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렸을때나 지금이나 하고 싶은 일을 미뤄야 하는 것이 극도의 억울함으로 다가올때가 있다. 해야 할 일을 먼저 해내지 못 한다면 나에게는 하고 싶은 그 일 마저도 내 손에서 멀어진다는 것 을 배운다. 나 혼자만의 삶이라면 하고 싶은 일 쯤 은 미뤄도 된다 하지만, 나와 함께 걷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나를 위해 기다려주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미안함과 초조함은 더욱 커진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나를 그리워 하는 가족과 함께 하는 것 이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은 지금 이곳에 있다. 늘 미안함이 가득한 채 이곳 저곳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한 채 사는 것 만 같다.
누군가를 위해 살아야하고, 늘 미안함은 자리하고,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곧 나의 기쁨이고, 눈치도 지나치게 많이 본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늘 그렇게 살아서 오히려 그것이 주위 사람들에게 큰 부담이 되기도 한다. 나는 그런 마음이 곧 배려이자 선한 길로 가는 것 이라 믿었지만, 오늘날 그 길에서 피어난 나의 이기심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나라는 사람을 알게 하고 함께 해 나가는 것 에 어려움을 주는 것 같다. 남을 위하는 것, 남을 존중하는 것, 더 나아가 내가 꾸는 꿈까지 누군가가 아니라면 아니라고 끄덕이는 것 이 최선이라 생각했지만, 어느새 내가 원하는 것,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 에 혼란이 생기고, 그리고 그 억울함은 말도 못하게 커지기도 한다. 끝내는 내 자신을 탓 하고 후회하곤 하지만, 내가 이 모든 것 을 깨달았을 때 는 이미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난 뒤 다. 그렇게 나를 흔들고 상대를 흔들며 살아온 내가, 오늘 내가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한 굳은 책임감이 생겼다. 이것은 지금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하는 그 마음.. 그것이 누군가를 더 오래 기다리게 하겠지만, 그만큼 음악 앞에서만큼은 바로 서고 싶은 마음이 크다.
코로나 팬데믹은 나를 많은 것 을 가르친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혼란은 나를 걱정하게 했다. 그리고 고요함 속 에서 나를 돌아보게 했다. 모든 것 이 멈추었을때 나는 한편으로는 감사하기도 했다. 내 의지가 아닌 곳 에서 모든 것 을 정지 시켰고, 나는 나의 게으름이 아닌 세상이 주는 경고에 집 밖을 나오지 않아도 되었다. 어떤 하루는 침대에서 뒹구르는 시간 조차 너무 즐거웠다.
함께 사는 가족들이 나에게 물었다. “너는 어차피 학교도 안 가도 되고, 연주도 다 취소 되었는데, 뭐하러 아직까지 너 방에서 하루종일 피아노를 치니” 라고. 이 집 아들은 나에게 굳이 음악이 필요 없다고 가볍게 이야기 하기도 한다.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으라고 한다. 웃음을 머금으면서도 마음 속 에서는 화가 솟구쳤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금이 나에게는 순간의 달콤한 여유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설 자리가 좁아지고, 일자리는 줄어들고, 모두가 함께 고통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음악의 세계를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은 그저 음악은 필요 하지 않은 것 같다고 이야기 한다. “이 시국에 무슨 음악은..” 공연의 기회가 사라진다. 살아남기 바쁜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음악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공연문화가 필요치 않는 세상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잃는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피아노 앞에 앉고, 손가락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베토벤의 편지를 찾아 읽고, 음악을 공부하는 것 이 그저 한량들의 하루가 아닌, 우리의 열정이자 꿈, 그리고 역할이다. 연주가 있던 없던 이것이 우리의 삶이다.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넷 레슨을 찍으려 삼각대를 구입하고, 하루에 한명이던 두명이던 개인 레슨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집 밖을 나선다. 누군가에겐 필요할때만 듣고 이용하는 음악이고, 또 피아노 선생님이지만, 이렇게라도 하루하루를 이어나가야만 하는 살 수 있는 것 이 우리의 삶이다. 언젠가는 오늘을 돌아보며 웃으며 이야기 할 날 이 오리라 믿는다. 언젠가는 클래식 음악세계가 다시금 복구되어 모두가 각자의 자리를 다시 찾아 웃을 수 있길 바란다.
나의 오랜 꿈이었던 “백건우 선생님같은 피아니스트”는 아마도 지금 나의 모습과는 가깝지 않지만, 그래도 그 꿈 때문에 오늘도 고민하고, 살 방법을 찾아나가게 한다. 음악을 하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본다. 그것이 금전적인 활동이던, 교육활동이던, 배움의 시간이던, 내가 할 수 있는 것 들을 생각해본다. 이 모든 것 들을 생각하고 찾아야 나의 마음에도 여유가 생길 것 같다. 그리고 그 여유로움이 조금이라도 쌓인다면 다시금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루에도 백번 천번 마음이 흔들리고, 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하고, 약한 마음을 붙잡고 혼돈의 시간을 지내기도 하지만, 이러면서도 버텨내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 손 잡고 함께 할 수 없는 매 순간이 그리운 사람들이지만, 내가 그 어디에도 건강하게 서 있지 못 한다면, 그만큼 함께 하는 사람들의 걱정, 그리고 기다림은 더욱 커질 것 이다. 꼭 함께 할 날을 기다려본다. 그때까지는 “내가 해야 할 일” 을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