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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의 기도

나는 무엇을 위해 기도 했고, 또 무엇을 기도 했는가. 내 20대 가장 첫날의 아침부터 마지막 밤까지 단 하루도 빠짐없이 채웠던 “야베스의 기도”. 


어렸을때는 오로지 나의 고통만 보였고, 내 어깨에 올려진 무게만 힘겹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이런 나의 “남다른” 고통이, 그리고 두려움이 언젠가는 찬란한 은총으로 나를 위로 할 것 이라 바래왔던 것 같다. 내가 힘들었고, 내가 두려웠기에, 내가 지혜가 부족했기에, 이 모든것 을 하나님께 말하고 도움을 부탁드렸다. 나의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께서 내가 “구한 것” 들을 허락하시는 그 마지막 이었다. 주님의 허락을 나는 기다렸고, 그 허락이 곧 그저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 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삶을 살면서 내가 바래왔던 “행복한 결말” 이라는 대가가 보이지 않는 이 길을 걷게 하신 것 을 많이 원망했었다. 나 혼자 짊어지는 아픔이 아닌 나의 모자람으로 하여금 그 고통의 핏줄이 나의 가족의 무한한 희생으로 연결되는 것 이 너무나도 견디기 어려웠나보다. 그래서 나는 아주 오랜 시간동안 내 자신을 민폐 덩어리 그 자체라고 여겼다. 그래서 나에게 인생의 도전과 기회, 그리고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 을 극도로 두려워 하였고, 자꾸만 회피하려 하였다. 오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주어지는 기회에 늘 최선을 다했지만, 나의 손을 떠나는 자연스러운 상황과 결과를 마주할때면 내 자신을 못살게 굴었다.  “나는 버림 받아도 되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니까” , “나는 못하니까”, “나는 부족하니까”…


거울 속 가장자리에서 눈 가린채 웅크린 나를 바라보았다. 그 어느 곳 으로 내 자신을 숨길 수 도, 피할 수 도 없던 나는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마음을 나누는 것 이 미안했었고, 이미 나의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정해진 선 없이 품어주는 그 마음들이 내 자신을 더 궁지로 몰아 넣은 것 같다. 내 자신을 믿을 수 있는 별 다른 방법이 없었고 그저 삶을 간절히 붙잡고 살고 싶었다.  “나는 정말 하나님 없이는 안됩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제발 나를 붙들어주세요” 이런 기도를 통해 내 삶에 큰 변화가 있었을까? 그 당시에는 원망만 했다. 눈에 보이는 변화는 개미 눈꼽만큼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오기가 생겼다. 더 기도하고, 더 붙들어보고, 더 몸부림 쳤다. 원망도 셀 수 없이 했다. 아침이 오는 것 이 두려워 하루를 시작하기 전 침대 안에서 하나님한테 기도부터 했다. 분명히 많은 것 을 말씀하셨을텐데.. 사실 나는 기도라고 하기에는 부끄럽다. 갓난아이처럼 그저 내 귀를 막고 울부짖고 있었던 것 이다. 내 울음 소리가 너무 커, 내 아픔이 너무 커, 내 이기심이 귀를 덮어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다. 기도는 했지만, 내 아침은 늘 눈이 퉁퉁 부은 지친 하루의 시작이었다. 기도는 했지만, 나는 레슨실 앞에서 눈물을 훔치며 들어갔다. 기도는 했지만, 나는 강가의 다리 위에서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기도는 했지만, 나는 연습실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손가락을 돌렸다 눈물을 훔쳤다 반복했다. 이 모든 순간, 나는 내가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모든 순간, 나는 그래도 했다. 그래도 나는 하루를 시작 하였고, 그래도 연주를 하였고, 그래도 사람들에게 내 표현을 해보았고, 그래도 연습을 하였다. 누군가에겐 지극히 당연한 일상의 패턴이지만, 나에게는 왜 그리 어려웠는지.. 나는 그때 알지 못했다. 그 평범한 일상 조차 두려움과 싸우기 바빴던 어린 나를 그래도 일으키셨고, 그래도 걷게 하셨고, 그래도 말하게 하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짓게 하셨다. 내가 원망하며 기도했던 모든 순간에 이미 나를 일으키신 것 이다. 지금 생각 해보면, 내가 야베스라 생각 했던 원망 가득한 순간들이 하나님이 축복하셨던 귀중한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한 없이 부족했던 지혜를 넓히셨고, 작은 내가 혼자의 힘으로 설 수 없던 넓은 땅에서 경험하게 하시고, 근심의 시간을 평강으로 채워주셨다. 그저 눈물만 흘렸다고 생각한 그 시간이 나에게는 복된 시간이었고, 복된 사람들을 만났고, 어느 하루 빠짐 없이 선한 그림을 그리게 하셨다. 아마도 내가 그저 다 괜찮았다면, 자만함이 하늘을 뚫었을 것 이다. 두려움도, 조심성도, 감사함도, 이 모든 것 들 없이 함부로 세상을 살았을 것 이다. 연단의 시간을 계속 걷게 하심을 원망 하지 않는다. 나에게 연단은 곧 낮은 삶의 가르침이고, 깊은 곳 에서 채워오는 축복이다. 


