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내 몸과 마음이 이곳 저곳 떠돌았던 것 처럼 내가 생각하고 뱉는 말들 조차 한 곳에 정착하지 못 한 듯 하다. 지난 한달간 나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어려운 시간 속 에서도 나를 발견하고 배워나가는 시간이다. 예전에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삶의 숙제를 직면 하고 있다.

첫번째로, 나는 한국말도, 영어도, 독어도, 그 어느 나라의 언어도 능통하지 못 하다는 것 이다. 특히나 글을 써 나가면서 그 한계를 느낀다. 누군가를 가르치려면, 그리고 글을 쓰려면 그 언어의 겉과 속의 깊이를 다 헤아려야 하지만, 나는 이곳 저곳의 겉핥기 식의 배움 때문인지 학문의 길을 걷기에 한 없이 부족함을 느낀다. 문학과 음악학에 관심을 표하고 그 길을 걷고 있지만 이 분야에서 가장 필요로한 작문능력이 현저히 모자라는 것 이 과연 나는 이 분야를 공부할 자격이 있는가 다시 한번 돌아보며 개선할 수 있는 방법 또한 모색 중 이다.


두번째, 나는 아직도 쉽게 잊지 못하는 두려움을 안고 산다. 이 감정의 이름을 정확히 한 단어로 표현 해 내기에 그동안 쌓인 시간과 엮어있는 관계가 매우 복잡하다. 나의 나약함은 찰나의 흔들림에도 세상이 무너질 듯 한 고통으로 다가온다. 모든 것 을 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나의 마음에도 쉴새 없이 몰아치는 폭풍에 며칠을 정신을 바로 잡지 못하였다. 그 누구보다 학생의 마음을 잘 이해 하면서도, 그 이해의 선이 너무 얇아 내 자신이 바로 그 사람이 된 것 처럼 흔들린다. 교수님들과의 대화에서도 그런 나의 나약함이 비추어 지는 것 이 두려워 매일 새벽 몰려오는 긴장을 떨쳐낼 수 없다. 학생을 가르치고, 또 내가 학생이 되어 배우는 두 입장 모두에 서 있는 지금 시간이 늘 어렵게만 느껴진다. 며칠 전, 미국에 계신 교수님과의 새벽 약속 시간을 2시간 앞둔 채 피아노 녹음실에 갈 채비를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내 zoom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간을 다시 확인해봐도 내가 계산한 시간이 맞는 것 같다. 이런 저런 고민 할 새 없이 등이 서늘해지며 지금 피아노가 없는 집 안에서 어떻게든 이 어려운 약속을 지켜내어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파자마를 입은채 윗옷만 급히 정갈히 갈아입고 부엌 한 켠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았다. 너무 급한 마음에 렌즈도 한쪽만 낀 채 화상 미팅을 시작 하였다. 다행히도 교수님은 피아노 없이 작곡가의 문학적 접근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셨지만, 혹시라도 이 미팅에서 드러나게 되지 않을까 했던 그 당시의 상황에 울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그저 웃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꼭두새벽 초록색 파자마차림에 흰 정장셔츠를 입고 누군가와 열렬히 대화중인 내 시끄러운 인기척에 놀라 거실로 나오신 엄마에게 카메라를 피해 손짓 발짓으로 상황을 설명 하였다. 오늘의 미팅을 위해서 많은 것 을 준비 했지만 아무것도 보여드린 것 없을까봐 아쉬움이 몰려왔다. 나의 잘못된 시간 계산이 귀한 기회를 허망히 날려버릴 것 만 같았다. 도대체 왜.. 왜 이런 실수까지 하기에 이르렀을까 내 자신을 속으로 불을 내며 다그치는 중 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남발하게 되는 요즘의 내 정신 상태가 이제 시간까지 제대로 계산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런 것 은 아닐지 걱정했지만, 교수님은 내가 독일에 있는 줄 아시고, 독일 시간에 맞춰서 연락 주셨던 것 이고, 그런 교수님의 친절한 배려가 나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만 같은 시간이 되었다. 새벽 3시, 나는 결국 가족 모두를 깨우는 민폐를 끼친채 큰 일을 치루었다. 원하는 꿈이 너무 먼 곳 에 있어서 그런지 조금이라도 내일의 형체가 흐릿해질때면 안간힘을 쓰며 어린아이같이 눈물을 글썽인다. 고작 한시간 반의 짧은 시간이 내가 걷는 길의 방향을 바꿀 수 도 있다는 생각에 아직도 나는 그 한시간 반의 시간에 모든 간절함을 퍼붓고 또 지쳐 잠이 든다. 과연 할 수 있을까 매일을 고민하면서 불안한 걸음 걷는다.


