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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날.

10 월 17일 햇살 좋았던, 가장 아름다웠던 나의 친구의 결혼식.

기쁨에 겨워 흘리는 눈물의 의미가 남다르게 가슴을 파고들었던 오늘.

축사를 하며 절대 울지 않으리라 다짐 또 다짐하며 며칠동안 강아지를 간식으로 달래가며 내 앞에 앉힌채 쉴새 없이 연습 하고 무대에 올랐지만, 청승맞게 흐르는 눈물은 차마 막을 수 없었다. 오늘 식장의 아름다운 조명과 함께 반짝반짝 빛나던 콧물을 배부르게 먹었던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다른 결혼식에서 신부 친구가 울면 왜 저렇게 울까 이해 할 수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지만, 오늘 나는 그 친구들이 울었던 이상의 눈물을 흘렸다. 민폐가 된 것 만 같아 많이 부끄러웠지만, 신부와 나만이 아는 무언가가 떠오르던 그 순간만큼은, 눈물이 아닌 그 어떤 것 도 대신 할 수 없었음을 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친구의 모습을 내 눈에 직접 담고 그동안 숨겨왔던 마음을 전하게 되었던 오늘의 시간에 다시금 감사드린다.

나에게는 한 없이 고마운 친구이다. 그저 어렸을때 재미있게 놀던 기억의 친구가 아닌, 같이 무르익는 길을 걷던 친구이다. 내가 가장 솔직할 수 있게 문을 열어주었고, 걱정을 들어주었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 나를 품어주었다. 그저 웃음을 먼저 보여주던 나의 친구..   평정심을 찾고 싶을때면 전화를 했었고, 특별한 대화 하나 없이 그저 뭐하냐는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해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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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 이다. 교과서 울렁증 때문인지 두꺼운 책을 오랜시간 읽어 내려갈때면 속이 탁탁 막히는 순간이 찾아온다. 잠깐씩 찾아오는 부담스러운 그 공기를 참아내다보면 괜한 자신감의 불씨가 꺼져가는 무기력함을 느낀다. 그 날 도 마찬가지였고, 나는 책을 잠시 덮고 기도를 했다. 그리고 기분을 빠르게 전환하고자 다짜고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결혼을 이틀 앞 두고 있는 예비신부에게 딱히 할 말이 없어 뭐하나 물었더니 공연 오디션 연습하고 있단다.

“뭐해?”

“연습하지. 너는 뭐하나?”

“나 공부해.”

세상 짧은 대화였지만, 대학시절 나의 하루의 전부였던 친구와 함께 하는 “꿈을 이루는 연습”은 그날 밤 도 나에게 좀처럼 찾아볼 수 없던 힘을 불어넣었다. 같이 걷는 이 길 위에 서서 피식 웃는 그 아이의 모습에서, 평정을 얻었고, 치유와 위안을 얻었고, 기쁨을 얻었던 것 처럼, 그 날도 내 마음에 따뜻한 손난로 하나 툭 얹어주었다. 고작 1분 9초의 통화였지만,  소중했던 그 기분을 간직하고파 사진으로 통화 기록을 짧게 남겨두고 다시 책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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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또 가까이에서 내 마음을 알아주는 그 마음이 고맙고 미안해 그 어떤 것 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한 없이 주고 싶었던 친구였고, 앞으로도 그럴 친구이다. 기쁜 오늘이 오기까지 고생길 숨어 걸으며, 혼자 있고 싶은 시간도 기다림으로 내어주고, 서로를 지켜주었던 평범했지만 쉴새 없이 빛이 나던 귀중한 시간들이 뇌리를 스치며 내 마음을 데운다. 오늘 그 미소가, 아름다웠던 두 눈이, 오랜시간 가슴에 남을 것 이다. 사랑하는 내 친구, 이제는 혼자서 마음 앓이 하는 삶이 아닌, 미소가 똑 닮은 선한 신랑과 함께 행복한 시작의 길을 걸어 웃는 날이 가득 담긴 푸르른 열매 맺기를 기도한다. 푸른 가을 하늘이 유난히 높았던 오늘도 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사랑한다 조푸름.

After wandering, questioning and being butchered for months, i finally have decided to come back or have broken down to come for a refuge that my desire is to love music and serve people with heart of love and sincerity. No more growth of blame in heart. No more closed eyes and broken heart.