10년을 넘게 이 말씀을 읽으며 기도를 하고 묵상했다. 진절머리 나게도 내 자신만 보였다. 오늘은 어떤 고통, 오늘은 어떤 눈물, 오늘은 어떤 어려움 등등. 지금 생각 하면 세상 모든 진부한 슬픈 영화란 영화는 다 찍은 것 만 같다. 오만하게도 그 영화들 속 가장 처참한 비련의 여주인공은 바로 나다. 여느날과 다름없이 야베스를 떠올리며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버텨왔습니까? ” 물었다. 그때 나는 야베스가 아닌 그의 뒤에 엎드린 검어진 무릎의 그의 어머니를 보았다. 고통 속에서 낳으시고, 기도로 키우시고, 믿음으로 세우신 엄마라는 그 여인. 야베스를 있게 한 그 여인. 오늘은 그의 삶의 아픈 씨앗을 심은 그 어머니의 기도를 함께 해본다. 나는 다른 이들에 비해 유복하게 살았고, 가족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내 마음은 매 순간 어둠 속 에서 손을 휘저으며 불안에 떨며 지내었다. 그래서 이렇게 가난하고 괘씸한 마음이 야베스의 어머니가 그를 생각하며 지었던 존귀한 이름 “수고로운 인생”의 마음과도 같다고 감히 생각해왔다.  그의 어머니가 고통과 수고라는 이름을 아들에게 선물 한 것 은 아마도 그 자녀의 삶의 첫 시작부터 주님께 사랑으로 맡길 용기가 있었고, 세상의 존귀한 자 가 되길 소망하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주신 이름, 어머니가 데리고 온 이 세상의 선물, 한발짝 뒤에서 그 삶을 묵묵히 축복하고 또 사랑했을 어머니의 기도와 수고. 야베스 어머니만큼 부족한 자식의 가시밭길을 그렸고, 사랑으로 준비하고 기도했던 나의 엄마를 바라본다. 내가 어떤 삶을 살길 바래왔을까 묻고 싶지만 차마 입을 뗄 수 없다. 가끔은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기도 하다. 몸이 아파 낳았고, 마음이 아파 주고 또 주었고, 그저 주어진 길 걸을 수 있는 온전한 두 다리를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사람. 이제는 내 삶이 아닌 보이지 않는 곳 에서 웅크린채 손을 모았던, 괜찮게 남은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엄마의 간절한 기도가 들린다. 그 그림자의 깊이를 다 이해하고 가슴에 담기에 한참 부족하지만, 몸과 마음이 고독했던 기도의 길에 서서 고군분투해온 엄마의 시간을 잠깐이나마 들여다 본다. 내가 걸어온 이 길의 시작은 엄마의 담대한 마음과 꼭 붙든 양손이 있었고, 그리고 하나님은 그렇게 마음이 어둡고 가난한 나를 하루 하루 손수 일으켜 세우셔서 해를 마주하게 하셨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이스라엘에서도, 그리고 독일에서도.. 내가 열살때도, 스무살때도, 그리고 서른살 지금까지도 엄마의 굳게 잡힌 두 손과 나의 굽이 굽은 마음에서 나오는 아주 작은 고백에 매 순간 귀기울이고 계심을 믿는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다시 기도한다. 야베스의 기도를. 그리고 야베스의 어머니를 위한 기도를 . 


