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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확진자가 천명을 넘어서고, 우리들의 삶은 무언의 기다림 속 으로 차츰씩 잠겨들어간다. 매일을 만나던 너와 나의 거리가 점점 멀어져가고, 찬 겨울 공기 입김으로 함께 나눌 수 없고, 내 가족을 위해 뛰어야 하는 길이 막히고, 당장 내일의 하루가 알 수 없어 두근 거리는 가슴 부여 잡은 채 잠 못 이룬다. 잠깐의 기침에도 서로에게 놀라 집 밖을 나서지 못하고, 모두가 한 곳 에서 머무르려 한다. 하나의 질병이 주는 공포를 넘어서서 사회가 무너지고, 서로를 멀리하고, 더 나아가 어떤 이에게는 thanataphobia로 다가온다. 기회를 저 먼 곳으로 보내고, 사랑하는 사람도 보내고, 스쳐 지나는 우연의 아름다움 또한 저 먼곳으로 보내고 있다. 이게 뭐 그리 어려운 일 이나며 호탕한 웃음으로 넘기기에는 많은 이들의 고통의 신음이 크다.

며칠 전 어려운 이 시기, 힘겹게 버텨내는 우리들의 마음을 보여준 하나의 관용구가 생각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많은 측면에서 쓰이는 쉬운 이음 말 이지만, 지금 우리의 삶 앞에 던져진 헤어진 굵은 밧줄과도 같다.

우리의 삶은 고달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이겨낸다.

나는 내일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일과 인사한다.

배가 너무 고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려한다.

내가 서 있는 곳 정말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각자만의 답을 찾는다.  

너무 답답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참는다.

너는 나에게 연락을 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다린다.

네가 너무 밉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우리는 너를 용서한다.

고통의 상대적 척도는 우리 모두 다르겠지만, 모두에게 아픔은 존재한다.  나는 그런 아픔을 그저 간과 하고 지낼 수 만은 없다 생각한다. 마음은 저 멀리 앞서 있지만, 현재  나는 해줄 수 있는 것 은 기도와 말 한마디 뿐 인 작은 사람이다. 언젠가는 함께 걷는 길의 사람들을 품어주는 큰 사람이 되는 것 이 최종목표이다. 그때까지 나의 사람들 역시 조금만 버텨내어주기를 바란다.

나 역시, 어려운 꿈에 도전하며, 온전치 못한 환경과 조건 속 에서 하루하루를 꿈을 향해 걸어간다. 어느날 밤 은 내 자신이 못나보이기 까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설사 내 머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채, 하얀 아침을 맞이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저 읽고 쓰고 또 공부한다. 이것이 맞는 길인가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이 길을 걷게 되면 나에게 또 다른 길이 올 것 이라 믿기 때문이다. 모든 것 이 일시 정지 된 것 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헤엄쳐 나간다. 얼마나 빠르게 도달하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저 한 다리 한 손  내 딛는 것 이 가장 소중한 것 이다. 우리는 얼지 않는 바닷물 안에서 그저 한폭 한폭 움직여야 한다. 절대 내 몸이 얼게 두어선 안된다. 차갑고 날카로운 파도에 내 몸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을 지언정 우리는 손을 뻗고 다리를 움직여 가라앉지 말아야 한다. 함께 손잡아 파도를 이겨내고 싶지만, 지금 우리가 이 헤엄을 멈추고 모든 것 을 놓아버린다면 결코 서로를 구할 수 없다.  너도 나도 일단 버텨내어 따스한 봄 오는 하늘을 기다려야만 한다. 허우적 물을 가르는 서로의 손짓 발짓을 기억하며 같이 움직이자. 내 곁에 네가 함께 물을 가르고 네 곁에 내가 함께 숨을 몰아쉬며 발버둥 치는 것을 아는 것. 서로를 위한 간절한 기도이자 바램이다. 나의 기도와 바램은 쉼 없이 헤메이는 우리의 헤엄이 펄럭이는 날개짓 되어 먼 하늘 가를 수 있을때까지 계속 될 것 이다.