The process of continuosly thinking has brought me to the point where I started to grow enmity towards my beloved ones. Never stopped blaming on my parents being over protected of me. not true. never the true. I let darkness to veil over my eyes to see the true love of my parents. As I look back on my yesterdays, all I can do here in my room alone is to repeat “sorry.”

While I was lost, veiled, and angry all the time, one thing never changed, their love. Their hearts.

Tonight, i am reminded of an unending love of Him that I am always loved. Whoever I am to whomever. Whatever I do for what so ever. He loves me. And I see His pouring love and warmth when my daddy’s calling me “my dearest baby” and my mommy’s calling me “my precious one.”

Thank you for standing here and waiting for me for the whole time. Even when I tried to run away from you, you were here with your arm widely opened. And now I am back to you dirty, but ready to be cleaned up with your overflowing love. It is shameful. Probably never forgivable. But I know. For sure. that you are forgiving and still loving my tear and dirt. I commit once again to grow in your love. Though still long way to arrive. I am already here, in your loving arm.

어쩌다 – 떠났던, 떠나려는 이들의 옆에 서서

우리 모두가 같다. 사랑하는 대상을 떠나보낸다는 것 에 대한 두려움을 셀수 없이 느껴보았을 것 이다. 살아 숨 쉬지 않는 자를 그리워 하는 것, 그 사람과의 시간을 마음속에 담아두며 사는 것,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때, 몸을 뒤트는 순간에 느껴지던 작은 움직임이 아직도 볼 옆을 스칠때면 나는 아직 그 사람과의 공간 속 에서 사는 것 만 같기에 .. 혼란의 시간 한 가운데 깨어진 얼음조각을 밟고 서 있다. 누군가를 멀리 보낼 때 에는 함께한 시간 그 이상의 오랜 시간의 치유가 필요하다. 다음을 준비 하기에는 모든 것 이 아프기 때문이다.

나를 너무나도 잘 알았던, 내 삶의 모든 것 이 었던 사람의 자리를 옅어지는 기억으로 남겨둔 채 또 다른 이에게 사랑을 나누어야 하는 것 이 언젠가는 늘상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야겠지만 서른을 넘긴 지금도 힘들다. 만질 수 없는 그 사람이 그리워 양 귓바퀴가 뜨겁게 달궈진 채 눈물을 삼키며 살아온 윗 사람들을 따라 나도 같이 슬픔을 삼키는 법을 배우는 중 이다.

사람들은, 그리고 어른들은 (아직 나는 어른이 되기 싫은가보다) 가끔씩 서로의 달라진 모습에 “이사람 죽을때가 다 되었나 왜 안하던짓을 하고 그래” 하며 농담 섞인 말을 주고 받곤 한다. 가을 날 창 밖을 보며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가벼이 흘려들었던 그 말을 자꾸만 되내이고 생각을 밟아 다진다.

안 좋았던 기억이 용서의 갑옷 속에서 눌리고 곪아 가슴 속을 떠날 것 같지 않을 것 만 같을때 가 있었고, 주고 받는 말이 날 선 창이 되어 마음을 찌르기도 했으며, 그저 닫힌 모습에 답답함을 토로하며 밖으로 내 돌았다. 또한, 세상 행복을 가득 안은 순한 미소를 보았으며, 따뜻한 손을 건네어 감싸안았고, 모든 것 을 양보하고 나누었고, 어느 날은 배가 당기는 아픔을 느낄정도로 웃기도 하였다. 함께 했던 그동안의 기억만으로 한 사람의 삶에 동그란 마침표를 찍어내기엔 아직 남아있는 길이 너무나도 귀하기에 예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까지도 남김 없이 보여주고 가려는 이들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남겨진 사람도 묵묵히 마음의 준비를 한다. 고통 중 에도, 행복 중에도 세상을 떠나는 그 회색 빛의 순간에도, 기억을 담아내며 다음을 준비한다.

기억은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 이 아닌 가슴안에 뛰는 박동이 멈추는 그 순간까지도 함께 하는 것 이다. 그래서 쉽게 없어지지도, 바뀌지도, 그리고 다시 그려낼수도 없는 내 삶의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도 함께 하는 숨 인 것 이다. 누군가의 기억에 나를 주었고, 나의 기억에 그들을 품는다. 아직 오지 않은 나의 마지막 날 까지.

