커진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나를 그리워 하는 가족과 함께 하는 이다. 하지만 내가 해야 일은 지금 이곳에 있다. 미안함이 가득한 이곳 저곳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한 사는 같다.

누군가를 위해 살아야하고, 미안함은 자리하고,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나의 기쁨이고, 눈치도 지나치게 많이 본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살아서 오히려 그것이 주위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기도 한다. 나는 그런 마음이 배려이자 선한 길로 가는 이라 믿었지만, 오늘날 길에서 피어난 나의 이기심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나라는 사람을 알게 하고 함께 나가는 어려움을 주는 같다. 남을 위하는 , 남을 존중하는 , 나아가 내가 꾸는 꿈까지 누군가가 아니라면 아니라고 끄덕이는 최선이라 생각했지만, 어느새 내가 원하는 ,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혼란이 생기고, 그리고 억울함은 말도 못하게 커지기도 한다. 끝내는 자신을 하고 후회하곤 하지만, 내가 모든 을 깨달았을 때 는 이미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 그렇게 나를 흔들고 상대를 흔들며 살아온 내가, 오늘 내가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한 굳은 책임감이 생겼다. 이것은 지금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하는 마음.. 그것이 누군가를 오래 기다리게 하겠지만, 그만큼 음악 앞에서만큼은 바로 서고 싶은 마음이 크다.

코로나 팬데믹은 나를 많은 가르친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혼란은 나를 걱정하게 했다. 그리고 고요함 에서 나를 돌아보게 했다. 모든 멈추었을때 나는 한편으로는 감사하기도 했다. 의지가 아닌 에서 모든 정지 시켰고, 나는 나의 게으름이 아닌 세상이 주는 경고에 밖을 나오지 않아도 되었다. 어떤 하루는 침대에서 뒹구르는 시간 조차 너무 즐거웠다.

함께 사는 가족들이 나에게 물었다. “너는 어차피 학교도 가도 되고, 연주도 취소 되었는데, 뭐하러 아직까지 방에서 하루종일 피아노를 치니라고. 아들은 나에게 굳이 음악이 필요 없다고 가볍게 이야기 하기도 한다.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으라고 한다. 웃음을 머금으면서도 마음 에서는 화가 솟구쳤다. “아무것도 없는지금이 나에게는 순간의 달콤한 여유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자리가 좁아지고, 일자리는 줄어들고, 모두가 함께 고통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음악의 세계를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은 그저 음악은 필요 하지 않은 같다고 이야기 한다. “ 시국에 무슨 음악은..” 공연의 기회가 사라진다. 살아남기 바쁜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음악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공연문화가 필요치 않는 세상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잃는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피아노 앞에 앉고, 손가락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베토벤의 편지를 찾아 읽고, 음악을 공부하는 그저 한량들의 하루가 아닌, 우리의 열정이자 , 그리고 역할이다. 연주가 있던 없던 이것이 우리의 삶이다.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넷 레슨을 찍으려 삼각대를 구입하고, 하루에 한명이던 두명이던 개인 레슨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밖을 나선다. 누군가에겐 필요할때만 듣고 이용하는 음악이고, 피아노 선생님이지만, 이렇게라도 하루하루를 이어나가야만 하는 있는 우리의 삶이다. 언젠가는 오늘을 돌아보며 웃으며 이야기 오리라 믿는다. 언젠가는 클래식 음악세계가 다시금 복구되어 모두가 각자의 자리를 다시 찾아 웃을 있길 바란다.

나의 오랜 꿈이었던 “백건우 선생님같은 피아니스트 아마도 지금 나의 모습과는 가깝지 않지만, 그래도 때문에 오늘도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나가게 한다. 음악을 하기 위해서 내가 해야 있는 일을 찾아본다. 그것이 금전적인 활동이던, 교육활동이던, 배움의 시간이던, 내가 있는 들을 생각해본다. 모든 들을 생각하고 찾아야 나의 마음에도 여유가 생길 같다. 그리고 여유로움이 조금이라도 쌓인다면 다시금 가족과 함께 있을 같다. 하루에도 백번 천번 마음이 흔들리고, 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하고, 약한 마음을 붙잡고 혼돈의 시간을 지내기도 하지만, 이러면서도 버텨내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 잡고 함께 없는 순간이 그리운 사람들이지만, 내가 어디에도 건강하게 있지 한다면, 그만큼 함께 하는 사람들의 걱정, 그리고 기다림은 더욱 커질 이다. 함께 날을 기다려본다. 그때까지는 내가 해야 해본다.

내가 아닌.

한때는 내 자신의 연민에 빠져 슬픔만이 나를 채우던 때 가 있었다. 묵묵히 걷다가도 어느날은 한없이 조급해지고, 나도 모르게 상처받은 것 을 기억에서 끄집어 내어 용서 하지 못 했다. 내가 생각했던 기준이 무너지는 것 에 크게 흔들렸고, 나의 반대편에 서 있는 다른 이 의 눈을 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나 혼자만이 지고 가는 삶이라 생각했고, 가끔씩은 이 길이 외롭다는 생각도 들었고, 나를 위해 희생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차마 고마움을 표현 할 수 없었다. 내가 택한 이 길이 부모님, 가족, 친구들, 교수님, 나를 아는 언니 오빠 동생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함께 돌을 나누어 지고 걸었던 복된 길 임을 알지 못했다.

