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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을 극복하는 것 은 곧 주님을 경외하는 것 에서부터 시작되어 돌을 하나 하나 쌓아나가 천국에 닿는 그 순간까지 찬양으로 고백하는 것 이다.

내 인생에 특별한 시련이 있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시련의 크기는 상대적인 것 이 기에 내 자신의 시련이 누군가의 눈에는 그저 하나의 “그럴 수 도 있는 해프닝” 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이에게 각기 다른 방법으로 함께하심을 약속 하시듯, 내 삶 하나만을 바라보았을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 가는 그 순간까지 나만의 시련을 이기는 것 을 너머 다른 이의 고통을 이해하고 감싸 안도록 하게 하시는 것 같다. 시련 앞에서는 그 누구도 강할 수 없다. 나 역시 두려움을 느끼고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아직까지 나도 매일을 허우적대지만, 하나님께서 중학교 3학년때 처음으로 몸소 느끼게 해주시고 지금까지 늘 기억하게 해주시는 한가지는 하나님을 경외 하는 것 이 이 세상과 나의 무지함이 주는 시련 앞에서 진정으로 강해지는 것 이라는 것 이다. 그래서 내 주위에 누군가가 아플때마다 그 상황과 환경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자고 이야기 한다. 물론 막상 내게 조금이라도 어려움이 닥칠때면 마음이 쓰라리게 아프고 눈물이 터지지만. 주님을 경외 했을때, 내게 오는 평화와 그 분의 변함 없는 약속. 그것이 내가 어려움을 바라볼때 일어나게 되는 하나님의 마법과도 같다. 아직 누군가에게 이런 고백을 나누기에는 내가 부족함이 많기에 함부로 말을 꺼내기가 두렵기도 하다. 나의 고백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시련에 같이 아파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공감형성에 있어서 턱 없이 모자라지만 그래도 그들을 위해 혼자서 끊임 없이 생각 하고 기도 하는 것. 누군가가 기쁨을 나누는 순간과 그 자리에 함께 하고 싶을 때 도 있지만, 나는 기쁨의 순간보다 시련을 극복하는 그 곳 에 함께 하고 싶다. 내가 부족할지라도, 나의 작은 기도가 그 사람들에게 아무 도움이 못 될 지라도.. 나의 기도가 모든 것 을 평정하는 것 이 아닌 기도와 찬양을 통해 하나님을 상황 가운데 모시는 것 이 하나님이 어린 딸에게 주신 “누군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인 것 같다.

피아노 연주를 통해 하나님과 사람을 교통하게 하는 다리가 되고, 기도를 통해 어떤 이의 치유가 일어나는 기적을 함께 하고, 찬양을 통해 사랑을 고백하고, 두 팔 두 다리로 어린 영혼들을 사랑으로 보듬어주고 싶다. 매일 밤 다짐 하고 또 다짐을 한다. 어떤 곳 에서든, 어떤 방법으로든, 특히나 보이지 않는 곳 에서 무던히 쓰임 받는 자가 될 수 있길.

2018년 마지막 다짐

셀 수 없는 고민들과 두려움이 나를 휘몰아칠때면 조금이라도 마음의 공간을 정리 하고자 짧은 글을 쓰는 버릇이 생긴지 벌써 10년이다. 처음에는 공책에, 손이 아파서 어느샌가 컴퓨터에, 그리고 또 다시 공책에.. 2019년을 앞에 두고 또 나는 버릇처럼 이 생각 저 생각을 끄적인다.

나에게 늘 첫번째는 하나님이었듯, 이번 한 해 역시 하나님이 내 삶에 행하신 기적들과 도전들이 많았다. 가끔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동생, 누군가의 친구, 그리고 연주자 한선미가 아닌 인간 한선미의 모습을 관찰 하기도 한다. 하나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과연 얼마나 엉망진창일까. 그렇게도 형편 없는 나의 모습을 감싸주는 분 의 마음을 과연 내가 생각에 담아봐도 될까 하는 생각.. 하나님을 찬양 하는 도구가 되고자 피아노를 시작 했고, 하늘의 감동이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치유를 함께 경험하기 위해 음악의 길을 걷고 있다. 사회적으로, 딸, 동생, 친구로서 물론 부족함 투성이인 나 이지만, 그 아무도 모르는 나의 모습 한부분 한부분까지 다 아시는 하나님 눈에는 더더욱이 못난 아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음악을 통해 나를 쓰시려는 그분의 계획에 내가 감히 열정의 불을 지핀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손 댈 수 없이 커지고.. 음악을 통해 누군가의 삶에 안식처가 생기는 그 일을 도맡아 유지하고자 지금도 이렇게 피아노를 치는 것 같다. 완벽한 사람만이 음악을 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감동이란 절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주 만물의 감동을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크고 작은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홀로, 또는 같이 음악을 하는 것 이 아마도 그 분의 의미에 빛을 더하는 것 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일은 완벽한 사회적 우위를 갖고 태어난 사람만이 아닌, 쏟아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과 손끝을 통해 그려낼 수 있는 자에게도 주어진다는 것 을 다시금 느낀다.

스물아홉이 되어도 나는 마냥 어린 아이 같은 생각을 할 때 가 있다. 그래서 남들 눈 에 많이 철 없게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신체적으로 보이는 동안의 의미를 너머 내적 성숙미가 부족한 사람이 되는 것 이 두려워지고 있다. 시간의 흐름 속 부족함이 이곳저곳에서 끊임없이 드러나는 나를 아직도 이끄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릴뿐이다. 내 온전한 의지가 아닌 그 분의 계획 속 에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기적 가운데 살아왔으며, 앞으로 역시 그 산 증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 이 나에게는 삶의 큰 선물과도 같다. 내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것 은 주위의 환경 일 수 도 있고, 나의 노력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념으로 채워질 수 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이 오로지 나로 하여금 채워진다면 이기적인 사람으로서밖에 남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든다. 내가 나의 마음을 가난히 둔 채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크고 작은 가르침과 사랑으로 채워질수 있도록 기다리며 겸손하게 사는 것 이 앞으로 꾸준히 실천해야 하는 숙제와도 같음을 깨닫는다. 나를 낮추는 방법. 나에게는 여전히 어렵지만, 나를 낮추는 것 이 곧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높이는 것 임을 확신한다.

나는 상냥한 “척”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짧은 순간 보이는 상냥함이 아닌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진심으로 성스러워지고 싶다. 애교가 그리 많지 않지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따뜻하고, 상냥하고, 착하고, 이 모든 것 을 떠나 진실한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 그 진실이 나 한 사람에게만 묻어나는 것 이 아니라 음악에도 절실히 묻어났으면 좋겠다.

2019년은 더 특별했으면 좋겠다. 음악적으로 더 성숙한 도전도 기대하고 있고, 하나님과의 이 소중한 소통의 시간을 게을리 하고 싶지 않다. 사람들에게도 조금 더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족들의 행복에 큰 이바지 할 수 있는 능력은 못 되지만, 그래도 부모님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평안을 드릴 수 있도록 실질적인 방법도 연구 중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