어쩌다 – 갈림길

어쩌다보니 미래가 열린 길에 서게 되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그 수 많은 갈림길 앞에 우두커니 선 채로 셀 수 없이 고민하였다. 하루에도 수백번 나의 생각을 엎치락 뒤치락 흔들며 혹시 나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팔랑귀가 되지 않을까 두려움이 피어난다.

나는 신앙 이외의 나의 모든 것 들을 믿지 않기 때문에 최근들어 다른 이들의 말에 더욱 더 귀 기울이게 되었다. “너는 이러면 좋을 것 같아.” “너는 무조건 여기를 가야해.” “내말 들으면 후회 안해.”  많은 사람들의 조언을 통하여 세상을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나에게 꼭 알맞는 판단을 할 수 있을꺼라 믿었다. 다만 하나 잊고 있던 사실이 있었다– 나에게 조언 해주었던 수 많은 사람들의 의견은 귀하고 귀하다만 .. 그 모든 조언들이 천차만별이자 넘쳐나는 열린 결말을 함께 던지고 있다는 것 이다.

예전에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도움을 바라는 것 이 미안해서 모든 것 을 혼자 해결 하려 했다. 부작용으로 쓸데 없는 주관까지 확고해져 실패를 거듭 경험하기도 하였다. “제발 말 좀 들어라. 웃으면서 고집 부리지 말고.” 보는 사람 마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고, 나는 그럴때마다 이상하리만큼 내 자신이 자랑스럽게까지 느껴졌다. 나의 고집으로 하여금 좋은 길을 걸었으면 모르지만, 사실 돌이켜보면 희열 뒤 찾아오는 아쉬운 점 이 더 많았다. 나의 옹졸한 고집이 가져온 결과이기에 할말도 없었고, 이제는 도움을 받는 것 을 두려워 말자 결심했다. 

도움을 받는 법을 잘 몰라 무작정 물었다. 나의 선배들, 교수님, 친구들, 등등. 자세를 고쳐앉고 그저 듣는 조언 조언 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무지했던 내가 혼자서는 절대 알 수 없던 여러가지의 말들이 내 머리에 불을 지폈다. 뜨거웠고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저 신기했고, 내가 모르는 세계에 코가 아닌 눈과 귀가 숨을 쉬는 것 만 같았다. 한 뭉텅이의 해답지가 내 손 에 쥐어진 것 이다. 그렇게 묻고 또 묻는 그 길에서 어느새 내 삶의 주인이 나라는 것 조차 잊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전혀 알 길이 생기지 않았다.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 인지 그 시작을 기억하기 힘들다 ..

열린 미래의 갈려진 길에서, 모두가 치열하게 사는 현장 앞에서, 나는 한발짝을 떼어내기가  조심스럽다. 혹시라도, 정말 혹여라도 내가 후회 할까봐.. 그리고 나를 위해 열과 정성으로 조언 해 주던 이들과의 시간을 원망하게 되는 어리석은 마음이 아주 조금이라도 생겨날까봐.

두 손을 모아 담아도 한참이나 모자랄 수 많은 경험담과 확신이 섞인 설득 속 모두가 입을 모아 끝 말을 잊지 않고 건네준다. “결국 네 인생이야. 네가 결정해야해.” 

내 인생이라고, 나 혼자만의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살아본 적 단 한번도 없지만, 내 멋대로, 내 고집대로 한 길만을 걸었고, 지금은 내 방식대로 살면 안 될 것 알면서,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 어긋나버린 생각과 삶의 결정권 앞에서 모순 입은 어리석음이 가차없이 드러난다. 시간은 나를 자꾸만 재촉하고, 움직이는 시곗바늘을 눈동자의 힘으로 멈출 수 있는 기가막힌 초능력을 상상 속 에 고이 묻어 둔 채 괜한 손톱만 쉴새없이 물어 뜯는다. 내 손톱이 남아나지 않는 이유는 피아노를 열심히 치는 것 이전에, 열린 결말 속 의 해답을 찾아 헤메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손끝에 이를 대어 악물고 버티면서도, 결국 깊게 박힌 손톱의 틀을 허물어 뜯어내고픈 숨겨진 욕망이 살아숨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