12년만에 맞는 한국에서의 12월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환경이 바뀌면 또 다른 것 을 느낄 것 이라 기대했던 것 같다. 눈에 보이는 환경은 달라지었을지언정, 내가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있었어도 우두커니 서서 맞는 칼바람과 같은 순간은 변함 없을 것 이다. 나는 누군가가 괴로움 에 몸을 뒤튼채 이 악물고 손을 놓는 모습을 보는 것 을 매우 어려워 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포기 하지 않았으면 한다. 때론 현실적으로 옳은 경우와 결정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나를 놓고 희망을 땅에 묻는 것이라면 그렇게 포기하면서까지 파도에 치여 힘 잃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의 삶이 내리막길을 걷는다 하여도 그 걸음 걸음 힘 주어 걷기를 바란다. 버거운 책임감과 밀려오는 부담에 삶을 뒤로 하지 말고 걷기를 바란다. 설사 내 입에서 험한 말이 나오는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버텨내어 다시 오르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이겨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응원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삶의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의 삶도, 내 앞에 앉아있는 이의 삶도,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같은 공기를 나누는 저 먼 곳 의 이의 삶까지도.

오전 내내 한 자리에 앉아 문헌을 읽고 정리하다보니 엉덩이가 아팠다. 그래서 잠시 자리에서 일어난 채 글을 쓴다. 이 글을 마치면 나는 다시 앉아야 한다. 솔직히 나는 자신 없다. 이 모든 것 다 해내기 자신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다시 또 앉아 내 일을 하려한다. 지금은 이렇게 버티고 준비하는 것 말고 없다. 내일의 결과를 생각하다보면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욱하는 마음을 구겨 넣고 온전히 오늘에 충실하려 한다.   

숙제

내 몸과 마음이 이곳 저곳 떠돌았던 것 처럼 내가 생각하고 뱉는 말들 조차 한 곳에 정착하지 못 한 듯 하다. 지난 한달간 나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어려운 시간 속 에서도 나를 발견하고 배워나가는 시간이다. 예전에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삶의 숙제를 직면 하고 있다.

첫번째로, 나는 한국말도, 영어도, 독어도, 그 어느 나라의 언어도 능통하지 못 하다는 것 이다. 특히나 글을 써 나가면서 그 한계를 느낀다. 누군가를 가르치려면, 그리고 글을 쓰려면 그 언어의 겉과 속의 깊이를 다 헤아려야 하지만, 나는 이곳 저곳의 겉핥기 식의 배움 때문인지 학문의 길을 걷기에 한 없이 부족함을 느낀다. 문학과 음악학에 관심을 표하고 그 길을 걷고 있지만 이 분야에서 가장 필요로한 작문능력이 현저히 모자라는 것 이 과연 나는 이 분야를 공부할 자격이 있는가 다시 한번 돌아보며 개선할 수 있는 방법 또한 모색 중 이다.