야베스는 나와 엄마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내 주위의 수 많은 야베스를 위해 기도해본다. 간절히 기도하며 시작한 오늘, 눈물로 보낸 오늘, 허무한 마음에 사무쳐 한발짝도 나설 수 없던 오늘, 그래도 버틴 오늘, 수고 했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우리의 삶이 무조건적인 해피엔딩이 아닌, 그저 굽이굽이 걸어가는 길 위에 놓여진 이정표 속 한줄기 햇살 보이는 하늘을 찾이 묵묵히 나아가는 것. 척박한 두 땅이 내 발목을 붙잡아도 힘겹게 한발짝 내어 딛었던 오늘이 우리 모두가 이룬 선한 승리라는 것을 나누고 싶다.

온전한 기억과 그렇지 못한 마음의 마찰. 그리고 눈물

이물감에 눈을 비벼대면 얕은 눈물의 움직임이 들리고 눈물샘을 꾹 눌러 자극을 줄수록 순간의 가려움은 극에 달해 결국 초라한 눈물이 찔끔 거리며 손끝을 탄다. 

내 마음도 그런 것 같다. 나를 살게 하면서 도, 결코 잊고 싶은 지난 기억 속 무언의 감정을 꺼내어 보는 매 순간마다 마음 구석구석이 쓰리다. 위아래로 쓸어내리며 할퀴는 그 감정이라는 기억은 내 등에 차가운 땀을 적신다. 귀에서 그 음성을 기억 하게 되고, 짙어질수록 내 머리를 감싸는 것 만 같다. 마치 내가 다시 그때 그 시간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것 만 같은..

먼지 가득한 내 손의 자극에 의해 답하는 조건 반사적인 눈물처럼, 뿌옇게 덮은 내 어두운 마음은 자꾸만 옛 기억을 되내어 나를 괴롭힌다. 기억과 마음의 마찰 사이에서 쉴새 없이 뜨거운 눈물은 손과 볼을 타고 흐른다.

원래 홍채는 늘 울고 있다고 한다. 늘 눈물을 머금고 있다고 한다. 여러 자극에 의해 세상에 꺼내어 지고 폭팔하듯 쏟아지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지는 것. 사람 마음과도 같다. 기억을 담고 사는 것. 결코 해롭지 않다. 다만 온전히 담겨져 있던 기억을 깨부셔 내 손으로 끼워 맞춘 조각같지도 않은 소모품과 소설같은 오해,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생겨난 오묘한 감정은 독한 염증과도 같다.  품어진 기억은 그리 나쁘지 않다. 그리 위험 하지도 않다. 위험한 것 은 단 하나 뿐 이다. 억지로 무언가를, 아니 누군가를 기억에서 꺼내어 짓누르려는 나의 고약하고 짖궂은 마음. 

기억이라는 우물 안에 고이 담겨 있는 그대로의 눈물을 자꾸만 자극하고 흐르게 하려는 나의 “슬프려는” 마음이 솟구칠때마다 밖을 보며 진짜 눈물을 흘리며 잊으려 한다. 오늘도 나를 찾아온 너를 피하기보다 다시 잘 타이르고 달래고, 또 소리치며 돌려보낸다. 짧지만 치열했던 감정의 소용돌이는 이제 잠잠히 자기 자리를 찾는다. 짙게 그을렸던 기억도, 나의 어둑한   마음 먼지도 이제 저 먼 발치에서 옅은 구름 사이로 몸을 숨긴다. 

어쩌다 – 미안해

일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를렀을까?

목 뒤를 타고 내리는 찌릿한 고통에도 그저 천천히 돌아 누워 얼굴을 파묻는 오늘까지 네 마음이 얼마나 아려왔을까. 도대체 어찌하며 살았길래 마음 속 에 곰팡이 그득핀 슬픔만이 자리하게 되었을까. 너 자신은. 네 주위 사람들은. 그리고 나는. 우리는 도대체 무얼 했을까… 머리가 아파온다.

스물 다섯 살의 네 시간은 울퉁불퉁 가시밭길 만 보이고, 슬픔을 뿜어내지 못해 구석구석 삭아가는 너를 내 마음 속 에 그려본다. 나는 너보다 조금 더 산 사람으로서 “이겨낼 수 있어. 수고했어” 라는 말 밖에 해줄 말 이 없다. 그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되지 못 할지 알면서도 저 멀리 독일에서 무식한 내 진심이 닿기를 시도해본다.

