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뮌헨의 세번째 가을이 온다. 뉴욕에서 7년, 이스라엘에서 2년, 또 뮌헨에서의 3년.
이번 해 여름이 오기 전 까지 나는 늘 마음에 먹먹함을 달고 살았던 것 같다. 행복해지는 것 에 대한 두려움이 무엇일까? 도대체 어디서 이런 마음이 생겨나는것일까? 4-5년동안 끝없는 의문을 품고 자책 하기도 했다. 서른이 되기 전 이번 해 만큼은 이 해답을 꼭 찾아보고자 조금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행복을 누리는 것 이 왜 나에게는 부담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 보다 더 불편했던 것 이 었는지를..
지금까지와 다르게 이번 여름 4주는 한국에서 지냈다. 4주의 시간동안 중요한 분들 뵐때를 제외하고 나는 오로지 집에만 있었다. 다른 곳 이 아닌 우리집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어보고 싶었다. 더 나아가 집을 지키며 가족들을 배웅하고 맞이하고 싶었다.
무모했지만 “음악을 하는 사람이 연습에 바빠야지, 사람을 만나야지, 연주를 기획해야지” 이런 생각 접고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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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 아빠가 방에서 나오길 기다렸다가 아빠가 대문을 나설때까지 조잘조잘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엄마의 이른 새벽 운전이 위험하지 않게 혈압약을 챙기고, 커피를 챙겨 담고, 샌드위치도 만들고, 사과를 갈았다. 한창 일하느라 밤낮이 바뀐 오빠의 아침밥을 지었다. 모두가 나가면 집을 정리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분리수거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행주를 삶았다. 엄마가 연락 오면 도착 시간에 맞추어 집 앞에서 장을 보고 들어왔다. 아빠가 가고싶어했던 맛집을 찾아가고, 아빠가 좋아하는 동네 산책을 했다. 오빠가 일 끝나고 들어오면 입이 심심할까봐 좋아하는 바나나우유와 닭강정, 그리고 과자를 잔뜩 준비해놓고 기다렸다. 건강에 좋지 않은 것 알면서도 나와 입맛이 비슷한 아빠에게 우유 마카롱과 함께 밀크티를 마시게 했다. 낚시 채널을 틀어놓고 아빠 등드름을 짰다. 매일 밤 엄마가 잠들때까지 다리를 두들기고 얼굴을 마사지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할아버지 손잡고 스타벅스에 가서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시는 음악 이야기를 하며 셀카도 많이 찍었다. 지상파 일일 드라마들의 모든 내용을 미리 알고 이들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 막장 드라마들인지 엄마 아빠에게 설명해주었다. 가족 누군가가 들어와도 허전함을 느끼지 못하게 거실에 앉아 쉴새없이 떠들었고, 냉장고를 채우고, 집을 치우고, 맛있는 것 을 사오고.. 온 가족이 매일 함께 앉아 먹는 것 은 불가능 했지만 어느 한 사람도 절대 혼자 밥을 먹게 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제일 많이 먹었다는 뜻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와도, 아빠와도, 엄마와도, 오빠와도, 강아지와도. 누군가에겐 다분히 평범하고 별거 아닌 일 일 수 도 있다. 모든 것 을 다 나열할 수 없지만, 4주동안만큼은 내가 손 발이 되어주고 싶었고, 나의 오지랖으로 하여금 우리집이 텅 빈 공간 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컸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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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때부터 내가 방음벽으로 둘러쌓인 방에서 연습을 시작하면 아무도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잠깐 한국에 나오더라도 내가 무슨 계획이 있는지, 바쁘지 않은지, 혹여나 내 일 에 방해가 되지 않을지 가족 모두가 나에게 맞춰 살아주었다. 음악을 하면서 다방면의 의미로 중요한 것 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음악을 통한 소통과 치유가 즐거워서 시작했는데, 결국 가장 중요한 사람들로부터 소통의 시간을 빼앗었던 것 같다. 워낙 사람들과의 교류를 어려워 하는 나였기에 관계 속 무언의 책임이 오는 것 에 대해 큰 부담을 지고 살았다. 실망을 주기 싫어서, 상처를 주기 싫어서, 아예 관계를 시작하지 않으려 했다. 어린이 같은 마음이다. 그런 부담을 가족 안 에서는 모두 내려놓을 수 있었고, 기댈 수 있었고, 솔직 할 수 있었다. 음악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너무나 당연히 내 목소리를 내며 지냈던 것 은 아닐까, 내 삶이 가족들에게 어려운 시간을 준 것 은 아닐까, 혼자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내가 음악적, 그리고 사회적인 외골수로 살아왔기에 좋은 점도 있었고, 나쁜 점 도 있었다. 이렇게 살아왔던 것 에 큰 후회는 없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독이 된 것 같아 늘 미안함을 갖고 지냈던 것 같다. 나는 음악을 하는 것이 고되다고 생각 해본 적 이 없다. 아직 진짜 고된 수준에 미치지 않아서 일까? 어려움을 넘었을때 펼쳐지는 큰 세상이 다 내 것 만 같아 짜릿하고, 이런 세상을 보여주고 나눠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이것이 나의 사명임을 오래전부터 느껴왔고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진 사명이 내가 앞으로 어떠한 음악가로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정표와도 같다.