두번째, 나는 아직도 쉽게 잊지 못하는 두려움을 안고 산다. 이 감정의 이름을 정확히 한 단어로 표현 해 내기에 그동안 쌓인 시간과 엮어있는 관계가 매우 복잡하다. 나의 나약함은 찰나의 흔들림에도 세상이 무너질 듯 한 고통으로 다가온다. 모든 것 을 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나의 마음에도 쉴새 없이 몰아치는 폭풍에 며칠을 정신을 바로 잡지 못하였다. 그 누구보다 학생의 마음을 잘 이해 하면서도, 그 이해의 선이 너무 얇아 내 자신이 바로 그 사람이 된 것 처럼 흔들린다. 교수님들과의 대화에서도 그런 나의 나약함이 비추어 지는 것 이 두려워 매일 새벽 몰려오는 긴장을 떨쳐낼 수 없다. 학생을 가르치고, 또 내가 학생이 되어 배우는 두 입장 모두에 서 있는 지금 시간이 늘 어렵게만 느껴진다. 며칠 전, 미국에 계신 교수님과의 새벽 약속 시간을 2시간 앞둔 채 피아노 녹음실에 갈 채비를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내 zoom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간을 다시 확인해봐도 내가 계산한 시간이 맞는 것 같다. 이런 저런 고민 할 새 없이 등이 서늘해지며 지금 피아노가 없는 집 안에서 어떻게든 이 어려운 약속을 지켜내어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파자마를 입은채 윗옷만 급히 정갈히 갈아입고 부엌 한 켠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았다. 너무 급한 마음에 렌즈도 한쪽만 낀 채 화상 미팅을 시작 하였다. 다행히도 교수님은 피아노 없이 작곡가의 문학적 접근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셨지만, 혹시라도 이 미팅에서 드러나게 되지 않을까 했던 그 당시의 상황에 울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그저 웃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꼭두새벽 초록색 파자마차림에 흰 정장셔츠를 입고 누군가와 열렬히 대화중인 내 시끄러운 인기척에 놀라 거실로 나오신 엄마에게 카메라를 피해 손짓 발짓으로 상황을 설명 하였다. 오늘의 미팅을 위해서 많은 것 을 준비 했지만 아무것도 보여드린 것 없을까봐 아쉬움이 몰려왔다. 나의 잘못된 시간 계산이 귀한 기회를 허망히 날려버릴 것 만 같았다. 도대체 왜.. 왜 이런 실수까지 하기에 이르렀을까 내 자신을 속으로 불을 내며 다그치는 중 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남발하게 되는 요즘의 내 정신 상태가 이제 시간까지 제대로 계산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런 것 은 아닐지 걱정했지만, 교수님은 내가 독일에 있는 줄 아시고, 독일 시간에 맞춰서 연락 주셨던 것 이고, 그런 교수님의 친절한 배려가 나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만 같은 시간이 되었다. 새벽 3시, 나는 결국 가족 모두를 깨우는 민폐를 끼친채 큰 일을 치루었다. 원하는 꿈이 너무 먼 곳 에 있어서 그런지 조금이라도 내일의 형체가 흐릿해질때면 안간힘을 쓰며 어린아이같이 눈물을 글썽인다. 고작 한시간 반의 짧은 시간이 내가 걷는 길의 방향을 바꿀 수 도 있다는 생각에 아직도 나는 그 한시간 반의 시간에 모든 간절함을 퍼붓고 또 지쳐 잠이 든다. 과연 할 수 있을까 매일을 고민하면서 불안한 걸음 걷는다.


세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는 것 이 중요하다. 나는 인정받을 만 한 능력 없지만, 그리고 차가운 경쟁 사회 속 능력자들만이 활개를 펴는 이 세상에 명함 조차 내밀지 못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두 발로 일어설 것 을 믿는다. 나만의 디딜 땅이 있음을 안다. 내가 일어서는 것 이 불가능이 아닌, 말도 안되는 욕심도 아닌, 그저 나의 두 다리로 온전히 일어서야 하는 삶의 의무이자 꿈을 향해 남겨야만 하는 진한 발자국이다.

