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광야를 지나며 토해내었던 눈물 속 에서도 고요히 미안하다는 말씀만을 건네시던 주님의 크신 계획을 보게 되었다. 원망 가운데에서도 뭔가를 붙잡았어야 했기에 어둠속에서 쉬지 않고 기도하였다. 사실 기도가 아닌 어린 아이의 부르짖음과도 같았다.
내가 딛고 숨 몰아쉬던 그 광야의 땅 가운데 하나님은 “너를 힘들게 하여 미안하다. 하지만 내 눈 속 너의 믿음은 빈 독에 부어내리는 물과도 같다. 곧 나는 너를 완벽히 연단시키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며 꺼이꺼이 흘리던 눈물을 닦고 다시 새 하루를 시작하게 하셨다.
뒤 돌아보면 그 곳이 가장 주님 가까운 곳 이었음을 깨달았다. 파도가 잠잠해졌을때, 어둠이 지나고 새벽 동이 틀때야, 마음을 내리치는 회오리가 멈추었을때, 시끄러이 나를 뒤흔들던 바람이 고요함을 찾았을때. 그때 비로소야 나는 보게 되었다.
나의 악한 모든 것을 무너트리시고, 억울함 섞인 목소리 조차 빼앗아가시고, 기댈 수 있는 모든 것 들을 눈 앞에서 치우셨을때. 모든 힘을 잃게 하시고, 고집 가득한 인간의 의지를 부러트리신 후에야, 내 두 손, 두 발, 눈을 뜨는 근육 하나하나 하나님이 통치하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무릎 꿇게 하셨다.
10년의 광야의 시간 속 에서 나를 꽉 붙드셨던 하나님의 임재가 이제서야 나는 보이는 것 만 같다. 어렴풋이 감싸던 그림자처럼 나의 뒤를 지키던 당시의 그 모습이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뜬 지금 비로소야 보인다. 진한 발자국을 통해 애써 일하셨던, 나보다 더 바삐 움직이시고 더 많은 눈물을 흘리셨던. 주의 모든 것이 내 삶에 증거로 남아있다.
내 기도가 하나부터 열까지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정답을 믿으니 나는 이제 바랄 것 없다. 사실.. 내가 옹졸히 나열하던 소원보다도 더 큰 선물을 이미 예전부터 준비하시고 그렇게 나를 찾아오셨기에 그저 감사함만으로 고백하기에는 그 은혜의 크기가 가늠할 수 없이 크다. 어렵다. 그 벅찬 임재를 말로 표현하기에는 ..
아무리 모태신앙이라 한들 단 한번도 하나님의 존재를 가까이 알 수 없던 나는 중학교 3학년 가을 처음 하나님을 붙잡게 되었다. 너를 상처 입힌 자들을 원망하지 말고 먼저 무릎 꿇고 너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까지 내가 주를 경외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나의 부모님 조차도 알 수 없던 땅 깊 은 곳에 자리 잡았던 나의 썩은 뿌리를 뽑아내신 주님. 그렇게 하나님은 나에게 가장 따뜻하이지만 가장 무서우신 분이시다.
10대시절 폭풍같은 주님과의 대면 후 그렇게 또 평안한 삶 속 에서 피어난 신앙의 게으름. 그런 긍정적 나태함이 당연시해지던 스물셋부터 시작된 십년의 연단의 시간동안 나를 무섭게도 고치시고 또 치유해주신 하나님이시다. 돌이켜보면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그가 하신 일들이다. 나의 음악 속 에서, 나의 삶 속 에서, 나의 만남의 축복 안 에서 바쁘게도 많은 일들을 이루어내셨다. 나의 끝 없는 방황 속에서도, 쉴새 없이 변하는 환경과 사람들 속 에서도, 변하지 않는 단 한가지를 알고있다. 지금 글 을 쓰는 이 시간 에도, 10년 전 에도, 20년 전 중학생때도, 그리고 내가 세상을 마주하기 이 전부터 같은 자리에서 이미 이 모든 것 들을 예비하셨다.
다시 시작되는 여정에서 나는 한가지의 약속을 한다. 순종할 것 이라는 것. 내가 걷는 길,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새로운 환경 안 에서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으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것 임을 약속했다. 가져가시면 채워주실 것 이고, 부러트리면 세워주실 것 임을 믿는다. 그래서 감히. 정말 감히. 야베스의 믿음에 비하면 신앙심 하나 없는 나 따위가. 순종하려한다. 주의 모든 것 을 경험하게 하셨으니 순종 아니면 다른 길은 없을 것 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