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December 2019

배움 그리고 깨달음

도움 받을 용기
미움 받을 용기

아직도 배워야 할 것 이 한 가득이다.

피해 가지 않게 살기 위해 나만의 방식을 고집 했던 크고 작은 것 들이 쌓여 내 두 어깨에 큰 무게를 싣는다. 버틸 수 없을 것 만 같다. 남들이 말하는 “땅에 한번 시원하게 떨어져야 할 때” 가 온 것 일까.

사랑하는 것을 향한 욕망은 끝이 없기에,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이겨내어야 할 싸움이 많았다. 많은 것 들을 감내해야 했던 흔들림의 시간 속 나는 고독이라는 길을 택하였고, 여러모로 몸과 말의 접촉을 아끼게 되었다. 다들 평범히, 죽도록 열심히, 서로 돕고 기대어 가며 살았을텐데 나는 왜 이 길을 택하였나 내 자신에게 다그쳐도 너무 늦은 듯 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내 마음에는 하고픈 말이 가득 쌓였고, 지금은 이 모든 것 을 걷어내기에 바들바들 떨리는 내 두 팔은 볼품없이 메말라버렸다. 쓸쓸했고 가슴 아팠고 무엇보다 무기력 한 내 자신을 바라보는 것 이 무서웠다. 머릿속을 휘젓는 어슴푸레한 빛에 며칠 밤을 설쳤다.

마음이 너무너무 답답하였던 것 인지, 교수님을 찾았다. 그날 피아노는 열리지 않았고, 나는 코트에 손 구겨 넣은 상태 그대로 멍하니 오랜 시간을 이야기 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억지로 빗어내리듯 있는 힘 다해 속에 걸려 있는 모든 것 토해내어도 내 자신을 향한 한심한 눈빛만 그득히 남는다. 교수님은 이야기한다. “너의 머리가 어느 순간이던 크게 폭팔 할 것 이라는 것 을 나는 이번 해 내내 알고 있었어. 네 삶 속 에 있는 무언가에서 네 자신을 제대로 놓아본 적 이 없다는 것 을 늘 느꼈거든. 너무 늦은 것 은 아니야. 지금 겪어야 할 고민이고 고통이야. 사실 너가 지금 가려는 그 길은 나도 도와주기 힘들 뿐 더러, 너의 고집과 삶 중간에 적정한 타협이 생기지 않는 한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어. 부담을 가득 안고 살아가는 너는 누군가의 도움은 꼭 받아야해. 나 하나만으로는 너를 돕기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해. 특히 너는.. 이곳에서 네 꿈을 이루기 위해 혼자서 일어나기 절대적으로 어려울꺼야. 나는 수많은 한국 학생을 만나왔고, 그 많은 친구들이 네 나이가 되면 어려운 시간을 보내었어. 내가 보기엔 너는 그 친구들에 비해 너만의 길로 나아가려고 하는 고집이 조금 더 센 것 같아. 내가 그 친구들에게 그 당시 큰 도움을 주지 못 하고 지금 네게도 이런 현실 적인 이야기 밖에 해줄 수 없어 마음이 어렵지만,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는 현실이야. 선미, 앞으로 더 심해지겠지만 어딜 가던 음악 그 자체보다 더 많은 것 을 차지하는 것 은 끝 없이 불어나는 음악인의 숫자야. 날개달린 인재는 점점 늘어나고 나누어 설 수 있는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어쩌면 음악 그 이상의 것 이 필요하기도 하지.. 음악을 꾸준히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네가 그렇게도 사랑하고 오래도록 하고픈 음악이 네 삶 속 얼마만큼의 자리를 차지하는지, 음악과 네 개인생활과 가족 가운데 얼마만큼의 책임이 요해지고 또 놓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며 이 모든 것 을 네가 확실히 알고 선택 할 자신이 있는지 ..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으로 너의 행복과 같은 선에 서 있는지 현실적으로 간단하게 생각해봐. 지금처럼 생각이 멈추지 않을때면 언젠가는 이 시간에도 끝이 찾아온다는 것 을 잊지마. 결단의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복잡하겠지만 그 결정이 빠르면 빠를수록.. 마음은 한결 빠르게 가벼워지겠지? 나는 무엇보다 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생각에 빠져 있다가도 어렵지 않게 나오는 법을 터득했으면 좋겠어. 꼭. 그리고 그 것 이 네 자유로 이어지는 큰 마음의 결정의 길에 한 시작이기를 바라고.”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저녁이 되어 대화는 마무리 되었다. 제대로 된 성탄절, 신년 인사도 건네지 못 한 채 구구절절 늘어놓았던 내 고민을 들어주신 교수님께 감사하다. 답답한 나머지 음악세계의 명암을 경험한 내 위의 누군가에게 다 털어놓고 싶었던 것 같다. 내 앞에 있는 많은 문을 열어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열리지 않는 하나의 문 앞에서 그 문고리가 산산조각 나도록 잡고 흔들어 대었던 내 자신을 바라보게 된 시간이었다. 굳게 잠긴 철문 앞에 고개를 박고 선 채 수도 없이 원망하며 두드렸고, 철문 옆 열려있던 또 다른 문 작은 틈새로 흘러 나오던 새삼 다른 바람의 손짓에는 절대 답하지 않았다. 그 문 뒤에 누군가가 나를 기다렸는지, 어떤 세상이 있었는지 열어보지 않는채로,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애쓰며 살아왔던 나에게 뭐라 말을 건네야 할 지 모르겠다. 바보라고 일컫는 것 외에는 .. 시야를 넓히고 현실을 바라보고 열려있는 문으로 다가가는 것 이 늦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해봐야할까? 그동안 잡고 서 있느라 부서진 문고리를 향한 괜한 배신은 아니겠지? 지금까지 한 곳만 바라오며 지내왔던 나의 고집을 내려놓는 오늘이 너무 늦은 것 은 아니겠지? 적어도 한 사람은 지금 나의 오늘이 늦은 후회와 반성의 시간만이 아닌 피할 수 없는 현실적 기로에 서서 갖는 성장 속 귀한 시간이라고 했으니까..