네번째, 나 혼자만의 어려운 세상이 아니다. 나는 매 순간 만남의 축복을 위해 기도해왔다. 중학교 시절 사모님께서 말씀해주신 만남의 축복과 그 통로에서 받는 은혜와 가르침을 잊지 못해, 지금까지 늘 기도하고 있다. 관계 속 에서 끊임 없는 실수도 있었고, 반복되었던 옳지 못한 생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정말 좋은 분들이 함께 손 잡아 주시고 계시다. 한국에 온 후 매일을 책 앞에서 졸며 집을 지켰다. 무기력한 내 자신과의 대화가 길어지고 내쉬는 한 숨 역시 그 끝을 알 수 없을 때 쯤 임마누엘 성가대에서 함께 섬기는 선아언니와 임선생님을 뵈었다. 두 분의 삶을 나눠주시는 그 잠깐의 시간동안 나는 마음 속 에 알 수 없는 동요를 느꼈다.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삶에 일어나는 높고 낮은 물결과 거품을 통해 무거운 내 자신의 갑옷을 잠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그 동요의 시간 속 두 사람이 걸어온 길에 온전히 마음과 귀를 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걷는 다른 두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음 짓는 두 소중한 길.. 지금껏 살면서 많은 사람과의 깊은 나눔 없이 작은 관 안 에서 살아온 나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택 할 수 밖에 없었던 나의 모자란 생각에 , 고작 서른 넘은 삶에 벅찬 숨 쉬는 어리숙한 나의 어린 마음에, 나보다 더 외롭고 먼 걸음 하셨을 두 분의 미소와 다짐이 용기의 씨앗이 되어주신다. 그런 두분에게 내가 지금 당장 드릴 수 있는 것 은 무한한 축복과 기도이다.


어렸을 적 부터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는 이제 사람들을 만나면 조금 덜 웃으려고 한다. 그리고 조금 덜 마음을 내비치기도 한다. 내 몸을 사리려는게 아닌, 이게 어쩌면 정말 그들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 하기 때문이다. 감히 내가 뭐라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 할까 다그치며 가급적이면 멀리하려 노력한다. 아직 갈길이 멀지만 오늘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가까이 또는 멀리서 서로를 바라보며 나만의 방법을 강요하지 않는 것. 아무리 세상 가장 친절한 마음, 선한 마음이라도 그것이 독이 되어 모두를 해치는 것 은 한순간임을 늘 가슴에 품고 조심하려 한다. 아끼는 사람일수록, 가까운 사람일수록, 고마운 사람일수록, 더욱 더 그 아픔을 긁어내고 싶지 않다. 쓰다듬는 나의 손 끝에 스친 그 사람의 피부에서 빨간 선혈을 보게 하는 것 은 가장 따갑고 쓰라린 아픔이라는 것 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삶의 여러곳에 선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 파란 하늘의 색은 같을 수 있으나 밟고 선 그 땅을 일군 흙과 걷는 길 위에 피는 꽃은 모두가 다르기에 함부로 서로의 어깨를 밀쳐서도, 끌어 당겨 안아서도 안 된다는 것 을 생각해본다. 모두가 한 길을 함께 걸을 수 있기를 늘 소망하지만, 그렇지 못 할 때에는 절대 내가 아닌 다른 이의 디딘 곳 에 함부로 바람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우리의 두 발이 닿은 땅이 누군가에게는 잘 다져진 오솔길밭, 차가워진 아스팔트 도로 위, 파도가 거품치는 모래바닥, 그것도 아니면 이미 메말라버린 갈라진 논밭 일 수 도 있기에.. 모든 이의 말 못 할 이 어려움들을 조금이나마 알고 위로하고, 알고 사랑하고, 알고 배려하고, 알고 품어줄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11월 30일 그리고 12월 1 일

굳게 다진 마음 붙잡고 한 달의 마지막 일주일을 보내었고, 걱정 속 에 새로운 달 의 첫 하루 맞이를 준비하였다. 주일 하루 종일 귀한 찬양의 시간을 통해 마음에 금빛 불 밝히고, 그렇게 12월 첫 날을 바라보던 침묵의 11월의 마지막 밤.

