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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를 지배한 생각들

하루에 몇번이고 내 자신의 무능력함에 한숨을 쉬곤 한다. 끝까지 이 길을 완주하길 기도하며 버티고 있고, 마지막 선 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을 그려보며 묵묵히 걷고 있지만, 그 어느곳에도 닿지 않는 것 을 보면 나도 모르게 잠시 마음이 떨려온다. 오직 할 줄 아는 것 이라곤 피아노 치는 것 밖에 없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의 삶도, 나의 연주도, 나의 진심도 많은 이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간다. 모든 것 에서 멀어져가는 내 모습을 담담히 바라보다가도 현실적인 벽 앞에서는 마음이 아려온다.

관심을 통하여 마음의 길이 열린다고 생각 한다. 누군가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실력과 스타일이 곧 그 사람을 판단하는 성적표와도 같아지는 이 시대에 내가 부족한 것 이 너무나도 많다. 제대로 쌓지 못한 내 실력 말고도 내가 무언가 단단히 잘못했나 싶다. 몇몇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미움을 샀으면 그 미움이 비웃음을 너머 무관심으로 변했을까. 알 수 없는 이유가 조여와 숨이 턱 막힐때 현실 세계에서 나에게 다시금 말을 건네며 뒷머리를 내려친다. “너는 없다 없다 인줄까지 없다”. 인줄..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그 인줄의 힘 앞에서 무너지는 느낌이다. 실력도, 인줄도 없는 나는 유럽 한 가운데 고집스레 떠 있는 미운오리가 된 것 만 같다. 유학생활을 하며 무엇을 지켜내려 했는지 잘 알기에 오늘날의 내 모습이 크게 놀랍지 않다만 예고 없이 스치는 쓰라림에 반복하여 큰 숨을 내뱉어본다. 누군가에게 의지 할 수 없이 혼자 서는 것 은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음악계에서는 절대적인 누군가의 지지가 필요한 것 같다. 온전한 나의 힘으로 일어나기에는 나는 가진 것 이 너무나도 없다. 열심히 사는 삶은 우리 모두의 것 이기에 나의 “삶 기록표” 에는 열심히 사는 것 그 이상의 능력이 필요하다. 

어렸을 적 내가 존경하던 분이 계셨다. “호상이 엄마”. 그 분 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던 분 이다. 예원중학교에 있을때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던 그 분은 내게 “만남의 축복을 위해 늘 기도하라” 하셨다. 그 분의 말씀은 짧았지만 단호하였다. 그 이후 늘 기도 하였다. 감사하게도 은혜 가운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오늘도 나는 그 기도를 올린다. 배경도 요령도 없는 나 이지만, 만남을 통한 축복을 경험 할 수 있기를. 많은 이들을 통한 축복이 아니더라도, 단 한 사람에게라도 내 음악 속 진심이 닿는 축복을 허락해 주시기를. 아니면 지금 이 시간을 혼자서 이겨낼 수 있는 강건함을 허락하시기를. 

선배들의 현실적인 조언을 머릿속에서 쉼 없이 되내인다. 나의 실력과 나의 현실. 그리고 내년에 내가 어느 곳 에 서 있을지.. 누군가는 미국에 가서 박사를 하라하고, 누군가는 유럽에서 버티어 직장을 잡으라 하고, 누군가는 한국으로 돌아가서 결혼 하라 한다. 모두가 나를 위해 해주는 말 이지만, 정작 내 마음에는 그 어느 곳 이던 자신이 없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없을 것 만 같다. 이토록 고민하고 고생했는데, 그 끝이 너무 미약해 지는 것 이 아닐까 두려움이 앞선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지만 지켜내어야 할 것 이 많은 오늘도 하루종일 고민에 빠졌다. 

음악가로서 자리를 잡는 것 이 이리도 어려운 줄 은 몰랐다. 이보다 나를 더 무겁게 짓누르는 것 은 주위의 걱정어린 시선이다. 주위에서 나에게 결혼 생각이 없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계속 피아노만 칠꺼냐며, 언제 끝나냐며. 웃으며 넘기지만 그런 질문을 받을때면 참 곤란하다. 가족들은 기함할 일 이지만 어렸을 적 부터 “엄마”가 되는 것 이 꿈 이었다. 가정을 빨리 이루고 싶은 꿈이 컸던 내가 서른을 넘긴 오늘도 혼자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아직 결혼 하기에 너무 부족한 점 이 많아 그 축복까지는 허락 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언젠가는 순리대로 행하실 축복이라면 내가 조급한 마음을 갖지 않는게 맞는 것 같다. 

매일 밤 잠이 들기 전 에 엄마의 연락을 받는다. 콩쿨 생각은 없는지.. 누구는 무엇을 하는데 우리 딸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8월은 유난히 유학생들의 연주가 많다고 하는데, 독일 방에서 연습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이 영 마음이 무겁다. 엄마와 통화 하면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다. 나만 믿고 있는 엄마에게 원하는 결과를 못 가져다 주어서 또 미안하고 죄스럽다. 괜한 기대를 하고 살게 한 것 같아서. 엄마 목소리는 곧 나에게는 현실을 극복하고 이겨내라는 종소리 같다. 힘이 들지만 나태해지지 않기 위한 이상한 힘이 솟아난다. 

어떻게 나같은 사람이 이 자리까지 왔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 해 봐도, 은혜 하나뿐이다. 이 은혜를 붙잡고 어려운 이 순간 역시 잘 넘길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이제 복잡한 머리를 털어내고 내가 제일 잘 하는 것 을 해보련다. 깊은 잠 자는 것. 

