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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툭 털고 일어나는 법

스토니브룩 에서의 새벽을 일찍 시작한다.

주일 아침 일찍 학교를 가려고 새벽기도를 마친 5시부터 준비를 시작하였다. 샤워를 끝내고 나와 아차 하는 순간 나는 내 방 문이 굳게 잠긴 것 을 깨달았고, 이미 문 앞에 다가왔을때는 너무 늦어버렸다. 빨리 핸드폰으로 RA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연락 해야 했지만, 내 핸드폰은 당연히 방 안 에 있었다. 핸드폰을 빌릴 수 있는 학생을 찾아야만 했다. 내가 마주했던 문제는 기숙사 전체 빌딩 안 에는 아직 네명의 학생이 채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 이었다. 심지어 그 친구들은 모두 다른 층에서 살고 있는 듯 했다. 나와 함께 거실과 부엌을 공용하게 될 친구들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고, 그렇게 나는 핸드폰을 빌릴 사람을 이 큰 건물 안 에서 찾아야만 했다. 나는 당황할 새 없이 새벽 5시부터 세시간을 샤워가운만 걸친 채 맨발을 딛으며 빌딩을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그 세명의 학생들이 어느 곳 엔가 살고 있을텐데 하는 마음으로 계속 빌딩을 돌고 돌았고, 어쩌면 건물 앞을 지나갈 누군가가 있을까 싶어 출입구에서 쪼그리고 앉아 투명문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학교카드 조차 방 안에 있었기에 도움을 구할 목적으로 빌딩까지 나가게 되면 아예 들어올 수 조차 없었다. 말도 안되는 도전이라도 해보려 출입문이 10초간 열림 상태로 지속 되도록 자동 열림 버튼을 누르고 그 짧은 시간 안에 밖으로 힘차게 뛰어나가 건물 주차장과 맞은편 기숙사 밖에 혹여나 누군가가 지나가고 있진 않은지 재빨리 확인하고 다시 뛰어 들어오기를 반복하기도 하였다. 맨발로, 샤워가운만 입은채로, 나는 내 삶에 처음으로 부끄러운 차림으로 건물 안밖을 휘젓고 다녔다. 5시부터 시작된 나의 모험은 8시가 되어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해는 밝게 떴지만,  주일 아침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더 고요했다.  9시가 가까워져오는 시간 한 남학생이 2층에서 잠에서 덜 깬 채로 내려왔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그에게 달려갔지만, 그 학생은 샤워 가운만 입은 채 자신에게로 뛰어오는 나를 보고 흠칫 놀랐는지 인사만 건네고 빠른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핸드폰 좀 빌려달라고 말을 건네었지만 적지 않게 당황했던던 그는 지금 자기에게 핸드폰은 없다고 하며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와 자기 방으로 잽싸게 올라가는 듯 했다. 섭섭한 마음이 미세하게 들려던 찰나 창문에 비친 나의 행색은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 없었다. 아침부터 못 볼꼴 보게 한 그 학생에게 미안하려던 때 어느새 그는 다시 내려와 나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나는 RA에게 전화를 하였고, 잠에서 아직 깨지 않았던 그 여학생 또한 피곤에 푹 잠긴 목소리로 곧 나에게 오겠다고 한다. 착한 두 학생 덕 에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올 수 있었고, 의도치 않은 노출의 아침은 그렇게 9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그렇게 정신 없는 주일의 아침을 보낸 나는 결국 하루종일 방 밖을 나서지 못한 채 집나가버린 차분함을 찾으려 했다. 아침의 실수는 뒤로 하고 다시 새로이 시작되는 주를 맞이하며 조금 더 정신 차리고 살자 다짐하였다. 그렇게 당찬 포부를 갖고 맞이한 월요일의 새벽, 기도를 끝내고 일찍 학교를 가고 싶어 자전거를 타고 방을 나섰다. 아직은 날이 어두워 잘 안보였는지 새벽 풀밭에 뿌려지는 스프링쿨러에 한번 더 흠뻑 샤워 하며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이른 새벽이었고, 아직 학교는 학기 시작 전 이라 조용하였다. 조용한 나의 등교길은 사람 하나 없었고, 아직 청소차가 오기도 전 인 매우 이른 시간이었다.  페달을 밟으며 바람을 가르던 나는 나보다 더 큰 사슴을 눈 앞에서 마주하였고, 몸집은 크지만 참으로 순하던 사슴의 모습이 신기하여 잠깐 가던 길을 멈추고 조용히 동영상으로 그 모습을 담으며 인사도 건네보았다. 그렇게 인사를 건네고 나는 다시 자전거를 밟았고, 발을 뗀지 수초도 되지 않아 길 한바닥에 내동그라졌다. 길에 튀어나온 돌 뿌리를 넘다가 자전거 균형 조절을 잘 못한 탓인지 순간 두려움에 휩싸였는데, 몸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 생각 이 들기도 전 앞으로 고꾸라지며 시끄러이 넘어졌다. 골을 흔드는 찡한 아픔보다는 민망함이 파도처럼 몰려왔던 터라 빨리 자전거를 찻길에서 끌어내어 갓길에 앉았다. 당황해서 주위를 살피던 차 나의 초라한 추락을 바라본 그 사슴과 눈을 마주쳤다. 그는 같은 자리에 서서 어처구니 없다는 식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인간이 꼭두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나와 처음 보는 자신에게 뜬금없는 인사를 건네더니 혼자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낑낑대고 있는 모습에 어지간히 놀랐나보다. 사슴에게 부끄럽고 미안해서 아프다고 소리도 못 내었다. 고요한 새벽의 길. 그 누구도 나를 밀지 않았고, 나를 억지로 끌어내지도 않았다. 그저 나의 두려움에 놀라 방향을 잃고 넘어졌다.

