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Archives: September 8, 2020

천리포 바다 앞에서

코로나가 찾아온 우리의 삶은 어쩌면 많은 것 을 되돌아보게 한다.
독일에서 코로나를 피해 한국에 왔지만 크게 달라진 것 없이 집에서 매일을 또 생각 너머 생각을 쌓고, 연주 영상을 위한 연습을 하다가, 이 책 저 책 꺼내 한번씩 읽고 쌓아둔다. 특별히 이루어낸 무엇 하나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떠올리며 마음에 불안함이 파도 치기도 했지만 이를 마주하는 것 은 가끔씩 치고 지나가는 하나의 반복적인 일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크게 개의치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보았다.

이른 아침 아빠를 따라 차를 타고 천리포 수목원을 다녀왔다. 위안을 얻고 싶을때면 푸르른 산을 찾던 나에게 이번 수목원 방문은 많은 기대를 안겼다. 코로나 때문인지 사람들의 발길이 현저히 적었고, 태풍이 흝고 지나간 흔적 역시 아직까지 짙게 남아있었다. 조용한 파도소리만 들리던 이 곳 에 몇분의 봉사자분들은 뜨거운 가을 빛을 등에 이고 마스크 속으로 얼굴을 숨긴 채 태풍이 엎지른 수목원 이 곳 저 곳을 다듬고 계셨다. 키, 이름,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 입은 옷의 모양 까지도 가지각색인 나무와 꽃들을 보며 마음에 초록빛 위로를 가득 담았다. 연두 콩 색 이 잔잔히 깔린 이 곳에서 마음을 열고 모든 것을 안고 싶었다. 머리를 쬐는 초가을의 타오르는 빛이 여전히 덥게 느껴지기도 했다. 길을 따라 걷고 또 걸으며 마스크 안 내 숨은 뜨거운 더위를 피해 조금의 쉼을 필요로 했던 것 같다. 작은 나무길을 따라 걸으니 천리포 해수욕장에서 부는 바람을 마주서게 되었다. 한 풀 꺾인 더위는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았지만, 조용한 바다는 이미 가을의 공기가 넓게 덮었다. 아무도 없는 바다는 내가 그토록 원하던 상냥한 인사를 건네었다. 반가웠고 가슴 떨렸다. 독일에서 눈에 다 담지 못해 쉴새 없이 아쉬웠던 멋진 자연의 경관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내가 늘 마음 속 품고 기다려왔던 “거를 수 없는 자연의 순리”에서 오는 뜨거운 눈물을 오늘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사실 나는 바다를 그리 사랑하지 않았다. 한 여름 바다에 내리는 뜨거운 햇살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찾기 꺼려지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저 끓는 해의 손길을 피하고 싶은 그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바다를 외면했던 것 같다. 그래서 모든 것 이 그늘이고 숨을 수 있는 공간이 가득한 울창한 숲을 사랑했고, 심지어 나뭇잎이 다 떨어져 앙상하게 남은 나뭇가지일지라도 차가운 겨울의 산을 동경하였다. 나의 마음에 가장 적합한 위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년 푸름이와 부산 바다를 간 적 이 있다. 내 생애 친구와의 첫 여행이었다. 늦 여름 조용해지는 밤 바다 앞에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 였었고, 가족과 방학마다 찾았던 어린 날의 귀중한 기억이 나를 스쳐 지나갔고, 검은 밤바다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나도 시원했다. 왠지 모르게 다시 오지 못할 시간에 새삼 감사했기에 울어도 곧 슬프지 않았다. 그 날의 밤 바다는 나에게 눈물의 또 다른 소중한 의미를 다시금 새겨주었다. 그 이후부터 나는 한국의 바다를 꼭 다시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일년이라는 시간을 잊고 살았지만, 오늘 다시 그 날 밤의 눈물을 다시 만났다. 행복, 위안을 찾기 보다도 지나가는 시간을 내 손에 다 담을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늘 가르쳐준다. 조용히 내 마음을 흔드는 파도는 멈추지 않을 것 이고, 일렁이는 파도를 내 힘으로 잠잠케 할 수 없다. 흘러가는 나의 삶과 내 사람들의 삶을 인간의 그 어떤 능력으로도 멈출 수 없기에, 떠나가는 것 에 대해 억지 미련을 두기 보다 마음에 감사함을 적신 채 기억을 저 멀리 보내주어야 함 역시 배운다. 바다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산은 나에게 새 생명의 희망을 안겨주었고, 바다는 나에게 내려놓는 법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다시금 삶에 있어서 내가 그동안 악착같이 잡고 있던 독한 인간의 욕망들을 내려놓았다. 떠나 보내야 하는 것 에 대한,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아쉬움과 두려움에 흘린 눈물을 나누었고, 떠나보낸만큼 나에게 찾아올 또 다른 선물을 기대하며 광활한 바다의 푸른 빛이 나의 등을 쓸어준다. 스쳐지는 많은 생각들을 바다에 풀었다. 오늘 하루, 숲이 주는 싱그러움보다도 수목원의 노을길을 따라 눈에 담았던 반짝이는 물비늘이 주었던 막연한 소망과 사랑의 기억 한조각을 기록한다

하나의 바램이 있다면 10월 한국을 떠나기 전 다시 한번 바다를 보고 싶다. 글을 쓰다 보니 그 바램이 더욱 간절해진다. 사람이 없는 곳 과 때 를 찾아야겠지. 오늘 내가 마주했던 눈물의 시간을 한번만 더 갖고 싶나보다. 나에게 눈물은 그저 슬픔 한 가지만을 뜻 하지 않는다. 나를 돌아보면 가장 먼저 흐르는 것 이 눈물이고, 처음 만나는 누군가를 바라보아도 가장 먼저 느끼는 것 이 그 사람이 품은 눈물인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가슴을 그득히 채우는 눈물을 흘리고 싶다.나를 모르는 또 다른 바다 앞에 서서. 그리고 조용한 기도를 읊고 싶다. 한국을 떠나기 전 딱 한번만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