오랜만에 쓸데없이 우울하지 않은 글

다시 뮌헨의 내 방 Neuburgerstraße 로 돌아왔다.

한국에 잠깐 다녀올때면 10년 전 함께 했던 친구들, 언니들에게 받은 편지 상자를 정리 하곤 한다. 내가 벽을 세울 수 밖에 없던 그 오랜 시간 동안 나에게 무수히도 많은 사람들이 다가왔었다. 그 손을 쉽게 잡지 못했던 나는, 오늘 하루도 “혼자 살아도 꽤나 괜찮은 삶”에 만족하고 있지만, 이제는 제법 사람들에게 연락 하는 것 이 어렵지 않아진다. 그들에게 감사했던 그 마음을 더 표현할 수 있는 용기가 선 것 만 같다. 마음 편히 누군가를 보는게 이렇게 행복 한 것 임을 조금만 더 빨리 알았다면.. 나의 침침했던 눈동자에 담을 수 없었던 많은 이들의 사랑의 흔적이 새삼 고맙고 또 가슴 벅차게 한다. 

잠깐이지만 행복했던 한국에서의 시간을 뒤로 하고 독일에 돌아올때면 이번 해가 가기 전 마쳐야 할 일과 임무를 적는다.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이 모든 것 들을 다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늘 앞서지만,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예나 지금이나 어차피 해야 될 일들이고, 일어 날 일 들이라는 것 을 기억 하게 한다. 어려워도 하게 되어 있고, 힘들어도 버티게 되어 있고, 계속 끊임 없이 만들어 나간 다는 것 .. 많은 이들도 그렇겠지만, 내 뜻대로 쉽게 이루어지는 것 하나 없는 삶에서 묵묵히 같은 일을 반복하며 얻게 된 큰 위안이다. 

삶은 참 재미있다. 내일이 오지 않길 바라면서도 내일 뭐 할지 생각하게 하고, 눈을 뜨기 싫은 그 순간도 머리 속 에서는 악보를 그리곤 한다. 오늘은 마주치지 않았으면 하는 순간에도 그 사람을 보며 웃고 있고, 교수님 방 문 손잡이를 앞에 두고 시계 초침이 정각이 되길 바라보며, 간절한 기도가 끊이지 않는다. 하늘에서 나를 바라보면 얼마나 이런 내 모습에 우스울까 싶기도 하다. 

지난 봄, 유난히도 고된 시간이었다. 하루는 내 마음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일을 앞두고, 혼자 가슴을 쳐대며 울기도 하였다. 내가 정말 이렇게 무너지는구나 하는 막대한 고민 앞에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몸과 마음이 격정상태에 이르러 하루를 넘고 이틀이 넘어가면서 벼랑 너머 암흑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그 어떤 것 도 할 수 없었던 나를 깨운 것 은 기도 였다. 야생마와도 같은 수 많은 노예들의 절규를 이끌고 홍해 앞에 다다른 모세의 기도처럼, 미처 날뛰는 내 정신을 붙잡고 믿을 수 있는 것 은 하나님 한 분 이었다. 나의 인생은, 나의 하루는 내가 생각한대로 이루어 지지 않음을 매 순간 배운다. 그때마다 고요 속 에서 움직이는 그 분의 임재는 길길이 치솟던 나의 감정의 불을 끄신다. 입을 닫게 하시고 귀를 닫게 하시고 무릎 꿇었을때 나를 일으키셨던 그 순간을 잊지 못 한다. “이럴 수 없어.” 되내이며 머리 속 을 휘몰아 쳐대는 나의 어리석은 두려움은 결국 이루어질 일을 눈 앞에 두고 고집을 부리는 것 임을 안다. 수천번을 해 왔기 때문에, 이제는 아주 조금 알 것 도 같다. 내가 어려움에 닥쳤을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입을 닫고 나를 버리고 한 음성에 귀를 귀울이는 것. 

내가 고요함을 늘 찾는 이유 역시 이곳에 있지 않나 싶다. 세상을 살기에 턱 없이 부족한 나의 지혜가 아닌 고독함 안 에서 피우는 한 줄기의 믿음이, 고요함 속 에서 귀 기울이게 되는 하나의 음성이 나를 일으키는 유일한 열쇠라는 것 을 오늘도 배운다.

묵묵히 한 길 걸으며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나와같은 치유의 시간이 주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하나님을 믿던 믿지 않던 그 사람들이 포기 하지 않고 선한 길을 걷길 바란다. 이국종 박사의 [골든 아워] 를 읽으며 외로운 싸움을 감당해내야만 하는 삶을 여럿 접했다. 그 책을 읽으며 다시금 느꼈다. 내가 하는 이 길은 누군가에 비하면 그리 어려운 길 도 아니고, 그리 외로운 길 도 아니다. 두권의 책 속 한글자 한글자 타고 올라오는 묵묵한 죽음의 무게는 감히 내가 사는 이 삶과 비교할 수 없다. 나 자신의 고통을 넘어서서 나의 사람들의 육체와 영의 희생까지 교차되는 순간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잘 버텼으면 좋겠다. 고요 속의 외침이 고단한 어떤 이의 메아리로 허무하게 끝나는 것 이 아닌, 애써 쥐고 있던 한 숨 풀어내며 웃을 수 있는 치유의 시간이 꼭 오길 바란다. 그리고 그 고요 속 의 음성이 내게는 하나님이었다는 것 을 언젠가는 꼭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