절뚝이며 자전거를 이끌고 다시 기숙사로 돌아왔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번 스프링쿨러에 시원한 샤워를 하였다. 자전거는 브레이크 레버와 핸들바, 그리고 라이트까지 앞부분이 모두  부서져버렸다. 오랜만에 넘어지는거라 꽤나 아팠지만, 신체적 통증에 한층 무뎌진 내 자신을 바라보았다. 예전의 나라면, 피가 계속해서 흐르는 상황을 마주하고 눈물이 주륵주륵 멈추지 않았을텐데, 오늘은 그냥 물로 살짝 닦아내고 휴지로 두 무릎을 칭칭 감은채 찢어진 바지만 얼른  갈아입고 다시 학교로 나섰다. 무릎을 다 피지 못한 채 엉거주춤 20분을 걸어 학교를 걸어가다보니 어느새 찡하게 아렸던 아픔마저 조금 더 나아진 듯 하다.

오늘 나는 삶을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을 배웠다 –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며 넘어져도, 다시 툭툭 털어내 일어나고, 상처에 연연하지 않는 것. 예전의 나의 삶은 몸이 무너질때면 마음이 먼저 무너지는 모래성 같았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상처에도 마음이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와르르 무너지곤 했는데, 오늘 이렇게 고꾸라지고 온 몸이 아리는 상황 가운데도, 마음이 참으로도 담담했다. 쓰린 상처는 결국 연습이 끝나고 학교 클리닉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그 마저도 그리 아픔에 내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게 되었다. 몸이야 며칠 욱신거리겠지만, 상처야 오래 가겠지만, 흔들림 가운데에도 나의 마음이 의연하도록 애써 그 힘을 키워주신 하나님의 연단의 시간에 감사드린다.

상처를 치료 받으며 누워있는 한시간동안 말씀을 들으며 마음을 다시 눌러내렸다. “힘빼야 쓰임 받는다“고 말씀하시는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긴장감을 안고 의지에 가득찼던 지난 며칠의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셨다. 잘 해내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부지런히 움직이는 삶을 살자는 인간적인 욕심에, 그리고 두번째 주어진 기회만큼은 더 앞서나가는 삶으로 보답하고 싶은 나의 조바심에 사뭇 놀라신 하나님이 몸과 마음에 들어간 힘을 다 빼도록 하신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넘어졌을때 다시 묵묵히 일어나게 하셨다. 아픔에 연연하지 않고 잠잠히 나를 돌아보게 하신 것 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참으로 웃음이 나는 이틀의 시간동안 나는 아직도 이 환경에 완벽히 적응 되지 못 하였음을 보여주지만 그래도 나는 이렇게 성장을 만나고 감사함을 배운다.

이스라엘 이후 자전거를 많이 타지 않아 혹여나 다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지난 3일의 시간 동안 새벽시간을 이용하여 혼자서 주차장을 이곳저곳 누비며 다시 몸에 익혔고, 오늘 새벽 그렇게 자전거 패달을 밟아 길을 떠났고, 비록 나의 어리석음에 철푸덕 넘어졌지만, 그렇게 넘어진 나를 담담히 일으키시고 내일을 준비 시키시는 하나님을 다시 마주하게 하셨다. 내가 넘어진 모습을 본 이도 사슴 한마리 뿐이라 참으로도 감사하다. 준비의 완벽한 끝은 없기에 부족함 가운데 다시 나아가게 하시고, 순종하게 하시고, 그렇게도 어느새 나는 자전거가 무섭지 않아졌다. 긴장 가득한 이곳에서의 첫 일주일이 흐르고 있다. 힘 빼고, 나의 고집 섞인 의지는 내려놓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차분하게, 그리고 깨어있는 삶을 살리라 다짐해본다.