이 밤, 모두가 얼어붙어 옴짝달싹 못하게 하던 그 사람의 글에 나도 모르게 바다위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렸다. 내 무지함으로 인하여 한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 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내 가슴은 땅을 마주하였다. 나의 최선에도 나의 부족함은 여지 없이 드러나나보다. 애써 숨겨왔던 그동안의 불안했던 내 마음이 질서 없이 채워진 바닷 모래 알 속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잠깐의 파도의 움직임에 형채를 알 수 없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바다에 쓸려 높은 성벽의 자취를 감춘 나의 마음은 결국 나를 또 다시 맨땅을 밟게 하며 바들바들 떨게 한다. 불안함과 두려움을 웃음 뒤로 숨기는게 성장하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덕목이라 생각했지만, 오늘 나는 항상 걱정 안고 살아왔던 예전의 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가슴의 평온함. 어려운 시간 보내는 동생을 도와주려 작성했던 과제가 독이 되어 돌아와 나를 삼키는 것 만 같다. 억울함과 분노 섞인 마음보다도, 나의 부족함을 날 선 말과 눈빛으로 채찍하던 예전의 무섭던 얼굴들이 떠오르며 식은땀이 등을 타고 내린다. 지나간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 나의 가장 큰 삶의 숙제 중 하나 였는데, 어제를 다 잊은 것 같았던 오늘 나는 다시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를 마주한다. 나의 부스래기 마음과 풀려버린 두 손과 발이 예전의 기억을 더욱 더 또렷이 상기 시키게 한다.


여러가지 일을 함께 해내지 못 하는 여유 없는 나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과감없이 도전장을 내밀며 도움을 자청하였다. 그런 나의 노력이 무색하게 그 아이의 삶이 무너질까봐.. 나로 하여금 웃기를 바랬지만 혹여나 더 잘하지 못해서 상처 많은 그 삶이 더 아파질까봐. 결국 그 뾰족한 화살이 내 가슴을 뚫게되는 두려움. 내일 또 그 아이를 바라보며 괜찮다고 다독여야 하는데, 과연 내가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걱정이 문득 앞선다. 고작 과제 하나에 이렇게 힘이 들까? 아니다. 고작 아니다. 우리에게는 대차게 뚫어내어야 하는 막힌 숨구멍이었다. 누군가를 품고 위로하는데에 있어서 나는 어리숙한 마음만 앞설 뿐 부족한 현실에 늘 좌절한다. 이렇게 어리숙하고 어눌한 마음에서 나오는 친절과 사랑은 나를 늘 시험 한다. 나의 목을 꽉 쥔 이 시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다.
어느새 검은 밤의 시계는 12월 1일 3시를 향해간다. 좀처럼 진정할 수 없는 마음을 쓸어내리고 눈물을 삼켰다. 이렇게 검은 파도가 나를 향해 무섭게 돌진할때면 나는 아무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쓸려 모든 것 을 잃는 것 만 같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나의 연약함이 나를 이리저리 흔드는 것 이다.


오늘은 오랜시간 정성들인 원서들을 제출하는 그 마지막 날 이다. 수년을 갈망했던 그 꿈에 한발짝 용기를 내어 걸었고, 그런 나의 무거운 첫 걸음에 쉴 새 없이 건네던 많은 도움의 손길들에 감사했다. 부족한 나를 매일 마주하면서도, 이렇게 출발점에 설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그저 기쁨의 마음이 벅차다. 가장 중요했던 한 해의 오늘, 나는 평탄 할 수 없었지만, 나보다 더 평탄치 못한 하루가 되었을 사랑하는 동생과 또 다른 어려운 걸음의 삶들을 위해 나는 그저 아무 말 도 할 수 없다. 그저 그 아이와 나의 마음을 굳게 지키는 것 뿐. 그리고 주어진 내 일 또한 잘 마무리 하는 것. 나도 너도 세찬 바람 부는 이곳에 서서 절대 쓰러지지 않고 걸음 옮기기를 사랑으로 기도한다.


나의 선배들은 원서를 제출하는 매년 12월 1일 저녁, 시험의 첫 단계를 애써 마친 서로를 격려하고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연습실 문 뒤에 몰래 숨어 케익에 초를 꽂고, 준비한 손편지를 건네며 기도해주었던, 어린 아이들처럼 바라만 봐도 좋았고 또 슬펐던 지나간 시간들이 뇌리속을 스친다. 함께 하던 사람들의 빈 자리가 유난히도 크게 느껴지고, 모두가 그립다. 추워진 새벽 밤, 다들 안녕하기를 바라며 검은 잠 청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