맑고 고왔던 네 두 눈은 어느새 무겁게 내려 앉아 마주칠 수 없다. 예쁜 얼굴은 저 먼산을 향해 바라볼 뿐 나는 너를 볼 수 없다. 그저 남은 것 이라고는 전화기 너머 들리는 너의 착한 목소리 뿐. 어쩌다 너는 모두의 짐을 이고 살아가는 아이가 되었을까. 나는 너가 이렇게 될 때 까지 왜 한번도 너를 꺼내려 하지 않았을까. 너는 괜찮을 것 이라는 믿음에 우리 모두가 너를 계속 내버려 둔 것 은 아닐까. 나에게는 그저 살면서 어쩌다 겪게 되는 우연한 변화라고만 생각했다. 아니 착각했다. 우리 모두가 무지 했고, 날카롭기 그지 없고, 이기적 이었다. 너는 그 어떤 선택의 여지 없이 짊어야 했던 이 무거운 책임감을, 그리고 희생의 고통을, 목젖까지 차올라 네 피부색이 바래버린 오늘까지 버터야만했다. 더는 손 쓸 수 없던 이 아픔을 이제야 우리에게 쉴새 없이 쏟아낸다. 네 의도와 상관 없이 쏟아지는 그 원망은 우리를 미안하게 한다. 그리고 부끄럽다. 네 마음이 가장 아픈 것 왠지 알 것 만 같다.

나에게는 “네게 어쩌다 생긴 변화”에 놀라기 바빴던 시간이었고, 너는 참으로 장하게도 오랜 시간 버텨낸 것 이다. 그렇게 네가 슬픔을 나누니 우리는 그저 갑작스럽고, 미안할 뿐 이다. 그래도 잘했다. 그리고 고맙다.

어쩌다 마주한 변화가 아닌 그 길에서 너는 충분히 오늘이 올 것 을 알고 있었고, 하루라도 네 희생의 시간을 늘리고 늘려 오늘 가장 아픈 것 이라고. 지금 가장 아픈 시간이 너를 지나 저 멀리 공기 속에 사라졌으면 한다.

어쩌다 어쩌다.. 어쩌다 이런 아픔을 알게 되어 다시금 미안해. 너를 향한 내 마음의 자리에서 항상 눈을 떼지 않을께.

천리포 바다 앞에서

코로나가 찾아온 우리의 삶은 어쩌면 많은 것 을 되돌아보게 한다.
독일에서 코로나를 피해 한국에 왔지만 크게 달라진 것 없이 집에서 매일을 또 생각 너머 생각을 쌓고, 연주 영상을 위한 연습을 하다가, 이 책 저 책 꺼내 한번씩 읽고 쌓아둔다. 특별히 이루어낸 무엇 하나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떠올리며 마음에 불안함이 파도 치기도 했지만 이를 마주하는 것 은 가끔씩 치고 지나가는 하나의 반복적인 일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크게 개의치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보았다.