과연 나는 인격적인 관계를 위해 성실히 기도하며 살아왔나 의문을 품는다. 나에게는 그저 하늘에 대고 소리 치고 밤마다 울며 바래오던 날이 더 많았다. 이 관계의 중심이 어디에 있었나 생각해보면 오로지 내가 보고싶은 세상이었고 내가 그리던 결과 였던 것 만 같다. 내가 처한 상황의 변화를 위해 기도해왔고, 내가 속할 안전한 삶을 위해 기도해왔고, 내가 기뻐할 결과를 바래왔던 삶이었다. 오로지 나.. 내가 찾아오기 전 그 자리부터, 홀연히 남기고 떠난 발자국까지 지켜주시던 큰 축복에 감사하기 보다는 원하는 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들 에 대한 원망과 그로 인해 마주하게되는 나의 초라함에 두려움이 가득했었다. 기다림을 통해 역사 하셨던, 그리고 많은 것을 보게 해 주셨던 선물에 크게 감동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마치 원하던 생일선물을 받지 못한 어린아이의 투정과도 같이 “내가 원하던 것 은 이게 아닌데.. 저번에 기도 많이 했는데..” 하며 같은 말만 쉴새없이 되내이며 섭섭함을 표하고, 다음날이면 또 다른 새로운 선물을 마음 속 에 정하고 기다리곤 했다. ” 내가 이렇게 까지 했는데 이번에는 주시겠지. 이번에는 꼭.. 꼭  주시겠지..” 반복된 삶을 사는 때 에는 알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자 였는지.. 내가 받은 것 이 얼마나 컸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누리고 살았는지. 아쉬운 마음으로 떠난 내 마지막 발자국은 지금도 고이 지켜지고 있었으며 어떠한 사고도, 어려움도 없이 그저 그 자리에 하나의 소중한 축복의 기록으로 새겨져있다.

오늘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슬펐다.. 코로나로 인해 고군부투했던 삶에 더 큰 돌덩이가 얹어진 이들의 고통이 이곳 저곳에서 보였기 때문이다. 아직도 미숙한 희망으로 살아가며 따스한 빛이 나를 감싸기만을 기다리는 내 자신을 보니 한 없이 부끄러워졌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 위로의 말과 기도밖에 없는 것 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너는 그래도 편할텐데 무슨 걱정이냐, 네 아버지 돈이 있는데 어디서 안전한 삶 타령이냐는 지인의 말에 예전처럼 섭섭한 감정이 짙어지기 보다는, 그저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 뿐 이다.  나도 모르게 자리하던 안일한 마음가짐이, 세상을 바라보는 게으른 시선이, 그 와중에 누군가를 위로하려던 오지랖이 그 사람에게는 괘씸해보였나보다. 내가 뭐라고 화를 내나.. 아무것도 아닌 내가 그 사람 말대로 그저 운이 좋았어서 지금까지 큰 걱정 없이 지내는데.. 사람들의 짐을 모두 지어주지는 못 할 망정 또 다른 결과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거리는 나의 모습을 버리지 못하니..  무엇이 잘못 된 것 일까. 내가 어떻게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여러가지 고민과 자책이 섞이는 와중에 괜찮은 척을 하려해도 누군가의 말이 날선 창이 되어 깊숙한 곳 이 찔린 듯 많이 아프다. 그 창을 억지로 뽑을 수 없음에 마음이 하루종일 뻐근하다. 그냥 그렇게 꽂힌 채 로 조용히 지내는 것 이 맞는 것 일까.. 어떤 말로도, 어떤 마음으로도, 어떤 행동으로도 내 자신을 방어할 수 없음에 마음이 무겁다. 그저 지금은.. 내 자신을 내려놔야한다.. 지금이야말로 정말 “나”는 중요치 않다.  그동안 내가 모든 것 의 중심이 되어 복을 누리던 삶을 살았던 것 에 감사하다면, 다른 누군가의 말을 조금 더 이해해보려 한다. 인간은 누구나 한번쯤은 크게 지치기에. 두려움도 가득하고 실망도 가득하기에.. 뒤죽박죽 된 세상 속 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싶은 마음은 그 누구도 없을 것 이라고 믿는다. 그저 힘들기에 그렇게 말 할 수 밖에 없다고.. 섭섭한 마음을 참아 넘기면 괜한 미움이 생길 것 같아 글에 담아 마음을 풀어낸다. 오늘만큼은.. 아프긴 해도 오늘만큼은 “나”를 잊어보려한다. 앞으로도..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서도 내가 아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내가 아닌, 자연과 나 사이에서도 내가 아닌.. 모든 것 에서 내가 아닌.. 내가 아닌 곳 에서 선한 것 을 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