세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는 것 이 중요하다. 나는 인정받을 만 한 능력 없지만, 그리고 차가운 경쟁 사회 속 능력자들만이 활개를 펴는 이 세상에 명함 조차 내밀지 못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두 발로 일어설 것 을 믿는다. 나만의 디딜 땅이 있음을 안다. 내가 일어서는 것 이 불가능이 아닌, 말도 안되는 욕심도 아닌, 그저 나의 두 다리로 온전히 일어서야 하는 삶의 의무이자 꿈을 향해 남겨야만 하는 진한 발자국이다.

네번째, 나 혼자만의 어려운 세상이 아니다. 나는 매 순간 만남의 축복을 위해 기도해왔다. 중학교 시절 사모님께서 말씀해주신 만남의 축복과 그 통로에서 받는 은혜와 가르침을 잊지 못해, 지금까지 늘 기도하고 있다. 관계 속 에서 끊임 없는 실수도 있었고, 반복되었던 옳지 못한 생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정말 좋은 분들이 함께 손 잡아 주시고 계시다. 한국에 온 후 매일을 책 앞에서 졸며 집을 지켰다. 무기력한 내 자신과의 대화가 길어지고 내쉬는 한 숨 역시 그 끝을 알 수 없을 때 쯤 임마누엘 성가대에서 함께 섬기는 선아언니와 임선생님을 뵈었다. 두 분의 삶을 나눠주시는 그 잠깐의 시간동안 나는 마음 속 에 알 수 없는 동요를 느꼈다.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삶에 일어나는 높고 낮은 물결과 거품을 통해 무거운 내 자신의 갑옷을 잠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그 동요의 시간 속 두 사람이 걸어온 길에 온전히 마음과 귀를 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걷는 다른 두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음 짓는 두 소중한 길.. 지금껏 살면서 많은 사람과의 깊은 나눔 없이 작은 관 안 에서 살아온 나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택 할 수 밖에 없었던 나의 모자란 생각에 , 고작 서른 넘은 삶에 벅찬 숨 쉬는 어리숙한 나의 어린 마음에, 나보다 더 외롭고 먼 걸음 하셨을 두 분의 미소와 다짐이 용기의 씨앗이 되어주신다. 그런 두분에게 내가 지금 당장 드릴 수 있는 것 은 무한한 축복과 기도이다.


어렸을 적 부터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는 이제 사람들을 만나면 조금 덜 웃으려고 한다. 그리고 조금 덜 마음을 내비치기도 한다. 내 몸을 사리려는게 아닌, 이게 어쩌면 정말 그들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 하기 때문이다. 감히 내가 뭐라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 할까 다그치며 가급적이면 멀리하려 노력한다. 아직 갈길이 멀지만 오늘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가까이 또는 멀리서 서로를 바라보며 나만의 방법을 강요하지 않는 것. 아무리 세상 가장 친절한 마음, 선한 마음이라도 그것이 독이 되어 모두를 해치는 것 은 한순간임을 늘 가슴에 품고 조심하려 한다. 아끼는 사람일수록, 가까운 사람일수록, 고마운 사람일수록, 더욱 더 그 아픔을 긁어내고 싶지 않다. 쓰다듬는 나의 손 끝에 스친 그 사람의 피부에서 빨간 선혈을 보게 하는 것 은 가장 따갑고 쓰라린 아픔이라는 것 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삶의 여러곳에 선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 파란 하늘의 색은 같을 수 있으나 밟고 선 그 땅을 일군 흙과 걷는 길 위에 피는 꽃은 모두가 다르기에 함부로 서로의 어깨를 밀쳐서도, 끌어 당겨 안아서도 안 된다는 것 을 생각해본다. 모두가 한 길을 함께 걸을 수 있기를 늘 소망하지만, 그렇지 못 할 때에는 절대 내가 아닌 다른 이의 디딘 곳 에 함부로 바람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우리의 두 발이 닿은 땅이 누군가에게는 잘 다져진 오솔길밭, 차가워진 아스팔트 도로 위, 파도가 거품치는 모래바닥, 그것도 아니면 이미 메말라버린 갈라진 논밭 일 수 도 있기에.. 모든 이의 말 못 할 이 어려움들을 조금이나마 알고 위로하고, 알고 사랑하고, 알고 배려하고, 알고 품어줄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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