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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2022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좋은 음악인으로 기억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얽매여 살지 않다보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던 지난 세달이다. 비행기에서 내린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정신 혼미한 시간이지만, 오랜만에 조용히 마음을 정리하며 글을 적어본다. 이 고요함이 무척이나 그리웠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는 것 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예전의 나와 다르게, 새로운 삶에 발을 디디며 마음을 표현하는 것 에 유연해졌다. 물론 아직까지 여러면에서 조심스러운 것 은 사실이지만, 오며가며 마주치는 인연들에게 내 진심을 전하는 데 있어서 조금 더 용감해지기도 하였다. 다만, 좋고 싫음을 명확히 하고 선을 긋는데는 아직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음악에도 같이 적용되었다. 돌고 돌아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 후 그동안 숨겨왔던 음악을 향한 나의 마음을 과감없이 드러낼 수 있었다. 특히나 연습실 사용에 제약이 없는 것 이 나에게는 매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나만의 스튜디오를 갖는 다는 것 에 참으로 감사하다. 실패를 거듭하고, 다시 또 도전하고, 실수를 돌아보며 부족함을 채워나갈 수 있을 만큼의 너그러운 장소와 시간이 주어진 다는 것 은 나에게는 선물과도 같다.

남들보다 곡을 이해하는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에 늘 그 시작은 고되다. 하지만, 새로운 곡을 배우는 것이 이렇게도 즐거울지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가끔은 시간에 쫓겨 어떻게든 만들어 내어야 하는 부담감에 좀처럼 손에 붙지 않는 passage를 반복해가며 밤을 새기도 하고, 결국 마음처럼 빠르게 돌아가지 않는 내 두뇌 회전이 원망스러워  눈물이 왈칵 넘치기도 했지만, 그런 고통의 시간 조차 너무나도 즐거웠다. 버거운 마음이 들때면 지난 날을 떠올리곤 한다. 목마름이 가득했던 날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나는 다시금 이 순간에 감사하며 어지러운 머릿속을 잽싸게 비워내었다. 불과 일년이 채 안 되었을 만 해도 한가지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저 땅 끝 밑으로 끌어 내렸다면, 지금은 그에 비해 무거운 생각을 하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연주를 함에 있어서 느끼는 아드레날린은 그야말로 기쁨의 절정을 만나는 순간이다. 무대에서의 기쁨의 시간을 위해 차곡차곡 준비하는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즐거웠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함께 만드는 음악이라 더 즐거웠을 수 도 있다. 귀를 열고 내 소리를 낮추는 것. 아니면 벌어진 공간을 나의 소리로 채워나가는 것,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것. 몇달 전 만 해도, 내가 이렇게 즐거이 일하리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간절함으로 하루하루를 살던 그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 깊숙이 뜨거움이 오르 내린다.

대학교때 내 자신에 대해 배운 연주를 아직까지 또렷이 기억한다. 아마도 브람스 소나타 3번을 연주 중 이었을 것 이다. 한참 연주 하던 중 뜬금없이 내 머리 속 을 스치던 단어가 있었다. 음악에 관련된 것 도 아니었고, 내 일상 생활과 연관이 있던 단어도 아니었다: 만두. 바로 이 짧은 “만두”라는 단어가 내 머리 속 을 휘젓는 순간, 내 두 눈은 그 단어에 의해 완벽히 어둠으로 가리워졌고, 만두를 되내이던 당황 가득한 내 목소리가 귀를 가득 채웠다. 2악장을 연주하고 있던 나에게 느린 악장 사이를 휘젓고 다니는 이 “만두“라는 단어를 두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 기가막힌 두 글자를 뇌리에서 없애려고 느린 멜로디와 왼손 코드를 되내이고 처절한 노래로 그 틈을 매우며 연주를 이어나갔다. 한 단어가 내 머리속을 휘젓고, 온갖 변형된 모습으로 내 눈, 귀, 머리를 흔들었던 그 날 이후부터 내가 긴장하면 찾아오는 이 방해요소에 대해서 공부해보려 꽤나 애썼다.

