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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21

울음을 멈추는 법. 두려움을 안고도 잘 살아가는 법. 사람들의 의연한 마음가짐을 닮아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 …

밤이 되자 한 없이 굵어지는 빗줄기에 같이 울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빗물과 흙으로 섞인 땅에 질척인다.

뭉그러지는 내 의지와, 엉킬대로 엉켜버린 이 마음을 태워버리고 싶다.

눈물을 흘리는 것 에 두려움이 없었고 그것이 곧 나를 치유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울고 또 울어도 끝이 없다. 내 눈물에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웃음을 머금은 입에서 버릇처럼 흘러나오는 슬픔과 좌절의 말들이 주위에게 폐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 이다.  바람과 다르게 이미 많은 이들은 불편함을 느낀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거리를 두고 또 두어본다. 나는 어느새 홀로 서 있다. 도움을 청하기 힘이 들고 눈치 보인다. 비관적이고 비겁한 변명거리들이 되는 것 만 같아 부끄럽다. 걷기 힘든 길을 택한 나 자신에게 어느정도의 확신이 있었다. 확신이 자꾸만 뭉그러질수록 숨 쉬는 것 이 힘들다. 괜한 고집인가, 괜한 꿈일까, 괜한 두려움일까, 무섭다.  

눈 앞의 모든 것 들이 아득하고, 부족한 나를 바라보는 것 이 너무나도 괴롭고, 주위에 안겨주는 실망과 미치지 못하는 기대에 내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다.

구분을 짓지 못하겠다. 선을 긋지도 못하겠다. 이것도. 저것도. 다 못할 것 만 같다.

밤새 울어도 깊은 잠 자고 일어나 다 잊고 웃어 넘기던 어제의 날들과 달리, 이제는 자고 일어나도 내 마음에 흙이 가득 차 있다. 다시 밝은 날이 찾아와 이 글을 본다면 부끄러운 미소 짓겠지만, 그래도 지금 나는 모든 것 이 검다. 이 무섭고도 괴로운 밤이 지나고 다시 푸른 새벽이 오면 모든 것 이 다시 제 자리를 찾을지도..

괜찮은 척 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내뱉는 비관적인 말에 우리 교수님은 말씀하신다. 

= 미안하다는 마음을 버려라. 너의 삶은 미안할 일이 아니다.

= 극도로 예민한 너의 성격이, 터질듯 한 두려움과 넘치는 생각들이 새로운 기회들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 가끔은 그냥 흐르는대로 사는게 가장 오래 갈 수 있는 것 이다. 그 자체가 이미 쉬운 일 이 아니기 때문에.

= 너의 알 수 없는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은 우리가 아닌 바로 너 자신이다. 짙은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내려놔라.

그냥 살아도 충분하다는 말이 나에게는 왜 그리도 어려운 문제일지. 아직 내 안의 꿈이 완전한 어둠으로 덮여있는 것 은 아니라는 그의 말은 감사하다. 이 곳 에서 옳고 그른 길은 없다고. 너의 노력을 억울해 하지 말고,너가 꿈 꾸는 그 길에 그 간절함 알아 줄 사람 꼭 만날꺼라고 함께 소망해주신다.       

Robert Schumann 의 Gesänge der Frühe 는 새벽을 채우는 침묵의 공기를 들이키며 눈동자 속 세상을 넓히려 하는 인간의 알 수 없는 고난을 그린다. 불협화음이 덤덤히 부딪혀 내려 앉는 새벽의 무거운 마음이 그대로 투영된다. 이 길 의 모호한 끝을 늘 생각하게 한다. 5개의 악장을 돌고 돌아 다시 열린 시작으로 돌아오는 이 음악처럼, 나 역시 우리 삶에서 느끼는 반복적 고민과 경이로운 행복의 순간을 조금이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

5.4.21

Roland Barhtes의 Jouernal de deuil, 김진영의 애도일기 “아침의 피아노“, 그리고 “이별의 푸가“.

공허한 시간이 연결 지어 한 길을 일구어낸 세 책을 읽고 또 읽는다.

사랑하는 대상이 남기고 간 빈자리.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떠날 나의 자리를 준비하는 조용한 마음.

엉키고 덮여있던 관계속 우리가 들이키던 자유라는 짧은 숨.

흩어진 후회의 조각을 다시 맞추며, 잃어버렸던 시간을 가슴에 다시금 새기는 이 모든 일들..

요즘 나의 시간의 흐름은 너무나도 거세고 빠르다. 이렇게 급속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조바심이 뒤엉켜 괜한 생각과 작은 걱정이 꼬리를 문다.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고 이 책 저 책 가방 안에 품고 다니지만, 정작 나는 현대음악과 독어문학에 관한 교과서를 읽고 있다. 시험을 위해 외우고 공부해야 하는 것 말고 읽고 싶은 책은 수도 없이 많지만, 괜한 마음을 다스리기보다는 계획한 일을 앞두고 게을러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교과서를 손에서 놓지 않으려 한다. 그저 울적하고 몽롱한 생각에 덮여 살기보다, 빛나는 책임이 주어진 삶의 주체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내 친구는 나에게 늘 묻는다. 너는 왜 맨날 슬픈 책만 읽고 슬픈 영화만 보고 슬픔 섞인 삶에 집착 하냐고. 딱히 자랑스러이 할 말 도 없고, 이런 내가 굳이 숨겨야 할 독서 패턴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가끔은 악보 안에 쓰여있는 음표보다 검고 흰 악보 뒤 그려진 작곡가의 풍파에, 아니면 그들의 grotesque, 그리고 화려한 삶의 불우하고 진흙같은 이면에 더 큰 호기심이 간다. 아니면 못난 나의 마음을 다른 이의 삶을 통해 바라보고 싶은 핑계일지도…

작곡가를 공부할때도, 누군가를 만날때도, 자꾸만 나는 사람들의 아픔이 무엇인지 관찰하고  이야기를 듣는 습관이 들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런 나의 모습은 집에서 받은 무한한 사랑 때문에, 그리고 가슴 한켠 남은 기쁜 순간들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늘 웃는 것 이 세상 전부라 생각 했던 나는 학창시절 작은 상처에도 크게 흔들렸던 기억 역시 많다. 내가 웃는 동안, 웃지 못할 사람들이 마음에 걸린다. 내가 사는동안 죽는 이들의 아픔이 마음에 걸린다. 나같은 아이도 이렇게 사는데, 다른 이들은 메마른 가슴 바스러지는 아픔을 어찌 견디어 내며 살까.. 어쩌면 쓸데없는 오지랖처럼 여겨질 수 있는 나의 슬픔에 대한 집착은 매 순간 내가 세상을 마주하는 눈에 새로운 빛이 되기도 한다.

살다가 갑자기, 정말 갑자기, 내가 용납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고, 내 두 손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때, 내 곁을 모두가 떠났을때 흔들리지 않으려는 굳은 의지를 쌓는 연습 같은 것 일까. 누군가를 사랑하고, 품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그러려니 하며 놓아줄 수 있는 조금 더 어른스러운 관계를 위한 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