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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집으로 와서 오래도록 묵혀두었던 대학시절 편지들과 사진들을 모아둔 상자를 열었다. 많이 지쳐있던 몸 과 마음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기억해야 할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에, 그 기억을 찾으러 열었을 뿐 이다. 수북한 편지들 사이 사이 온갖 다짐과 기도가 빼곡하게 적혀있는 포스트잇 종이들까지 .. 없는게 없다. 오늘 밤 이 상자 속 편지들을 다 읽는다면 아마도 늘 그리웠던 5년이라는 시간동안 무엇을 꿈꾸며 살아왔는지 또렷하게 그려질 것 만 같았다. 친구들과, 언니들과, 내 마음 속 자아와 주고 받았던 풍성한 편지 더미 속 투박한 봉투 두 장이 겹쳐진 채로 떨어졌다.
이 두 편지 봉투 속 에는 아빠의 긴 글이 적혀 있다. 날짜,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 까지.. 이메일이 아닌 한국에서 미국으로 날아온 손 편지 이다. 2009년 겨울에 받은 편지, 그리고 2012 년 여름에 받은 편지. 아빠와 나의 시간을 다시 돌아보기 위해 읽게 되었다. 나는 각각 세장에 걸쳐져 빼곡하게 적혀 있는 아빠의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그 당시 즐거웠던 기억이 많은만큼 아마도 내 마음이 가장 심란했던 시기였음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었다 .. 사실 그 당시 만해도 다른 누구보다도 내 마음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빠의 편지 속 한 자 한 자 에 담긴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하였다.
수년이 지난 올해 이렇게 다시 그 편지들을 꺼내어 읽어 본 오늘, 나는 아빠의 애뜻함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 넣었다.
늘 아빠는 나에게 웃어주던 사람이 였기에 아빠가 그렇게 늘 웃기만 하는게 어쩌면 나에게 아픔을 나누지 않는 것 같아서 섭섭할때도 있었다. 할아버지가 떠나 신 후 그 해 겨울 , 아빠가 보낸 편지 속 에는 차디찬 눈 속 묻혀둔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빠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언제나 나 나름대로 추측만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그 체량 속 아빠를 이해하고, 내 가슴 속에서 그려낸 아빠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줄 수 있을까 늘 고민해왔던 내게, 이 편지는 가장 정답과 근접한 마음의 소리가 적혀 있음을 깨달았다. 늘 아빠를 어디서든 잘 자라나는 소나무 와도 같다고 생각했다. 변함없는 자리에서, 한결같이 푸르며, 남들보다 빠르고 기발한 무언가를 하기 보다는 모든 일을 묵묵하고 성실하게 끝까지 해내는 아빠의 뚝심까지도.. 할아버지 농장에 있던 그 소나무를 떠올리게 했다. 아빠를 통해서 늘 많은 것 을 배운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면서도 늘 배우기만 하고 마음 속 상처가 가려져 있는 것 만 같아서 답답하기도 했다. 이 편지 속 아빠는, 그 누구보다도 아련하게 슬픔과 아픔을 나에게 털어 놓으셨고, 나를 사랑했고, 그 사랑의 표현 조차도 너무나도 상세하게 적혀 있다. 늘 내 관점으로만 생각하며 아빠에게 바래왔던 그 모습이 감사하게도 잘 보관 되어있던 편지더미들 속 그대로 변함 없이 함께 하고 있었다. 그 소중한 종이에 적어 내려간 아빠의 진솔한 고백과 사랑이 나에게는 지금 물밀듯 넘쳐흐르고 있다. 아빠의 글 속 에서 다시 한번 치유를 경험 한다. 아빠를 똑 닮은 듯 한 투박한 글씨체에 정직한 한 자 한자, 컴퓨터가 아닌 원고지 뒷장에 정성스레 적혀 있는 아빠의 사랑, 이메일이 아닌 우편봉투에 영문자로 적힌 주소 까지.. 이 편지들을 다시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아빠에게 감사했다.
늘 잊을만 하다가도,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누군가를 더욱 깊이 알아가는 시간. 가장 가까운 사람을 옆에 두고도 쉽게 잊고 지냈던 나의 불찰.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편지 두 장을 통해 다시 알아가는 아빠의 마음. 아빠가 나에게 털어놓았던 이 아픔을 내가 지금껏 잊고 살았다는게 새삼 부끄러워진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아빠에게 미안하다. 나는 아빠가 나에게 주었던 이 소중한 편지에 담긴 그 사랑을 잊지 않을 것 이다. 내가 그동안 너무 아빠를 못살게 군 것 은 아닌지 생각도 든다. “슬프면 언제든지 내게 이야기 해. 나는 아빠 딸이잖아. 아빠 사랑해. 아빠 고마워. 아빠 미안해. 아빠가 너무 자랑스러워. 아빠 나 너무 힘들어. 아빠 나 할 수 있을까?” 이 모든 말들을 너무 지나치게 이야기 해서 어쩌면 아빠의 말을 듣지 못했던게 아닐까.. 밖에서는 그렇게 표현력이 좋지 않은 나 이지만, 가족들에게는 정말 사랑표현을 많이 했고, 나는 그 사랑을 표현하는 말 속 에서 치유를 느꼈다. 나만의 치유와 행복을 위해서 나누었던 지나친 행동으로 인해 어쩌면 아빠가 같은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늘 뺏어왔던 것 같기도 하다.
굳이 누군가의 아픔을 들춰내려 하는 것 은 아니지만, 내가 사랑하는 이의 아픔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서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은 의지가 너무 강하다 보니, 그런 모습이 오히려 아빠에게는 부담이 되었을 지 도 모를 꺼라는 생각도 든다.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하는 식의 아픔을 묻는 나의 방식이 잘못 되었음을 다시 한번 반성하고, 앞으로는 아빠가 이 편지 속 글 처럼 담담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그 공간을 만들어줘야겠다.
세상 모든 부모님들이 갖고 계신 무거운 마음을 우리가 알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생각 한 적 도 있었고, 어른들이 아플때는 우리와 단 한 점 다를게 없을텐데 티 내지 않고 혼자 앓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 모든 것 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 일까 하는 걱정도 한 적 이 있다. 눈치를 보면서도 모른척 하는 것 이 옳은 것 이겠지 생각도 해봤지만 어떠한 동기와 길을 통해서라도 그 슬프고 고독한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는 기회는 늘 열려있었고 결국 그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것 은 우리의 잘못이다. 내가 너무 무지했고, 너무 무서웠어서 더 큰 마음의 짐을 안겨드렸던 것 은 아닌지 .. 오늘도 다시 한번 고민하고 생각해본다.