다행히도 그 이후로 특정 단어가 내 연주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일은 없었지만, 가끔 느린 악장 연주 중간 중간 귓가를 건들이던 찰나의 소음에 의해 내 청력이 무대 저 먼곳의 작은 소리까지 반응 하는 불시의 공격 역시 경험하며 온전히 음악에 집중하는 법을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나는 연주 중간에 내게  일어날 수 있는 최대한의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그들을 방어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야만 했다. 나라는 사람이 갖고 있던 이 희한치도 않은 결점이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으로서의 자격이 떨어지는 것 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책에서는 말한다. 우리의 뇌는 반복된 근육의 빠른 움직임을 익힘으로써 훈련 하기 때문에 빠른 악장을 연주할때는 오히려 실수할 일이 적지만, 느린 악장은 근육의 움직임과 그 패턴에만 의존하는 것 이 현저히 적기 때문에 확실히 방해 받을 가능성도 크고, 그러므로 실수 할 요인이 높다고. 그 이후 부터 연주를 준비하는 연습의 시간 중 많은 시간을 피아노 뚜껑을 닫은채 노래를 부르며 그 멜로디와 손 끝 감각을 익히고 느린 악장을 연습하곤 한다. 이 연습 방법이 옳고 그름을 떠나, 나에게는 귀중한 준비과정 이다. 연주를 multidimensional한 방법으로 시도하며 준비를 갖춰야 내가 눈을 감았을때도 떴을때도 자유함을 갖고 연주할 수 있음을 배운다. 사실 다른 이들에게는 이런 “준비“가 불필요한 시간낭비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자질구레한 준비는 나에게 있어서 매번 예습과 복습처럼 이루어진다.  

나를 알아가는 것, 그리고 내 음악을 알아가는 것 이 매우 흥미롭다. 그저 인지하는 점 에서 끝나는 것 이 아닌, 내가 원하는 소리를 전달 하는 방법을 배우고 깨어진 금을 붙이고 이어나가는 이 시간이 매우 즐겁게 다가온다. 물론 모든 에너지를 보안에만 쏟아 붓기에는 해야 할 다른 많은 일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오랫동안 묵혀온 버릇의 뿌리를 뽑고 새로운 씨앗을 다시 심는 것 은 결코 쉽지 않은 일 이지만, 미비한 보안의 시간을 통해 음악과의 관계가 조금씩 더 돈독해지는 것 같다.

이번 학기 함께 지내는 친구들, 교수님들의 연주를 들으며 내 귀는 참 감사한 시간을 누리었다.  음악을 통해 누군가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 그리고 그 언어를 이해하고 함께 대화한다는 것은 내 마음을 부유케 한다. 사람으로서 이들을 알아가는 것 또한 너무나도 귀하고, 음악을 통해 그 관계가 더 깊어짐을 경험하며 한 학기를 마무리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지만 음악 안에서만큼은 늘 한 발짝 앞서 나를 이끌어주고 넘치는 힘을 나눠준다. 장난치며 머금는 미소가 참으로 순한, 그리고 연습실에 잔뜩 두고 간 과자들과 귀여운 손 편지까지. 저 멀리서도 이름을 부르고 다가와주는 살가운 사람들. 내가 그들의 깊은 속 까지 다 알기에는 아직 짧은 시간이지만 내 눈 에는 참 선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귀한 마음의 사람들인만큼 그 이상의 멋진 음악을 하고 있다. 어느날은 그런 그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더 이상 바랄게 없다는 생각도 했다.

누구나 그렇듯, 그 어느 하나 나쁠 것 이 없었기에 앞으로가 살짝 두렵기도 하다. 내가 이렇게 기쁜 시간을 보낼 자격이 있나 싶다. 내가 지금껏 보낸 음악을 하는 시간 중 Schafer 교수님과의 시간 다음으로 가장 행복한 삶의 계절 인 것 같다.  이 모든 것 을 가능케 하신 주님의 계획은 나를 다시 한번 무릎 꿇게 하신다. 그 분은 다 아신다. 나를 아시고 세상을 아신다. 언젠가는 어두운 광야에 다시 한번 발을 내 딛고 눈물을 훔치는 날을 마주할 것 이다. 하지만, 그 또한 내 삶의 여정의 한 부분이기에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 중 이다. 담대해져야 하는 마음은 가끔씩 그 중심을 잃고 흔들리곤 하지만, 오늘 나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새로이 다가올 시간을 준비하려 한다. 오랜시간 아픈 글을 적는 것 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 지금 이시간은 담담히 오늘의 기억을 적어 내려갈 수 있어 매우 평온하고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