늘 나를 기다리며 살아온 가족들을 위해 이번 여름만큼은 내가 가족들에게 맞춰 사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미안함을 넘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을 주고 싶었다. 사랑의 다섯가지 언어 중 에서 나는 “quality time” , “words of affirmation”, 그리고 “acts of service”로 소통했던 것 이다. 아주 작은 것들이었지만.. 예전에는 이렇게 할 수 있는 시간 조차 매우 짧았다. 내 삶의 전부인 음악을 잠시 내려놓아야 했던,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내 마음의 해답을 찾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웃게 해주고 싶었던 나로써는 굉장히 큰 결심이기도 했다. 무식하고 무모했지만 오래 묵혀왔던 내 자신과의 감정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어쩌면 가족들을 위한 방법이었다기보다, 나를 위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결론은, 두가지이다.
첫번째, 이미 우리 가족의 삶은 굳이 내가 없어도 꽤나 괜찮아왔다는 것 이다. 나를 늘 기다려야했던 가족들의 어려운 시간은 이제 오랜 과거가 되어버렸고, 부모님은 이 모든 허망한 경험과 시간 속에서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나를 사랑했고 기도했고 위로했고 치유받았고 그리고 그 안 에서 새로운 삶을 구축하신 것 만 같다. 내가 그렇게도 가족들에게 미안했다면 진작에 이 생활을 그만두고 서울에 살았어야 할 것 이다. 나는 당연하게 이기적이었고, 지금도 이렇게 이기적으로 살고 있다. 뮌헨으로 돌아오기 전 그동안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고 고백하니, 너와 매일을 함께할 수 없지만 멀리서 열심히 살고 있는 것 을 알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정말 감사하다는 그 말을 다시 듣게 되었다. 항상 보고싶었고, 그렇기에 이번 여름이 너무 행복했었고, 그리고 또 다시 보내야하는게 괜찮지는 않지만, 이제와서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리는 것 역시 무리수 이고 어리석다고 하신다. 내가 엄마가 된다면 과연 우리 부모님같이 잘 할 수 있을까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두번째, 내 삶을 더욱 더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언젠가는 우리 부모님과 오빠, 그리고 나의 남편과 아이들이 나에게 기댈 수 있도록 든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늘 과거에 얽매여 살았던 것 같다. 2년 후를 바라보고, 5년 후를 바라보고, 10년 후 를 바라봤을때 가족들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이곳에서 조금 더 치열하게 살아야 겠다는 마음이 다시금 강해진다. 음악을 하는 세계 안 에서만 살아왔었을때 알지 못했던 현실적 부담을 근 몇년간 마주하기 두려웠지만 막상 마주해보니 한가지의 정답만은 없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자리로 올라서는 것 이 이제 내가 할 일 같다.
물론 내가 상상했던 그렇다할 명쾌한 해답을 얻은 것 은 아니다. 음악을 통해 얻는 행복을 가족과 함께 누릴 수 없음에 밀려오는 미안함과 아쉬움은 항상 그 자리에 있겠지만, 앞으로의 삶에서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있는 많은 기회의 장은 음악에서만이 아닌 또 다른 경로를 타고 온다는 희망과 확신이 생겼다. 가족에게 희생의 짐을 지게하고 철 없는 식의 사랑만을 주었던 딸이었고 동생이었지만, 그런 나의 보잘 것 없는 사랑 조차도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는 것 에 새삼 감사드린다. 내가 없는 서울의 고요한 집을 매일 머릿속에 그리기보다, 시끌벅적 모두가 함께 하는 날을 하루라도 더 앞당길 수 있도록 기도하며 지금 딛고 있는 이 땅을 단단히 다져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