이른 아침 아빠를 따라 차를 타고 천리포 수목원을 다녀왔다. 위안을 얻고 싶을때면 푸르른 산을 찾던 나에게 이번 수목원 방문은 많은 기대를 안겼다. 코로나 때문인지 사람들의 발길이 현저히 적었고, 태풍이 흝고 지나간 흔적 역시 아직까지 짙게 남아있었다. 조용한 파도소리만 들리던 이 곳 에 몇분의 봉사자분들은 뜨거운 가을 빛을 등에 이고 마스크 속으로 얼굴을 숨긴 채 태풍이 엎지른 수목원 이 곳 저 곳을 다듬고 계셨다. 키, 이름,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 입은 옷의 모양 까지도 가지각색인 나무와 꽃들을 보며 마음에 초록빛 위로를 가득 담았다. 연두 콩 색 이 잔잔히 깔린 이 곳에서 마음을 열고 모든 것을 안고 싶었다. 머리를 쬐는 초가을의 타오르는 빛이 여전히 덥게 느껴지기도 했다. 길을 따라 걷고 또 걸으며 마스크 안 내 숨은 뜨거운 더위를 피해 조금의 쉼을 필요로 했던 것 같다. 작은 나무길을 따라 걸으니 천리포 해수욕장에서 부는 바람을 마주서게 되었다. 한 풀 꺾인 더위는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았지만, 조용한 바다는 이미 가을의 공기가 넓게 덮었다. 아무도 없는 바다는 내가 그토록 원하던 상냥한 인사를 건네었다. 반가웠고 가슴 떨렸다. 독일에서 눈에 다 담지 못해 쉴새 없이 아쉬웠던 멋진 자연의 경관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내가 늘 마음 속 품고 기다려왔던 “거를 수 없는 자연의 순리”에서 오는 뜨거운 눈물을 오늘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사실 나는 바다를 그리 사랑하지 않았다. 한 여름 바다에 내리는 뜨거운 햇살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찾기 꺼려지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저 끓는 해의 손길을 피하고 싶은 그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바다를 외면했던 것 같다. 그래서 모든 것 이 그늘이고 숨을 수 있는 공간이 가득한 울창한 숲을 사랑했고, 심지어 나뭇잎이 다 떨어져 앙상하게 남은 나뭇가지일지라도 차가운 겨울의 산을 동경하였다. 나의 마음에 가장 적합한 위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년 푸름이와 부산 바다를 간 적 이 있다. 내 생애 친구와의 첫 여행이었다. 늦 여름 조용해지는 밤 바다 앞에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 였었고, 가족과 방학마다 찾았던 어린 날의 귀중한 기억이 나를 스쳐 지나갔고, 검은 밤바다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나도 시원했다. 왠지 모르게 다시 오지 못할 시간에 새삼 감사했기에 울어도 곧 슬프지 않았다. 그 날의 밤 바다는 나에게 눈물의 또 다른 소중한 의미를 다시금 새겨주었다. 그 이후부터 나는 한국의 바다를 꼭 다시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일년이라는 시간을 잊고 살았지만, 오늘 다시 그 날 밤의 눈물을 다시 만났다. 행복, 위안을 찾기 보다도 지나가는 시간을 내 손에 다 담을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늘 가르쳐준다. 조용히 내 마음을 흔드는 파도는 멈추지 않을 것 이고, 일렁이는 파도를 내 힘으로 잠잠케 할 수 없다. 흘러가는 나의 삶과 내 사람들의 삶을 인간의 그 어떤 능력으로도 멈출 수 없기에, 떠나가는 것 에 대해 억지 미련을 두기 보다 마음에 감사함을 적신 채 기억을 저 멀리 보내주어야 함 역시 배운다. 바다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산은 나에게 새 생명의 희망을 안겨주었고, 바다는 나에게 내려놓는 법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다시금 삶에 있어서 내가 그동안 악착같이 잡고 있던 독한 인간의 욕망들을 내려놓았다. 떠나 보내야 하는 것 에 대한,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아쉬움과 두려움에 흘린 눈물을 나누었고, 떠나보낸만큼 나에게 찾아올 또 다른 선물을 기대하며 광활한 바다의 푸른 빛이 나의 등을 쓸어준다. 스쳐지는 많은 생각들을 바다에 풀었다. 오늘 하루, 숲이 주는 싱그러움보다도 수목원의 노을길을 따라 눈에 담았던 반짝이는 물비늘이 주었던 막연한 소망과 사랑의 기억 한조각을 기록한다

하나의 바램이 있다면 10월 한국을 떠나기 전 다시 한번 바다를 보고 싶다. 글을 쓰다 보니 그 바램이 더욱 간절해진다. 사람이 없는 곳 과 때 를 찾아야겠지. 오늘 내가 마주했던 눈물의 시간을 한번만 더 갖고 싶나보다. 나에게 눈물은 그저 슬픔 한 가지만을 뜻 하지 않는다. 나를 돌아보면 가장 먼저 흐르는 것 이 눈물이고, 처음 만나는 누군가를 바라보아도 가장 먼저 느끼는 것 이 그 사람이 품은 눈물인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가슴을 그득히 채우는 눈물을 흘리고 싶다.나를 모르는 또 다른 바다 앞에 서서. 그리고 조용한 기도를 읊고 싶다. 한국을 떠나기 전 딱 한번만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