2022.07.31

내가 광야를 지나며 토해내었던 눈물 속 에서도 고요히 미안하다는 말씀만을 건네시던 주님의 크신 계획을 보게 되었다. 원망 가운데에서도 뭔가를 붙잡았어야 했기에 어둠속에서 쉬지 않고 기도하였다. 사실 기도가 아닌 어린 아이의 부르짖음과도 같았다.

내가 딛고 숨 몰아쉬던 그 광야의 땅 가운데 하나님은 “너를 힘들게 하여 미안하다. 하지만 내 눈 속 너의 믿음은 빈 독에 부어내리는 물과도 같다. 곧 나는 너를 완벽히 연단시키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며 꺼이꺼이 흘리던 눈물을 닦고 다시 새 하루를 시작하게 하셨다. 

뒤 돌아보면 그 곳이 가장 주님 가까운 곳 이었음을 깨달았다. 파도가 잠잠해졌을때, 어둠이 지나고 새벽 동이 틀때야, 마음을 내리치는 회오리가 멈추었을때, 시끄러이 나를 뒤흔들던 바람이 고요함을 찾았을때. 그때 비로소야 나는 보게 되었다.

나의 악한 모든 것을 무너트리시고, 억울함 섞인 목소리 조차 빼앗아가시고, 기댈 수 있는 모든 것 들을 눈 앞에서 치우셨을때. 모든 힘을 잃게 하시고, 고집 가득한 인간의 의지를 부러트리신 후에야, 내 두 손, 두 발, 눈을 뜨는 근육 하나하나 하나님이 통치하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무릎 꿇게 하셨다.

10년의 광야의 시간 속 에서 나를 꽉 붙드셨던 하나님의 임재가 이제서야 나는 보이는 것 만 같다. 어렴풋이 감싸던 그림자처럼 나의 뒤를 지키던 당시의 그 모습이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뜬 지금 비로소야 보인다. 진한 발자국을 통해 애써 일하셨던, 나보다 더 바삐 움직이시고 더 많은 눈물을 흘리셨던. 주의 모든 것이 내 삶에 증거로 남아있다. 

내 기도가 하나부터 열까지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정답을 믿으니 나는 이제 바랄 것 없다. 사실.. 내가 옹졸히 나열하던 소원보다도 더 큰 선물을 이미 예전부터 준비하시고 그렇게 나를 찾아오셨기에 그저 감사함만으로 고백하기에는 그 은혜의 크기가 가늠할 수 없이 크다. 어렵다. 그 벅찬 임재를 말로 표현하기에는 ..

아무리 모태신앙이라 한들 단 한번도 하나님의 존재를 가까이 알 수 없던 나는 중학교 3학년 가을 처음 하나님을 붙잡게 되었다. 너를 상처 입힌 자들을 원망하지 말고 먼저 무릎 꿇고 너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까지 내가 주를 경외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나의 부모님 조차도 알 수 없던 땅 깊 은 곳에 자리 잡았던 나의 썩은 뿌리를 뽑아내신 주님. 그렇게 하나님은 나에게 가장 따뜻하이지만 가장 무서우신 분이시다.  

10대시절 폭풍같은 주님과의 대면 후 그렇게 또 평안한 삶 속 에서 피어난 신앙의 게으름. 그런 긍정적 나태함이 당연시해지던 스물셋부터 시작된 십년의 연단의 시간동안 나를 무섭게도 고치시고 또 치유해주신 하나님이시다. 돌이켜보면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그가 하신 일들이다. 나의 음악 속 에서, 나의 삶 속 에서, 나의 만남의 축복 안 에서 바쁘게도 많은 일들을 이루어내셨다. 나의 끝 없는 방황 속에서도, 쉴새 없이 변하는 환경과 사람들 속 에서도, 변하지 않는 단 한가지를 알고있다. 지금 글 을 쓰는 이 시간 에도, 10년 전 에도, 20년 전 중학생때도, 그리고 내가 세상을 마주하기 이 전부터 같은 자리에서 이미 이 모든 것 들을 예비하셨다.

다시 시작되는 여정에서 나는 한가지의 약속을 한다. 순종할 것 이라는 것. 내가 걷는 길,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새로운 환경 안 에서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으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것 임을 약속했다. 가져가시면 채워주실 것 이고, 부러트리면 세워주실 것 임을 믿는다. 그래서 감히. 정말 감히. 야베스의 믿음에 비하면 신앙심 하나 없는 나 따위가. 순종하려한다. 주의 모든 것 을 경험하게 하셨으니 순종 아니면 다른 길은 없을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