손 내민 사람 민망하게 거절했던 나의 지난날이, 꿈 속에서 아름다운 헤엄을 치며 혼자만의 고독이 유일무이한 연단의 길이라 믿었던 지난 날 이, 쪼잔하고 조심스러웠던 20대가, 싫은 소리 하지 못해 끙끙 대었던 못난 나의 모습이, 그저 모든 것 내주고도 바보같이 웃었던 시간들이 빠르게 뇌리를 스친다. 미움을 받는 것 이 두려워 하지 못 했던 많은 것 들에 작은 후회를 느끼며 존귀한 도움의 손길 조차 잡는 방법을 몰라 어려움을 느낄때, 사람들은 나보다 더 큰 마음으로 살아가고 또 용서 하고 사랑하고 포용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내가 이 모든 것 을 뒤로 하고 사랑하는 음악만을 했다고 믿었던 옹골진 나의 어제는 지금 나에게 큰 고통으로 다가온다.

요즘들어 이 생각을 자주 한다. 실력이 부족한 나에게도 사랑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 일까? 무언가를 사랑하고 품어낼 수 있는지의 자격의 조건을 온전한 나의 기준으로 따져 만들어내고 살았던 내가 정작 생각 하지 못했던 현실적 기준.. 그 선에 막상 다가 서기엔 한 없이 부족한 오늘날의 초라한 모습을 보게 하심이 하나님의 목적이셨을까. 나의 하늘색 꿈은 그저 꿈 속에 고이 머물어야 했던 것 일까.. 회색 빛 현실에서 어우러질 수 없을 왜 그때는 미처 알지 못하였을까.

더불어 사는 세상의 의미를 오래 전 잊고 살았던 고집스럽고 치졸했던 내게 음악인으로던, 여자로던, 사람으로던 차가운 콘크리트 땅에 혼자 설 생각 추호도 말고 여러 이웃 굽이굽이 함께 사는 흙밭에 버려진 씨앗이 되어서라도 빗물과 햇빛을 마주하고, 지나가는 개미에게 땅이 되어주고, 누구든지 기대고 엮이고 함께 뿌리내려 손잡고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는 것 만 같다. 그 인연이 지금 보이던 보이지 않던, 함께 이루어 내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여전히 그려내기 어려운 나 이지만, 결코 나 혼자 이루어 낼 수 있는 세상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 은 이제 잘 알게 되었다..

늘 그래왔듯 2020년도 존버의 삶을 살 계획이다. 나만의 눈으로 고집하고 그려내는 존버가 아닌, 함께 이뤄내는 존버의 삶에 가까이 걸어가고 싶다. 아직 그 방법은 잘 모르지만 부딪혀 봐야지.. 이번 한 해는 내 자신과 한참 지난 관계를 용서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작게나마 배웠다면 새로운 해에는 미움 받는 용기와 도움을 청하는 용기를 위해 늘 기도 하고 두려움 없이 주위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다. 몸도 마음도 그 어느 곳에 쉽게 정착할 수 없겠지만 이렇게 매순간 존나 버티면서 내 마음에 품은 쓸데없는 욕심을 하나 하나씩 내려놓는 법을 배우고 나를 낮추고 다시 오르다보면 조금 더 큰 사람으로, 그리고 한결 자유로운 사람으로 성장 해 있지 않을까 심심한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